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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쎈>이 찾아간 심야식당 深夜食堂 남영동 쯔쿠시

힉스_길메들 2012. 12. 31. 05:28

남영동 골목에 자리한 쯔쿠시는 가장 일본적인 스타일의 이자카야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홀과 주방에서 일제히 "이랏샤이 마세"를 외치며 손님을 맞이한다. 다다미와 테이블이 있는 1층을 지나 낡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2층에는 다락방처럼 아늑한 다다미방이 있다. 70년 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2층짜리 목조건물로 봄에 격자무늬 창문을 열면 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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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벚꽃이 휘날리던 즈음 문을 연 쯔쿠시는 별다른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금세 유명세를 탔다. 가게를 오픈하기 전 일본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 공부를 한 신응례 사장은 일식 스타일이 아닌 진짜 일식을 선보이기 위해 일본인과 재일 교포 셰프들로 주방을 세팅했다. 오픈할 때부터 함께 일한 솜씨 좋은 조리장과 일본인 요리사들이 만드는 음식은 입맛 까다로운 미식가들과 일본인들까지 손꼽을 만큼 유명하다. 2010년에는 < 자갓 서베이 > 에 선정되어 "다닥다닥 붙은 자리가 좁고 불편해도 '미식가'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평을 받았다.

한자리에서 오랫동안 운영하다 보니 단골들이 대부분인데 멀리 일본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있고 굵직한 기업의 대표들도 있다. 연애 초기부터 이곳에서 데이트를 즐겼던 어느 커플은 결혼 소식을 전하며 모든 손님에게 생맥주를 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11년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쯔쿠시에는 소소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세월의 길이만큼 차곡차곡 쌓였다.

쯔쿠시에는 와인만큼 다양하고 맛있고 향기로운 80여 종의 사케 리스트를 보유하고 있는데 가게 한쪽 진열장에는 이름표를 단 사케병이 줄지어 있어 이곳을 찾는 단골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일본인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비싼 가격대의 술부터 가격 대비 안주와의 조화가 좋은 술까지 다양한 사케와 일본 소주 등을 구비했으며 특히 생맥주 맛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쯔쿠시의 대표 메뉴는 주로 튀김과 구이류인데 매일 70개씩 수제로 만들어 판매하는 크로켓은 늦게 가면 맛보기 힘든 인기 메뉴다. '4색 끈적끈적'이란 재미있는 이름의 메뉴는 낫토와 마, 모즈쿠(우리나라 완도에서 나는 실처럼 가늘고 끈적이는 해초류로 전량 일본으로 수출된 것을 역으로 수입해 사용한다.) 오쿠라(썰어놓은 단면이 별처럼 생긴 일본 채소로 한국에서 직접 재배한 것을 사용한다.)를 한 접시에 담은 것으로 모든 재료가 이름처럼 끈적끈적한 실이 나오는 몸에 이로운 것들이다.

일본 사람들은 음식을 섞어서 먹지 않는데 이 메뉴는 서로 잘 어울리는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특유의 맛을 즐길 수 있어 일본인 손님들도 즐겨 찾는 메뉴다. 튀긴 두부에 곱게 간 무를 얹고 간장소스를 채운 후 가쓰오부시를 듬뿍 얹은 아게다시 도우는 겉은 쫄깃하고 속은 부드러운 두부에 감칠맛 나는 육수, 가쓰오부시 특유의 향이 어우러져 따뜻할 때 먹기를 권한다. 돼지뼈로 육수를 내고 해산물을 풍성하게 넣은 담백한 국물의 슈퍼짬뽕은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일본 생멸치 무즙은 시즈오카의 명물인 멸치를 냉동으로 가져와 폰즈소스를 얹은 무즙과 섞어 먹으면 겨울 별미가 완성된다.

1인 사시미는 그때그때 신선한 재료로 구성돼 매번 다른데 회에 곁들이는 라임은 발품을 팔아 찾은 제주도 라임 농장에서 9월 말부터 11월까지 공급받는다. 가다랑어다다키는 주방장의 고향인 코지에서 가져온 가다랑어로 만드는데 코지는 가다랑어가 명물인 곳이다. 필요한 만큼 구입해 -50℃ 냉동고에 보관해 사용한다. 계절 한정 메뉴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굴튀김은 11월에 시작해 다음 해 1월 중순까지 먹을 수 있는데 일부를 급냉동시켜 벚꽃이 피는 4월 즈음 봄 한정 메뉴로 이벤트를 하니 기대해도 좋다.

이 밖에도 방어머리구이, 방어사시미, 요세나베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한 계절 한정 요리를 선보여 오랜 단골들이 질리지 않게 들를 수 있도록 신경 쓴다. 구이 메뉴 역시 주문하면 한 번에 하나씩 신경 써서 구워 손님상에 올리기 때문에 이곳은 주문하고 요리가 나올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단골이라면 누구나 기다리는 시간마저도 즐거운 것이 쯔쿠시의 매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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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새우, 참치아가미, 광어, 도미, 성게알과 제주산 라임을 곁들인 1인 사시미.
   2. 주방장의 고향인 코지에서 가져온 가다랑어로 만든 가다랑어다다키.
   3. 해산물을 풍성하게 넣은 진한 육수에 쫄깃한 우동면발이 일품인 슈퍼짬뽕.
   4. 낫토와 마, 모즈쿠, 오쿠라를 섞어 먹는 4색 끈적끈적과 시즈오카의 명물 멸치에 폰즈소스를 얹은 무즙과 섞어 먹는 일본 생멸치 무즙.

메뉴_ 일본 생멸치 무즙 6천원, 아게다시도우 8천원, 4색 끈적끈적 1만4천원, 1인 사시미·굴튀김 각 1만5천원, 슈퍼짬뽕 1만7천원, 가다랑어다다키 3만5천원 / 영업시간_ 점심 11:30~13:30, 저녁 17:30~23:00 / 위치_ 서울 용산구 남영동 89-7 / 문의_ 02-755-1213

포토그래퍼:정문기 | 에디터:이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