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노년’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By DANIEL KLEIN
어느덧 70대 중반이 된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평생 해야 할 것 중 아직 못 다한 일을 이루는 데 나머지 인생을 바쳐야 할까? 아니면 모든 걸 뒤로 한 채 야심도 버리고 인생을 돌아보면서 삶다운 삶을 살아야 할까?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더군다나 바야흐로 ‘새로운 노년’의 시대가 아닌가. 의학의 발전으로 수명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데다, 뜨거운 열정과 모험심으로 대변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60대 중반에 진입하면서 이제 노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쁜 시기라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 새로운 노년의 함정
흔히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우리 노년층이 전례없는 기회를 누리게 됐다고들 한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뭔가를 포기하는 노인들은 바보 취급, 심지어 겁쟁이 취급까지 받는다.
내 주변에는 여전히 소싯적 직업에 몸담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이미 상당한 업적을 일궈냈음에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들 일하고 있다. 그 중에는 머릿속에 떠오른 소설을 쓰느라 너무 바뻐 프랑스어 학원에 다닌다든지 조깅을 할 시간은 고사하고, 노화방지 호르몬 치료나 성형수술을 받으러 다닐 시간 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새로운 노년’의 철학을 거부한다. 만약 이 철학을 따른다면, 상당히 의미있는 즉 내 인생의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시기를 놓칠 것만 같아서다. 인생의 황금기를 오래토록 붙잡고 있다가 그만 더 늙어 버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내 안에 깊게 뿌려박혀 있다. 죽기 전에 노망이라도 들거나 거동도 못할 정도로 아프면 어쩐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만족스러운 참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고자 나는 여행가방에 철학서적을 가득 담고서 그리스의 히드라 섬으로 떠났다. 그 섬은 내가 예전에 일 년 동안 살았던 곳이다. 나는 만족스러운 노년에 대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여전히 많은 이의 세계관에 영향을 주고 있는 고대 철학을 읽기에 그 곳(히드라에는 바위도 많고 일조량도 풍부하다)보다 안성맞춤인 곳이 또 있을까?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행운아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은 청년이 아닌, 지금껏 잘 살아온 노인이어야 할 것이다. 왜냐면 청춘기에는 자신의 믿음에 확신이 없어 많이 방황하지만, 정박할 항구에 다다른 노인은 자신의 참 행복을 잘 지켜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흔들리는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을 행복의 핵심으로 보는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어느 그리스 음식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그의 철학서를 읽던 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그 외에도 에피쿠로스의 여러 가르침 속에서 나는 청년들은 믿음이 흔들려 자신의 삶에서 방향을 잃게 되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고생’의 헛됨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평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한 가장 위대한 지혜는 우정이다.”
기원전 3세기 아테네인들의 모습에서 직업이 진정한 우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는 비즈니스에 몸을 담다 보면 불가피하게 타인을 목적 자체로가 아닌,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다루게 된다.
식당에 있는 동안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내 나이 또래의 노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오기 전부터 시작된 이들의 대화는 해가 바다 건너 펠로폰네소스 반도 너머로 질 때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비록 초보수준의 그리스어 실력이었지만 나는 이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유례없이 뿌연 날씨며, 새로운 치즈 노점상 주인, 손자 손녀, 아테네 정치 등에 관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따금씩 노인들은 나머지 사람들은 처음 듣는 자신만의 옛날 얘기를 하기도 했다. 대화 중간중간에는 느긋하고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
그 중 타소라는 이름의 노인은 내 절친한 친구가 됐다. 타소와 함께 앉아 있던 노인들은 모두 그 섬 토박이로 여유롭게 은퇴 후 삶을 즐기고 있다. 타소는 학생 시절 테살로니키와 런던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아테네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 은퇴한 그는 예전처럼 법정에서 동료들과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 무언가를 꾸며 낼 필요도, 동료를 넘어뜨릴 작전을 짤 필요도 없다. 그저 친구들이 오래 곁에 머물러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우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탐독하고 나니 새로운 노년은 정말이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한 번 뿐인 노년에 과연 어떤 절묘한 기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과연 기대된다. 내 침대 머리맡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사르트르 등 많은 철학자들의 책이 여전히 펼쳐보지도 않은 채 놓여있다. 내게 마지막 남은 욕심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 책을 모두 탐독하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