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멋집n요리

이윤화의 화식서식(話食書食) 아귀의 뱃속까지도 푸짐한 여수

힉스_길메들 2013. 5. 11. 22:20

여수 교동시장에서 장어, 삼치, 서대 등 생물과 건어물의 풍성함에 감탄하며 구경하다가 마침 아귀를 손질하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의 노련한 칼 솜씨에 의해 아귀의 몸짓만한 커다란 위가 분리되어 나왔다. 위장 안에는 마구 삼킨 여러 가지 각종 통생선이 그대로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우스꽝스럽게도 아귀가 삼킨 생선을 보며 바다 속에 얼마나 다채로운 해산물이 있는지를 상상해본다. 아귀 뱃속까지도 풍성한 여수! 이렇게 여수의 첫만남이 시작되었다.

이제 더 이상 여수는 바닷속만 다양하고 진귀한 게 아니다. 동백꽃의 상징인 오동도에서 바라다보는 여수는 깊은 바다 세상에 첨단의 옷을 입혀 세상에 펼쳐놓은 광경을 하고 있다.

 

여수에 간다면 꼭 맛보고 와야 될 남도의 맛이 있다. 냉면에 넣어 먹는 매운 맛의 겨자는 갓의 씨앗이고, 바로 갓으로 만든 김치가 유명한 곳이 바로 여수 남쪽의 '돌산'이다. 여수 어르신들은 예전만큼 쌉쌀한 맛이 아니라고 서운해할 지 모르지만 담근 즉시부터 먹을 수 있는 청색 갓김치는 배추김치만 주로 먹어 온 도시인들에겐 톡 쏘는 맛과 진한 양념으로 강한 인상을 준다. 여수의 여느 식당에 들어가도 갓김치를 쉽게 맛볼 수 있어 집집마다 다른 맛의 갓김치 비교는 또 다른 재미 꺼리다.

 

한편, 생선을 빼고 여수를 말할 순 없다. 수퍼에서 보던 건어물과 여수에서 말려진 생선의 빛깔은 완전 딴판이다. 싱싱한 생선이 햇볕과 해풍 속에서 말려지니 투명함 그 자체다. 크기가 클수록 맛이 좋다는 삼치는 여수에선 구이만의 생선이 아니다. 숙성했다 회를 떠서 먹으면 부드러운 촉감과 함께 적당히 씹는 맛이 있어 새로운 생선회 맛을 경험하게 된다. 이렇게 먹는 생선회를 '선어회'라고 통칭하여 부른다. 퉁퉁하고 징그러운 붕장어는 여수의 내림손맛들에 의해 한국 생선탕의 한 장르를 맡고 있다. 여수까지 내려갔다면 인근 매실고장인 광양, 금빛 순천만으로 유명한 순천, 섬과 다름없는 해안의 고흥까지 둘러보며 남쪽나라 맛기행을 덤으로 얻어보자.

숙성회의 참맛
< 조일식당 >

횟집에 들어 갔는데 "쫄깃한 회를 원하십니까? 부드러운 회로 준비해드릴까요?" 라고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이런 화두에 서로의 기호가 엇갈린다. 수족관에서 방금 전까지 힘차게 돌아다니던 물고기를 즉석에서 잡아 아가미가 여전히 펄떡거리는 회가 쫄깃한 식감과 더불어 최고의 맛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진정한 회 맛은 숙성의 맛이라고 자신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배에서 잡아 올린 생선이 더 스트레스를 받기 전에 피를 빼고 몇 시간 경과한 뒤 손질을 하면 생선 육질의 탄력은 유지되면서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있다고 하는 부류가 있다. 흔히 후자의 숙성회를 '선어회'라고 부르고 일식회 스타일이라고도 말하곤 한다. 바다가인 여수에서는 선어전문이라고 쓰여 있는 횟집 간판을 쉽게 볼 수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맛의 선어회인 삼치, 농어 등을 안주 삼아 술 마시기 좋다는 여수 토박이 주당들의 인기 주점, '조일식당'은 초저녁부터 붐비기 일쑤다. 식당 외관이 너무 평범하여 스쳐 지나칠 것 같다. 그런데 회와 함께 먹는 곁들이 음식이 특별하다. 상추 위에 깻잎장아찌 한 장 깔고 삼치회 한 점을 주인장의 특제 양념간장에 찍어 올린 뒤 묵은지를 얹어 싸 먹는다. 이렇게 많이 싸면 회 맛을 알겠냐며 미식가인 척 하며 반문했지만 일단 '조일식당 방식'으로 삼치회를 싸 먹고 난 뒤, 나도 모르게 또 한 점의 회를 쌈 싸고 있었다.
전화 061-655-0774
주소 전남 여수시 문수동 189-3


얼큰한 장어탕으로 여수 넘버 원
< 7공주식당 >

여수로 여행 온 관광객이 장어를 생각하며 가장 많이 방문하는 맛집이다. 바다생선의 보고(寶庫)나 다름 없는 교동시장과 지척의 거리에 있다. 골목 안에 있는 식당 외관부터 오래된 역사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실내에 커다랗게 써있는 메뉴는 장어탕과 장어구이뿐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약간 비릿한 장어 특유의 냄새에 미간이 찌푸려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어탕을 받고 일단 한입 먹어본 순간부터 오로지 탕에만 몰두하게 된다. 부드러운 장어만큼 풍성하게 들어있는 양배추, 숙주 등 채소가 가득하다. 기대했던 것보다 푸짐하게 나오고, 보는 것보다 맛을 먹어보면 얼큰하면서도 깊은 국물 맛에 금새 매료되어 버린다. 딸이 일곱인 어르신 사장은 구수한 입담과 정감만큼이나 맛의 균형을 잘 잡아 장어육개장처럼 끓여놓는다. 점심으로 장어탕 한 그릇을 먹으면 저녁 때까지도 배가 든든하다. '징그러운 장어', '느끼한 장어'라는 선입견으로 바다장어를 멀리했던 사람이 이 곳의 장어탕을 맛본다면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확 날려버릴 수 있다. 장어는 충무와 여수에서 잡아 올린 것을 사용하며 장어탕 외에 양념과 소금 두 가지 타입의 장어구이도 있다.
전화 061-663-1580
주소 전남 여수시 교동 595-2


구수한 통장어의 깊은 맛
< 자매식당 >

식당 입구의 수족관에는 퉁퉁한 장어가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뒤엉킨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시작한 매 끼니의 식사시간 전후로 만석이 되는 여수에서 이름난 인기 맛집이다. 들어서면 테이블마다 뚝배기에 끓여 나온 우거지탕 같은 것을 열심히 덜어 먹는 사람들은 볼 수 있다. 이 곳에서는 장어 등뼈를 24시간 푹 곤 국물에 된장과 우거지 그리고 살아있는 장어를 큼지막하게 토막 내어 넣고 끓인 '통장어탕'이 유명하다. 원래 여수 인근의 섬에서 옛날부터 먹어온 스타일이란다. 지금까지 얼큰한 장어탕만 맛봤던 사람들은 같은 장어 맛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기름기 많은 장어로 끓였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구수하다. 국물보다 더 큰 매력은 장어살이다.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안에 넣자마자 푸딩처럼 스르르 무너져버린다. 그릇에 장어 한토막을 국자로 덜어 먹기 좋게 한두 번 으깨어 준 뒤 밥과 함께 먹는데, 이때 빠지지 않는 명물 반찬이 '멍게젓갈'과 '여수갓김치'다. 물론 따라 나오는 7-8가지 다른 반찬도 모두 정갈하다.
전화 061-641-3992
주소 전남 여수시 국동 1082-7


매화꽃 고장의 매실 맛집
< 매화랑매실이랑 >

여수 북쪽으로 인접한 광양. 광양의 동쪽은 섬진강을 끼고 있고 그 강가에 흐드러진 꽃향기와 눈꽃처럼 내리는 매화꽃을 보고자 3월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꽃이 지고 6월이 되면 매실 수확이 시작된다. 10여년전 드라마 '허준'에서 돌림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매실이 등장한 뒤 대중의 인기로 국내 매실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다. 그때 매실로 가장 주목 받은 지역은 말할 것도 없이 광양이었다.

매실은 주로 매실청을 만들어 가정에서 식용하기에 매실 전문 맛집을 찾기란 쉽지 않은데, '매화랑매실이랑'은 이름 그대로 매실을 테마로 한 광양시의 농가맛집이다. 광양토박이인 오정숙씨는 매실을 이용한 요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맛집 대표다. 그녀의 삶에 있어 매실은 매일 먹는 아주 친숙한 양념이자 요리의 기본 재료다. 매실이 들어간 샐러드드레싱, 매실고추장, 매실된장부터 매실숙성 보쌈, 매실장아찌 초밥, 매실전 등 매실을 이용한 솜씨 자랑은 끝이 없다. 맛은 말할 것도 없고 음식을 담는 매무새에서도 정성이 묻어난다. 판에 박은 음식이 나오는 곳이 아니기에 예약할 때 절기 음식이나 개인의 호불로(好不好)를 말하면 알아서 챙겨주는 센스 맛집이다.
전화 017-635-1051/ 061-762-1330
주소 전남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 958


남해 바다 한 상 차림
< 중앙식당 >

여수처럼 바다로 둘러싸인 곳으로, 섬은 아니지만 섬과 다름없는 곳인 고흥은 여수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고흥읍에서도 한참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위치한 '중앙식당'에선 음식을 통해 고흥의 사계를 느낄 수 있다. 조선 어류학서 '자산어보'에 개의 이빨을 가진 뱀장어로 묘사된 '참장어(하모)'는 고흥산이 워낙 유명한데, 큰 참장어인 상품(上品)은 거의 일본으로 수출되고 중간크기가 현지에서 이용된다. 중앙식당도 여름이면 제철 참장어 사시미부터 샤브샤브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연중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은 푸짐한 한정식이다. 일단 도시의 한정식과는 사뭇 다른 밑반찬에 깜짝 놀라게 된다. 음식 대부분이 해산물로 구성되어 나온다. 초봄이면 쭈꾸미 머리가 꽉 찬 일명 '쭈꾸미밥'을 먹고 겨울이면 싱싱한 생굴과 매생이굴국 그리고 차갑게 먹는 시원한 '피국굴'도 맛볼 수 있다. 바닷가의 산해진미가 손맛 좋은 요리사를 통해 다시 태어난 음식들로 가득하다. 밥을 넣어 삭힌 고흥식 푸른 김치는 언제 가도 먹을 수 있는 기본 김치다. 일단 한정식에 나오는 종류가 많아서 놀라고 깔끔한 상차림에 더욱 안심이 되는 맛집이다.
전화 061-832-7757
주소 전남 고흥군 도화면 당오리 540-28


크리미한 콩국물 국수집
< 장대콩국수 >

아직도 '빙수와 콩국수는 여름에만 먹는다!' 라고 생각하시나요? 점점 지구의 온난화로 겨울음식과 여름음식의 구분이 없어지는 추세다. 하지만 이 집은 그런 시대 흐름과 무관하게 오래 전부터 콩국수로 순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오고 있다. 국산콩을 곱게 갈아 만든 걸죽한 콩국은 마치 부드러운 스프를 입술에 대는 듯한 촉감이다. 요즘에 고소함을 위하여 여러 견과류를 첨가한 세련된 콩국수가 많다지만 이곳은 별다른 첨가물 없이 콩만 갈아낸 순수한 맛을 지키고 있다. 거기게 그때그때 기계에서 뺀 국수를 삶아 넣어준다. 남부지방 콩국수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식탁 위에 놓인 흰 설탕 그릇이 신기할 지도 모른다. 그럴 때 옆 테이블 사람들의 먹는 법을 슬쩍 엿보길 바란다. 콩국수에 설탕을 크게 한 숟가락 넣고 너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말이다. 순천에서는 콩국수에 소금이 아닌 설탕을 넣어 맛의 균형을 맞추는데, 처음엔 이상해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설탕 넣은 콩국수도 시도해 볼만한 별식이다. 겨울엔 '콩죽'이라 해서 따뜻한 콩국이 있고 '팥죽'은 팥칼국수를 말하는데 이 또한 일품. 물론 이 모든 것에도 순천 사람들은 설탕 넣기를 즐긴다. 반찬은 진한 전라도 김치와 깍두기로 단출하다.
전화 061-744-1057
주소 전남 순천시 장천동 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