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기록

공포의 순간은 ‘달짝지근’하다?

힉스_길메들 2012. 3. 1. 03:42

물고기가 공포를 느끼면 피부 조직의 당분이 동료들에게 경고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들 사이로 포식자인 거북이가 나타났다. 거북이가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채려고 하는 순간, 나머지 물고기들은 쏜살같이 달아난다.

물고기가 피를 흘린 것도 아니고, 도망치라고 소리를 지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들이 거북이를 피해 도망갈 수 있었을까.

지난 70년간 생태학자들은 희생된 물고기에서 나오는 어떤 특수한 물질 덕분에 나머지 동료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도망갈 것이라고 추측했다. 쥐가 고양이의 방광 냄새를 맡고 도망치는 것처럼 동물들 중에는 화학적인 방법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예가 많기 때문이다.

1938년 오스트리아 생태학자인 칼 본 프리슈는 위험에 처한 물고기가 방출하는 물질을 독일어로 ‘무서운 물질’이라는 뜻의 ‘슈렉스크스토프(schreckstoff)’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생태학자들은 이 특별한 물질이 물고기의 피부에 들어 있으며 상처를 입는 순간 물속에 퍼져 나와 동료에게 일종의 경고를 알린다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 물질이 어떤 성분인지, 어떻게 물고기가 이 물질을 감지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싱가포르대 연구진은 이 물질이 황산콘드로이친이라는 설탕의 한 종류이고, 물고기는 후각으로 이 물질을 탐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셀’의 자매지인 ‘커런트 바이올로지’ 23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황산콘드로이친은 물고기 피부에 있는 점액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호흡과 삼투압을 조절하고, 병균을 막아주는 기능이 있다. 우리 몸에도 연골에 이 물질이 많이 들어 있는데, 골다공증 환자들은 발병을 늦추기 위해 황산콘드로이친을 섭취하기도 한다.

연구진은 제브라피쉬의 피부 조직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조직들로 실험한 결과, 황산콘드로이친 조각이 떨어져 나올 때 물고기들이 도망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피부 조직이 파괴될 때 나오는 효소가 황산콘드로이친을 더 작게 분해 시키며 이때 제브라피쉬는 더 큰 공포심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브라피시의 뇌는 황산콘드로이친을 감지하는 순간 후각처리 영역인 후신경구가 심하게 반응했다. 연구진은 뇌의 후엽에 있는 후각신경구에 선천적인 공포 반응을 중개하는 특별한 회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위험을 느끼는 정도는 같은 종 사이에서 더 잘 나타나 종마다 황산콘드로이친 조각의 ‘향’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물고기가 자발적으로 위험을 알리는 물질을 뿌리도록 진화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오히려 황산콘드로이친을 잘 맡는 물고기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많이 살아남으면서 물고기가 황산콘드로이친을 잘 맡는 쪽으로 진화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김윤미 기자 ym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