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멋집n요리

봄을 무치고… 봄을 끓이고… 봄식탁이 향긋

힉스_길메들 2012. 7. 7. 02:13

 

남자들은 제 엄마와 닮은 사람과 결혼한다? 글쎄,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이치에 맞는 말이기는 하다. 꼭 그 생김이 닮지 않더라도 성향이나 성격, 분위기나 취향 등이 모친과 닮은 여인에게 친숙함이나 편안함 또는 동질감을 느끼며 더욱 가까워질 수는 있을 테니까.

나의 시어머니와 나는 어디가 닮았을까? 식물 기르기를 즐기는 점, 서울보다는 공기 좋은 지방도시를 더 좋아하는 점, 맛있는 것 먹고 마시는 일을 마다하지 못하는 점이 비슷한 것 같다. 아, 또 있다.

어디 좋은 곳 다녀오면서 꽃잎을 따오거나 맛있는 특산물을 사오거나 돌막을 하나 주워 오거나 아무튼 그 흔적을 선물로 가져온다는 점. 그런 어머니께 봄에는 반드시 ‘쑥’을 뜯어 먹어야 몸이 깨어난다는 것도 배웠기에, 봄이면 날을 잡아 모자 눌러 쓰고 쑥 뜯으러 나가는 점도 어머니와 공유하게 되었다.

 

■ 우리 역사와 함께 해 온 쑥

쑥이 우리 역사에 처음 등장한 것은 단군신화. 사람이 되고 싶은 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견딘다는 내용이 나온다. 쑥과 마늘은 영양분이 가득하나 입에는 달지 않은 식재료로 선정된 것이 아닐까. 영양 덩어리 쑥은 단군신화 이후에도 굴곡 많은 우리 역사와 함께였음이 여러 문헌에 드러난다.

다산 정약용의 시 ‘채호(采蒿)’를 보면 ‘쑥을 캐네. 쑥을 캐네/ 쑥이 아니라 그저 약초라네/ 무리의 행진이 마치 양떼처럼/ 저 산등성이 넘어가네/ 푸른 치마 혼자 몸 굽이니/ 붉은 머리 기우네/ 쑥은 캐서 무엇 하나/ 눈물만 쏟아지네/ 독에는 쌀 한 톨 없는데/ 오직 쑥만 자랐으니/ 둥글고 넓적하게/ 말리고 또 말려서/ 담갔다가 소금에 절여/ 죽 쑤어 먹어야지/ 달리는 살 수 없네’ 한다.

난리를 여럿 겪어 그에 따른 굶주림도 우리의 일부였다. 그럴 때 사람 사는 곳이면 쑥쑥 자라나는 쑥으로 죽을 쑤어 먹고, 남으면 내다 팔기도 하여 우리는 목숨을 부지해 온 것이다.

쑥은 일단 여자들에게 좋다. <동의보감>이나 <본초강목>에 쑥이 몸의 냉기를 없애고 자궁을 따뜻하게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고 여자만을 위한 약초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위와 간을 보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로 위가 지친 이들, 과로 과음하여 간이 지친 이들에게 두루 좋은 것이다. 혈관을 튼튼히 만들어주니 고혈압에도 좋고. 그럼 약장수처럼 나불대기를 멈추고 쑥 요리나 해볼까?

 

■ 애탕국

쑥 ‘애(艾)’ 자를 보면 참으로 저 생긴 만큼 예쁘기 짝이 없다. 그 애(艾)를 끓여 만든 국이니 빛깔이며 향기가 얼마나 이쁠고! 애탕국은 여리여리 돋아난 봄 쑥을 따다가 만든다.

사실 쑥 요리 중에서도 소고기 완자가 주인공인 애탕국은 부르주아의 메뉴에 속한다. 1950년대 초반에 소설가 최일남 선생이 쓴 ‘쑥 이야기’를 보자.

‘어머니는 만삭이 된 몸을 무릅쓰고 나물이 채 나오지도 않은 이른 봄부터 인순이를 앞세워 쑥을 캐러 다녔다. 뾰족뾰족 갓 자란 나물은 하루 종일을 캐어도 좀체 붇지가 않았다.

그걸 삶아서 된장에 무쳐 끼니를 때우고 혹 낫게 캔 날은 시장에 내다 팔아서 됫박쌀을 바꾸어 한 주먹씩 섞어서 죽을 끓여 간신히 연명해 왔다. 이제 와서는 쑥 맛이 어떤 것인지 멍멍하다’

전쟁 이후의 일상이란 어떤 모습이었을지 사실적인 문체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주인공 인순이는 쑥을 하도 캐고, 하도 먹어서 엄마 뱃속의 아이가 파란 빛이면 어쩌나 걱정한다는 대목이 있을 정도다.

된장에 무쳐서 그냥 때우는 것이 보통, 운이 좋아야 쌀 줌이라도 섞어 죽을 만들어 먹던 것이 겨우 반세기 전의 우리 모습인데. 살짝 데친 쑥을 다져 소고기와 치대어 만든 완자를 똑똑 떼 넣은 애탕국을 설명하고 있는 2008년 오늘이 새삼 고마울 뿐이다.

쑥은 쌀가루와 버무려 찌면 쑥 버무리, 튀김가루 쓱 뿌려 기름에 튀겨내면 쑥 튀김(소면을 말아 고명으로 얹어 먹으면 멋지다), 흑설탕과 재워 엑기스를 만들면 두고 마실 수 있는 쑥 차가 된다.

쑥을 푹 쪄서 밀가루, 찹쌀가루, 소금을 섞어 반죽을 치대어 전을 부치면 주말에 낮잠 자던 남편이 코를 킁킁거리며 일어날 것이다. 다진 쑥에 찹쌀가루로 익반죽해서 자그맣게 빚어 기름에 지져내고 꿀을 더하면 봄볕 나는 오후에 어울리는 간식이다.

 

■ 봄을 전해주는 맛들

쑥 말고도 봄을 전하는 맛은 여러 가지 있다. 대표적인 메뉴가 산나물. 수덕사 쯤으로 빠져서 드문드문 연등이 걸리기 시작한 경내를 걷고 산채 정식을 맛보고 싶다. 아니면 강원도로 올라가 산 공기를 마시고, 장하게 차려지는 산나물 한 상을 받고 싶다.

이도저도 여의치 않으면 미나리라도 한 단 사서 무쳐 먹어야지. 미나리는 체내에 쌓인 독과 숙취를 해소해주는 작용이 탁월하고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장에 좋다.

단,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몸이 찬 사람은 적당량만 먹도록. 미나리는 겉절이로 먹거나 잡채 등에 추가하여 향을 돋울 수 있다. 정말 싱싱한 미나리는 날로 먹는 맛이 최고지만. 맛난 된장 톡 찍은 미나리를 입 안 가득 우겨 넣어보자. 줄기가 통통한 미나리에서 싱싱한 향기가 코로 되 뿜어 나온다.

봄, 하면 또 진달래가 있다. 겨우내 언 가슴 확 설레게 만드는 진달래. 진달래꽃으로 모양을 내는 화전은 물론 진달래로 담그는 두견주까지, 진달래로 봄을 먹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두견주는 원래 청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말린 진달래를 넣지만, 집에서는 담그기 힘든 방법. 혹여 나들이 나갔다가 청정한 진달래를 구할 수 있다면 소주를 부어 두었다가 색이 우러나면 맛을 보자.

나는 아쉬운 대로 지난해 담근 오미자술, 배술을 곁들여 조촐한 봄 만찬을 준비하려 한다. 그렇게 하면 지난 가을의 오미자, 지난 겨울의 배, 이번 봄의 쑥과 미나리가 한 상에 오르는 셈이다. 시간의 흐름이 맛으로 형상화되는 순간이다.

저만치 날아가버린 세월과 고뇌가 이렇게 한 잔 술로 남았으니, 다시 시작되는 새 기운을 술잔에 버무려 담아 작년이 힘들었던 모든 이에게 한 모금씩 축이라 권하고 싶다. 봄 식탁을 차리다보니, 시어머니를 비롯하여 내 가족 얼굴들이 모두 생각난다.

 

애탕국 조리 후기

 

 

쑥은 살짝 데쳐 찬 물에 헹궈 다지고, 다진 소고기와 섞는다. 여기에 다진 파나 마늘을 넣을 수 있지만 나는 쑥 향을 살리기 위해 생략했다. 간장, 설탕, 참기름, 깨, 후추를 약간 씩만 넣고 조물거린 다음, 완자를 빚는다. 오늘은 맛이 시원한 멸치 다시마 육수를 썼다. 밀가루와 달걀을 얇게 입혀 육수에 넣었더니 완자가 익으면서 좋은 향기가 났다. 쑥 달인 물을 따로 만들어 두어 국물에 조금 섞었더니 국물 빛이 고왔다. 국 간장으로 검게 만들기도 아까워 완자를 찍어 먹을 양념장을 따로 준비했고, 국물은 소금 간 했다. 이렇게 멋스러운 요리를 만들어먹으며 봄을 느꼈던 선조들은 그야말로 아티스트들이었구나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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