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사는길

황혼이혼 남성 분노·외로움 커…자녀 관심이 ‘생명줄’

힉스_길메들 2016. 12. 9. 14:46
72세 노인은 2014년 아내(67)에게 이혼소송을 당했다. 아내가 남편의 불륜을 의심한 것이다. 남편은 재산을 나눠주는 등 이혼을 피하려 했다. 그런데도 아내가 의심을 거두지 않았고, 남편의 전화를 받지 않거나 만나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남편은 지난해 중순 아내와 술을 마시던 중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흉기를 휘둘렀다. 그는 범행 후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결국 그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살인미수)을 선고받았다.

파경 남성노인 적응 과정 보니
초기엔 과음 늘어 건강 나빠지고
자식과 틀어지면 극단적 선택도
의지할 곳 찾고 현실 인정까지 3~5년

이 사건의 배경엔 황혼이혼이 있다. 60세 이상 고령자의 황혼이혼이 매년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황혼이혼 남성이 1만1636명, 여성이 6215명이다. 10년 전의 두 배다. 결혼 20년 넘은 부부의 이혼이 29.9%로 신혼(결혼 4년 이하, 22.6%)보다 많다.

황혼이혼 후 남성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 교수는 최근 한국노년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황혼이혼 후 남성 노인 적응 과정’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8명의 남성 노인을 심층 인터뷰했다. 연령은 69~81세, 이혼한 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2년이 지났다. 결혼 기간은 24~33년. 이들은 대개 이혼 결정-혼란-격동-의지처 찾기-수용 및 안정기 5단계를 거쳤다.
 ① 이혼 결정=원인은 성격 차이, 본인의 경제력 부족, 외도 등이다. 이혼을 요구한 사람은 “후련하다”고 했고, 이혼을 당한 사람은 억울함과 분노를 호소했다. A씨(81)는 “(아내가) 꼴도 보기 싫었다. 하루가 100일 같았다. 그 여자와 얼른 같이 살아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F씨(69)는 “너무 억울했다. 지금 생각해도 피가 솟아”라고 말한다. 경제력 부족으로 이혼 요구를 받은 B씨(78)는 “호적을 나누는데 미치겠더라. 술을 먹고 불을 확 싸질러 버릴까 생각했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② 혼란=혼자가 되자 외로움과 일상생활의 불편이 찾아왔다. E씨(74)는 “나는 굉장히 기대했는데 그 여자(사귀던 여자)는 아니라는 거야. 사기당한 거죠?”라고 후회했다. F씨는 “밀려났다. 비참한 심정, 안 당해 보면 몰라. 2년간 잠을 못 자겠더라”고 말했다.

③ 격동=혼란이 가중됐고 극단적 선택으로 향했다. B씨는 “애들을 찾아갔는데 찬바람이 쌩 불더라”고 한숨 쉬었다. 그는 베란다 난간에 섰다. 눈물을 쏟았고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쏟았다. H씨(71)는 “소주 8병을 마시고 감기약 5~6회분을 털어 넣었다. 자식들이 다 소용없더라. 나를 개·돼지보다 못하게 보고”라고 말했다. D씨(74)는 막걸리로 끼니를 때웠다. 8명 대부분 술·담배 양이 늘면서 건강이 악화됐다. 혼란과 격동기는 대개 2~3년 이어졌다. 이런 과정을 별로 거치지 않은 사람이 A씨다. 그는 딸이 매주 찾아왔고 여자 친구를 짬짬이 사귀었다. 경제적으로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④ 의지처 찾기=육체적·정신적으로 점점 나약해졌다. 의지할 데를 찾기 시작한다. C씨(76)는 오랜 과음 탓에 몸무게가 10㎏ 줄었다. 쓰러져 정신을 잃었는데 깨보니 병원이었다. 그는 “이러다 죽겠다 싶었다. 고민 끝에 큰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그 애를 잡고 울었어”라고 말했다. D씨는 “딸이 결혼식에 못 오게 했다. 일을 하며 여자를 만났는데 그에게 의지하고 싶다”고 했다. G씨(76)는 이혼 8개월 만에 재혼했다.

⑤ 수용 및 안정기=체념하고 포기하면서 심리적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E씨는 혼자 고민하다 안 돼 전문 상담소를 찾았다. 그는 “목숨이 쇠심줄 같지. 살 놈은 사는 건가 봐”라고 말했다. B씨는 “가끔 손주 보는 게 좋으니까, 뭐라도 해서 살려고 한다”고 삶의 의지를 다졌다.
이 교수는 “이혼 후 안정 여부가 3~5년에 결정됐다”며 “전 배우자보다는 자녀나 손자와의 관계, 경제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실직 등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술을 과다하게 마시게 돼 건강이 악화되고 자녀와 관계가 더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최인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황혼이혼 남성 노인에게 아내가 없다는 게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생활의 변화를 초래하고 친구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황혼이혼 남성 상담을 강화하되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 특히 자녀까지 포함한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건강한 적응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황혼이혼 남성 노인들은 정서적 고립이 오래되면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8명 중 3명이 그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정서적 유대가 끊기면 우울증 같은 게 커지기 쉬운 만큼 황혼이혼 독거노인 발굴을 강화해서 이들을 교육해야 한다.




“이혼녀 말 듣기 싫어 숨기고 일 찾는 것도 재혼도 어려워…사이좋은 부부 보면 눈물”

국내에선 황혼이혼 여성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노인복지연구’에 게재된 ‘황혼이혼 여성 노인 사례 연구’가 눈에 띌 뿐이다. 이현심 서울벤처대학원대학 교수가 이혼여성 K씨(70)를 심층 인터뷰했다.

황혼이혼 70대 여성의 삶은

K씨는 7년 전 40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했다. 남편(72)은 신혼 때 시댁으로 퇴근하고 모든 일을 시어머니와 논의했다. 결혼 전 애인을 만나고 장모의 장례식엔 당일만 참석했다. 아내 동의 없이 친구·시댁의 빚 보증을 섰다. 항의하는 K씨에게 폭력을 휘둘러 경찰이 네 차례 찾아왔고 세 차례 경찰서로 연행됐다. K씨는 “50대 내 인생은 정말 지옥 같았다”고 표현했다. 이혼 전에는 불면증· 우울증 등에 시달렸는데, 가정법원을 나선 날 슬프지도 않았고 홀가분했다. 그날 밤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이런 기쁨도 잠시. K씨는 “이혼녀라는 말을 듣기 싫어 이혼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교회 사람들이 남편 안부를 물으면 말을 돌렸다”고 말한다. 노심초사하다 결국 교회를 옮겼다. 그는 “나이가 70이니까 아무것도 못해. 일을 하겠어, 시집을 가겠어? 이렇게 살다 가는 거지. 애들한테 상처 준 것 같아 많이 미안하고. 이혼도 젊어서 해야지 나이 들어 하니 아무것도 못해 ”라고 한탄했다. K씨는 “이제는 많이 외로워. 사이좋은 부부가 TV에 나오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이 더 밀려와”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이 교수는 “여성의 이혼 신청이 느는 것은 인권과 평등 의식이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는 것”이라며 “그래도 이혼 사실을 드러내지 못하는 건 편견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자체가 황혼이혼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혼 당사자의 심리상담, 우울증 검사, 자존심 향상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며 ▶이혼 여성 자조(自助) 모임을 설립·지원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