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멋집n요리

'맛' 전주의 보물창고, 찾았다! 남부시장서

힉스_길메들 2012. 7. 10. 21:10

남부시장은 전주 맛의 원천이라고 한다. 이른 아침 한 아주머니가 시장 옆 매곡교에 좌판을 깔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전주'란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가장 한국적인 맛과 멋의 고장'이라고 자부하는 전주 사람들에게 왜 전주 음식이 맛있는지 물었다. 누군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전주에 있어서 비옥한 호남의 물산이 모두 전주로 모이다 보니 그리 됐다 했고, 또 어떤 이는 풍성한 물산 덕분에 같은 음식이라도 양념이 듬뿍 들어가 더 맛깔진 음식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일반 백반집의 5,000~6,000원짜리 식사도 상다리가 휘도록 차리고, 막걸리 한 주전자에도 십여가지 맛난 반주를 내놓는 게 전주의 음식 문화다. 전주의 밥상은 이렇게 구색을 갖춰야 밥상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조화로 그런 가격에 그런 구색을 갖출 수 있게 된 걸까. "왜 싼지 정 그렇게 알고잡냐"던 음식점 주인들은 "그럼 한 번 그 곳에 가보라"며 풍남문 옆 남부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시내 유명 음식점들은 죄다 대형 할인마트보다 싼 남부시장에서 매일 장을 봐 때마다 싱싱한 찬거리를 차려낸다고 했다. 타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한 전주 음식 가격과 신선함의 비밀이 바로 남부시장에 숨어 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때 허물어진 전주성의 4개 성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남문인 풍남문이다. 서울의 숭례문 밖에 남대문시장이 형성됐듯, 이 풍남문에 바로 붙어 전주천을 끼고 형성된 시장이다. 남문 밖에 있다고 해서 '남밖장'으로도 알려진 남부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성시를 이루었다.

남부시장의 전성기는 1960~70년대. 호남 최대 물류 창구로 이름이 높았다. 호남 땅 쌀의 집산지로 부산 마산 등에서도 쌀을 사러 몰려들었고, 전국의 쌀 시세를 쥐락펴락 했을 정도라고 한다.

전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남부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건물을 돌아 들어가니 시장변 전주천변에 노점이 가득찼다. 지난 밤 먹은 막걸리의 숙취를 말갛게 사라지게 하는 기대 밖의 신선한 풍경이었다. 두릅이나 취나물 한 소쿠리 싸 들고 나온 할머니나 가지런히 다듬은 미나리를 모아 놓고 손님을 부르는 아낙들이 매곡교 주변에 그야말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

매곡교 주변의 아침 좌판은 새벽 2, 3시 시작해 오전 10시에 끝난다. 낮에 잠시 쉬던 좌판은 오후 4시에 다시 시작해 밤까지 이어진다. 새벽 일찍 장이 서는 것은 진안 장수 등 먼 지역에서도 이곳에 물건을 사러 오기 때문이다.

상설시장인 건물 안쪽에 들어서면 정말 없는 게 없다. 주단집, 가구점, 옷가게 등이 구획을 짓고 길게 늘어서 있다. 시장 한복판엔 맛집이 몰려 있다. 남부시장에 장 보러 온 사람들이나 상인들의 따뜻한 밥 한 끼를 책임지는 곳이다.

전주 맛의 원천인 남부시장 안에 문을 여는 집들이라서인지 그 맛들이 만만치 않다.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이란 브랜드를 탄생시킨 '현대옥'도 그 중 하나다. 끼어 앉으면 10명이나 앉을 수 싶은 작은 식당이다.

일자로 된 카운터 안에서 두 아주머니가 열심히 국밥을 말아 내어 준다. 이 집의 원주인은 양옥련(69) 할머니. 현대옥을 30여년 운영하던 양 할머니는 지난해 말 무릎 수술 때문에 은퇴하고 지금은 그 맛을 잇는 후계자들이 대신 가게를 지키고 있다.

가게 벽에 크게 붙은 안내문에는 '요리 전문가를 영입해 현대옥의 맛과 비법을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전수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옥 단골손님들은 여전히 2세대 현대옥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 집의 콩나물국밥은 손님이 자리에 앉아야 차려지기 시작한다. 뚝배기에 밥을 퍼 담고, 아스파라긴산이 푹 녹아있는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덜었다 토렴을 하고는, 식성에 맞게 대파 청양고추 마늘 등 양념을 다져 국 위에 얹어 낸다. 시원하고 칼칼한 그 국물에 사람들은 '아~, 아~' 소리만 연발하며 숙취를 씻어낸다. 콩나물국밥 4,000원.

남부시장을 좋아하는 전주 젊은층들이 꼽는 또 다른 명소는 '조점례 남문피순대' 집이다. 오로지 이 피순대를 먹기 위해 남부시장을 찾는 이들도 많다. '피순대'란 조금은 섬뜩한 이름은 순대 속 선지의 함량이 다른 순대보다 많다고 해서 붙여졌다. 그래서인지 순대 속이 부드러워 입 안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

피순대 뿐 아니라 이곳에서 내는 눌린 머릿고기나 내장 등도 맛이 특별하다. 국밥 4,000~5,500원, 피순대ㆍ모둠고기ㆍ눌린 머릿고기 등은 작은 접시 7,000원, 큰 접시는 1만1,000원이다. (063)232-5006

시장 건물 2층의 '순자씨 밥줘'란 보리밥집도 남부시장의 명물이다. 이 기발한 이름은 주인 최순자(72)씨의 큰 딸이 지어줬다고 한다. 이 집에선 손님과 주인 사이 옥신각신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3,000원 하는 보리밥 값 때문이다. "이래 갖고 뭐 남느냐"며 웃돈을 얹어 주려는 손님들과 "남는 게 있으니 장사하제"라며 한사코 거절하는 주인의 정겨운 분쟁이다. 혼자서 가게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식사는 뷔페로 진행된다.

어떻게 먹는 거냐 물었더니 양푼에 설설 김이 나는 보리밥을 크게 뜨고는 열두가지 반찬 통에서 한 움큼씩 골고루 찬을 떠서 담아 고추장과 강된장을 얹어 내준다. 따로 나오는 시래기국과 동태찌개를 곁들여 쓱쓱 비벼 먹는 보리밥. 주인의 따뜻한 정만큼이나 구수하고 맛있다. (063)282-2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