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자태 뽐내는 봄나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냉이 연어말이, 각종 생 봄나물, 죽순채와 쇠고기무침, 비름나물, 씀바귀 초무침, 원추리 생청국장 무침. 작은 접시 위는 블루베리, 아래는 유자 드레싱. 신상순기자 ssshin@hk.co.kr
우리네 어린 시절, 날이 따뜻해지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챙이 넓은 모자 쓰고 바구니를 옆에 끼고 삼삼오오 모였다. 겨우내 언 땅을 어느 틈엔가 비집고 올라온 쑥과 냉이 원추리가 아주머니 손에서 바구니로 부지런히 옮겨졌다.
멸치국물에 된장을 살살 풀고 갓 캐온 쑥을 깨끗이 씻어 넣어 한소끔 끓이기만 하면 그대로 저녁상에 오르는 쑥국이 됐다. 별다른 양념 없어도 쑥 향기 하나만으로 겨우내 움츠렸던 입맛이 거짓말처럼 기지개를 폈다.
원추리와 봄나물 트리오
살다 보면 참 걱정거리 많이 생긴다. 몇 달 동안 영하의 추위에 움츠려 지내고 나면 근심의 무게가 어깨를 더 짓누르는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이럴 때 원추리나물을 먹었다. 원추리는 노란색 주황색 섞여 피는 꽃이 하도 예뻐 보고 있으면 근심이 다 사라진다고 해서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렸다.
살짝 데친 원추리는 다진 마늘 들어간 생청국장 양념과 잘 어울린다. 원추리에 무쳐진 생청국장은 색깔도 냄새도 잘 드러내지 않다가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비로소 존재감을 알린다. 소금기 없는 자연스러운 짭짜름함이 나물에 살짝 배어 순수한 봄 느낌을 빚어낸다.
요즘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봄나물 중 하나가 바로 냉이다. 봄철에 살짝 입을 벌린 조개와 흰 뿌리 여럿 달린 냉이가 동동 떠 있는 된장국 한 그릇 안 먹고 지나가면 뭔가 잊은 듯 서운하다. 대부분의 봄나물은 국을 끓이면 금방 숨이 죽어 죽처럼 퍼져 버린다. 하지만 냉이는 비교적 오래 숨이 살아 있다. 아무 길가에서나 밟아도 솟아나며 유달리 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때문일까.
정성을 좀 더 보태 냉이로 색다른 맛을 연출하고 싶다면 연어가 좋을 듯하다. 분홍빛 얇은 연어 살 한 점을 펴고 숨이 완전히 죽지 않도록 가볍게 데쳐낸 냉이를 얹은 다음 돌돌 말아낸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 냉이 특유의 향이 연어의 비릿함을 가리며 상큼한 봄 느낌을 돋운다. 굳이 밥 없이도 간식으로 일품이다. 냉이 하나로 심심하다면 달래 같은 몇 가지 봄나물을 함께 말아도 좋겠다.
냉이랑 달래 나왔으면 씀바귀 빠질 수 없다.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보자'하는 동요 '봄맞이 가자'의 그 봄나물 트리오 말이다. 옛 사람들은 봄에 씀바귀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파 마늘 다져 넣은 초고추장 양념에 무쳐도 씀바귀는 이름처럼 씁쓰름하다. 과장 조금 보태면 초고추장 맛이 가려질 정도다. 좀 덜 쓰게 먹는 방법도 있다. 씀바귀를 데친 다음 찬물에 하룻밤 정도 담가두면 쓴 맛이 어느 정도 빠진다.
봄 내음 살려주는 요리법
봄나물 요리법은 별다를 게 없다. 끊는 물에 굵은소금을 넣고 나물을 살짝 데친 다음 찬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짠다. 이걸 미리 준비해둔 양념에 조물조물 무치면 그만이다. 손도 많이 안 가고 오래 걸리지도 않고 쉬워 보인다.
하지만 요리를 해놓고 나면 이런 생각 달아난다. 초보와 전문가의 손길은 이렇게 간단한 요리법에서도 미묘하게 차이를 보인다. 전문가에게 비결을 들어보니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양념에 들어가는 각 재료의 역할을 세밀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진간장과 소금은 구분해 쓴다. 허성구 서울프라자호텔 선임주방장은 "진간장은 흐트러지는 것을 뭉치게 할 때, 소금은 반대일 경우 사용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또 간장을 넣었는데도 간이 조금 모자라다 싶을 때는 다시 간장을 넣기보다 고운소금을 쓰는 것도 봄나물의 맛을 살리는 센스다.
두 번째 비결은 봄나물의 참 맛을 가능한 그대로 살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씀바귀가 쓰다며 입맛에 맞추자고 설탕 듬뿍 넣는 것보다 간을 약간 덜 하는 편이 오히려 더 맛이 난다.
허 주방장은 "최근 한 TV 드라마에서 배우 류시원씨가 요리사로 나와 선보인 '마크로비오틱'이라는 트렌드가 봄나물과 딱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크다는 뜻의 영문 '마크로(macro)'와 생명을 의미하는 '바이오(bio)', 방법을 말하는 '틱(tic)'의 합성어인 마크로비오틱은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를 변형하지 않고 통째로 먹는 요리법을 일컫는다.
실제로 봄나물은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채 씻기만 해서 상에 올리기도 한다. 통째로 소스에 찍어먹을 수 있게 말이다. 바로 이럴 때도 초보와 전문가의 손길이 차이 난다. 소스로 샐러드용 드레싱이나 초고추장을 내놓으면 어쩔 수 없는 초보.
허 주방장은 유자드레싱을 만들었다. 가을에 난 유자를 얼려뒀다 이맘때쯤 해동시켜 양파와 함께 강판에 간다. 여기에 간장과 올리브오일을 섞어 완성한 유자드레싱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봄나물의 맛을 살짝 보완해준다. 특히 환절기에 먹는 유자는 더 값지다. 비타민C가 바나나의 10배, 레몬의 3배 이상 들어 있으니 말이다.
요즘 대형마트나 시장에 나온 봄나물은 사실 하우스에서 난 게 많다. 3월 초 노지에서 나는 첫 순을 뽑은 게 진짜 봄나물이다. 실제로 하우스산은 노지산에 비해 봄나물 특유의 향이 덜하다. 노지에서 마구 자란 어린 순이 봄나물의 참 맛을 낸다는 얘기다.
수십 년간 한식을 만들어온 전문가들은 재배기술의 발달로 옛날보다 일찌감치 달래나 냉이를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봄나물을 찾는 손길은 점점 줄고 있어 아쉽다고들 한다.
그 이유를 서양 음식문화에서 들어온 갖가지 허브에서 찾기도 한다. 부드럽고 화사한 식용 꽃잎 향에 익숙해진 젊은 입맛에겐 야생 그대로의 쌉싸름한 봄나물 향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게 아닐까 하는 설명이다.
중구 태평로 서울프라자호텔의 뷔페 레스토랑 '세븐 스퀘어'에서는 3월 2∼20일 10가지 봄나물로 만든 특별 메뉴를 선보인다.
멸치국물에 된장을 살살 풀고 갓 캐온 쑥을 깨끗이 씻어 넣어 한소끔 끓이기만 하면 그대로 저녁상에 오르는 쑥국이 됐다. 별다른 양념 없어도 쑥 향기 하나만으로 겨우내 움츠렸던 입맛이 거짓말처럼 기지개를 폈다.
다시 그 계절이 오고 있다. 무심코 지나치는 아파트 단지 정원에서도 허리 굽혀 내려다보면 입맛 살리는 풋풋한 향이 곧 올라올 게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견뎌낸 탓인가. 느긋하게 기다리기엔 몸이 달아 이른 봄을 만나봤다. 역시 어린 시절 그 향 그대로였다.
원추리와 봄나물 트리오
살다 보면 참 걱정거리 많이 생긴다. 몇 달 동안 영하의 추위에 움츠려 지내고 나면 근심의 무게가 어깨를 더 짓누르는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이럴 때 원추리나물을 먹었다. 원추리는 노란색 주황색 섞여 피는 꽃이 하도 예뻐 보고 있으면 근심이 다 사라진다고 해서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렸다.
살짝 데친 원추리는 다진 마늘 들어간 생청국장 양념과 잘 어울린다. 원추리에 무쳐진 생청국장은 색깔도 냄새도 잘 드러내지 않다가 입안에 들어가는 순간 비로소 존재감을 알린다. 소금기 없는 자연스러운 짭짜름함이 나물에 살짝 배어 순수한 봄 느낌을 빚어낸다.
요즘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봄나물 중 하나가 바로 냉이다. 봄철에 살짝 입을 벌린 조개와 흰 뿌리 여럿 달린 냉이가 동동 떠 있는 된장국 한 그릇 안 먹고 지나가면 뭔가 잊은 듯 서운하다. 대부분의 봄나물은 국을 끓이면 금방 숨이 죽어 죽처럼 퍼져 버린다. 하지만 냉이는 비교적 오래 숨이 살아 있다. 아무 길가에서나 밟아도 솟아나며 유달리 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때문일까.
정성을 좀 더 보태 냉이로 색다른 맛을 연출하고 싶다면 연어가 좋을 듯하다. 분홍빛 얇은 연어 살 한 점을 펴고 숨이 완전히 죽지 않도록 가볍게 데쳐낸 냉이를 얹은 다음 돌돌 말아낸다. 한 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 냉이 특유의 향이 연어의 비릿함을 가리며 상큼한 봄 느낌을 돋운다. 굳이 밥 없이도 간식으로 일품이다. 냉이 하나로 심심하다면 달래 같은 몇 가지 봄나물을 함께 말아도 좋겠다.
냉이랑 달래 나왔으면 씀바귀 빠질 수 없다. '달래 냉이 씀바귀 모두 캐보자'하는 동요 '봄맞이 가자'의 그 봄나물 트리오 말이다. 옛 사람들은 봄에 씀바귀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했다.
파 마늘 다져 넣은 초고추장 양념에 무쳐도 씀바귀는 이름처럼 씁쓰름하다. 과장 조금 보태면 초고추장 맛이 가려질 정도다. 좀 덜 쓰게 먹는 방법도 있다. 씀바귀를 데친 다음 찬물에 하룻밤 정도 담가두면 쓴 맛이 어느 정도 빠진다.
봄 내음 살려주는 요리법
봄나물 요리법은 별다를 게 없다. 끊는 물에 굵은소금을 넣고 나물을 살짝 데친 다음 찬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짠다. 이걸 미리 준비해둔 양념에 조물조물 무치면 그만이다. 손도 많이 안 가고 오래 걸리지도 않고 쉬워 보인다.
하지만 요리를 해놓고 나면 이런 생각 달아난다. 초보와 전문가의 손길은 이렇게 간단한 요리법에서도 미묘하게 차이를 보인다. 전문가에게 비결을 들어보니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양념에 들어가는 각 재료의 역할을 세밀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진간장과 소금은 구분해 쓴다. 허성구 서울프라자호텔 선임주방장은 "진간장은 흐트러지는 것을 뭉치게 할 때, 소금은 반대일 경우 사용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또 간장을 넣었는데도 간이 조금 모자라다 싶을 때는 다시 간장을 넣기보다 고운소금을 쓰는 것도 봄나물의 맛을 살리는 센스다.
두 번째 비결은 봄나물의 참 맛을 가능한 그대로 살려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씀바귀가 쓰다며 입맛에 맞추자고 설탕 듬뿍 넣는 것보다 간을 약간 덜 하는 편이 오히려 더 맛이 난다.
허 주방장은 "최근 한 TV 드라마에서 배우 류시원씨가 요리사로 나와 선보인 '마크로비오틱'이라는 트렌드가 봄나물과 딱 들어맞는다"고 말했다. 크다는 뜻의 영문 '마크로(macro)'와 생명을 의미하는 '바이오(bio)', 방법을 말하는 '틱(tic)'의 합성어인 마크로비오틱은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재료를 변형하지 않고 통째로 먹는 요리법을 일컫는다.
실제로 봄나물은 아무 양념도 하지 않은 채 씻기만 해서 상에 올리기도 한다. 통째로 소스에 찍어먹을 수 있게 말이다. 바로 이럴 때도 초보와 전문가의 손길이 차이 난다. 소스로 샐러드용 드레싱이나 초고추장을 내놓으면 어쩔 수 없는 초보.
허 주방장은 유자드레싱을 만들었다. 가을에 난 유자를 얼려뒀다 이맘때쯤 해동시켜 양파와 함께 강판에 간다. 여기에 간장과 올리브오일을 섞어 완성한 유자드레싱은 자칫 밋밋할 수 있는 봄나물의 맛을 살짝 보완해준다. 특히 환절기에 먹는 유자는 더 값지다. 비타민C가 바나나의 10배, 레몬의 3배 이상 들어 있으니 말이다.
요즘 대형마트나 시장에 나온 봄나물은 사실 하우스에서 난 게 많다. 3월 초 노지에서 나는 첫 순을 뽑은 게 진짜 봄나물이다. 실제로 하우스산은 노지산에 비해 봄나물 특유의 향이 덜하다. 노지에서 마구 자란 어린 순이 봄나물의 참 맛을 낸다는 얘기다.
수십 년간 한식을 만들어온 전문가들은 재배기술의 발달로 옛날보다 일찌감치 달래나 냉이를 먹을 수 있게 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봄나물을 찾는 손길은 점점 줄고 있어 아쉽다고들 한다.
그 이유를 서양 음식문화에서 들어온 갖가지 허브에서 찾기도 한다. 부드럽고 화사한 식용 꽃잎 향에 익숙해진 젊은 입맛에겐 야생 그대로의 쌉싸름한 봄나물 향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운 게 아닐까 하는 설명이다.
중구 태평로 서울프라자호텔의 뷔페 레스토랑 '세븐 스퀘어'에서는 3월 2∼20일 10가지 봄나물로 만든 특별 메뉴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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