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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집 맛난 얘기] 인천 어락재(魚樂齎)

힉스_길메들 2013. 4. 28. 22:43

과수원, 들을 배경 삼아 산 속에서 맛보는 고품격 횟집

 

↑ [조선닷컴]

↑ [조선닷컴]

↑ [조선닷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횟집이 산에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작은 언덕배기에 올라서자 비산비야의 구릉지대가 펼쳐졌다. 높은 지대는 산과 과수원이고 낮은 자리엔 집과 마을이 앉았다. 안내판을 따라 내려갔다. 과수원 한가운데에 횟집이 나타났다.

한정식이라면 몰라도 다소 의외였다. 물가나 바닷가, 시내 번화가도 아닌 한적한 산 속 배 밭에 횟집이라니? 문득 들판과 산 속에서 몇 대째 우동을 팔고 있는 일본 가가와현의 사누키 우동집들이 떠올랐다. 특이한 점은 또 있다. 하루에 영업시간이 딱 세 시간이다. 오후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다.(가끔 낮 시간에 예약을 받아 행사를 치르기도 한다) 이 집은50여 평의 비교적 너른 집에 모두 7개의 공간을 갖췄다. 하루에 이 7개의 테이블에 딱 한 번만 손님을 받는다. 그러니까 손님 입장에서 보자면 마음 놓고 세시간에 걸친 여유 있는 식사 서비스를 제공받는다는 의미다.

격조 높은 식사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자리


횟집이라고 해서 일본식 생선요리 일색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할아버지 적부터 먹어왔던 우리네 토속적 향토 음식이며 생선구이도 적지 않다. 말이 횟집이지 생선을 주 소재로 한 한정식 집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어락재>는 전복을 제외한 모든 해산물은 국내 자연산을 쓴다. 마치 특산품을 진상 받기라도 한 것처럼 각 해안지방의 진귀한 해초와 다양한 어패류를 총 집합시켰다. 식재료 출처가 전국 바닷가를 망라하다 보니 날씨 변화와 어황에 따라 상차림도 조금씩 영향을 받는다.

<어락재>의 메뉴는 모두 세 가지 코스로 구성되었다. 자연산 모둠회와 잡어 세꼬시를 메인으로 하는 일품(1인 7만5000원), 자연산 모둠 특회가 메인 메뉴인 명품(1인 9만5000원), 자연산 모둠 특회와 셰프 특선이 포함된 신품(1인 15만5000원)이다. 일반적인 코스요리가 그렇듯이 전채, 메인, 후식 순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진짜 메인 메뉴인 회뿐 아니라 메인 메뉴를 뺨치는 준 메인 급 요리가 코스별로 다채롭고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다. 여기서는 신품 코스를 기준으로 소개한다.

국내 자연산 해산물로 차린 고품격 코스 요리


전채요리로는 오늘의 죽(매생이죽)과 물김치에 가자미식해와 목포 앞 바다에서 채취한 해초인 꼬시래기 무침이 올라온다. 여기에 신선채소, 해초 샐러드, 키조개 관자(때로는 가리비) 샐러드가 가세한다. 살짝 익힌 키조개는 간장 소스와 어울려 감칠맛을 내면서 식욕을 돋운다. 이밖에 코스에 따라 버섯, 양파, 아스파라거스 등 야채구이가 나오기도 한다. 잘 삭은 가자미식해의 곰삭은 맛, 바다 향내 뿜어내며 꼬들하게 씹히는 해초의 매끈한 느낌이 입안을 흡족하게 해준다.

전채요리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메인 요리로 들어선다. 메인 요리의 첫 타자는 '해산물 모듬'이다. 신품 코스에서는 '해산물 모둠'에 앞서 동해 심해의 바위에서 채취한 대굴(400~500g)을 내온다. 잠수부가 몇 백 미터 바다 속 수압을 견뎌내고 힘들게 따온 걸 생각하면 쉬 입에 넣기가 차마 송구스럽다. 굴답지 않게 단단한 몸집과 단맛에 굴 비린내가 전혀 없는 엄청난 크기의 대굴은 그 이름값을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이어 나온 해산물 모둠은 싱싱한 바다 그 자체다. 흑고동, 뿔소라, 참멍게, 비단멍게(이상 동해안 자연산), 키조개, 돌멍게, 흑해삼, 개불(이상 통영 자연산)이 큼지막한 소반 모양의 도기에 푸짐하게 담겼다. 순간 울긋불긋 상 위에 무지개가 떴다. 뿔소라와 흑해삼의 단단한 듯 쫀득한 해양성 육질은 기어코 소주 한 잔을 유도해내고 만다. 각자 닮은 듯 다른 바다 향기 머금은 멍게들의 향연도 입에서 향기가 떠나지 않게 해준다. 특히 전복과 식감이 비슷한 흑고동은 복어처럼 내장에 독성이 있어 아무데서나 맛보기 어려운 귀물이라고 한다.

이쯤에서 일품 코스는 바로 메인 메뉴가, 명품 코스는 고래육회가 나온다. 신품 코스에서는 전복회가 나왔다. 전복회를 먹고 나서야 비로소 오늘의 메인 메뉴인 도다리와 우럭 회가 나왔다. 물론 모두 자연산이다. 도다리의 경우, 주인장 말에 따르면 어황이 좋지 않아 20일만에 어렵게 구했다고 한다. 커다란 점판암 돌판에 꽃 장식과 함께 먹음직스럽게 담아낸 도다리와 우럭 회는 한눈에 봐도 정성 들이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는 짙은 작품성이 느껴졌다. 돌판, 해초, 벚꽃, 소라껍질, 깻잎, 새싹채소 등이 모두 자연에서 취한 오브제다.

회를 먹고 나니 갈 길(?)이 아직 먼데 벌써 서서히 포만감이 엄습했다. <어락재>에서 하루 한 팀만 받고 식사 시간을 세 시간으로 느긋하게 잡은 이유가 짐작이 갔다. 일품과 명품코스에는 없지만 신품 코스에는 세프 특선으로 스페셜 회를 제공한다. 말 그대로 그날 어시장에 나온 물 좋은 생선 가운데 상품을 골라 쓴다. 이 날은 제주산 줄돔회가 나왔다. 얼마나 덩치가 큰 줄돔인지 서비스로 나온 줄돔의 쓸개가 검지 손가락만 했다. 이어 등장한 꽃새우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수심 200~300m 에서 잡은 귀한 음식이다. 도우미가 생 꽃새우의 껍질을 까서 건네주는데 꽃새우와 도우미에게 미안함이 앞선다. 조금 전까지 수족관에서 빨간 줄무늬를 자랑하며 헤엄치던 녀석을 입 속에 넣으려니 아무래도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서로가 먹고 먹히는 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운명 아닌가. 대가리째 입에 넣었다. 갓 뽑아 올린 동해 심층수 같은 신선함이 목젖에 오래 붙어있었다.

반드시 '승용차, 카메라, 세 시간'을 가지고 가야


<어락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내륙지방에서 보기 드물게 고래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역시 세미 메인으로 고래모듬이 나왔다. 가슴살, 지느러미, 생고기, 수육, 육회를 망라했다. 울산까지 가지 않고도 고래고기를 골고루 맛볼 수 있다.

고래의 퇴장과 함께 전복구이와 해물숙회가 나왔다. 전복구이는 전통 수키와 골에 얌전히 담아 내왔다. 노르스름하게 익은 빛깔이 자꾸만 식욕을 자극한다. 해물숙회는 그날의 식재료를 야들야들하게 데쳐낸다. 이날은 피문어와 백고동(일명 골뱅이)이다. 살 씹는 쫄깃한 맛도 좋지만 국물의 깊은 맛은 비할 데가 없다.

메인 코스의 대미는 생선구이와 대구머리전이 장식했다. 알 밴 도루묵, 도다리, 가자미, 꽃새우, 우럭 대가리로 구성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유곽이다. 다진 대합 살에 양념을 갈아 넣은 유곽은 차츰 잊혀져 가는 남해안의 향토음식이다. 다진 대구머리로 만든 대구머리전도 대구 살을 발라먹는 재미가 쏠쏠한 우리 바닷가 전통음식이다.

메인이 끝나면 식사 시작


그윽한 쑥향과 담담한 국물의 도다리쑥국, 연잎에 싼 톳밥에 진기한 반찬들로 차렸다. 찬류로는 자연산 광어찜, 구은 김, 갈치 넣고 삭힌 김치, 대멸치 볶음 등이다. 굳이 넣을 필요도 없지만 모든 음식에는 일체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았다. 음식들이 세련된 도기에 정갈하게 담겨 나온다. 다채로운 색감과 풍미의 생선과 해산물을 적절하게 구성했다. 주인장이 맛과 색과 향에 신경 썼음이 역력하다. 상차림을 도와주는 직원들도 어색하지 않고 친근감이 든다.

<어락재>는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식당이 아니다. 이른바 '고관여 식당'이다. 방문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 결코 적지 않은 비용으로 호젓하고 품격 있는 장소에서 최상급 음식을 격조 높게 대접받는 곳이다. 접대를 위해 소중한 귀인을 모시고 갈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달디 단 만찬일 수도 있으며, 애쓰고 수고한 동료나 부하를 위한 격려의 자리일 수도 있다. 배려해주고 사랑하고 감사해야 할 사람과의 자리로는 아주 제격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든 이 집에 갈 때 식대와 함께 반드시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들길을 헤쳐갈 승용차, 컬러풀한 음식을 담을 카메라, 세 시간의 여유와 이야기 거리다.

평소 <어락재>의 음식과 서비스는 누가 봐도 국내 정상급이다. 그러나 연중 가장 최고의 서비스를 만끽하는 시기는 따로 있다. 그것은 이 집 주인장과도 무관하다. 하늘과 자연이 일년에 딱 한 번만 허락하는 서비스다. 바로 배꽃이 피는 시기의 보름밤 전후다. 가인과의 정담과 식사를 마치고 행랑채를 나서면 달빛 물결 무수하게 부서지는 배꽃의 바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혼자서는 감당 못할 그 벅찬 하얀 밤바다가.
<어락재(魚樂齎)> 인천시 남동구 수산동 136-1, 032-471-9209

기고= 글, 사진 이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