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마틴 부버는 말했다.
“To remember is to live(기억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
미국의 스캇 볼잰 씨는 2년 전 불의의 사고로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렸다. 사고 이후 새로운 지식들을 기억의 창고에 차곡차곡 쌓고 있다. ATM기에서 돈을 찾는 법에서 ‘가족’이라는 사람의 이름과 얼굴까지.
하지만 그가 간절히 원한 것은 소중한 사람과의 감정적 연결을 되찾는 것이다. 지식은 다시 쌓을 수 있지만 소중한 이와의 추억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그저 숨을 쉬는 것 이상을 필요로 한다. 추억 속에 우리는 진정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기억은 살아가는 동력도 제공한다. 뮤지컬 ‘캣츠’에서 가장 잘 알려진 ‘메모리’라는 곡은 늙고 볼품없는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아름다웠던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며 부르는 노래다. 추억 속에서 그리자벨라는 언젠가 새날이 밝아 오리라는 기대를 노래한다.
● 기억의 과학
평균 무게 1300g, 체중의 2%밖에 되지 않지만 전체 혈액과 산소의 20%를 사용하는 기관, 뇌. 뇌의 주된 역할은 바로 기억이다.
KBS 김윤환 PD와 제작팀은 올해 방영한 ‘기억 - 사이언스 대기획 인간탐구’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사이언스 대기획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과학적으로도 충실하다.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뇌라는 기관 안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인 현상으로 풀어내고 있다.
기억은 오감을 통해 전달된 외부의 자극이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의 가운데 아래 위치한 해마에 저장된 것이다. 인간이 보고 든 것 등 외부 자극은 전기 신호로 바뀌어 신경계를 이루는 기본 단위인 ‘뉴런’을 통해 전달된다.
뉴런은 전기신호의 고속도로와 같다. 다음 뉴런의 진입로인 ‘수상돌기’로 전달되는 사이 공간에는 ‘톨게이트’ 역할을 하는 ‘시냅스’가 있다. 시냅스를 지나려면 ‘통행료’를 주고 받듯이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시냅스를 많이 지날수록 기억은 강화된다. 해마는 이 신호를 정리하고 얼마간 저장하다가, 일부는 대뇌피질로 옮겨 장기기억으로 보관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알코올이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을 변화시킬 때 발생한다. 알코올이 뇌를 일시 마비시켜 해마에 기억을 입력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컴퓨터가 갑자기 꺼져 최신 정보가 날아가는 일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이전까지 담고 있던 정보는 그대로 남아있다.
● “기억은 오래된 미래다” : 인간탐구로서의 기억
![](http://news.dongascience.com/MEDIA/Photo/2011/12/18/20111218-2.jpg)
“기억이란 과거를 돌이키기 위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 최근 인간의 기억이 … 미래에 있을 일을 예측하고 그에 대비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상상을 하게 한다. 의사가 되려고 마음먹은 학생은 의사가 된 미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을 소재로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과거를 회상하는 뇌 부위와 미래를 상상하는 부위가 일치한다고 한다.
“기억이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과거가 있어야 미래가 있고, 상상과 창조는 과거 기억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은 소중하다.”
혹시 나쁜 기억에 갇혀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잘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잘 망각하는 것도 뇌의 선물이다. 우리네 어머니는 아기를 낳는 아픔을 망각하고 태어난 아기를 처음 바라볼 때의 기쁨만을 기억한다.
벨기에의 한 병원에서는 즐거운 기억을 떠올리는 최면을 실제 외과 수술에 적용하고 있다. 전신 마취의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수술 후 회복도 빠르다고 한다. 즐거운 기억은 나쁜 기억과 통증까지 잊게 한다.
외상후장애와 대비되는 ‘외상후성장’이라는 심리학 용어도 있다. 과거에 갇히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었을 때 더 성장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이가 들수록 긍정적인 장면을 잘 기억하고, 부정적인 장면은 잊는 능력이 생긴다는 연구는 장수하는 노인의 지혜를 깨닫게 한다.
● 기억력을 높이고 싶으면 운동을 하라
영화 ‘리미트리스’에는 뇌의 기능을 100% 활용하게 만드는 약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약에 빠져든 주인공은 쉬지 않고 일만 하면서 부작용 속에 망가져 버린다.
기억력을 높이는 약은 인류의 욕망과도 같다. 기억력이 나빠져 고생하는 사람에게는 구세주와 같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허상을 바라기보다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뇌는 전체 혈액과 산소의 20%를 사용한다. 뒤집어 말하면 혈액과 산소를 잘 공급하면 뇌의 기능이 잘 유지된다는 뜻이다. 결국 운동이야말로 기억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최선의 방법인 셈이다.
그래도 팁을 바라는 사람들을 위해 책은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좌우 뇌의 균형 발전을 위해 마우스 양손 쓰기, 댄스 스포츠로 스텝 익히기, 세계 100개국의 국기와 수도 외우기, 하루에 전화번호 3개 앞뒤 방향으로 외우기, 일기 쓰기, 노래 1곡 외우기. 이 밖에도 6시간 이상 자기, 등푸른 생선이나 카레, 채소류 섭취하기 등이 있다.
기억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기억력 감퇴는 특정 질환뿐 아니라 생활습관이 나쁠 때 일어난다. 나쁜 습관을 고치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기억력을 회복하고 향상시킬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의식을 우주로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각자 좋아하는 분야를 하나씩 찾아 매일 규칙적으로 그 일을 하고, 그 지평을 조금씩 넓히다 보면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 베르나르 베르베르, 월드사이언스 포럼 2008 서울”
이재웅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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