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체계 고장 질환 ■ 자가면역성 혈관염 Q&A
류장훈 기자 | jh@joongang.co.kr
질병 예방과 조기 진단은 건강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일상생활에서 위험요인을 줄여 병에 걸릴 가능성을 낮추고, 병에 걸리더라도 악화되기 전에 발견해 완치율을 높인다.
하지만 이 모두를 무력하게 만드는 질환이 있다. 자가면역성 혈관염이다. 면역체계가 자신의 세포를 공격해 혈관에 염증을 유발하는 질환을 말한다. 이 염증은 전신에 퍼진 혈관 곳곳에서 각종 조직과 장기를 망가뜨린다. 누구에게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몸속에 숨은 불발탄’으로 불린다.
김씨의 악몽 같은 경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장에도 문제가 생겼다. 급성 사구체신염으로 번지면서 혈액투석을 받아야 했다. 한 달여에 걸쳐 치료를 받은 뒤 다행히 시력은 어느 정도 돌아왔지만 신장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혈관염은 흔한 질환이 아니다. 발생하는 영역과 기전에 따라 10여 가지 혈관염으로 나뉘는데, 질환당 국내 환자 수는 연간 200~300명, 많아야 1300~1500명 정도다. 그나마 잘 알려진 ‘베체트병’만 1만 명이 넘는다(2015년 1만8087명).
발병이 드문 만큼 질환에 대한 인식은 낮은 편이다. 아무도 내가 걸릴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김씨 역시 그랬다. “평소 만성질환도 없고 건강하다고 생각해 이런 질환에 걸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말했다.
면역체계 고장 … 혈관 막고 출혈 유발
혈관염은 면역체계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해 생긴다. 염증은 어디에 생기느냐에 따라 위험성이 달라지는데, 혈관에 생기면 위험이 커진다. 혈관은 신체 곳곳에 뻗어 있고, 모든 장기와 연결돼 있다. 결국 온몸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다.
혈관염이 생기는 과정은 이렇다. 자기 세포를 항원으로 인식한 면역체계는 정상 상태에서 항체를 내보낸다. 항원에 항체가 결합한 것을 면역복합체라고 하는데, 이 복합체가 혈관벽에 붙으면서 혈관벽에 염증이 생긴다. 염증 반응으로 혈관벽이 점차 두꺼워지면서 혈관이 좁아져 혈류가 막히기도 하고, 두꺼워진 혈관벽의 반대편으로 혈류가 쏠려 혈관벽이 늘어나 동맥류가 생기기도 한다. 고대안암병원 류머티스내과 이영호 교수는 “혈관염으로 인해 조직과 장기가 손상되기도 하고, 동맥류가 터져 출혈이 발생한다”며 “혈관염은 생각보다 심각한 질환”이라고 말했다.
소혈관일수록 심각 … 폐색전증도 유발
혈관염은 어느 혈관에 생기느냐에 따라 심각성이 달라진다. 보통 발생하는 혈관 크기에 따라 큰 혈관, 중간 혈관, 작은 혈관에 발생하는 혈관염으로 분류하는데 비교적 작은 혈관에 생길수록 위험성이 크다.
신체 부위에 따라서도 다르다. 피부혈관이나 근육에 생기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피부에 붉은색의 자반이 생기고 근육통이 생긴다. 신경에까지 영향을 미쳐 제대로 걷지 못하는 파행을 유발하기도 한다. 위장관에 생기면 혈변이나 궤양이 생긴다.
장기에서 생기면 상황이 더 심각해진다. 뇌혈관에 생기면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뇌졸중이 되고, 폐에서는 폐렴•폐출혈과 각혈을 유발한다. 김순례씨의 사례는 눈의 망막혈관과 신장 모세혈관에서 시력 손상과 사구체신염을 유발한 경우다.
혈관염은 혈관 건강상태를 전반적으로 나쁘게 만든다. 혈전이 잘 생기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분당서울대병원 류머티스내과 하유정 교수는 “혈관염이 동맥경화의 과정과 다르지만 결국 혈전이 잘 생기는 상태로 만든다”며 “이는 폐색전증과 심부정맥 혈전증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했다.
다른 질환과 감별 어려워
혈관염의 심각성은 딱히 위험요인과 조기 진단법이 없다는 데 있다. 자가면역성이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으로 생긴다고는 하지만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강북삼성병원 류머티스내과 안중경 교수는 "암이나 다른 혈관질환은 위험요인이 정해져 있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는 반면 혈관염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초기 증상이 일반 증상과 비슷한 것도 조기 진단을 어렵게 한다. 피로•발열•두통•복통•설사•혈변과 체중 감소가 혈관염의 초기 증상이다. 게다가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장기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자각하기가 쉽지 않다. 진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검사법도 없다. 큰 혈관에 생겼을 경우 혈관조영술, CT•MRI가 사용되지만 조직검사를 통해서만 확진할 수 있다.
증상 있으면 최대한 빨리 치료받아야
그래서 몇 가지 의심 증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게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그중 하나가 양팔의 혈압 차이다. 병•의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혈압계로 양팔 혈압을 각각 잰 뒤 10mmHg 이상 차이가 나면 큰 혈관의 혈관염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비대칭적으로 혈관이 막히기 때문에 생기는 증상이다. 피부에 생기는 자반도 주목해야 할 증상이다. 멍과는 달리 해당 부위를 눌러도 색이 흐려지지 않는 게 특징이다. 부비동염이 낫지 않고 계속되거나 구강궤양과 함께 팔다리 저림, 혈뇨가 생기는 것도 유의해야 한다.
실제로 혈관염은 사소한 증상을 그냥 넘기지 않을 때 조기에 발견된다. 폐렴을 치료받다가 이유 없이 잘 낫지 않아 조직검사를 통해 혈관염을 발견하거나, 부비동염이 지속돼 조직검사를 받고 확진을 받는 식이다. 이런 경우에는 예후도 좋다.
하유정 교수는 “혈관염의 피해를 줄이는 제일 좋은 방법은 단순히 넘길 수 있는 증상을 잡아내 특정 장기 기능이 손상되기 전에 손을 쓰는 것”이라며 “장기 손상 전이라면 대부분 치료가 잘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Q. 어떤 사람이 잘 걸리나.
특별히 누가 걸리기 쉽다는 건 없다. 다만 혈관염 종류에 따라 대상이 구분되는 편이다. 베체트병은 동양 여성에게 더 많고 베게너 육아종증은 40~50대 환자가 많아지는 추세다. 다카야슈 동맥염이라고 하는 대동맥궁 증후군은 환자의 80~90%가 20~30대 여성이다. 오히려 40대 이후에 생기는 경우는 드물 정도로 젊은 환자가 많다. 면역글로불린A 혈관염은 소아에게 많이 생긴다.
Q. 치료 과정은.
염증을 가라앉히는 데 스테로이드가 사용되고 면역억제제로 다스린다. 질환의 종류와 정도에 따라 세포독성항암제가 사용되기도 한다. 스테로이드는 질환이 심각할수록 고용량을 쓴다. 단 스테로이드는 부작용을 고려해 증상 완화와 함께 용량을 줄여나간다. 완치 개념은 없고 재발 방지를 위해 면역억제제 등 약을 먹으면서 관리해야 한다.
Q. 암과 연관성이 있나.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혈관염 치료에 사용되는 항암화학요법이 방광염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그렇지 않다.
Q. 혈관염에 걸리면 다른 자가면역질환 위험이 높아지나.
그렇지 않다. 류머티스 관절염, 아토피 피부염, 천식 등 혈관염 외에도 자가면역질환은 다양하다. 혈관염에 걸리면 다른 질환의 위험성도 높아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Q. 질환이 의심되면 어느 병원을 가야 하나.
류머티스내과가 있는 병원에 가서 해당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정확히 진단받을 수 있다. 류머티스내과는 혈관염뿐 아니라 자가면역질환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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