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꿈으로 얻은 정조, 조선시대 왕실의 합방 및 태교
영조 27년(1751) 10월 어느 날 밤인가 곤히 잠에 떨어졌던 사도세자가 문득 일어나서 '용꿈을 꾸었으니 귀한 아들을 낳을 징조'라고 했다. 태몽이 얼마나 생생했는지 직접 그림으로 그리기까지 했다. 사도세자는 흰색 비단에 용을 그려서 침실 벽에 걸었다. 혜경궁 홍씨나 사도세자는 조만간 아들이 임신될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날부터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는 귀한 아들을 맞이할 준비에 돌입했다. 아직 임신을 한 것은 아니지만 미리 준비를 했던 것이다.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가 했던 사전준비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디에도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부부사이의 은밀한 사생활이라 기록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귀한 아들을 맞이하기 위한 두 사람의 사전준비가 무엇이었는지는 알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기록보다는 간접 증거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좋은 자녀를 갖기 위한 사전 준비는 『동의보감』을 근거로 했다.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도 이것에 근거했음이 분명하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좋은 자녀를 갖기 위한 사전 준비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 '좋은 시간에 합방'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복과 덕이 있고, 큰 지혜와 인격을 갖춘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 아이의 성풍과 행실이 어긋나지 않아 집안이 나날이 번성할 것이다.'라고 했다.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가 기다린 '귀한 아들'이란 바로 '복과 덕이 있고 큰 지혜와 인격을 갖춘 아이'라고 할 것이다.
『동의보감』은 건강한 몸과 마음은 건전한 생활과 정신 수양으로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건전한 생활을 해야 건강한 몸과 마음이 가능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이라야 남편의 건강한 정자와 부인의 순조로운 월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건강한 정자와 순조로운 월경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키기 위한 방법이 바로 좋은 시간에 합방하는 것이었다. 『동의보감』에 제시된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기 위한 비법은 이런 것이다.
"자녀를 갖고자 한다면 부인은 반드시 월경이 순조로워야 하고, 남자는 반드시 정액이 충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욕정을 줄이고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상책이다. 욕정을 줄이고 함부로 교합하지 않아야 기운과 정액이 쌓인다. 그러다가 때에 맞게 교합하면 능히 자녀를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욕정을 줄이면 정액이 충분해 자녀가 많을 뿐만 아니라 건강한 자녀를 낳을 수 있고, 오래 살 수도 있다."(『동의보감』잡병편 권10, 부인편)
태몽 이후로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도 이렇게 준비했다. 당시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는 17살로서 한창 나이였지만 귀한 아들을 얻기 위해 서로 절제하고 조심했다. 그런 준비 끝에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는 12월에 합방하여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10월에 태몽을 꾸고 12월에 합방했으니 사전준비에 약 2개월 정도 걸린 셈이었다. 좋은 시간에 합방하는 방법이 『동의보감』에 이렇게 제시되어 있다.
"아들을 얻고자 한다면 부인의 월경 후 1일, 3일, 5일 가운데 봄에는 갑을甲乙이 들어가는 날에, 여름에는 병정丙丁이 들어가는 날에, 가을에는 경신庚辛이 들어가는 날에, 겨울에는 임계壬癸가 들어가는 날에 교합하되 한 밤중이 지난 다음에 사정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아들이 태어나는데 그 아들은 장수를 누리고 똑똑하기조차 하다. 부인의 월경 후 2일, 4일, 6일에 교합하면 딸이 태어난다. 6일이 지난 뒤에는 교합하지 않는 것이 좋다." (『동의보감』잡병편 권10. 부인편)
위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합방하는 날짜를 달리 하라고 한 이유는 음양오행 때문이었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의 10간干을 오행으로 나누면 '갑을'은 봄, '병졍'은 여름, '무기'는 늦여름, '경신'은 가을, '임계'는 겨울이었다. 신미년(1751, 영조27) 12월은 겨울이므로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는 '임계가 들어가는 날 교합'했을 것이다. 그해 12월 중에서 임계가 들어가는 날 중에서 홀수 날은 12월1일(癸巳), 12월11일 (癸卯), 12월21일 (癸丑)의 3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범위를 좀 더 좁혀본다면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는 12월21일 (癸丑)에 합방했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왜냐하면 11월14일에 혜경궁 홍씨의 손위 형님이던 현빈 조씨가 세상을 떠났기에 12월1일이나 11일은 상이 난 시점으로부터 너무나 가깝기에 합방을 꺼렸으리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12월21일은 상이 난지 한 달도 넘었고 또 날씨도 화창했다. 분명 이날 바에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는 크나큰 희망을 안고 합방했으리라 생각된다. 귀한 아들을 얻기 위한 합방 방법은 궁중에서의 관행대로 『소녀경素女經』에 입각했을 것이다.
"소녀素女가 말하기를, '현명한 자녀를 갖기 위한 방법에는 법도와 체위가 있습니다. 먼저 마음을 맑게 하고 생각을 원대하게 가지며 복장을 편안하게 입고 마음을 비우며 몸가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부인의 월경이 끝나고 3일 뒤에 한밤중이 지나서 첫닭이 울기 전에 부인을 애무하여 달아오르게 합니다. 부인이 극도로 흥분에 이르면 옥경을 밀어 넣고 왕복운동을 하는데 법도에 따라 절절하게 해야 합니다. 부인과 쾌락을 함께하여 절정에 이르게 되면 몸을 약간 빼면서 사정해야 합니다. 이때 옥경을 너무 빼서 맥치麥齒(소음순) 밖으로 나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옥경이 너무 많이 빠져나와 자궁문을 벗어나게 되면 정액이 자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법에 따라 자식을 갖게 되면 자식은 현명하고 선량하며 무병장수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했다.'(『소녀경』)
출산의 이면에는 모진 다짐과 노력이 있었다
혜경궁 홍씨는 합방 후부터 본격적으로 태교에 집중했다. 물론 그 방법은 왕실에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그대로였다. 조선시대 왕실 태교는 기본적으로 음식태교, 행동태교, 마음태교 등등이었다.
음식태교는 임신부가 태아에게 유익한 음식을 먹고 유해한 음식을 피하는 것이었다. 조선의 왕실 태교에서는 무엇보다도 임신 중에 음주를 금지했다. 술은 물론 술로 만든 약도 복용해서는 안 되었다. 임신 중의 음주는 몸 안의 경맥들을 흩어 각종 질병을 초래한다고 생각하여 술 대신 물을 마셨으며 그것도 달여서 마셨다. 술 이외에 당나귀고기, 말고기, 개고기, 토끼고기, 비늘없는 물고기 등도 금기시되었다. 이런 음식을 먹으면 난산하거나 또는 불구아가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엿기름, 마늘, 메밀, 율무, 계피, 생강 등은 소화를 촉진하거나 혈기를 흩어지게 함으로써 태라을 유산시킬 수 있다고 하여 쓰지 않았다. 음식 금기보다 더 중요시 된 것은 약물 금기였다. 약물이 더 위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약물을 쓸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동의보감』에 소개된 임신 중의 금기 약물에는 거머리, 부자, 복숭아씨, 도마뱀 등등이 있었다.
임신부에게 권장된 음식은 잉어, 소의 콩팥, 새우, 미역 등이었다. 잉어는 물고기중의 왕으로 간주되었는데, 임신부가 잉어를 먹으면 잉어처럼 단정한 아이를 낳는다고 믿었다. 소의 콩팥은 임신부의 신장을 보완해 주고 새우와 미역 등은 해산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임신부에게 권장되는 음식들은 모양, 맛, 냄새, 온도 등을 적당하게 요리해 먹었다. 음식태교가 음식을 조심하라는 것이라면 행동태교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동의보감』에 소개된 행동태교는 이런 내용들이 있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높은 곳에 오르거나, 험한 곳에 가지 말아야 한다. 과로하지 말아야 말아햐 한다. 잠을 너무 많이 자지 않아야 한다. 반드시 때때로 걸어주어야 한다. 너무 놀라지 말아야 한다. 너무 놀라면 아이의 정신이 이상해진다. 산달에는 머리를 감지 말아야 한다. 높은 곳에 있는 화장실에 올라가지 말아야 한다." (『동의보감』잡병편 10권, 부인편)
그런데 혜경궁 홍씨가 이런 음식태교나 행동태교보다도 더욱 신경을 쓴 부분은 마음태교였다.
왕을 위한 변명 중에서 -신명호 지음 /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