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멋집n요리

이윤화의 화식서식(話食書食) <경북편을 마치고> 변함없이 사랑받는 세월 속의 맛을 찾아

힉스_길메들 2013. 5. 11. 22:15

울진시장은 장날이 아니었음에도 평소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있다. 특히 해산물을 취급하는 상설점포는 한가한 날에 잘 찾아왔다며 대게를 덤으로 얹어주며 손수 게찜을 해주기까지 한다. 뜨끈하게 김이 오른 게다리는 짭짤한 바다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단맛이 그리 진할 수 없다. 한두 개 집어 먹고 말아야지 했던 게다리였는데 바닥이 보일 때까지 모두 손을 멈추질 못한다. 얼마나 진한 게살이었는지 먹고 나서 손을 씻어도 게의 기름과 향이 한동안 빠질 기미가 안보일 정도다. 먼 바다에서 잡아야 맛있다는 '게'와 해변가 지척의 문어가 귀한 '참문어'라는 것도 울진시장에서 배웠다. 울진의 바다와 숲의 청정함 그리고 거기서 난 산물을 만끽한 뒤 경북 내륙에 있는 역사의 고장으로 이동하였다. 두 번째 행선지, 봉화는 전국에서 정자가 제일 많다하니 그만큼 경치 좋은 깊은 숲과 그 안에서 나는 송이버섯의 향이 진할 수밖에 없으리라. 다음으로 반가의 정신과 내림음식의 본고장인 안동에 들어가니 탐사 첫째날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안동엔 헛제사밥과 같은 제사상을 흉내낸 반가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메밀묵을 쑤다보면 나오는 반듯하지 않은 묵조각과 묵껍질에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고 잘 익은 김치가 들어간 얼큰한 찌개를 '태평초'라 부르며 안동의 많은 서민들은 즐겨먹고 있었다. 40여년을 변함없이 선지해장국을 끓이고 있는 시장통 '옥야식당'과 전통의 '맘모스제과점' 그리고 순쌀로 만든 전통 증류주인 안동소주의 원형을 지키고 있는 박물관을 찾았다. 한편, 안동에서는 엿기름을 띄어 밥알이 동동 떠 있는 하얀 식혜가 아닌 빨간 국물에 무가 들어간 시원한 음식을 '안동식혜'라 불리며 즐겨먹고 있었다. 그리고 안동의 마지막은 경북 종가의 내림면류인 건진국수의 원형을 찾아 체험하는 귀한 시간을 갖았다. 이번 탐사는 세월이 담긴 음식을 맛보고 그 음식을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의 진솔함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오랜 맛이나 지역의 청정 가공을 하는 곳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모자의 음식철학에 고개 숙여지다!칼국수식당식당에 들어가면 외관에 쓰여 있는 멋없는 상호만큼이나 참 볼 게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드나들어 식당의 세월만큼 나이든 손님들이 여기저기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이면 상호그대로 칼국수를 먹는 사람이 많다. 멸치국물에 끓이고 흐물흐물하여 치아에 힘이 없어도 충분히 씹고 삼키는데 지장이 없는 부드러운 칼국수가 풀어진 물달걀과 함께 대접에 한가득 나온다. 고명이라고는 곱게 간 깨소금과 흔한 김가루가 전부다. 반찬으로는 묵은 김치와 단무지무침, 잘 숙성된 국수양념이 따라 나온다. 식당 한 켠엔 볼 사람만 보라고 붙여놓은 재료 원산지표가 있다. 여느 식당에서 볼 수 없을 만큼 자세한 설명이다. 예를 들어, 고춧가루는 울진에서도 근남, 매화, 기성 등에서 수매한 울진산 100%이고 회는 울진 근해 죽변, 후포에서 잡는 자연산이라는 둥 무척 상세히 적어 놓았다. 주인장의 성격이 대충 가늠이 된다. 40여년 이상을 어머니가 울진시장 근처에서 국수를 팔고 있었고 지금은 중년의 아들이 함께 팀웍을 맞추고 있다. 탐사 간 날 회국수 위에 얹어 나온 회는 자연산 참가자미였는데 국수만큼이나 듬뿍 올라와 있고 무척 싱싱해서 그 자체를 간장 찍어 회를 즐기는데도 부족함이 없었다. 회국수를 본격적으로 먹다보면 더큰 매력은 국수와 회를 하나 되게 하는 고추장 맛이었다. 연세 드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울진의 고춧가루를 수매하여 이제는 아들이 직접 담는 장맛. 그 고추장처럼 모든 것을 모자가 함께 준비하니, 허름한 식당 안은 오늘도 명품 국수 맛을 알아보는 울진의 어르신들로 늘 문전성시다.

메뉴 칼국수 4,500원, 회국수 6,000원, 회밥 8,000원

전화 054-782-2323 주소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내리 59-2

울진의 청정 뽕밭에서 듣는 입파람소리

울진농원

우리나라의 양잠은 삼국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의 산물이다. 특히 조선시대에 와서는 양잠이 더욱 장려되어서 세종 때에는 궁궐 내까지 뽕나무를 심었다하니 뽕나무와 일상생활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뽕잎을 먹고 사는 누에가 농약을 친 뽕잎을 먹으면 제대로 살질 못하기에 뽕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 바로 청정한 곳임을 반증한다. 5천평 대지에 뽕나무를 가꾸고 있는 전영근 대표의 울진농원 자연건조장을 찾았다. 뽕나무는 흔히 잎을 따서 누에치기에만 쓰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알고 보면 뽕나무는 어느 하나 버릴 구석이 없다. 열매인 오디는 생으로 혹은 말려서 자체의 맛있는 과실로 또는 약으로 사용되고 잎이면 잎, 가지면 가지, 뿌리 또한 말할 것도 없이 이런저런 효능이 무궁무진하다. 전대표는 이런 뽕의 매력에 빠져 뽕잎, 뽕의 가지, 뽕뿌리 등을 매년 1~2월에 수확하여 울진의 자연 바람에 건조시킨 뒤 여러 종류 차를 만들고 있다. 잎뽕차, 솔뽕차, 상지차를 비롯해 '뽕밭에서'라는 음료까지 만들었고 누에분을 가지고 검은색의 누에비누도 상품화하였다. 또 하나의 직업이 가수이기도 한 전대표는 뽕나무가 좋아하는 음악은 트럼펫소리이기에 종종 밭에서 연주하여 뽕의 흥을 돋아주고 본인의 시름도 덜어본다고 한다. 입파람은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부는 독특한 전대표만의 휘파람인데, 간혹 흥에 겨우면 울진농원을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뽕뽕거리는 뽕소리를 입파람으로 불어 흥을 돋아주며 각종 뽕차를 시음하게 해주는 레크레이션 뽕사업가를 자처하고 있다.제품 잎뽕차, 솔뽕차, 상지차, 꾸지뽕차, 누에비누 등

전화 054-783-0052 주소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1523

봉화의 송이와 능이 요리의 선두주자

용두식당

값도 비싸지고 남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다보니 동네 지천이던 산물이 다시 보이게 된 사례가 봉화의 송이버섯이 아닐까한다. 용두식당은 봉화에서 1992년에 문을 연 송이전문 맛집이다. 이곳이 봉화에서 송이버섯을 가지고 외식상품화시킨 첫 사례라 하니, 20여 년 전까지 만해도 송이버섯은 봉화에서는 흔한 가을 버섯 중에 하나였으리라. 용두식당 사장 왈, 어릴 때 가을에 산에 가면 지게로 한가득 따오는 버섯이 바로 송이버섯이었기에 버섯은 일상의 제철 채소마냥 밥에도 넣고 찌개나 볶음에도 아낌없이 사용하는 식재료였단다. "봉화에 오면 개도 송이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까지도 나올 만 하였다. 점점 자연채취밖에 안되는 귀한 재료로 송이가 알져지면서 지역에서는 용두식당을 시작으로 송이 맛집이 줄줄이 생기게 되었다. 이곳의 음식 중에서 송이버섯 못지않게 찾는 음식은 능이밥과 능이구이, 능이전골이다. 능이버섯은 참나무의 우거진 숲에서 자연채취하는 것으로, 까만 능이버섯이 올라간 돌솥밥과 시커먼 국물이 우러난 능이전골은 색이 위압적이어서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낯선 도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먹을수록 깊은 고목의 향에 슬금슬금 빠지게 되고 만다. 버섯 밥은 돌솥에 나오기에 송이든 능이든 밥부터 시작하여 숭늉까지 제대로 버섯향을 즐길 수 있다. 용두식당은 서울 등촌동에 분점을 가지고 있어 봉화의 송이와 능이버섯을 맛볼 수 있는데 가격은 역시 현지의 배이상이다.메뉴 산송이돌솥밥 15,000원, 능이돌솥밥 10,000원, 산송이구이(120g) 40,000원, 능이전골(1인) 12,000원

전화 054-673-3144 주소 경북 봉화군 봉성면 동양리 470-3

대파의 단맛이 으뜸인 선지국밥

옥야식당

다소 잘못된 편견일지는 몰라도 국물에 대한 애착과 한국인의 토종성은 비례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아주 커다란 솥단지에서 방금 전까지도 넘실넘실 끓어 넘치고 있던 국물이었고 속이 풀어질 정도로 얼큰하고 싱싱한 양질의 고기와 대파, 우거지, 선지가 아낌없이 들어가 있는 뚝배기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세상이 너그럽게 보이게 되고 저절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특히 토종 한국인이라면 더욱! 옥야식당은 선지국밥이라 불리는 국물음식 하나만 파는 곳이다. 고기장사를 하다 국밥을 팔게 된지도 40여년이 된 할머니의 오랜 손맛 하나로 말이다. 지금은 자식들과 함께 장사를 하지만 아침마다 국물이 끓고 있는 가마솥 옆에는 선뜻 말 걸기도 조심스러워 보이는 해장국 지존의 할머니가 늘 같은 자세로 조용히 고기를 썰고 계신다. 선지와 우거지까지 들어간 국밥 모양새는 평범한 시장통 해장국 형상이지만, 이 두 개를 빼고 고기와 대파만 넣어 담아주면 육개장과 비유될 수 있다. 좋은 재료가 어우러져 매우면서도 단맛의 조화가 잘 되고 있는데, 특히 대파의 단맛이 오래 남는 국물은 일품이 아닐 수 없다. 국밥과 함께 기호에 따라 넣도록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가 나오는데, 보통 손님들은 이 두 가지를 첨가해서 국밥의 얼큰함을 배가시켜 먹곤 한다. 옥야식당은 안동의 명물 재래시장인 신시장 내에 위치하고 있다. 식당 근처에서 돔배기(상어고기) 등 경상도 해산물의 눈요기도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메뉴 선지국밥 8,000원

전화 054-853-6953 주소 경북 안동시 옥야동 307

내림손맛의 상차림을 받다

경당종택

조선 중기 경당 장흥효(張興孝 1564~1633)의 종택은 안동에서 보면 50여개의 종택 중에서 그저 평범한 오랜 고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곳을 더욱 빛나게 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전형적인 ㅁ자 전통가옥과 고즈넉한 후원의 평온함도 종택의 매력이지만 이곳은 최초의 한글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1598년 - 1680년)의 친정으로 음식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성지 순례를 떠나듯 꼭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음식역사의 명소처럼 된 곳이다. 현재 11대 손인 장성진 종손과 권순 종부는 먼 옛날 출가한 장계향 선조의 명을 이어받기라도 한 듯 종택을 개방하고 집안의 내림음식을 손수 차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특히 70대의 권순 종부의 건진국수는 10대부터 밀어온 60년의 노하우를 가진 손국수로,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홍두깨로 밀어 내는 솜씨가 어찌나 고운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과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종부의 국수반죽은 무척 얇게 밀어져, 반죽아래 신문지를 놓으면 글씨가 비춰질 정도라고 비유되곤 한다. 그리고 건진국수를 삶을 때에 종부는 삶는 물에 집간장을 넣어 국수 자체에 깊은 간을 베게 하고 있었다. 종가에서는 면상에도 장맛을 자랑하는 반찬을 가지런히 올려 정식으로 상을 차린다. 건진국수는 원래 여름음식으로 콩국에 말아먹는 찬 계절음식인데 겨울에 먹을 때는 따뜻한 육수에도 넣어 끓인다. 상차림에는 건진국수 외에 간고등어구이, 상어껍질편, 마전을 비롯한 세가지전, 문어숙회, 북어보푸라기, 장조림, 우엉볶음, 참가지미조림, 더덕구이 등 한가득이다. 경상도의 종가에서 주로 사용하던 식재료인 상어껍질, 간고등어, 문어 등이 나오는 밥상만 보더라도 집안의 품격을 저절로 알게 한다. 살다가 내가 어디쯤 서있는지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종택에서의 하룻밤 체험과 함께 종부가 차려주시는 밥상을 받는다면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의 존재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추천해본다.메뉴 식사는 1인 3만원부터(예약제) 고택 체험 가능.

전화 054-852-2717 주소 경북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264

안동에 왔다갈 때 손에 들어갈 두 가지

안동소주와 안동식혜

안동에서는 '안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특산물이 참 많다. 안동간고등어, 안동한우, 안동마, 안동사과, 안동찜닭 그리고 종가의 내림음식까지 꼼꼼히 챙겨 먹고 음미하려면 며칠의 시간도 길지 않다. 본 탐사에서는 특색 먹거리로 안동의 소주와 식혜를 경험해보았다. 안동소주, 안동식혜 또한 안동에서 내려오는 음식의 한 장르이기에 만드는 이의 특성에 따라 집마다 다른 장과 김치 맛처럼 차이가 있다. 여러 안동소주 중에서 조옥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의 박물관을 찾았다. "쌀과 밀누룩 재료의 향이 은근히 따라 올라오는 게 증류식 안동소주의 특징이고 조옥화의 안동소주는 도수가 높아 자극적이지만 혀끝에 단맛이 감돈다"라고 술평론가 허시명씨는 평하고 있다. 박물관에서는 이런 안동소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소주만큼이나 전통음식에 조예가 깊은 조옥화 선생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동을 방문했을 때 차렸다는 생일상을 재현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안동에서는 우리가 먹는 일반 식혜는 백식혜라고 부르고 식혜밥알에 고춧가루와 무채가 들어간 빨간 식혜가 더 익숙한 음료 디저트란다. 처음 먹을 땐, 나박김치에 일반 식혜의 맛이 가미된 듯 하고 톡 쏘는 사이다를 연상케하는 독특한 음식이다. 붉은 색 때문에 비호감이었던 사람도 먹고 나면 청량한 느낌과 더불어 무가 있어 소화도 잘 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안동식혜는 고두밥에 잘게 썬 무와 고춧가루물, 생강즙을 넣은 후 여기에 엿기름물로 버무리고 끓이지 않고 발효시키는 방식이기에 초보자도 맘만 먹으면 시도할 수 있는 음식이다. 안동식혜의 빨간색을 강조하여 상품화시키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김유조의 '빨간안동식혜'에 들려 경북 북부지방에서 이어져온 식혜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시식하는 시간을 갖았다.안동소주박물관 전화 054-858-4541 주소 경북 안동시 수상동 280

김유조안동식혜 전화 054-823-0117 주소 경북 안동시 송천동 9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