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문명사는 양념을 찾는 탐험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방과 유럽 간의 교역도 양념을 얻으려는 동기에서 이뤄져 때로는 양념으로 인한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양념의 독특한 향내와 혀를 자극하는 강한 맛은 오늘날 음식을 재료보다는 양념 맛으로 평가하게도 한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면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는 게 사람의 입맛. 좀 더 강렬하고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이 이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는 요즘, 양념도 예외일 수 없는 것일까.
양념에 숨겨진 '독'을 안다면, 우리의 혀는 양념보다는 재료의 맛을 느끼고 음미할 것이다.
◆ 천연음식이라도 양념 많으면 해로워
= 소금을 비롯한 양념을 음식에 넣는 양은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서 많고 추운 곳일수록 적다. 이는 더운 지역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는 세균 번식을 줄이기 위해서다. 실제로 마늘, 양파, 고추 같은 양념 식물을 실험해 보면, 세균의 75% 이상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대사회에서는 음식뿐만 아니라 미라를 만들 때에도 양념 식물을 사용했다.
음식에 넣는 양념이나 조미료는 대부분 어느 정도 독성을 띤다. 따라서 양념은 냉장고가 나오기 전 음식의 부패를 막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음식에 침투하는 세균을 죽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소금. 하지만 소금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몸이 입는 타격은 아주 크다. 나트륨 이온이 소금 형태로 지나치게 섭취되면 위암이나 콩팥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몸에 남아도는 소금은 뼈에서 칼슘을 빼내는 작용을 해 골다공증을 유발한다. 의사들이 짜게 먹지 말라고 권장하는 대표적인 이유다.
이처럼 양념에는 부작용이 뒤따른다. 양념 식물에서 얻을 수 있는 몇몇 항균 물질을 대량으로 섭취하면 세포 속 DNA가 손상돼 돌연변이를 일으키거나 암을 유발한다. 이는 기형아를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부작용이 나타나는 정도는 섭취량과 사람에 따라 다르다. 특히 임신부나 어린이들은 양념이 과다하게 들어간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천연 음식이라 하더라도 양념이 많으면 몸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 매운맛 대명사 겨자와 고추냉이
= 겨자와 고추냉이의 공통 활성성분인 아릴 이소티오시아네이트는 매우 자극적인 물질이다. 식도로 넘어가면 별 문제가 없지만, 기도로 들어가면 매우 위험하다. 또 피부에 묻거나 눈에 들어가면 고통이 뒤따른다.
조미숙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아릴 이소티오시아네이트 성분이 들어간 양념을 많이 먹으면 심할 경우 혀가 일시적으로 마비될 수 있다'며 '이는 음식 고유의 맛을 느끼면서 먹는 게 아니라 고통으로 먹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고추냉이 제품을 생산하는 식품업체에서 작업을 하다가 아릴 이소티오시아네이트 1.7ℓ를 바닥에 쏟은 일이 있었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소방관들도 너무 자극적인 화학반응 때문에 접근하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아릴 이소티오시아네이트는 생화학전 무기로 사용되기도 했다.
매운 고추 역시 피부를 자극한다. 고추의 활성성분인 캡사이신은 이런 특성 때문에 통증을 완화하는 연고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고통과 체온에 대한 감각을 둔화시키는 것이다. 캡사이신과 함께 2000년 이상 통증 완화제로 사용돼 온 RTX, 리시니페라톡신이라는 복합물질이 있다. RTX는 캡사이신보다 자극이 1만배나 강하다. 그래서 코에 갖다 대어 혼수상태에 빠진 사람을 깨우거나 재채기를 하도록 만드는 데 사용됐다. 최근에는 무통제로 다시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RTX는 백각기린이라는 양념에 쓰이는 식용 선인장의 진액에서 추출된다.
◆MSG, 안전한 음식 첨가물로 인정
= 고대부터 요리사들은 음식의 맛과 향을 조절하거나 강화시키는 음식첨가제를 사용해 왔다. 그중 널리 알려진 것이 MSG, 이는 글루탐산나트륨으로 단맛과 쓴맛, 시원한 느낌을 억제하는 반면 신맛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공화학조미료인 MSG는 중국 요리에 가장 많이 쓰이며 유해성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MSG가 많이 함유된 중국 요리를 먹은 후 졸음, 상체 압박감, 무기력증과 같은 증상을 느낀다는 '중국음식점증후군'이 1960년대 미국에서 보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유럽연합음식과학위원회와 미국실험생물학회연합 등의 조사에서 실제 MSG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MSG가 건강에 아무런 해를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 1인당 MSG 사용량이 높고 섭취량에 따라 개개인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며 MSG 섭취는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매일경제2010.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