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에 걷기좋은 산길이라며 검단산~남한산성 종주에 대한 글이 실렸다.
들머리로는 하남 창우동 버스종점인 에니메이션고앞에서 ~검단산정상~용마산정상~광지원초교~"예당"식당 건너편~노적산정상~산성일주~5호선 마천역이 날머리다.
에니메이션고앞에서 ~검단산정상~용마산에서~은고개~남한산성외성~벌봉~동장대지~북문~서문~마천역으로 코스를 조금 줄이면 거리는 약22km로 대략 8시간 정도 소요 된다 한다.
ㅇ 에니메이션고
-유길준묘소 (1.95km 0.40hm)에니메이션고교앞에서 왼편길을 따라 200m가면 베트남참전기념비와 등산로안내판이 나온다.
밤나무와 잣나무가 많은 길을 걸으면 구당 유길준묘소를 만난다.
김옥균, 김영효 등과 함께 활동하던 구한말의 개화사상가로“西遊見聞”의 저자 유길준의 묘지에 碑文도 있다.
유길준 [兪吉濬, 1856~1914] 본관 기계(杞溪). 자 성무(聖武). 호 구당(矩堂). 서울 출생. 1881년(고종18년)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입학했다가 1882년 귀국, 1883년 외무랑관(外務郞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한 뒤 주미 전권대사 민영익(閔泳翊)을 수행하여 도미(渡美), 보스턴대학을 다녔다. 1885년 유럽 여러 나라를 시찰하고 돌아온 뒤 개화당으로 몰려 구금되었다. 구금기간에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895년에 탈고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外務參議) 등을 지내고, 1895년 김홍집(金弘集) 내각의 내무협판(內務協辦)을 역임, 1896년 내부대신에 올랐으나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내각이 해산되자 일본에 망명했다가 1907년 순종황제의 특사로 귀국했다. 그 후 흥사단(興士團)에 참여하여 활동했고 국민경제회(國民經濟會)를 설립했으며 계산학교(桂山學校)를 설립했다. 1910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훈1등 태극대수장(勳一等太極大綬章)을 받았다. 국권피탈 후 일본정부에서 남작(男爵)을 주었으나 거절했다. 저서에 《보로사국 후례대익 대왕 7년전사(普魯士國厚禮大益大王七年戰史)》 《영법로토 제국 가리미아전사(英法露土諸國哥利米亞戰史)》 《노동야학독본(勞動夜學讀本)》 《대한문전(大韓文典)》 《구당시초(矩堂詩鈔)》 《구당선생집(矩堂先生集)》 《세계대세편(世界大勢編)》 《정치학(政治學)》 《평화광복책(平和光復策)》 《이태리 독립전사(伊太利獨立戰史)》 《파란쇠망전사(波蘭衰亡戰史)》 《구당서간집(矩堂書簡集)》이 있다.
ㅇ 유길준묘소-큰고개(0.45hm)
묘소에서 능선을 올라붙어 가파른 된비알을 꾸준히 오르면 전망대바위에 닿는다.
전망대바위는 검단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북쪽으로 강 건너 예봉산이 손에 잡힐 듯 하고 북서쪽으로 미사리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한강의 유장한 흐름이 장관이다.
ㅇ 큰고개-서봉(0.585km / 0.35hm)
서울의 수호신인 북한산과 도봉산의 장쾌하면서도 사나운 능선이 인상적이고, 동쪽으로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장엄한 풍광은 운길산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경치와는 다른 묘미를 느낀다.
ㅇ 서봉-검단산(3.52km / 1.57hm)
서봉에서 바라보는 구리~암사대교와 팔당대교가 파아란 한강의 유장한 일렁임과 묘하게 대비된다.
서봉인데 동봉(검단산)이 바로 앞에 당겨온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 억새밭을 지나면 검단산정상이다.
남쪽으로는 용마산의 능선이 한눈에 보인다.
검단산 (657m)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산. 높이 650m이다. 하남시 동쪽 한강변에 솟아 있으며, 한강을 사이에 두고 운길산(雲吉山), 예봉산(禮峰山)과 이웃해 있다. 백제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이곳에 은거하였다 하여 검단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서울 근교에 있고 교통도 편리하지만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높이는 관악산(冠岳山:629m)과 비슷하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서 광주목의 진산(鎭山)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산세가 특이하다. 가파른 경사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사방의 전경이 시원하게 열리고, 서서히 정상에 이르는 길이 매우 다채롭다. 산행은 하산곡동의 산곡초등학교 쪽과 팔당댐 건너 아래배알미쪽 두 길이 있으나 전자가 교통이 더 편리하다. 하산곡동에서 출발하는 산행은 처음에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나 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 능선 곳곳을 가득 덮은 억새풀밭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산 중턱에는 노송이 길을 덮어 쉬어가기 좋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가다보면 넓고 평평한 정상에 서게 되는데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줄기가 한눈에 보이고, 북한강 너머에는 예봉산과 운길산이 있다. 동쪽 팔당댐에서는 하얀 물거품을 힘차게 토해내고 있고,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용마산(龍馬山)이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부고속도로가 힘차게 달린다. 본래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 놓은 능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兪吉濬)의 묘가 있다
ㅇ 검단산-산곡초교갈림길 (0.657km / 0.15hm)
정상에서 남쪽으로 가물거리는 용마산으로 발길을 잡는다. 산곡초교 이정표 방향으로 부드러운 능선을 20분쯤 밟으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서면 백곰약수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물을 보충하고 다시 능선을 따른다.
ㅇ 산곡초교갈림길-고추봉 (0.555km / 0.30hm) [검단산0.1km/곱돌약수0.61km/산곡초교2.25km]
고추봉으로 가는 길은 서너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평탄하고 길고 긴 낙엽 푹신한 오솔길은 끊어질락말락 계속 이어지고 약간의 오름을 견디면 이내 평탄한 길이 계속된다.
뾰족한 고추봉엔 숲이 우거져 조망이 별로로 정상 표지석은 없고 119구조 안내판에 고추봉(582m)라 적혀있다.
ㅇ 고추봉-용마산(0.596km / 0.55hm) [검단산0.59km/수자원공사0.305km]
고추봉에서 용마산으로 가는 길은 전형적인 푹신한 육산으로 봉우리를 두어개 넘으면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는 용마산정이다.
동쪽으론 드넓은 팔당호반과 그 뒤로 퇴촌과 남종에 자리한 정암산과 해협산 그 넘어론 용문산의 첩첩 산줄기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ㅇ 용마산-은고개갈림길(0.20hm)
용마산에서 15분쯤 더 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길바닥에 박힌 돌에 은고개와 광지원 이정표가 그려져 있다.
이곳은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니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우측길은 은고개로 직진하면 중부면사무소로 떨어지며 거기서 노적봉에 올라 남한산성으로 이어진다.
용마산 (596m) 용마산은 검단산 남쪽에 솟아있는 산으로 검단산과 능선으로 연결되어있다. 이 능선은 광주읍을 돌아 백마봉, 태화산으로 연결된다. 육산인 용마산은 경안천을 향하여 깊이 파고든 팔당호수로 하여 호수 주변의 조망이 좋다. 용마산은 전체적으로 보아 육산이며 숲이 울창한 편이다. 높이는 600m에 조금 못 미치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라고는 검단산밖에 없어 상당히 높아 보인다. 산으로 가는 길은 광주군 광주읍에서 팔당호로 빠지는 45번 도로를 따라 퇴촌면 갈림길에서 팔당 쪽으로 조금가면 나오는 남종면 과학동에서 오르는 길과 하남시에서 광주읍으로 가는 43번 도로변에서 하남시 남쪽인 산곡초등학교에서 검단산에 올랐다가 정상에서 고추봉을 거쳐 용마산으로 오는 길이 있다. 검단산에 올라 용마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바라보면 꽤 꾸불꾸불 하며 멀리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능선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으나 최근에 광주군으로 연결된 교통편이 좋아 종주산행을 하기에 적합한 산이라고 할 수 있다.
갈림길을 지나면 넓은 터를 잡은 권씨묘소가 나온다. 묘소에서 20m쯤 내려가면 샘이있다.
샘 주변은 숲이 우거지고 볕이 잘드는 명당이다.
다시 능선을 밟으면 감투바위. 봉우리에 큰 바위 하나가 덩그라니 놓여있다. 감투바위 일대는 서어나무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극상림(極相林-기후 조건이 가장 안정된 지역에서 극상에 이르렀다고 간주되는 숲)의 대표적인 수종인 서어나무가 많다는 것은 그많큼 숲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감투바위에서 내려오면 오랜만에 이정표가 눈에 띈다. "지원초교/광지원리"방향으로 내려서면 43국도가 지나는 광지원리로 지하통로를 이용하여 국도를 건너면 남한산성으로 가는 308번지방도를 만난다. 이어 "예당"식당 건너편으로 이정표가 보이고 다시 산길로 이어진다. 20분쯤 된비알을 오르면 노적산정상이다.
이후 능선이 지루하게 이어지다 갑자기 오래된 성벽이 나타나니 마침내 남한산성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평지같은 부드러운 산성길을 따르면 한봉성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난다.
한봉성(漢峰城)은 봉암성(蜂岩城)과 함께 남한산성을 보호하는 외성이다.
한봉성을 지나면 커다란 암문을 통해 산성안으로 들어가고 이어 봉암성을 따르게 된다. 한봉성과 봉암성 일대는 옛 절터처럼 애잔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좋은 길이다. 이어 남한산성에서 가장 큰 바위인 벌봉에 올라서면 검단산과 용마산 줄기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벌봉의 호젓한 길을 따르면 동장대암문을 통해 남한산성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ㅇ 은고개갈림길-은고개(0.30hm)
은고개로 내려가다 보니 “竹林苑”이란 표석이 보인다. 불교의 사찰이 있었던 자리인가 보다.
죽림정사는 부처가 大覺을 하고 내려오다 최초로 도를 說한 장소인데 여기를 죽림원이라 한 까닭은 뭘까?
죽림원을 내려오니 산양산삼 농장이 나타난다. 산양산삼 농장 울타리 너머로 드디어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첩첩산중의 산줄기가 파도쳐간다.
ㅇ 은고개-노적산갈림길(1.15hm)
43번 도로를 가로질러 은고개 계곡길로 접어드니 천운사 입구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가다보니 岩峯이 나타났는데 제법 가파르다. 무슨 이름이 있을 것 같은 가파른 암봉을 내려와 오솔길을 따라가니 중부면 노적봉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삼거리에 이정목이 서 있다.
ㅇ 노적산갈림길-송전탑(0.05hm) [수어장대9.0km/벌봉6.0km/광지원2.0km]
이어 송전탑이 나타난다. 송전탑 밑을 허리를 구부리고 지나니 끝없는 육산길이 가물가물 이어진다.
ㅇ 송전탑-검복리갈림길(0.30hm)
편안하기만 한 육산길이지만 오르내리는 안부에 내려서면 한결같이 오른편은 엄미리 방향이고 왼편은 오전리, 검복리 방향이다.
ㅇ 검복리갈림길-남한산성외성(0.30hm)
ㅇ 남한산성외성-벌봉(0.35hm) [한봉/부봉사이 이정표. 동문3.0km/엄미리1.5km]
그렇게 나아가니 멀리 성채가 보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남한산성 外城(봉암성)이었다.
병자호란 때 청군이 이 벌봉 근처까지 와 청군들이 성안을 엿보아 후일 외성을 축성했단다.
복구되지 않은 무너져 내릴 듯한 성채의 모습에 약간 놀랬는데 외성까지 복구할 여력이 아직은 완비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말해준다 하겠다.
그 외성을 돌아드니 한봉과 벌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벌봉으로 향하니 그 오름이 예사롭지 않다.
다리는 축축 쳐지고 알통은 당겨오고 숨을 몰아서며 오르니 암문이 반겨준다.
남한산성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中部面) 산성리(山城里) 남한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에 축성(築城)하였다.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년 7월에 끝마쳤다. 공사의 부역(賦役)은 주로 승려가 맡아 하였다. 성가퀴는 1,700첩(堞)이고, 4문(門)과 8암문(暗門)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창고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 다만 성의 둘레가 6,297보(步), 성가퀴는 1,897보라고 하는 등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시설은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였고, 인조 때부터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은 상궐(上闕) 73간(間) 반, 하궐(下闕) 154간이었다. 재덕당(在德堂)은 1688년(숙종 l4)에 세웠고, 1711년에는 종묘를 모실 좌전(左殿)을 세웠다.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을 옮길 우실(右室)도 세웠다. 1624년에 건립된 객관(客館:人和館)은 1829년(순조 29)에 수리되었다.
ㅇ 벌봉-동장대지(0.20hm)
벌봉의 황성옛터 같은 폐허지대를 돌아 나오니 드디어 궁륭형의 아치를 가진 本城이 반겨주며, 우람한 송림이 우거진 잘 정비된 단아한 성채를 돌아드니 동장대지다.
ㅇ 동장대지-북문(0.20hm)
동장대지의 암문을 통하여 본성으로 들아가니 좌판매점이 눈에 보인다. 막걸리 한전(2,000\)은 오랜 산행 뒤 들이켜는 맛은 꿀맛이리라.
ㅇ 북문-서문(0.15hm)
북문에서 서문가는 길도 근사한 松林이 숲을 이루고 거기에 구불구불한 성채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숲속으로 사라져 간다.
ㅇ 서문-5호선마천역(0.55hm)
예전엔 서문에 누각이 없었고 암문만 있었으나 지금 누각을 근사하게 세우고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힘들게 비탈진 비알을 올라왔던 기억 속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고 세월 속에 우거진 참나무 숲과 잘 정비된 등산로는 歲月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산길을 내려서서 포장도로를 만나면서 깨끗한 공동화장실을 보게 된다. 여기부터 터벅거리며 하산을 하면
옛 기억 속의 허름한 골목 어귀에 근사한 5호선 마천역사가 맞이한다.
* 가고 : 하남 창우동 에니메이션고교 -0.40- 유길준묘소 -0.45/1.25- 큰고개 -0.35/2.00- 서봉 -2.00/4.00-검단산 -0.15/4.15- 산곡초교갈림길 -0.30/4.45- 고추봉 -0.55/5.40- 용마산 -0.20/6.00- 은고개갈림길 -0.30/6.30- 은고개 -0.15/6.45- 노적봉갈림길 -0.05/6.50- 송전탑 -0.30/7.20- 검복리갈림길 -0.30/7.50- 남한산성외성 -0.35/8.25- 벌봉 -0.20/8.45- 동장대지 -0.20/9.05- 북문 -0.15/9.20- 서문-0.55/10.15- 마천동 마천역
* 타고 : 잠실역[8#30-3G][1#341B]~천호역[6#]~강동[중]~>에니메이션고교 / 강동차고지[81G] ~강일@~>에니메이션고교 / 13, 13-2bus = 동서울~천호역3#~명일역[1#]~상일초교~>은고개, 광지원 / 9#(산성중앙로타리~8호선 남한산성입구역)
* 먹고 : 복가유기농쌈밥761-4633 , 어촌게장네761-7474, 은고개공원793-4328 등 / 은고개
반월정743-6562, 백제장746-7296, 수라간743-6556 등 / 로타리부근 . 오복순두부746-3567, 산성손두부749-4763, 함지박744-7462 등 / 중앙주차장좌우
나주개미집400-8709, 풍성식당3401-4399, 대구왕뽈떼기401-7308 마천역쪽 내려서면서
장다리청국장448-4111 / 마천역1#서 거여119쪽
[검단-용마-남한산성 종주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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