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로 뚜벅뚜벅

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아름다운 도전

힉스_길메들 2011. 7. 8. 03:33

 

365일 중 300일 이상을 산에서 사는 남자가 있다.‘지구 탐험가’로 불리는 산사나이 박영석 대장이다. 아직도 깨지지 않은 신화, 인류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자랑스러운 산악인 박영석 대장을 만났다.

>> 무모한 도전? 무한 도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세계 최단기간 등정, 세계 최초 6개월간 히말라야 8000m급 최다 5개봉 등정, 세계 최초 1년간 히말라야 8000m급 최다 등정(6개봉) 달성 후 기네스북 등재, 아시아 최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세계 최단기간 무보급 남극점 도달, 인류 최초 산악 그랜드 슬램(에베레스트, 남극점, 북극점) 달성…. 박영석 대장, 그의 이름 앞에는 '세계 최초' ‘아시아 최초’‘인류 최초’라는 수식어가 줄줄이 붙는다. 그는 수많은 이들이 ‘무모한 도전’이라고 만류하던 힘겨운 싸움을 얼마나 감행해 왔던 것일까?

얼마 전 방영된 SBS 다큐멘터리 ‘남겨진 미래 남극’ 속에는 그간 치열했던 박영석 대장의 탐험기를 어림짐작할 만큼 험난한 남극 탐험기의 단면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박영석 대장과 팀원들은 40여 일 동안 태양열만 사용하는 친환경 에코모빌을 타고 남극 횡단을 강행했다. 준비 기간만 1년이었다. 영하 40℃의 냉동창고에서 40시간 이상을 에코모빌과 동고동락했고, 한여름에는 실내 스키장에서 에코모빌을 타고 구르고 깨지고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준비했다.

“에코모빌은 만드는 과정부터 힘들었어요. 만들어 주겠다는 전기 자동차 회사가 없어서 애를 태웠죠, 만든 후에는 필드에서 성능 테스트를 하지 못해 불안해하며 떠났고요. 필드 테스트를 했다면 절대 남극 횡단 안 했을 겁니다. 시동만 걸리면 문제없다는 생각으로 남극에 간 게 우리가 고생한 결정적 계기죠. 그 정도일 줄 몰랐어요. 아무도 안 해본 일은 진짜 힘들구나 싶었죠. 사실 환경을 중요시하는 선진국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 그들은 친환경 모빌을 타고 남극탐험에 도전하지 않았을까요? 이유가 있었어요(웃음). 기계를 잘 만들어 성공한 것이 아니라 조선 사람들이 독하잖아요(웃음), 의지와 집념으로 성공한 겁니다. 무식한 게 용감하다고 정말 무식하게 갔으니까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우려한 프로젝트였던 만큼 시행착오도, 사건사고도 많았던 세계 최초 친환경 에코모빌 남극 횡단은 박영석 대장이 일궈낸 또 하나의 작은 기적이다.

>> 건강 관리는 필수!

“아무리 설원 위를 구르고 빙산을 올라도 서울이 더 추워요. 히말라야에서는 히말라야 강추위에 맞는 복장을 하잖아요. 한국에서는 겨울에 거리에서 택시 잡을 때 제일 추워요(웃음).”

‘빙벽을 자주 올라 웬만한 추위에는 끄떡없을 것 같다’는 에디터의 질문에 농담 섞인 말로 답하는 박영석 대장은 다큐멘터리 속 산악인 박 대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무표정한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고 동글동글하고 선한 눈빛에 심지어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동안이다.

“동안은 무슨(웃음). 건강관리요? 직업 특성상 건강을 챙기는 건 필수죠. 눈도 관절도, 뭐 하나 멀쩡한 게 없어요. 직업병이라고 하죠? 자외선에 하도 많이 노출돼서 선글라스 없이는 눈이 시려서 밖에 나갈 수 없고요, 고산 등반을 많이 하다 보니 뇌세포가 많이 파괴돼 건망증도 상당합니다. 그래서 어디 갈 때, 아무것도 들지 않아요. 놓고 올 게 뻔하니까요(웃음). 가끔 우리 아들 이름도 헷갈립니다.‘걔 있잖아, 걔, 우리 아들’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니까요(웃음). 뇌 사진을 찍으면 군데군데 하얀 점이 많아요. 2000년엔 혈관 이상 등으로 뇌수술을 했고, 관절은 이미 80대죠. 보통 사람이 평생 사용하고도 모자랄 만큼 움직이니까요.”

남다른 직업병을 가질 수밖에 없는 ‘퍽퍽한’ 삶을 살기에 박 대장은 원정 가기 전 건강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원정 떠나기 1주일 전에 관절 윤활유 역할을 하는 관절주사를 3번 맞는다. 최대한 고칼로리 식사를 해 몸무게를 4~5kg 불리는 것 또한 필수다.

“원정 가기 전엔 74kg 정도인데 최소 78kg까지 만듭니다. 그래도 원정이 끝나면 63kg까지 쪽 빠져요. 거의 15kg 이상 빠지는 거죠. 그래서 산에 오를 땐 꼭 필요한 영양소를 꼭 챙겨 갑니다. 한 끼 5000kcal 이상의 고칼로리 식사를 해야 산을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건조 식량과 항산화제, 비타민제 등을 함께 먹으며 체력을 관리합니다. 그렇게 먹어도 등반이 끝나면 살이 빠지니 힘들긴 힘든가 봐요(웃음).”

등반 후 빠진 몸무게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보양식을 먹는다. 보신탕은 물론 자라와 오골계, 뱀 등을 넣고 푹 삶은 용봉탕, 동충하초 등 웬만한 음식은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든든한 체력이 없으면 세계 최고의 산악인 박영석도 이 자리에 없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 거친 도전과 달콤한 휴식 사이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있습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등반은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만든 것이죠. 에베레스트는 세계 최고봉 아닙니까? 하지만 외국인이 뚫은 루트만 있었을 뿐 코리안 루트가 없었어요. 그래서 8000m급 14좌를 정복하고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완봉했을 때 발목에 있는 족쇄가 풀린 기분이었어요. 에베레스트의 가장 어려운 루트인 세계 최고봉 남서벽에 코리안 루트를 뚫은 건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니까요. 여러 번 실패 끝에 정상에 올랐으니 감동이 더했죠. ‘지구의 3극점’이라 불리는 에베레스트·남극점·북극점을 모두 정복하고, 마지막으로 북극점에 도달했을 때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거의 이성을 잃었어요. 소리 지르고 미친놈처럼 데굴데굴 구르고, 꿈만 같다는 생각에도 기뻤지만 다시는 안 와도 된다는 생각에 더 기뻤던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북극일 겁니다. 1차 도전을 실패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다시 와야 한다는 두려움이었어요. 북극은 남극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무서운 땅입니다.”

북극점에 도달하는 것은 세계 최고의 산악인인 박 대장조차 두려웠을 만큼 힘겨운 여정이었다. 남극 대륙과 달리 얼음 언 바다가 대다수인 북극은 한 치 앞을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바닷물에 빠지기 일쑤였으며, 유빙 위를 걷는 탓에 앞으로 10km를 나갔다 싶으면 뒤로 20km 밀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영하 50℃ 를 육박하는 지독하게 춥고 긴 겨울밤은 그와 팀원들을 숨막히게 할 만큼 괴롭혔다.

“저도 사람인데 죽음이 왜 안 두렵겠습니까? 하지만 인명은 재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철학이기도 하고요. 죽을 사람은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져서도 죽는다고 하잖아요. 보험이요? 있죠! 자동차 보험, 연금보험(웃음). 산악인은 보험 못 들어요.”

박 대장은 팀원들과 원정 후 환승 도시에서 휴식과 재충전을 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등정한 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방콕을 경유하면 그곳에서 닷새 정도 휴가를 보내는 식이다. 20년 전 취득한 스킨스쿠버 마스터 자격증은 이럴 때 유용하다. 스킨스쿠버를 즐기다 싫증 나면 클레이 사격, 공기총 사격 등을 하며 긴장된 근육과 쌓인 피로를 이완시킨다.

“아무리 좋은 여행지에 들러도 팀원들이나 저나 낮에는 종일 잠만 자요. 워낙 지쳐 있으니까요. 그러다 밤이면 슬슬 일어나 밤새 술 마시고(웃음). 모두 죽기살기로 고생하고 돌아왔는데 그정도는 풀어 줘야죠.”

>> 나의 사랑, 나의 가족

1년에 한 달, 그것도 얼굴을 마주한 날은 다 합쳐야 고작 한 달이다. 가족과 제대로 마주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박 대장의 1년치 탐험 스케줄이 꽉 차있기 때문이다. 당장 6월 말에서 7월 초 서울시와 공동 주최하는 대학생 국토순례 희망원정대를 떠난다. 9월에는 작년에 실패한 안나푸르나 남벽 코리안 루트에 재도전한다. 겨울에는 남미의 최고봉 아콩카구아 등반, 내년 봄에는 에베레스트 남벽 로체 등반을 준비 중이다. 12년 동안 아버지와 떨어져 뉴질랜드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아들들은 그 사이 22세, 17세로 ‘알아서’ 훌쩍 성장했다. 아이들에게는 박 대장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아버지’다.

“아이들과 킬리만자로, K2, 북극점에도 올랐어요. 아이들이 머물렀던 뉴질랜드는 화폐에 생존하는 산악인의 얼굴을 새길 만큼 산악인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나랍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며 아이들은 제 작은 명함 하나가 ‘자랑스러운 산악인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해 준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던 모양이에요. 전 아들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진취적인 개척정신을 보일 수 있는 탐험이고 싶습니다. 세계 역사를 탐험의 역사로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를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제가 그 탐험의 세계 역사를 기록하고 싶어요. 아들이 산악인이 되겠다면요? 하라고 할 거예요. 무슨 일이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그것이 설령 힘겨운 산악인의 길일지라도 무조건 지지할 겁니다. 저 역시 꿈을 좇는 산악인이니까요.”

>> 박 대장의 버킷 리스트

"탐험에는 연령 제한이 없어요. 단, 자기 나이에 맞는 등산과 탐험을 해야죠. 저도 어느 순간 거친 등반이 힘에 부치는 날이 올 테고 그때는 그 상황에 맞는 탐험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히말라야 3대 남벽에 코리안 루트를 모두 내는 게 죽기 전에 꼭 이루고픈, 제 ‘버킷 리스트’예요. 그 도전이 끝나면 극도로 위험한 등반은 삼가려고요. 아마 내년쯤이 아닐까요? 저도 오래 살아아죠(웃음).”

거친 도전은 못할지언정 죽는 날까지 탐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겠다는 박영석 대장. 그에게 산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집이요, 직장이요, 동시에 삶이다.

“요즘처럼 인공위성이 수백, 수천 개 떠 있는 최첨단 시대엔 지구 반대쪽에 지나가는 개미도 찍을 수 있다는데, 사실 신대륙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 같은 탐험가가 필요해요. 자라나는 아이들이 뭘 보고 진취적인 미래의 꿈을 키울 수 있겠어요. 우리 같은탐험가들의 도전을 보며 ‘아,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희망을 갖는 거죠. 뭐 하러 힘들여 산에 오르냐고요? 제 인생이고 제 삶인데 힘들고 위험하다고 포기하는 건 인생을 포기하는 거잖아요. 그건 아니지 않아요?"

/ 취재 이미영 헬스조선 기자 lmy@chosun.com / 사진 조은선 헬스조선 기자 citysk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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