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인어공주’ 주제곡 ‘언더 더 씨(Under The Sea)’처럼, 정말 해초는 노래하듯 흐늘거리고 물고기들은 탄력 넘치는 댄서들처럼 헤엄을 치고 다닐까?
날이 더워서인지 이런저런 딴생각이 몽글몽글. 그러던 중, 머리 식힐 겸 산책 나간 재래시장에서 바다 속을 느낄 방법을 찾게 될 줄이야!
■ 재래시장 어슬렁대기
대형 마트들의 등장으로 우리의 생활 패턴은 많이 바뀌고 있다. 동네 슈퍼마켓, 편의점, 백화점 식품매장 등이 하나씩 세상에 나타날 때마다 그래왔지만. 그러나 대형 마트의 등장은 다른 이야기다.
일단 밤늦게까지 적정 온도에서 밝고 쾌적하게 장을 볼 수 있다. 그러니까 퇴근 후 시장 닫을까봐 서두르지 않아도, 저녁 먹고 느긋하게 걸어나오면 된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꾸 대형 마트로 발길이 가다보니 섭섭한 이들은 바로 재래시장 상인들. 물건도 훨씬 좋고(대부분의 상인들은 한 품목만 오랜 세월 취급해온 이들이므로), 값도 한 푼이라도 싸고(마진율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말만 잘 하면 덤도 주고, 떨이도 있고, 단골이 되면 커피나 도넛 등을 얻어먹을 수도 있다.
취재를 핑계로 국내의 수려한 도시들은 다 섭렵하고 다니면서, 나의 초점은 늘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맞춰진다. 그 도시, 그 마을에서 손꼽히는 재래시장. 그곳을 한 바퀴 둘러볼 즈음이면 ‘아, 요 동네에서는 요것을 먹어야 하는구먼’ 하는 그림이 그려진다. 자주 보이는 식재료들, 그 가운데 소위 말하는 ‘때깔’이 제일 좋은 식품이 그 고장의 대표적 먹거리니까.
이름난 재래시장과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오일장’. 매월 2일, 7일 혹은 5일과 10일에 열리는 5일장들이 내 스케줄과 우연히 맞아떨어지면 횡재한 기분이다.
제주도의 경우 요리사들마다 혀를 내두르는 ‘동문시장’이 있어 최고의 식재료를 공수하지만, 오일장 시스템도 잘 발달되어 있다. 서귀포, 제주, 한림, 대정, 세화 등 동네마다 아예 오일장 터가 넓게 잡혀있다. 오일장에 익숙해지면 밥상 차리기가 수월하다. 모든 사이클이 5일~10일 단위로 맞춰진다.
오래 먹는 것은 열흘, 그때그때 먹어치워야 하는 예컨대 두부나 해초류 같은 것은 5일 단위로 장을 보면 밥상이 늘 싱싱하다. 그냥 배추와 ‘육지 배추’를 구분하여 파는 상인들. 그냥 방울토마토와 ‘제주 방울토마토’를 다르게 생각하는 상인들.
“제주 방울토마토가 맛이 달라요?” 여쭈었더니 “작은 토마토는 따는 순간부터 익어요. 그러니까 육지에서 따서 여기(제주) 오는 동안 다 익어버리죠” 하셨다. 제주에서 먹는 ‘제주 방울토마토’의 맛은? 연어 알이나 스쿠알렌 같은 투명한 무언가가 입 안에서 팍 터지는 느낌! 상인들이 어떤 것은 ‘육지산’이 좋고, 어떤 것은 ‘제주산’이 낫다고 권해주는 이유를 알게 된다.
■ 청각에서 만난 바다의 맛
시장 구경을 하다가 진짜 싱싱한 청각을 만났다. 청각(靑角). 푸른 뿔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사슴뿔과 꼭 닮은 희한한 생김으로, 제주도나 완도 등지에서 양식을 한다. 제주산 청각 중에는 수중 암반에 붙어 저절로 자란 자연산이 있어서 해녀들의 정성으로 내 입안에 들어오기도. 자연산 청각을 떨이로다가 3,000원어치에 까만 봉지가 차고 넘치게 살 수 있었다.
으, 바다 냄새. 청각을 쏟아지게 가득 안고 돌아오는 길, 코끝으로 올라오는 바다 냄새에 심신이 릴랙스되었다면 사람들은 믿을까? 사슴뿔 같은 진녹색의 그것이 산들산들 물살 따라 움직이고, 그 사이를 헤엄치는 중지만한, 손바닥만한,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형형색색 어울리면 얼마나 환상적인 그림일까 하는 생각에 나는 잠시 황홀했으니 말이다.
청각은 영양 덩어리다. 다른 해초류가 다 그렇듯 식이섬유가 많아 몸매 관리에 더없이 좋은 식품. 게다가 칼슘과 철분까지 들어있어 빈혈기 있는 여자들에게 약이나 다름없다. 비타민도 선별적으로 함유되어 있다.
손맛으로 동네에 이름났던 돌아가신 외조모의 김치 맛 뒤에는 청각이 있었다. 김치를 담글 때 청각을 더하면 다진 마늘이나 젓갈 등의 양념을 싸악 감싸면서 잡내를 제거해주어 맛이 깔끔하고 시원해지는 것.
청각을 다른 해초류처럼 초무침하거나,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을 뿌리거나 냉국으로 만들 수도 있다. 다른 해초류와 섞어 비빔밥으로 먹어도 여름 별미고, 무엇보다 씹는 맛이 오돌오돌 독특하기에 물김치를 담그면 식감이 새롭다.
나는 간장, 설탕, 다진 마늘 약간에 식초와 참기름, 깨를 넣어 만든 간장 드레싱을 준비. 여기에 얇게 썬 양파, 오이, 토마토를 청각과 함께 버무리고 레몬즙 살짝 뿌려 양상추와 곁들여 먹는다.
두 접시를 가득 먹어도 열량은 밥 반 공기쯤 되려나? 배부르고, 씹는 맛이 있어서 입이 심심하지도 않고, 여기에 버터 ?량이 적은 곡물빵이나 바게트를 바삭하게 구워 곁들이면 점심 한 끼 때우기에 무리가 없다. 무엇보다 먹는 동안 나만의 ‘언더 더 씨’가 머리에 가득 맴돌게 되니, 더위와 폭우가 번갈아 꺼뜨렸던 기분이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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