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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리더십] 부하가 먼저 인정하는 리더가 되는 법

힉스_길메들 2012. 5. 20. 10:47

시대정신의 화신 헤겔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아십니까. 전쟁 포로를 다 죽여 버리던 시절, 이로 인한 노동력의 상실이 막대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패자를 노예로 삼는 인도주의적이면서도 노동력을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노예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생명을 담보 받죠.

주인은 노예의 인정을 통해 주인으로서의 자기 의식을 확립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노예가 주인을 인정하지 않으면 주인이 주인으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노예 역시 주인의 자비심 없이는 생명을 부지할 수 없죠. 그래서 주인은 노예의 노예가 되고 노예는 주인의 주인이 됩니다. 누가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했냐고요? 바로 절대적 관념론을 주장한 독일의 철학자 헤겔입니다. 그는 그의 최고 역작이라고 평가되는 ‘정신현상학’에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들고나왔죠.


택시 하나 못 잡는 퇴역 장성

헤겔은 영국이 산업혁명에 성공하고 미국이 신흥 국가로 독립 정신을 불태우고 프랑스는 나폴레옹의 출현을 앞둔 시점에서 당시 유럽의 후진국이랄 수 있는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을 존경했는데, 예나에서 프랑스 군대의 포성을 듣는 순간 희열을 느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시대정신이 자유를 향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같은 대학 철학과에서 강의하던 쇼펜하우어와 늘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한번은 쇼펜하우어가 강의 시간표를 일부러 헤겔과 같은 시간에 짜 넣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승부는 싱겁게 끝났습니다. 워낙 명강의로 명성이 드높던 헤겔에게 완패를 당한 것이죠. 천하의 쇼펜하우어가 말입니다.

자, 그러면 “주인은 노예의 노예이고 노예는 주인의 주인이다”라는 헤겔의 말은 무슨 뜻일까요. 주인을 주인으로 만드는 것은 노예에게 달려 있습니다. 상대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상대가 아무리 자기가 자기라고 주장해도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반면 주인은 노예로부터 인정받고 난 후부터는 노예에게 의존하기 시작합니다. 노예가 제공해 주는 물질의 서비스를 받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주인은 완전히 노예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노예의 노예라는 발상에서 헤겔의 통찰력을 볼 수 있는 것이죠.

퇴역 장성 한 분이 있었습니다. 늘 운전사가 차를 몰아줬기 때문에 퇴직하자 운전할 수 없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적도 없어 약속 장소에 가다 보면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였죠. 그래서 택시를 타려고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 탈 수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자신도 모르게 택시 문을 누가 열어주길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노예의 노예가 된 극단적인 상황을 잘 묘사해 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면 이런 어이없는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를 보면 패자는 늘 억울하고 그래서 승복하지 않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때 승자는 서둘러 자신의 승리를 스스로 선언해 버립니다. 그러니 경기를 잘하고도 멋있지가 않습니다. 끝난 후에 시시비비가 어떻고 이런 핑계 저런 핑계가 난무하는 꼴불견이 벌어지기도 하죠. 승리를 인정하는 소통이 먼저고 아량을 베풀고 위로해 주는 소통은 그 후에 이어지는 게 순서입니다.

선거 때 낙선한 후보가 당선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축하해 줬다면 그 패배자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는 소통을 가진 곳에선 패자부활전이라는 아름다운 꽃도 피니까요.

이것을 조직으로 가져오면 이런 말이 성립됩니다. 리더는 부하로부터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부하로부터 인정받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존경심을 획득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존경심을 획득하는 길은 그들을 한 인격으로 대우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상대를 인격으로 대우하고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그 실행 방안을 같이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하를 먼저 인정해야 그들도 여러분을 인정합니다. 소통은 쌍방향이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적 소통의 핵심은 다음의 3가지 인식하는 것입니다.

첫째, 이 세상은 끊임없이 운동하고 변화한다. 과거 성공 사례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하는 것으로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둘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투자를 하기 시작하면 다른 경쟁자들도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조차 무대응이 최상의 전략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쪽 방향으로 내닫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존재가 있습니다. 이 양자 간의 긴장 관계가 모순을 일으키면서 상승하게 됩니다. 그 유명한 ‘정반합’입니다.

우리 삶에서 반작용은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군이 적군을 이기는 것은 아군이 잘해서가 아니라 적군이 잘 못하는 것에 달려 있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입니다.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적이 많은 것도 반작용입니다. 상대방 후보가 실수한 것에서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국회의원 선거 전략도 반작용의 법칙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정립과 반정립의 갈등 관계에서 합으로 지양(aufheben)하는 것이 바로 변증법의 묘미입니다. 지양한다는 것은 정립도 아니고 반정립도 아닙니다. 양자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모두 제거해 버리고 그 장점만 가지고 새로운 레벨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택시 하나 못 잡는 퇴역 장성처럼 노예의 노예가 되겠죠.


마음의 문은 안에서만 열린다

헤겔은 ‘관념론적 변증법’이 절대정신·절대자유·시대정신을 향해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서로 대립하는 두 이념 간의 갈등이 있을 때 역사는 진보하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리더는 부하를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하도 리더를 먼저 인정합니다.

물론 상대를 먼저 인정할 때 항상 리스크가 따릅니다. ‘나는 인정하는데 상대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리더십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항상 “네가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것 같은 사람에겐 항상 먼저 인사해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헤어진 사람은 다음에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옳았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사람 마음의 문은 안에서만 밖으로 열 수 있다.” 헤겔이 한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유달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상대방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상대방을 향해 먼저 문을 열었는지 체크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문을 밖에서 억지로 열면 그 문은 부서지고 맙니다. 자신의 문을 열어야 상대방의 문도 열린다는 변증법적 소통 방식을 익히십시오. 정반합의 상승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소통의 리더가 되기 바랍니다. 그것이 쌍방 간의 장점만을 승화시키는 윈-윈 소통의 리더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