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로 뚜벅뚜벅

초록청년의 지리산 등정기

힉스_길메들 2006. 5. 28. 21:53

초록청년의 지리산 등정기

 

1. 산 행 지 : 지리산(1916m)

2. 위 치 : 경남 함양, 산청, 하동, 전남 구례, 전북 남원

3. 산행방식 : 서동간 종주

화엄사~코재~노고단대피소~임걸령~반야봉(1733.5)~삼도봉(1499.0)~화개재~토끼봉(1534.0)~명성봉(1586.3)~연하천산장~삼각봉(1462.0)~(1433.0)~벽소령대피소~덕평봉(1521.9)~칠선봉(1576.0)~영신봉(1651.9)~세석대피소~촛대봉(1703.7)~연하봉(1730.0)~장터목대피소~제석봉(1806.0)~천왕봉(1916.0)~장터목~망바위~참샘~백무동

4. 산행일자 : 06’05/24(04/27,)[해뜸05:17/해짐19:42]

06’05/25(04/28,)[해뜸05:16/해짐19:42]

06’05/26(04/29.)[해뜸05:16/해짐19:43]

5. 기상상태 : 06/24 = 맑고 바람약간

06/25 = 맑고 선선하며 늦은 낮부터 흐림

06/26 = 새벽부터 아침나절까지 비와 안개, 바람후 낮부터 갬

6. 참가인원 : 강대권, 이동익, 황인기 이상 3

7. 교 통 편 : 갈때 = 서울남부터미널~구례간 우등고속버스

올때 = 백무동~동서울터미널간 직통고속버스.

8. 이용경비 : 회비 각\80,000× 3=\240,000

일 시

일 정

비 고

06/05/24.09:10

서울남부터미널에서 구례행 우등고속버스 출발

20,900\

12:45

구례버스터미널에 도착

택시로 10분정도 이동

12:55

동원식당에서 한정식으로 점심

8,000\

14:13

화엄사매표소에서 매표후 입산

구례서 직행버스

15:05

화엄사 구층암에서 등산로로 빠짐

우측 계곡 건너

16:15

국수등에서 휴식(화엄사3.5k/노고단3.5k)

20분간

17:55

눈썹바위 통과(화엄사5.5k/노고단1.5k)

코재-노고단간 1.0k

18:30

노고단대피소 도착(대피소-고개{0.36}-kbs중계소{0.5}

숙박비7k\/모포대여1k\

19:00

석식준비 및 석식후 노고단고개 탐방

20:00~21:00까지 탐방

06/05/25.05:15

기상 및 조식(김치라면국에 햇반 말아 먹는 맛)

일명 꿀꿀이죽

06:40

노고단대피소 출발

 

07:50

피아골삼거리(노고단2.7k/천왕산22.8k/피아골산장2.0k)

지남26-12

09:05

반야봉정상(1733.5m)(뱀사골산장2.5k/노고단5.7k)

지북18-13

10:00

화개재 통과(반선9.2k/노고단6.5k/천왕봉19.2)

해발1315m

12:00

연하천산장(1440m)(노고단10.5k/벽소령3.6k/천왕봉15.0k)

주목나무군락지

13:15

연하천에서 중식후 출발(김치라면탕에 햇반)

깔끔한 식사

13:27

음정갈림길 통과(음정6.6k/벽소령2.9k/천왕봉14.3k)

지리01-23

14:48

벽소령 도착(14.1/3.6/6.3/11.4/의신(하동)6.8k)

기념촬영

15:55

덕평봉(1521.9m)밑 선비샘 도착

식수상태 양호

16:39

칠선봉(1558.0m)(벽소령4.2/세석2.1/장터목5.5/천왕봉7.2)

지리01-38

17:30

세석대피소 석식, 숙박, 조식(학생단체로 매우 어수선)

3개교 학생

06/05/26.04:50

4시에 기상하여 배낭꾸려 세석대피소 출발

비와 바람, 안개

06:15

장터목대피소(1653m)도착, 조식(무주대안학교 단체입장)

취사장이 복잡

08:00

천왕봉산정도착(1916m)하여 기념촬영

비와 바람과 안개가 낌

08:48

장터목대피소(백무동5.8/중산리5.3/세석3.4/천왕봉1.7k)

행장꾸려 09:00출발

10:08

소지봉(1312m)(백무동3.0k/장터목2.8k)

능선에서 계곡으로 빠짐

11:30

백무동매표소 통과, 매표후 인근 식당에서 매식

산채비빔밥

13:30

동서울터미널행 직행버스 출발

4시간소요

9. 산행일정 :

 

 

산행후기

 

집을 떠나서 지리산 속으로

 

한 달 전에 후배인 동익이 지리산 춘계 산불방지 입산통제 기간이 끝나면 산행을 하자는 제안을 받고 아예 D-day를 잡아 놓았다.

얼마 전 등산 참가자가 이동익과 강대권 그리고 나와 두 명이 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동익이에게 스케줄 등 모든 준비를 일임하며 지리산국립공원의 입산통제가 풀리면서 대피소 숙박예약을 받으면 바로 신청하라고 당부한 후 근무 중에 있는 내게 손폰이 울려 확인하니 동익이다. 우리가 등산하려 하는 날짜에 대피소예약이 만원이여서 접수를 하지 못했다는 전갈이다. 해서 인터넷으로 지리산국립공원에 확인하니 정말 대기자예약도 끝 무렵이라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헌데 이친구 예약을 완료해 놓고는 농담을 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 D-day가 다가오자 두 사람이 빠진다는 동익으로부터 전갈이 와서 예약을 취소하지 말라고 한 후 자전거동호회 카페에 두사람 결원에 대해 산행 신청을 받는다고 공지를 올려 보았다. 허지만 잘 다녀오라는 댓글만 있고 참가 한다는 회원들은 아무도 없어 두명분 숙박을 출발 전 날에 취소한다.

 

 

524일 수요일, 서초동의 남부터미널에서 910분에 출발하는 구례행 우등고속버스를 타기로 약속을 하여 시간에 맞춰 터미널로 향한다. 9시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동익과 대권이 매표(20,900\)를 하고는 기다리고 있다가 반색을 하며 맞이한다.

서울발 구례와 화개경유 하동행 우등고속버스시각은 0910, 1050, 1130, 1510, 1630, 1830으로 6/1일 운행되며 소요시간은 구례는 3:50, 하동은 4:30분이며 요금은 구례가 20,900\, 하동이 23,000\이다.

하동발 서울행은 0800, 0930, 1100, 1300, 1500, 17006/1일이며 화개는 하동에서 20분 소요된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는 게이트를 지나서 구례행 고속버스의 짐칸에 배낭을 싣는다. 화물칸에 보니 우리보다 먼저 배낭을 실은 등산객이 여러 명이나 된다.

버스에 올라 지정된 자리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니 우리를 태운 버스는 승강장을 미끄러지듯 후진을 하며 터미널의 주차장을 빠져 제 갈 길로 향하는 가운데 집에 전화를 하여 출발한다고 알리니 몸조심하고 잘 다녀오라고 당부한다.

취미 생활한다고 자전거에 등산에 친구들과 여행에 쏘다니는 내게 역마살이 끼어서 나돌아 다닌다고 푸념하면서도 이렇게 항상 몸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버스는 나의 예상 진로(천안~논산간 민자고속도 경유, 호남고속도, 전주~남원~구례간국도)와는 다르게 경부고속도, 대전남부순환고속도 경유, 대전~통영간고속도로를 달리다 11:05에 금산의 인삼랜드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11:15에 출발하여 장수TG를 나와서 (19)국도를 타고 12:30 남원주천을 지나서 구례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2:45이다.

 

터미널에서 내려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고는 택시(2,300\)를 타고는 구례우체국뒤의 동원식당(061-782-2221)”으로 향한다. 터미널의 고속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식당에다 전화를 해서 3인분의 정식을 주문하여 놓았기에 우리가 들어가자 어느 정도 상차림이 차려져 있었다.

식단은 지리산의 산채 중심인 두릅무침, 죽순무침, 고사리, 도라지, 참나물 등과 젓갈, 시큼한 갓김치, 돼지불고기, 조기구이와 된장찌개가 곁들인 25여 가지의 찬으로 된 상차림이다.

남도의 맛깔스럽고 푸짐한 상차림으로 배불리 점심을 먹고는 상을 물리고 8k*3을 계산한 후 13:35에 식당을 나와서 10분간 터벅터벅 화엄사행 버스승차장의 길을 물으며 걸으니 화엄사행 버스노선이 둘이여서 터미널로 가서 화엄사행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단다.

13:50 터미널에 도착하여 화엄사행 버스시간을 확인하니 14:00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매표(820\)를 하고는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한 뒤 버스에 오르니 기사도 손님도 아무도 없어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내가 대합실로 내려가서 지나는 운전기사분께 화엄사행 버스를 물어보니 자기를 따라오라며 막 터미널을 빠져 나가려던 버스를 세워준다. 해서 기사분께 양해를 구하고 동익과 대권을 불러서 버스에 오르니 바로 출발하며 지금의 버스는 직행버스고 우리가 타려던 버스는 완행버스로 요금은 서로 같으나 완행버스는 동네를 돌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성삼재행 버스요금은 3,200\)

 

 

버스기사는 매우 친절하게 우리를 대하며 등산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사이에 어느새 버스는 화엄사버스정류소에 도착하니 14:07이다. 버스에서 내리며 친절한 기사에게 인사를 아끼지 않는다.

버스에서 내려 5분여를 걸으니 매표소가 나온다. 국립공원입장료1,600\과 문화재관람료2,200\을 내고는 화엄사일주문을 통과한다.

화엄사골을 따라 계곡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와 산기슭을 지나는 바람소리, 창공을 비행하는 새소리를 들으며 절 길을 걷는데 길가엔 차길에서 전용보도를 준설하기 위해 철 골재를 용접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자연을 거슬린다.

14:33 금강문을 지나고 사천왕문을 지나서 대웅전 앞에 들어선다. 단청 칠하지 않은 사찰은 서까래와 기둥이 아름드리나무로 되어 고즈녁한 분위기를 더욱 자극하고 대웅전 앞의 각종 보물과 문화재는 천년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이곳 화엄사는 6.25를 겪으며 지리산빨치산과 군경토벌대의 대치로 인하여 소실되었든 뼈아픈 상흔을 간직하고도 이렇듯 은은한 자태를 뽐내는 것은 지리산이 우리에게 주는 불가사의 아닌가 싶다.

지리산(智異山)이 왜 지리산인가?. 글자대로 풀면 지혜로운 이인이 많은 산요,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에 쓰인 신라때 최치원이 쓴 비문에는 智異山(지이산), 백두산의 맥이 흘러 나왔다고 해서 두류산(頭流山), 삼신산의 나인 방장산(方丈山)이라 불렀단다.

 

우리는 대권이 이야기하는 4사자석탑인 적멸보궁을 찾아보았다. 대웅전에서 왼편의 산기슭으로 50m 떨어진 적멸보궁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72과가 모셔져 있단다. 네 마리의 사자상이 돌탑을 받들고 있는 모습이 힘에 겨워 보였으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자부심에 안광이 형형하다. 이런 모습들에 잠시 숙연해진다.

적멸보궁을 관람하고는 대웅전뒷쪽으로 돌아나가 구층암으로 올라가서는 오른편 계곡쪽으로 내려서서 계곡을 건너자 화엄사밑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15:05 만나게 된다.

등산로는 넓적한 돌을 깔아 넓고도 평평한 길로 산책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 이렇게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니 20여분 만에 처음으로 이정표(화엄사1.0k/노고단6.0k)를 만나게 된다. 이 이정표를 지나서 10분을 채 못 오르니 계곡을 가로지른 나무다리를 오른쪽에서 왼편으로 건너게 된다. 나무다리를 건너서 5분 만에 연기암와 노고단의 갈림 이정표가 나오는데 노고단 방향은 오른편 길이다. 노고단길로 2분여를 걸어 오르니 도로가 앞을 가로 막으며 이정표(화엄사2.0k/노고단6.0k)와 구조목(지남28-08, 지남27-04)이 보인다.

계곡으로 떨어지는 계류소리와 길가에 늘어선 나뭇잎으로 더운 줄도 모른 채 쉼 없이 오르고 또 오른다. 동익이 앞에 서고 중간에 내가 뒤에 대권이 따라 오는데 대권의 숨소리가 어느새 거칠어 졌다. 앞장선 동익에게 걸음을 늦추라고 몇 번 이야기를 하다가 16:15 잠시 쉬었다 가자고 하며 국수등(화엄사3.5k/노고단3.5k)밑의 지남27-04구조목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대권이 종아리 근육이 아프다고 해서 배낭에서 맨소래담을 꺼내서 바르게 하고는 간식을 꺼내는데 든든한 점심에 전혀 먹고 싶은 욕구가 없다. 어느새 20분을 쉬고는 걸음을 옮긴다. 10만에 중재(노고단3.0k)에 오르고 17:00에 집선대에 도착해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폭포수 떨어진 물로 더위에 흘린 땀과 열기를 식힌다. 이곳 이정표에는 노고단이 2.5k가 남았다. 10여 분간의 휴식을 보내고 갈기를 재촉한다.

넓적한 은로는 어느새 좁디좁은 돌과 산길로 바뀌고 오른편에서 따라오던 계곡 수는 언제부터인가 소리가 멀어졌다. 17:55 눈썹바위라는 이정표(화엄사5.5k/노고단1.5k)와 지남27-11구조목을 지나니 하늘이 열리고 능선자락이 눈앞에 나타난다.

18:05 코재에 올라서니 좌측으로는 종석대가 오른편으로는 노고단과 KBS송신탑이 우뚝 솟아있다. 이곳 이정표에는 노고단1.0k/성삼재1.5k와 천왕봉-25.5-노고단고개-0.3-노고단대피소-1.0-무넹기-0.2-눈섭바위-1.0-집선대-0.5-중재-0.5-국수등-0.7-참샘터-0.5-연기암-2.0-화엄사-1.2-주차장이라는 이정표가 설치 되어있다.

 

노고단대피소에 오르기 전에 왼편으로 을씨년스런 돌로 축성된 건축물 중 굴뚝 같이 보이는 잔해가 보이는데 이곳은 1920’대에 외국인선교사들이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와 같은 집들을 여러채 지어 휴양을 취한 곳인데 50년에 6.25를 거치고 빨치산토벌이 이뤄지면서 부서지고 무너져 오늘과 같이 황폐화 되었단다.

코재에는 산중에서 흐르는 물이 능선인대도 불구하고 철철 넘쳐흐른다. 시간도 널널한데 이곳에서 발이라도 앃을것을 그냥 간 것이 후회된다.

코재에서부터 아직도 밝은 대간능선길 위에서 화엄사골과 노고단과 만복대, 정령치, 고리봉능선을 바라보며 어슬렁거리며 걸어 드디어 오늘의 종착지인 노고단대피소에 18:30 도착한다.

노고단은 길상봉이라고도 불리는데 노고단(老姑檀1507m)은 신라 때 시조 박혁거세의 어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노고단이란 말은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이 있던 곳이라는 뜻이다.

 

 

 

 

 

 

 

 

노고단대피소에는 대피소-0.36-노고단고개-0.5-KBS송신소-0.75-대피소라는 이정표가 세워져있다.

대피소의 사무실에서 예약 체크인하고 자리를 배정(7k)받아 배낭을 옮겨 놓은 뒤 김치국에 라면을 넣고 건조국거리리 해장국과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여 내놓고 준비한 햇반으로 소주 한잔을 곁들인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마치니 20:00이다.

우리는 어둠을 헤치고 노고단고개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오를 때 하늘엔 별들이 없었으나 고개에 오르니 어느새 별들이 초롱초롱하다. 돌탑과 반야봉을 향해 사진을 찍고 kBS송신탑과 노고단을 향해 또 한 번 사진을 찍고는 대피소로 내려오니 21시가 되었다.

모포를 우리 셋이 네 장 대여(1k*4)하여 자리를 잡고 누우니 옆에 사람이 연속대간꾼으로 시작한지 3일차 되었는데 50여일을 계획하고 친구들에게 1주단위로 물품을 보급받기로 약속을 하였단다. 해서 구간종주이지만 길을 잃기 쉬운 곳 등 경험담을 약간 들려주는데 한사람 건너에 남하하는 대간 꾼이 또한 분 계신다. 이분은 집은 수원인데 고향이 단양이라 죽령에서 시작해서 남하하고 지리산을 끝으로 죽령에서 다시 북으로 이어 진행한단다. 이웃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내일은 시간이 널널하니 산장에서 늦게 나가겠다고 말하고는 22시에 소등과 함께 잠에 든다.

옆자리에는 스님이 한 분 주무셨는데 장좌불와라 했던가. 밤새도록 눕지도 않고 앉아서 주무시고 계시는 것이 예사스럽지 않다.

 

 

 

산중 생활, 인생의 덧 없음을 탓하랴

 

자정이 넘어 시간은 새벽으로 치닳고 있는데 주변에서의 소음(잠꼬대와 코고는 소리, 뒤척이며 부스럭대는 소리, 일어나 화장실 가며 문 여닫는 소리)으로 인해 잠이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다가 2시반이 넘어서 나또한 화장실에 들렸다 다시 잠이 들다깨다를 반복하는데 동익이 5시가 넘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오더니 나를 깨운다. 좀 더 자자고 이야기 하였다가 옆에서 자는 대권을 깨워 침구를 정리하고 배낭을 대충 사려 넣고 조반을 해결하기 위해 취사실로 향한다.

옆에서 주무시던 스님과 죽령남측 대간종주를 하는 등산객은 이미 밖으로 나갔다.

취사장에는 어느새 많은 등산객들이 조반을 준비하고 일부는 벌써 출발을 했고 일부는 배낭을 둘러메고 떠날 채비를 갖춘다.

취사장엔 수돗물이 넘쳐나고 설거지를 하기 위해 세제와 수세미가 준비되어있다.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김치국에 라면을 넣고 얼큰하게 끓인 국에 햇반을 넣어 따끈하게 밥을 먹는데 동익은 꿀꿀이죽이요 개밥이라며 혀끝을 찬다.

조반을 먹고 난후에 설거지를 끝내고는 화장실 용무를 마치고 대피소를 출발하니 6:40이다.

 

계단을 통해 노고단고개를 올라서 어젯밤에 어스름한 달빛에 보았던 돌탑과 노고단 그리고 반야봉, 장쾌하게 뻗은 천왕봉까지의 주능선과 백두대간의 종석대, 만복대, 고리봉 능선을 바라보고는 지리산의 웅장함에 다시 한 번 매료당하고는 사진을 찍고 노고단 옆으로 돌아나가니 나무비석을 만나게 된다. 고등학생이 조난을 당해 결국엔 죽음에 이르러 이곳에 비석을 안치해 놓았다.

등로에는 화들짝 핀 철쭉이 우리를 맞이하고 조릿대가 안내를 맞는다. ~알짝 핀 철쭉을 배경으로 쉬고 계시는 등산객에게 사진 한컷 부탁드리고 돼지령을 지나서 잡목을 헤치고 나가니 어느새 피아골삼거리가 07:50 나온다. 구조목(지남26-12)이 세워져 있고 이정표에는 노고단2.7k/천왕봉22.3/피아골산장2.0k로 되어있다. 이정표를 따라 왼편으로 길을 잡고 7분여를 걸어가니 임걸령이 나온다.

임걸령마루에서 왼편으로 샘터가 있어 우리는 샘터로 내려선다. 샘터에서는 몇 분의 노인네들이 앉아서 조반을 잡수시는데 우리 같은 젊은이도 시행하기 힘든 식빵에 치즈와 햄을 얹어 조반을 대신하기에 그것 가지고 진지가 해결되느냐고 물으니 짐이 무거운데 어찌하느냐고 응대하시며 뱀사골산장에서 잤는데 지리산온천에서 온천하고 멧돼지바베큐로 저녁을 먹고는 오늘밤 온천호텔에서 주무시고 내일은 여수로 가서 향일암에서 해넘이와 모레의 해돋이를 구경하시며 회 한 접시 잡숫고 서울로 올라가신다고 말씀하신다. 정말 재미있게 사시는 노인네들이시다.

10분정도 임걸령샘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식수보충을 하고는 반야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보니 08:35 노루목에 도착하게 된다. 노루목에 도착하니 엊저녁에 옆자리에서 장좌불와를 하시던 스님을 만나게 되어서 인사를 나눈다.

이정표(천왕봉21.0k/노고단4.5k/반야봉1.0k)를 따라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들어서서 된비알을 오른다. 오르다 보니 오른편으로 삼도봉으로 빠지는 삼각지가 나오는데 우리는 배낭을 벗어 놓고는 왼편의 정상을 향해 오름을 계속하여 철계단을 오르니 곧 이어 신성한 정상이 돌무더기와 함께 09:05 우리를 맞이한다. 사방을 조망하니 천왕봉과 노고단 그리고 정령치와 고리봉이, 왕시루봉과 삼정산능선이 우리를 압도하는데 심원, 달궁쪽엔 펜스를 쳐놓고 가는 길을 방해한다. 휴식년제란다.

지리십경중에 노고운해라 했던가? 노고에서 운해는 보지 못하고 반야낙조 대신에 운해를 감상하는데 지리산의 모든 신기함과 방사한 반달곰의 설운 생각이 운해가 되어 화엄사골, 심원계곡, 덕운골, 뱀사골, 피아골, 화개천 등 모든 골들이 안개로 가득 메워지며 넘실넘실 솟아오르고 산봉우리는 한 점의 조각섬이되어 다도해 마냥 오두막하다.

대간의 능선에는 철쭉(개꽃)이 만발하여 우리를 반겼지만 반야의 철쭉은 몽우리로 남아 아직도 인사드리기가 쑥스럽다고 살며시 고개를 숙인 가운데 참꽃 진달래는 화들짝 피어 연분홍의 화사함으로 가는 봄을 아쉬워한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고는 09:10에 반야를 뒤로 하고 삼도봉을 향해 내려선다.

반야봉(1733.5m) 정상의 이정표에는 뱀사골산장2.5k/노고단5.7k과 지북18-13의 구조목이 세워져있다.

반야봉을 내려서는데 무슨 인연인지 여기서 또 한 번 장좌불와의 스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다. 이분은 무슨 암자인가 하는 곳에서 토굴을 짓고 토굴에서 수도를 하고 계시다는 뒤 따르던 보살님의 말씀이 있다.

 

철사다리를 내려선 뒤 삼거리에서 배낭을 찾아 어깨에 걸쳐 메고는 갈림길 왼편으로 길을 잡고 내려서니 삼도봉삼거리가 나온다. 오른편은 노루목을 지나서 노고단으로 향하는 길이고 왼편 직진길은 삼도봉을 거쳐 화개재를 통해 천왕봉 주능선을 따라 가는 길이여서 방향을 잡고 삼도봉(일명:날날이봉)으로 향해 약간의 오름길에 잎 떨어진 진달래나무를 뒤로하고 오르니 삼각동판으로 꼭짓점을 이룬 삼각봉(1499.0m)에 다다른다. 삼각봉의 삼각꼭지점동판은 주능선에서 북쪽으로 반야봉을 거쳐 만복대를 가로질러 남북으로 전라도요, 불무장등을 거쳐 황장산(942.1m)능선을 좌우로 전남과 경남의 경계, 연하천산장을 지나 삼각봉에서 영원령을 지나 삼정산(1225.0m)능선을 좌우로 전북과 경남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인 것이다. 이렇듯 삼도봉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다. 민주지산이 있는 삼도봉은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등 …….

09:43 삼도봉에서 동서남북을 휘둘러보고는 자연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나무사다리를 1999년 준설(길이 240m/1.5m) 화개 재까지 뻗은 계단을 하나하나 지르밟으며 내려선다. 누구는 550개의 계단이요 혹자는 600개의 계단이라 말하지만 개수에 무슨 목적이 있겠나! 자연을 지키고 가꾸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우리가 가꾸어야 할 의무요 자손들에게 고이 물려줄 사안들인 것을…….

10:00시 화개재에 내려선다. 나무계단을 한 땀 한 땀 내려서는데 왼쪽 무릎에 통증을 느낀다. 예전과 같지는 않지만 조심을 해도 아직도 통증을 느끼고 있다. 꾸준히 치료도 하였고 약도 복용하였으며 체중도 많이 줄였으며 떠나 올 때 양쪽 무릎에 테이핑도 하였고 조심하였건만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화개재에 내려서니 너른 마루에는 로프를 설치하여 자연복원을 위해 등산객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며 이곳 화개재는 영남하동쪽의 소금장수들이 등짐을 메고 내륙의 남원쪽으로 봇짐장사를 하며 넘던 고개로 이정표에는 해발 1315m에 반선9.2k/뱀사골산장2.0k/노고단6.5k/천왕봉19.2k라고 적혀있다.

토끼봉을 향해 오름을 시작하는데 화개재마루 나뭇그늘에 벤치를 만들어 놓은 곳에서 등산객 여러 명이 벤치 하나씩 점령하여 잠을 주무시고 있는 가운데 토끼봉에서 내려서는 등산객이 벤치에 털썩 주저앉으며 힘들어 하기에 어디에서부터 오시는지 매우 힘들어 보이십니다.” 라고 물으니 지리산태극종주중에 있는데 어제 새벽 05:40부터 시천사리에서 올라 수양산을 거쳐 웅석봉~왕등재~천왕봉을 거쳐 이곳까지 무박으로 왔노라고 한다. 30시간을 걸어 온 것이 대단한 체력의 소유자요 집념 또한 남 다른 사람이다. 아무튼 장하고 장하며 그는 노고단~성삼재~정령치~고리봉~바래봉~인월의 태극종주를 무사히 마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화개재에서 토끼봉은 북동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화개재와 토끼봉은 표고차이가 200m넘는 바, 숨을 껄떡거리며 오른다. 나무숲이 가려주고 있으나 늦봄의 날씨로 인해서 땀이 쏟아지고 있다.

10:33 이렇게 오르고 있는데 단양이 고향인 대간꾼으로 어제 노고단대피소 옆자리에서 주무신 분을 오름에서 만난다. 이분은 백두대간남측구간중 고향인 죽령에서 이남구간을 먼저 종주하고 죽령이북 구간을 이여서 종주할 계획이란다. 잠시 이야기 하다가 먼저 앞질러 발걸음을 옮긴다.

10:36 드디어 토끼봉에 오른다. 이정표에는 연하천1.0k/천왕봉16.0k/화개재2.0k/뱀사골대피소3.4k라고 적혀있다.

계속 북동진을 하여 1463봉을 지나고 물이 말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총각샘터를 지나서 명성봉을 오르니 산 아래 연하천산장이 보인다. 점심때가 다 되었는지 새벽밥을 먹고 나와서 그런지 어느새 허기를 느겨 서둘러 연하천산장으로 내려서니 12시정각이 되었다.

 

연하천산장은 고도1440m에 자리잡은 산장으로 노고단과 천와봉사이에 있는 대피소/산장중에 유일하게 민간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이곳에서는 술을 팔고 있다. 이곳 이정표에는 뱀사골4.4k/노고단10.5k/천왕봉15.0k/벽소령3.6k라고 적혀있다.

콸콸 쏟아지는 물로 점심을 차린다. 점심이라고 해야 김치 넣고 라면을 끓이는 것이 전부이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다들 열심히 먹는다. 햇반은 냉동건조음식이라 밥알이 서글서글하여 나는 펄펄 끓는 국물에 말아서 먹고 싶지만 동익이 돼지죽 같다며 그냥 먹기를 바래서 밥을 덜어내고는 국물을 부어서 말아 먹는다.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막 도착한 등산객이 배낭에서 두릅을 꺼내어 데치기 위해 꼭지를 다듬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산장지기가 자연보호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쫑크를 하며 인근 주민들의 지리산산채 채취 때문에 공원관리직원들의 감시가 삼엄하다고 한마디 한다.

점심 후에는 물을 끓여 커피도 마시고 후식으로 대권이 황도를 꺼내어 달콤함을 느끼며 맛있게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하천산장을 배경으로 옆의 등산객에게 부탁하여 셋이 오랜만에 증명사진을 찍는다.

13:15 연하천산장을 뒤로하고 주목을 보호하기 위해 철망으로 울타리를 쳐 놓은 곳에 철망을 따라 길을 가니 키가 큰 푸르른 청년 같은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10여분을 진행하니 1462m인 삼각봉이 나오고 구조목(지리01-23)과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음정6.6k/천왕봉14.3k/벽소령2.9k로 적혀있다.

음정은 왼편능선으로 이어진 삼정산으로 향하는 능선의 왼편은 전라북도요 우측은 경상북도이다.

이 삼각봉을 기점으로 북동진하던 행로가 급격히 돌려 남동진하게 되는데 형제봉 건너서 벽소령임도와 벽소령대피소가 아스라이 보며 또한 멀리에 동쪽으로는 천왕봉이 서편으로는 노고단이 한눈에 잡힌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진행하니 14:00 형제봉(1433)에 도착한다. 형제봉에는 바위가 쌍으로 있어 형제봉이라 이름 지은 듯싶다. 형제봉을 지나며 거대한 지리산을 북에서 남으로 어슬렁거리며 오르는 벽소령임도를 바라보며 산죽과 이따금 나타나는 철쭉을 뒤로 하며 벽소령대피소에 내려서니 14:48이다.

벽소령대피소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앉아서 다리쉼을 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벽소령대피소라는 대피소 현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이정표(노고단14.1k/연하천산장3.6k/음정6.7k/천왕봉11.4k/ 세석대피소6.3k/의신(하동)6.8k)를 따라 길을 떠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 벽소령대피소가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다.15:18 구벽소령길 오른편으로 음정으로 내려서는 길목에 쇠고리 줄로 차단막을 설치하여 출입을 차단하고 있다. 이 길로 따라 내려서면 삼정리 음정마을로 빠질 수 있는 비상루트이다. 이곳에 세워진 구조목은 지리01-31이고 이정표는 세석5.2k/벽소령대피소1.1k로 되어있다.

계속 동진을 하다가 덕평봉을 향해 급격히 남남동방향으로 급회전하여 진행을 하게 된다. 15:55 덕평봉밑에 넓적한 돌들로 평지 작업을 하고 그 밑으로 샘물을 받게 되어 있는 선비샘에 도착하여 물 한 모금으로 입을 적신다. 이곳 선비샘은 작년 겨울에 이곳을 지날 때에는 동파되어 등로가 빙판이 되었기에 조심스레 걷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덕평봉은 낙석으로 주위가 어수선하며 낙석주의라는 안내문이 적혀있고 로프로 펜스를 설치하여 차단하였는데 이를 돌아 나가는데 앞에서 오는 등산객은 두릅나무를 용케 확인하고는 스틱으로 두릅나무를 잡아당겨 꼭지의 두릅을 따는 모습이 보인다.

맑고 맑던 하늘은 어느새 구름이 찾아와 햇살을 감추고있다. 선비샘을 떠난 지 15분후에 이정표를 만나는데 세석대피소3.2k/벽소령대피소3.1k로 벽소령을 떠나 세석을 향하는 걸음에 어느새 절반을 지났다.

이 이정표를 지나서 15분을 경과하니 지리01-37구조목이 나온다. 구조목을 지나서 계속 동진을 하니 칠선봉(1558m)에 올라선다. 주변에 바위들이 우뚝우뚝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고는 대권과 동익에게 일곱 바위인지 세워 보라니 여덟 아홉 개는 된단다. 이정표에는 벽소령4.2k/세석2.1k/장터목5.5k/천왕봉7.2k로 적혀있으며 구조목엔 지리01-38이라고 쓰여 있다.

칠선봉의 일곱 신선들의 모습을 감상하고는 길을 잡아 바위길 을 조심스레 동진을 계속한다.

칠선봉을 지나서 1556봉을 올라서니 삼신봉과 연하봉, 천왕봉과 중봉, 하봉이 실루엣으로 눈이 시리도록 다가온다. 제석봉 밑으로는 장터목대피소가 아스라이 앉아 지나는 길손을 맞이하기 위해서 차분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도 한눈에 잡힌다.

여기서 북동진하던 방향을 급선회하여 남동진하여 영신봉을 오르는데 나무계단을 한참을 돌아 올라서다가 보니 철계단을 만난다. 서너길은 됨직한 철계단을 오르나니 또 하나의 철계단을 오르게 된다.

영신봉의 험한 바위지대를 나무계단과 철계단 2개를 오르니 17:17 드디어 영신봉(1651.9m)에 도착하게 된다.

 

영신봉은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지점으로 삼신봉을 지나서 묵계리 청학동과 쌍계사를 지나서 화개로 빠질 수 있다. 영신봉의 이정표에는 세석0.6k/벽소령5.7k/연화천9.3k로 되어있으니 오늘의 우리 목표지점이 지척에 있다.

영신봉에서 사방을 조망하며 토드락토드락 내려서니 잔돌평원인 세석평전이 시야에 다가오나 한껏 기대했던 철쭉의 화사한 모습은 오간데 없이 푸르름만이 들어온다.

철쭉나무가 숲을 이룬 평전의 능선에서 오른편의 남쪽 하늘쪽으로 벗어난 대피소에는 많은 등산객으로 벌써 소란스럽다.

17:30 대피소에 내려서니 취사장은 물론이요 대피소밑 식탁과 샘터가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은 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들의 요란스럼 처럼 잔돌평원에 철쭉의 개꽃이 요란스럽고 흐드러지게 피였슴 얼마나 보기좋았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매점겸 사무실에서 예약자 확인을 받고는 침상을 배정받는다.

저녁을 먹기는 넘 이르고하여 입실하여 배정된 자리에 잠시 누워 있는데 관리인이 들어와 온풍기전원을 켜고 나가기에 학생들이 어데에서 자는가 물어보니 우리가 묵고 있는 이곳에서 자는데 선생들과 함께 자며 세군데 학교에서 왔기에 싸움이 날까 걱정이라며 만약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우리더러 진압해 달란다.

써늘하던 나무침상이 온풍기를 돌리자 공기가 훈훈해 졌다. 학생들이 들락거리며 문을 열어놓자 관리인이 온풍기를 돌리고 있으니 문을 닫고 다니라며 나무란다.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대지가 어둠을 더욱 삼키기 전에 저녁을 먹기로 한다. 대권이 내가 먹지 않는 건조곰탕을 가져와서는 저녁엔 깔끔한 곰탕을 끓여 먹자고 제안하니 득익이 얼씨구나 좋다고 거들고 나선다. 그러면서 내게 후배들을 위해 한 끼 희생하라고 말해 대권과 득익은 곰탕을 나는 김치 국을 먹기로 하고는 비좁은 취사장으로 내려간다.

취사장엔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학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으나 이리저리 간격을 좁히며 한자리를 꿰차고 식거리를 올려놓고 저녁을 준비한다. 개스버너가 둘이여서 곰탕과 김치국을 동시에 끓이고 동익은 샘터로 물을 길러 간 사이에 뒤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는 등산객(혼자 오신 듯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슴) 한분이 된장국을 덜어 먹었는데 혹시 드시려냐고 물어와 대뜸 먹겠으니 달라고 해서는 코펠을 받아들고 국물을 떠먹는데 맛이 상당히 있다. 감자와 버섯, 파 등과 멸치로 된장국을 끓여 담백하고 신선하다.

대권과 된장국을 떠먹는데 동익이 들어와 된장국을 먹어보라니 거절한다.

끓이는 김치국에 된장국을 섞어 짬봉김치된장국을 만들어 놓고는 곰탕에 밥 말아 먹는 대권과 동익에게 먹어 보라니 곰탕에만 정신을 빠져있다. 동익은 오랜만에 입맛이 도느지 배낭에서 햇반을 하나더 가져다가는 곰탕에 말아 먹고 나는 2이분이 넘는 김치의 새콤한 맛과 된장의 구수한 맛이 어울린 짬뽕김치된장국을 혼자서 배불리 해치운다.

이렇게 저녁을 다 먹고 나서 양치질을 하려하는데 노고단에서 함께 숙박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천왕봉을 향해 운행하는 대간 꾼과 광주에 사는 젊은 친구가 대피소에 보인다. 그들은 예약이 안 되어 오면서도 걱정을 많이 하더니 그래도 자리를 잡아 숙박이 가능하단다. 천만다행이다.

침구를 대여해서 자리에 깔고 피곤한 몸뚱이를 쉬고 있으려니 학생들이 위로 아래로 쿵쿵거리며 돌아다녀 짜증이 묻어난다.

이러던 중에 관리인이 나타나 p9시에 소등을 할 터이니 9시가 넘어 이야기 하려거든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고는 나가더니 9시정각이 되는 관리인이 나타나 전등불을 소등한다.

뻐근한 허벅지와 종아리를 주무르다 나도 어느새 잠자리에 들어 꿈속을 헤멘다.

 

 

 

도시의 적막한 세상속으로

 

아랫배가 뻐근하다. 2인분이 넘는 짬뽕김치된장국을 나 홀로 훌쩍 해치웠더니 방광에 물이 고였나보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살며시 고양이 걸음으로 밖으로 빠져나와 화장실(사실은 가랑비가 내려서 화장실에 안가고 문밖 처마 밑에 적당한 곳에 실례)에 다녀오며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도 새벽2시 밖에 안 되었다.

가랑비가 젖은 대지는 촉촉이 물기를 머금고, 아릿하게 흐린 하늘 아래로 남쪽 저멀리 지평선엔 하동마을이 불빛으로 찬란하다. 이정도의 비로 오늘의 일기예보 비소식이 끝을 내였으면 하는 바램을 않고 침구 속으로 다시 드러눕는다.

한잠을 자고 났더니 주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코고는 소리 등에 잠을 이룰 수 없다. 이럭저럭 잠이 들었는데 옆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다시 잠에서 깨어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동익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조금 있다가 들어와 내 얼굴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나를 살핀다. 동익에게 더 자라고 일렀더니 밖에 비가 많이 내린다며 우울해 한다. 어느덧 시간은 덧없이 흘러 새벽4시가 넘어서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없이 대권을 깨워 떠날 채비를 갖춘다.

여장을 갖추고 밖으로 나오니 새벽2시와는 천양지차로 가랑비에서 빗줄기가 꽤나 굵어져 있고 바람과 안개가 자욱한 것이 을씨년스럽다 못해 산중의 공동묘지 마냥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04:50 배낭 겉으로 우의를 걸치고 헤드랜턴을 착용하고는 세석대피소를 뒤로하고는 촛대봉을 향해 랜턴을 밝혀 출발한다.

잔돌평원의 철쭉 나뭇가지 사이를 거슬러 올라가니 어느새 비가 내리는 하늘이지만 희뿌옇게 대지를 열고 있어 헤드랜턴의 불을 끄고 촛대봉을 향해 오른다. 비는 계속 내리고 희뿌옇게 밝아 오는 대지는 희미한 안개에 가려 그 밝음에 그 흐림이 묘하게 겹쳐 실루엣이 된다.

05:05 촛대봉이정표가 세워진 곳 그 오른편으로 촛대봉 암봉이 오둑하니 희미한 안개 속에 외롭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가 안 오고 날씨만 좋다면 그곳의 목 좋은 곳에 올라 앉아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할 태세인데 아쉬움이 너울너울 파도물결 되어 밀려온다.

빗방울이 커졌다가는 작아지고 안개가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여들며 바람은 세차게 불다가는 소리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가운데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여러 개 넘어서 연하봉을 오르는데 나무사다리를 만들어 놓아 사다리를 오른다. 자연환경을 유지하며 나무사다리를 준설하였다지만 자연 상태로 그대로 놔두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달랜다. 사다리를 좌우로 돌며 오르고 나니 또 철계단이 앞을 막는다. 이놈의 철계단을 스틱 찍는 소리로 철거덕 거리며 오르고 나니 이제는 철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인공으로 가미된 등로를 오르내리더니 드디어 05:55에 연하봉(1730.0m)에 오르니 눈앞에 제석봉과 천왕봉이 한 눈에 잡히고 북쪽으로 뻗어 있는 중봉과 하봉으로 이어지는 태극능선이 선명하게 자리하고 있다. 뒤 돌아보면 우리가 지나온 능선과 그에 따른 산자락들이 희뿌연 안개 속에 파노라마로 펼쳐져있다. 남쪽으로는 중산리계곡과 거림골이 북쪽으로는 백무동계곡이 용트림을 하며 흐르고 있다.

연하봉정상의 이정표에는 세석대피소 2.6k/장터목대피소 0.8k라 안내를 하여준다.

빗방울이 잦아들고 있으나 바람이 드세다. 서둘러 하산을 시도하여 빗물에 젖은 잔돌을 밟고 내려서는 길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눈앞에 아스라이 장터목대피소가 펼쳐지고 웅성거리는 소리와 인적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들이 산장의 아침을 알린다.

06:15 장터목대피소(1683.0m)에 도착하여 산장에서 묵고 일찍 일어나 취사장으로 내려온 등산객을 헤치며 취사장으로 들어서니 그곳엔 어느덧 많은 등산객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어제 먹다가 그대로 둔 취사장비들과 쥔이 남기고 간 배낭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어제의 잔흔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배낭과 취사장비들을 이리저리 밀치고는 우리들의 배낭에서 취사 장비를 꺼내어 조반을 해결한다.

이곳 대피소 또한 무주의 대안학교에서 무더기로 숙박신청을 한 관계로 접수를 받자마자 예약이 끝난 상태여서 산 꾼들은 감히 숙박을 꿈도 못 꾸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데 뒤쪽에서 김치를 얻으려 하는 소리가 들려 동익과 대권이 남은 김치를 몽땅 털어 건네주니 무주대안학교 선생이다. 조반을 거의 다 먹고 있는데 학생 한명이 코펠 뚜껑에 참치김치볶음을 조금 가져와서는 건네는 것을 동익이 밥 다 먹었다고 거절하자 머쓱해 하며 서 있어 내가 얼른 받아 챙겨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우리가 건네준 김치로 만든 볶음김치로 그들이 인사로 가져온 것을 성의로 받아 준다. 서로 주고받고 하며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 사는 맛인 모양이다.

07:15 조반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는 대피소로 들어가 한편에 배낭을 벗어 놓고는 비무장으로 천왕봉으로 향한다. 아직 희뿌연 대지를 열고 처음 시작되는 장터목의 바위길을 조심스레 올라서며 제석봉(1806.0m)을 향한다. 제석봉 오르는 길에 앞장선 대권의 비바람에 펄럭이는 흰 비옷의 모습이 마치 소복 입은 여인의 을씨년스런 모습과 흡사하여 제석봉의 고사목과 어울린다.

제석봉일대는 2005.1.1~2015.12.31까지 11년간 펜스를 친 등로를 제외한 지역에 휴식년제에 들어가 구상나무를 조성하여 복원을 하고 있다고 안내하고 있으며 50여 년 전에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려고 일대에 불을 질러 지금처럼 황폐화 되었다고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고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는 고사목은 희뿌연 안개 속에 강시처럼 우뚝하게 다가온다.

07:30 제석봉에 오르니(1806.8m) 이정표에는 장터목대피소 0.6k/ 천왕봉1.1k라 적혀있으며 제석봉은 왼편으로 제석신장 처럼 장엄하게 서있다. 제석봉을 돌아 철사다리~나무사다리~철사다리를 차례로 내려선 후에 다시 오름을 계속하니 통천문이정표가 천왕봉0.5k을 가리킨다. 바위굴인 통천문을 철계단을 통해 07:48에 통과하니 이제부터는 하늘나라에 올라선 듯 한 신비감이 더 해진다.

 

바윗길을 10여분 올라서니 바위봉우리 꼭대기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08:00 조심해서 올라선 지리산정상 천왕봉(1906.0m) 검은 바위지대로 이뤄진 그곳엔 정상표지석으로 앞면엔 天王峰이란 글씨가 뒷면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하다라는 글귀가 오이 같이 길쭉하게 생긴 둥그스름한 돌에 새겨져있다.

여기에 올라서니 집채만 한 배낭을 짊어진 세 명의 산 꾼이 올라와서는 두 명은 장터목 쪽으로 내려서고 한명은 중봉 쪽으로 향하는 것을 중봉 쪽으로 향하는 산 꾼에게 기념사진을 부탁하여 바람이 드세게 부는 가운데 서둘러 사진을 찍는다. 그는 중봉~써레봉~치밭목을 거쳐 유평~대원사로 내려간다고 한다.

독사진을 한 장씩 찍으려 카메라를 받고 셔터를 누르려 하자 배터리 전원이 꺼지며 아웃…….

바람도 드세고 하여 서둘러 내려서려 하자 대권이 야호라도 한번 외치고 가자며 뜸을 들이기에 요즘 산에서 소리 지르는 무식한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한 마디하고 잠시 대권이 지리산산정에서 침묵하며 소원하는 시간을 기다렸다가 정상에서 내려선다.

올라섰던 길을 역으로 내려서니 통천문을 지나고 제석봉으로 내려서니 무주대안학교 학생들이 지도교사의 인솔하에 줄을 이으며 올라서고 있는데 그들은 지나면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우리도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그들과 엇갈려 하산을 서두른다.

노고단에서부터 줄 곳 함께한 광주의 청년도 오르면서 천왕봉에서 중산리로 내려간다고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천왕봉을 향한다. 그의 원 계획은 유평으로 해서 대원사로 하산하는 것이다.

08:35 제석봉을 지나서 08:48장터목에 내려선다. 장터목이정표에는 백무동 5.8k/중산리 5.3k/세석 3.4k/천왕봉 1.7k라 안내한다.

우리는 배낭을 찾아 여장을 갖추고는 09:00에 장터목대피소를 떠나 백무동으로 향한다.

제석봉의 북쪽 사면을 돌아가야 하는 나는 음습한 바위지대가 미끄러질 위험이 있어 뒤에 오는 동익과 대권에게 경각심을 주고는 조심스레 바위 너덜지대를 벗어난다. 이렇게 10여분 내려서는데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오르며 여자가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와 조금만 오르면 된다고 대답하고 남자에게만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게 하여 남녀평등에 위배된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내려가는 길은 돌길과 비에 젖은 미끄런 흙길이여서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뒤에서 따라오는 동익은 작년 겨울(05’2)에 왔어 오르던 등로에서 넘어졌던 기억을 더듬어 이곳이라고 말하지만 글쎄다.

09:38 망바위(1460.0m)를 지나고 이정표에는 장터목1.5k/백무동4.3k라 안내되고 이를 따라 서서히 하산을 하는데 어느 틈엔가 하늘의 구름이 엷어지며 가랑비가 내린다. 영하봉에서 흘러내리는 산자락은 하얀 뭉게구름이 피여 오르고 맑고 푸르름을 간직한 산자락은 구름밑으로 선명하다.

망바위를 떠나 20여분을 지나며 나무사다리를 두 개 내려서니 헬기장이 나오는데 헬기장의 절반이 잡풀로 채워져 헬기장으로의 역할은 이미 의미를 잊고 지나는 등산객의 이정표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이 헬기장에서 7~8분을 내려서니 소지봉(1312.0m)10:08에 닿는다. 소지봉이라 했자 봉우리도 없다.

이정표(백무동3.0k/장터목대피소2.8k)가 소지봉임을 알려 줄 뿐이다.

소지봉에서 능선 길을 따라 조금 아주 조금 내려서는데 주능선을 가로막은 펜스를 확인하며 왼편 지능 쪽으로 등로를 열어 놓았다.

주능을 버리고 지능선으로 15분정도 너덜 길을 내려서니 넓은 너덜길 오른편으로 이동통신안테나가 설치되어 있고 왼편으로 참샘(1125.0m)이 있어 한 모금씩 물을 마시며 자리를 뜬다. 이정표에는 백무동 2.6k/장터목대피소 3.2k/ 천왕봉 4.9k로 안내되어있다.

계속되는 너덜길을 내려서니 계곡을 끼고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출렁거리는 철다리가 걸려있다. 철다리를 건너며 동익이 널뛰듯이 출렁거려 앞선 대권을 놀래 낀다.

10:47 다리를 건너자 하동바위가 나타난다. 하동바위(900m)이정표에는 백무동이 1.8k가 남았다. 다 내려왔다는 홀가분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는데 등산객 세 사람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오른다.

하동바위를 지나자 등로 주변에는 산죽이 자리하고 비에 젖은 푸르고 길쭉한 잎사귀에는 빗물이 방울방울 아롱져 아름다움을 자극한다.

 

하동바위에서 1.8k의 거리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듯 출렁다리가 나와야 백무동인데 다리는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오른편으로 울창한 대밭을 만난다. 이곳을 지나면 출렁다리가 나올 것이다. 11:23 대밭을 내려서니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나오며 오른편으로 야영장과 집들이 보인다. 이 야영장에서 길로 내려서니 삼거리로 한신계곡쪽 가내소로 올라가는 이정표가 나오고 우리는 버스종점이 있는 계곡 하류로 향해 11:28백무동매표소를 통과한다.

식당겸 민박집을 두리번거리며 찾아 내려서서는 버스종점매표소에서 백무동~동서울간 버스 출발시각을 확인하고 13:30분차 매표를 하고는 할머니께서 호객한 집으로 찾아 들어가 산채비빔밥을 주문하고는 샤워를 마치고 점심을 먹는데 천왕봉을 오르던 학생들이 내려와 그들도 뿔뿔이 흩어져 점심을 먹으려 찾아 들더니 우리가 먹고 있는 집으로도 몇 명의 학생들이 들어선다.

지리산백무동발 동서울터미널행 버스시각은 07:20, 08:50, 11:30, 13:30, 14:50, 16:00, 18:00(7/1)이고 동서울터미널발 지리산백무동행은 08:20, 10:30, 13:20, 15:20, 17:30, 19:00, 24:00이다.

또한 함양발 동서울행 직통은 06:30, 08:50, 13:50(3/일일)이고, 동서울발 함양해은 12:00, 14:30, 21:00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는 버스에 올라타 출발시간을 기다려 버스가 출발하자 이내 잠이 든다. 경부고속도로 상의 죽암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그들이 약속한 4시간 운행에 맞춰 정확히 5시 반이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헤어지기 아쉬워 호프한잔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리며 각자의 집으로…….

'산야로 뚜벅뚜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짝꿍과 데이트 "관악산에 등산을"  (0) 2006.06.01
짝꿍과 관악산계곡에 놀러가기  (0) 2006.06.01
동익,대권과 지리산으로  (0) 2006.05.26
지리산산행  (0) 2006.05.24
지리산 2박3일 종주산행  (0) 2006.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