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멋집n요리

영화감독 안휴가 맛본 각지의 바다 만찬 1

힉스_길메들 2013. 1. 2. 00:51

안휴가 건져 올린 바다 만찬

일생에 한 번 가보기도 힘든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62곳을 직접 가보고 그 음식과 셰프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영화감독 안휴. 그가 이번엔 우리 땅, 우리 섬을 발로 뛰면서 짭조름한 바다 맛을 건져올려 왔다. 두 번째 저서 『바다와 섬의 만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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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를 시작으로 부산, 거제, 통영, 남해, 진도, 완도, 제주를 찍고 벌교, 강진, 강원도까지 짠내 나는 바다가 있는 곳은 다 다녀왔다. 순전히 먹거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떠난 버라이어티한 미식 여행기는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했다.

"한 번도 요리사를 꿈꿔본 적은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꽤나 좋아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 행여 입에 넣었다 뱉을지언정, 차례상의 음복까지 빼먹지 않았던 꼬마였다고 하니까요." 뉴욕대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시절에도, 그는 혼자 식사를 하더라도 이왕이면 맛있는 걸 찾아 먹는 남자였다. "바빠서 끼니를 못 챙길 때도 있었지만, 한 끼를 먹더라도 조금 멀어도 맛있는 곳, 제대로 된 곳을 찾아가 먹었죠.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제 '미식 여행'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출간된 그의 저서 『바다와 섬의 만찬』(중앙 m & b)은 실제로 가보지 않고, 먹어보지 않고는 절대 '알 턱이 없는' 싱싱한 활어회 같은 정보가 가득하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 깨알 같은 맛집 정보를 그는 어디서 가져오는 걸까.

"사람들은 제가 여행을 가기 전 미리 수많은 맛집 리스트를 검색해서 가져간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블로그나 온라인에 떠도는 정보는 믿지 않아요. 너무 개인적 취향의 평가이기도 하고, 오래되거나 잘못된 정보도 부지기수거든요."

현지의 가장 맛있는 집은, 현지인들이 가장 잘 안다. 그는 항구에서부터 넉살 좋음으로 승부한다. 음식의 유래, 그 고장만의 특성을 책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서가 아니라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입을 통해 얻어오니, 지금껏 보지 못한 산 정보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수많은 인연을 만나게 돼요. 낯선 이방인인 저에게 스스럼없이 그네들의 집 문턱을 내주기도 하고 집안마다 대대손손 담가 마시는 '약주'를 통 크게 내주기도 하지요. 그렇게 연을 맺어 지금도 형, 동생 하며 지내는 분이 여럿 있습니다."

한번 지방에 내려가면 그야말로 치열하게 먹는 데만 집중하고 돌아온다. "사람들은 제가 아주 돈이 많은 사람인지, 음식값을 협찬받는지 궁금해하는데, 둘 다 아니에요. 물론 가끔 저를 알아보고 음식값을 안 받겠다는 분도 있긴 하지만, 그 경우에도 예외 없이 음식값은 지불합니다. 그래서 제가 여태 가난한 거고요.(웃음)"

또 하나 재미있는 건, 그가 여행 때마다 이고 가는 '오클리 백'이다. 돌덩이처럼 묵직한 일명 '술 백팩'이라 불리는 가방 안은 각종 술로 가득 차 있다. "현지의 음식과 술을 매칭해서 마시는 것을 좋아해요. 전통주부터 와인, 싱글몰트 위스키까지 적게는 5병, 많게는 12병까지 넣고 떠나죠. 같은 굴이라고 해도 통영굴과 고흥 굴 맛이 다르니 어디를 가도 다른 조합, 다른 경우의 수가 나오는 것이 재미있어요."

제아무리 맛있게 먹은 음식이라도 포장을 해서 가져오지는 않는다. 현지의 온도, 분위기가 달라지면 음식 맛이 달라진다는 것을 몇 차례 경험으로 알고부터다. 그래서 그의 '미식 보고서'는 더 현장에 충실하고, 또 절박하게 느껴진다.

그가 가방 속의 모든 술을 비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그 차 안에서 얼마나 가기 싫어 내심 발을 동동 굴렸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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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음식과 어울리는 술을 매칭하는 것을 좋아하는 안휴가 여행 때마다 이고 가는 '술백 팩'.

욕망의 여행지, 궁극의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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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신비섬 횟집의 해계탕

울릉도의 산닭 백숙에 자연산 전복, 뿔소라, 홍합, 석화, 조개, 문어 등을 쌓은 요리다. 주문을 하자마자 주인장이 바다로 나가 싱싱한 해산물을 잡아올라 왔는데, 어른 4명이 먹어도 남을 만큼 양도 풍성하다. 오징어 내장을 데쳐 양념장을 얹은 밑반찬처럼 울릉도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든 반찬 하나하나가 모두 맛깔스럽다. 해계탕 15만원(4~6인 기준, 2시간 예약 필수).문의054·791-4460

바다회센터의 따개비밥과 오징어내장탕

따개비는 청정 지역인 울릉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오랜 향토 음식이다. 쫄깃쫄깃 씹히는 따개비의 식감은 전복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육지에서 떠나기 전 예약해야 오래 기다리지 않고 맛볼 수 있는 오징어내장탕과 함께 먹으면 배로 맛있다. 살아 있는 오징어의 싱싱한 내장으로 만들기 때문에 전혀 비릿하지 않다. 따개비밥 1만5천원, 오징어내장탕 8천원.문의054·791-4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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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일학식당 간자미무침


진도가 좋은 이유는 간자미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다. 1월 즈음이 제철이다. 진도에서 간자미를 주문하면 어디서든 껍질 벗긴 간자미를 막걸리로 쓱쓱 빠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간자미의 점액을 세척하는 동시에 홍어보다 딱딱한 간자미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다. 여기에 미나리와 양념을 듬뿍 더하고 일학식당 만의 비결, 막걸리 식초를 넣고 무치면 끝이다. 매콤한 양념에 막걸리 식초의 새콤함이 더해져 술안주로 그만이다. 간자미무침 3만~4만원.문의061·542-2798

흑산도
우리식당 할머니집의 삭히지 않은 날홍어


40년 넘게 홍어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곳으로 '진짜' 흑산도 홍어를 맛볼 수 있다. 삭히지 않은 날홍어를 맛볼 수 있기 때문에 홍어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홍어회 5만원.문의061·275-9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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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해궁횟집의 매생이국과 방게장


완도의 매생이국은 남도 다른 지역의 그것보다 훨씬 시원하고 구수하다. 그 맛이 신기해서 주방엘 가보니 멸치 육수를 끓이다가 매생이를 넣고 마지막에 굴을 조금 넣어 참기름으로 간을 하는 걸 알았다. 해궁횟집에는 완도에서만 나온다는 '방게'도 맛볼 수 있는데 봄 산란기에 게장으로 만들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한다. 매생이 정식 1만원.문의061·554-3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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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용궁의 거북손


제주도올레길이 있다면 울릉도에는 해안 산책로가 있다. 이탈리아의 친퀘테레나 카프리섬을 연상케 하는 해안 절경을 감상하며 산책로를 걷다 보면 '용궁'이 나온다. 용궁은 해안가에 펼쳐진 포장마차 스타일의 주점으로 울릉도에서 가장 신선한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밤마다 울릉도의 수평선을 환하게 밝히는 오징어 배들의 유화와 같은 풍경에 취해 섬에 머무는 매일 밤 이곳에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마지막 날 그 유명한 '거북손'을 맛보았다. 용궁의 최대식 사장이 단골손님을 위해 준비한 깜짝 선물이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일부 청정 지역에만 서식한다는 거북손은 바지락조개와 미더덕의 중간쯤 되는 묘한 맛이다. 귀한 거북손 요리를 맛보고 최대식 사장이 손수 배를 저어 저동항까지 태워다 주었는데, 바다를 가르는 그 풍경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한 장면처럼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모둠회 4만원(소).문의054·791-7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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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지역에서만 서식한다는 거북손

기획_김현명 사진_ 『바다와 섬의 만찬』(중앙 m & b)
레몬트리 2012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