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 가게들, 맛의 고집이 녹아있다… 사람 냄새가 난다
서촌 토박이 설재우씨 추천, 꼭 알리고 싶은 가게 4곳
↑ [조선일보]
서촌의 과거와 현재를 충실히 기록한 '서촌방향'의 저자 설재우씨(서촌라이프 발행인)는 서촌에서 나고 자랐다. 30년 넘게 이곳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동네가 점점 변해가는 것이 안타까워 2009년부터 서촌을 알리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퇴출 위기에 있던 서촌의 마지막 오락실 '용오락실'을 인수해 지역문화 창작공간 '옥인상점'을 냈다. 그는 '서촌 지역 이야기꾼'으로 불리길 원한다.
그는 "문화인과 유명인들이 서촌을 주목한다는 기사가 많이 나가면서 이 동네가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새로 생긴 예쁜 가게들이 주목을 받았지 인터넷도, 홍보도 할 줄 모르는 동네 가게들은 정작 알려지지가 않아 안타까웠다"고 했다. 설씨가 꼽는 서촌 가게들의 매력은 바로 '스토리'다. 설씨가 "꼭 알리고 싶은" 가게 4군데를 소개한다.
①적선시장 할머니 떡볶이
이 동네 떡볶이는 빨간 국물이 흥건한 여느 떡볶이와 다르다. '떡볶이'라는 이름에 충실하게, 떡을 볶아서 만든다. 한평 남짓한 공간에 비닐 천막으로 가게를 만들어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100세 가까운 김정연 할머니가 40여년간 장사를 해온 공간이다. 불친절하고 퉁명스럽기까지 한 할머니지만 어버이날에는 꽃을 열댓 개 받을 정도로 동네에서 인기가 좋다. 젊었을 적 채소와 꽃을 팔고, 나이 든 후 떡볶이를 팔아가며 악착같이 모은 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유산으로 기탁한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바로 앞에 있는 적선시장(혹은 금천교시장)의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솥뚜껑 같은 철판에 빨간 의자가 놓인 곳이 가게다.
②중국
하루 재료가 다 떨어지면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오후 2시 30분이면 문을 닫는 날이 많다. 그만큼 재료가 신선하다. 명색이 중국집인데 배달도 하지 않는다. 사장의 고집과 철학이 강한 만큼 맛도 특별하다. 예를 들면 깐펑지(깐풍기·1만8000원). 소스가 많아 튀김이 다 젖어버린 깐풍기가 아니라 닭을 감싸는 튀김이 바삭할 정도로 내놓는다. 튀김옷엔 보통 물과 녹말가루, 계란을 넣는데 이 집에선 계란을 빼고, 소스도 건조할 정도로 적게 넣는다. 가게 문을 닫고 난 다음에는 '동네지킴이' 순찰을 돌 정도로 사장의 동네 사랑이 지극하다. 청운초등학교 후문에 있다.
③아담집
식탁 4개 정도 들어갈 정도로 아담한 공간에서 체구가 아담한 할머니가 음식을 내놓는다. 모든 메뉴 가격은 4000원. 비빔밥, 비빔국수, 백반 등이 있는데 할머니 손맛 때문에 뭘 시켜도 맛있다. '우리 할머니'가 해준 밥상 같다. 특히 이 집의 비빔국수는 끝맛까지 첫맛처럼 깔끔함을 유지한다. 반찬으로 나오는 아삭한 생채는 가히 최고다. 적선시장 골목을 끼고 배화여대 쪽으로 100m 정도 쭉 들어오다 보면 우측에 있다.
④뽀빠이 화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뽀빠이 화원을 보면, 맞는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꽃집이다. 이곳의 '뽀빠이 아저씨'는 없는 꽃도 주문하면 구해다 주고, 작은 금액이라도 늘 열심히 꽃다발을 만들어준다. 졸업식, 밸런타인데이,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같은 특별한 날이면 다른 꽃집의 꽃값은 천정부지로 뛰지만, 이 집에선 늘 똑같은 값을 받는다. '뽀빠이 아저씨'의 다른 별명은 맥가이버다. 서촌 일대에 국립서울맹학교가 있는데, 아저씨는 언젠가부터 이곳 학생들의 카세트 플레이어 등 전자기기를 고쳐주기 시작했다.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이 고장 난 전자제품을 들고 찾아가기 시작했다. 전자파와 꽃향기가 뒤엉킨 아이러니한 꽃집이다. 통인시장 입구에 있다.
조선일보 변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