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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식, 더위에 허해진 몸 '으랏차'

힉스_길메들 2012. 7. 7. 02:32

덥다. 찐다. 어지럽다. 목덜미에서 가슴팍을 타고 처진 뱃살 아래로 땀이 고인다. 마누라는 이런 나를 두고 누런 육즙이 줄줄 흐른다고 비아냥댄다. 허한 게라, 이럴 땐 보양식이 최고다.

칼칼한 육수에 죽죽 찢은 살살한 살코기가 혀에 착착 감긴다. 크억! 배꼽부터 뜨끈뜨끈 데워지는 것이, 누가 40대를 고개 숙인 남자라 했던가.

여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넥타이를 풀어헤친 40, 50대 중년 남성들이 삼계탕, 장어구이,영양탕 가게에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한편에선 고칼로리의 전통 보양식을 부담스러워 하는 까다로운 보양족(族)들이 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들 신세대 보양족들은 음식의 칼로리와 성분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은 물론 곡물이나 채소로 만든 고단백 죽 등 이색 보양식을 즐기면서 개, 소 닭 등 동물성에 치우쳐 있던 기존 보양식에서 벗어나려 한다.

보양식은 지리적 역사적 조건에 따른 식생활 문화를 대변한 것일 뿐 불변의 건강식품이거나 특정 종류의 고기요리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과거 수천년간 한반도의 식생활 습관은 채식 위주였기 때문에 칼로리와 지방이 많이 포함된 고기 요리가 필수였다.

하지만 고기요리를 아무때나 먹을 수 있게 된 요즘엔 칼로리를 낮추면서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 성분이 많은 음식을 먹는 것도 보양이 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꼼꼼한 신세대 보양족들의 똑똑한 입맛을 따라가보자.

 

■ "이왕이면 저칼로리" 실속 다이어트형

우리나라 보양식 중 1인분 당 칼로리가 가장 높은 음식은 삼계탕이다. 보신탕과 갈비탕이 뒤를 잇는다. 이들 음식은 지방 함유량도 일반 음식의 3배인 60%를 훌쩍 넘는다.

때문에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젊은 여성이나 늘어진 뱃살 때문에 괴로워하는 직장남성들 중엔 상대적으로 칼로리나 지방 성분이 낮은 해산물을 선호하기도 한다.

칼로리가 비교적 낮은 보양식으로는 오리고기와 추어탕, 민어매운탕 등이 꼽힌다. 오리에는 불포화지방산이 포함돼 있어 원기를 보충하면서도 살찔 염려가 없다.

추어탕은 대한의사협회가 대표적인 전통 보양식으로 꼽은 음식들(삼계탕 보신탕 추어탕 민어매운탕 장어구이 갈비탕) 중 칼로리는 가장 낮고 단백질은 가장 많다. 뼈를 갈아 만들기 때문에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해 아이나 노인이 먹기에도 좋다.

 

■ "고기보다 나은 영양 섭취" 죽 보양형

보양 밥상의 역전이라 할만큼 파격적으로, 죽을 이용한 보양식을 즐기는 이들도 있다.

칼로리나 동물성 지방, 콜레스테롤이 낮으면서 보양을 위한 영양 성분을 간직한 음식들을 찾아 먹는 것이다. 인천녹색연합 채식 소모임을 운영 중인 한약사 이현주(41)씨는 "보양식은 여름철 땀으로 영양성분이 흘러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몸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을 말한다"며 "속을 든든하게 해줄 수 있는 죽 요리도 훌륭한 보양식이 된다"고 추천한다.

콩단백과 버섯으로 만든 황기버섯죽과 현미죽, 구기자가지찜 등이 채식으로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보양식이다. 황기버섯죽은 황기삼계탕이나 보신탕처럼 황기와 찹쌀, 마늘, 대추를 넣지만 닭고기 대신 버섯을 가늘게 찢고 콩단백을 넣어 닭고기의 질감과 고단백 성분을 대신한다.

폐와 비위를 튼튼히 하면서 땀구멍의 개폐를 조절해 여름철 면역력을 살리는 황기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음식이다.

 

■ "제철 음식, 엄마 손맛이 최고" 소박한 밥상형

땅에서 난 음식을 제철에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보양식이라며 친환경 자연주의 밥상을 권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녹색연합은 2006년 펴낸 <자연을 담은 소박한 밥상>에서 가정주부들이 추천하는 친환경 유기농 제철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땀을 많이 흘리고 더워서 지치기 쉬운 여름에 몸의 열을 내려주는 녹차콩수제비, 열무물김치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집에서 엄마들이 만들 수 있는 전형적인 가정 요리다.

입맛 돋구는 반찬이나 후식과의 궁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푸드칼럼니스트 미상유(27)씨는 "아무리 훌륭한 진수성찬이 눈 앞에 있어도 입맛이 없으면 제대로 먹을 수 없다"며 "보양식을 먹더라도 시원한 동치미와 채소 겉절이를 함께 먹으면 무기질과 비타민을 동시에 섭취하면서 입맛도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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