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멋집n요리

우아한 분위기의 귀족적 점심 식탁, 그러나 가격은 서민적

힉스_길메들 2011. 12. 30. 22:55

서울 서초구 양재동 '가실' 02-575-9194 삼호물산 투윈타워 지하상가

점심식사는 직장인들에게 크나큰 위안이고 즐거움이지만, 한편으로는 늘 선택을 강요당하는 괴로움이기도 하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어느 식당으로 가야 하나? 기자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새로 사무실이 이사 온 서울 양재동은 고만고만한 회사에서부터 대기업까지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이다. 점심시간만 되면 거리로 몰려나온 직장인들이 점심 한 끼 해결을 위해 주변 식당가를 배회한다. 기자도 그 무리에 끼어 어슬렁거려보지만 가본 식당마다 늘 거기서 거기였다. 며칠 전 회사 동료가 새로운 명소를 발견했다고 했지만 언제나처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찾아갔다. 그러나 찾아간 식당은 기쁘게도 나의 기대를 배반했다.

갤러리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밥집

처음 간 식당 ‘가실’은 음식점들이 그 어느 곳보다 많고 경쟁도 치열한 양재동 사무실 밀집지역에서 가격대비 음식의 질과 만족도가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현대적 화풍의 꽃 그림으로 벽면을 장식한 안으로 들어서면 영락없는 갤러리다. 아름다운 그림과 조형물들이 편안하고 우아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는 바람에 처음 온 손님은 잠시 어리둥절해 한다. 아무래도 식당이 아니라 미술전시장으로 잘못 들어오지 않았나 하는 착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식당임이 확인된 순간에도 비싼 분위기(?) 때문에 음식 값도 비쌀 거라고 지레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점심 밥값이 6000원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안도하게 된다. 

배식시스템은 셀프서비스와 풀 서비스의 중간쯤. 입구에 있는 배식대에서 큰 접시에 전과 쌈채 나물 무침 장아찌 김치 등의 찬류를 담고 자리에 앉으면 밥 한 공기와 원하는 그날의 주 메뉴를 가져다준다. 주 메뉴는 안동소고기국밥이나 해물샤브샤브 등 탕류가 보통인데 주꾸미 볶음, 산채비빔밥, 생선구이 등도 며칠 간격으로 번갈아서 나온다.

친환경 식재료에 자연 담은 소박하지만 알찬 밥상

밥집 ‘가실’에서 육체적 허기를 채우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먼저 풍요로워진다. 배식대에 음식이 떨어지면 바로 주방에서 음식을 내올 뿐 아니라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주인장이 친환경 식재료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가급적 출처가 분명한 신선 식재료를 사용한다. 특히 당귀, 고수, 더덕, 민들레, 산뽕잎 등 나물류는 강원도 태백의 ‘정백가 할아버지’라는 분에게 직접 매입하여 쓰고 있다고 한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도 인심 좋은 주인장이 부족한 것이 없는 지, 손님 밥상을 돌면서 살핀다. 특별히 마음을 써서 만든 반찬도 알려주면서 더 먹을 것을 권한다.

이 집 문 앞에는 ‘자연을 담은 소박한 밥상’이라는 문구가 걸려있다. 자연을 담은 것은 맞지만 결코 소박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차린 음식을 대충 훑어보니, 톳나물, 계란장조림, 우거지 찜, 대구 전, 브로콜리와 각종 신선 쌈채, 김치, 생선가스가 반찬으로 나왔다. 밥도 쌀밥과 잡곡밥 두 가지에 주 메뉴는 낙지전골과 안동소고기 국밥이다.

이 집은 생긴 지가 얼마 되지 않아 모르는 사람은 전혀 모르는 집이어서 아는 사람만 출입한다. 더구나 지하상가에 위치하고 있어서 잘 눈에 띄지도 않는다. 앞으로도 꼭꼭 숨겨두고 나 혼자만 출입하고 싶은 식당이다. 직장인의 점심은 어쩔 수 없이 한 끼 때우는 생존의 의례적인 절차가 아니라, 입과 눈에 즐거움과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재충전의 시간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글·사진 제공 : 월간외식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