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심 집에 웬 돼지갈비?
'황가설등심'은 돼지갈비가 맛있다. 물론 다른 고기도 훌륭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 집에 드나드는 단골손님들은 돼지갈비를 유독 자주 찾는다. 그러나 이 집이 처음부터 돼지갈비로 소문난 집은 아니었다. 옥호에서 알 수 있듯이 9년 전에는 등심 전문점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식당이 쾌조의 스타트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2003년 광우병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부각되면서 소고기인 등심 판매가 전국적으로 급격히 위축되었다.
형님, 아우하며 매일 같이 찾아오던 단골들마저 강아지 흙 털듯 갑자기 발길을 끊었다. 겨우 자리 잡기 시작한 식당이 어려움에 봉착하자 주인장 류씨는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 끝에 자신의 주특기를 살려 돼지갈비용 양념을 개발했다. 새로운 양념돼지갈비는 기대 이상으로 돌아선 고객의 발길을 다시 불러 모았다. 꿩 잡는 게 매라고 했던가, 단지 위기 상황을 피해보려 구원투수로 등판시킨 양념 돼지갈비가 이때부터 등심 대신 이 집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주인장도 미처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양질 원육 골라 황금 비율로 간 맞춰, 달지도 짜지도 않아
돼지갈비의 맛이 어떠했기에 돌아선 고객의 발길을 다시 불러 모았을까?
1인분 250g에 1만1000원인데 순한 맛과 매운 맛이 있다. 석쇠 위에서 익은 고기를 입에 넣어보면 고기가 과하게 달지도 않고 짜지도 않으면서 혀에 짝짝 달라붙는다. 맛이 센 기존 돼지갈비와는 사뭇 다르다. 몇 점 먹고 나면 물을 찾게 되는 고기들과 달리 조금 양을 늘려 먹어도 뱃속이 편안하다.
양념의 핵심은 역시 간이다. 간이 맞아야 양념 맛이 살아나고 음식이 제 맛을 낸다. 이 집은 대략 물과 간장 원액의 비율을 5:1 정도로 유지한다고. 이 황금비율을 조리과정에서 깨뜨리지 않아야 고기를 구워 먹을 때 비로소 제 맛이 난다고 한다. 간을 잘 맞춘 양념에 고기를 재어 24시간 정도 숙성시켰다가 내어오는데 소갈비를 연상시킬 정도로 육질이 부드럽다.
좋은 맛을 내려면 좋은 고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인장 류씨의 평소 지론이다. 그래서 그는 돼지고기의 원종, 원산지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없이 고기를 고른다. 어떤 브랜드나 상표보다 20여년 넘게 경험으로 터득한 자신의 눈과 혀와 감각을 더 믿는다. 류씨는 어느 한 가지 원육에 머물지 않고 그의 기준을 충족시켜줄 좋은 고기를 늘 찾아 헤맨다.
“아무리 조리법이 뛰어나고 양념이 좋아도 주재료가 되는 고기가 좋지 않으면 다 소용이 없습니다. 맛있는 돼지갈비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원육을 골라야 하지요. 기막힌 양념을 넣어봐야 고기가 나쁘면 헛일입니다.”
보통 돼지갈비는 양념이 잘 배고 짧은 시간에 고기 속까지 금방 익을 수 있도록 표면에 칼집을 낸다. 이 집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약간 각도를 주어 눕혀서 칼집을 냈기 때문에 고기를 구울 때 늘어지지 않고 표면이 매끄러워 입 안에서 고기의 감촉이 부드럽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버섯탕수와 함께 나오는 밑반찬도 고깃집으로서는 아주 뛰어나다. 은은한 곰취 향이 감도는 곰취쌈과 새콤달콤하게 무친 가시오가피 피클이 돼지갈비 맛을 한층 든든하게 받쳐준다.
식구들과 서오릉 나들이 후 노변정담 나누기 좋아
서오릉에는 세조의 두 아드님인 덕종과 예종, 그리고 숙종 임금님이 누워있다. 서오릉 주변엔 유난히 갈빗집들이 많다. 이 세 분은 생전에는 모르겠지만 사후에는 다른 어느 임금님보다 풍족하게 고기를 흠향하는 셈이다. 부근 갈빗집 중에서도 조금 떨어진 이 집에서 고기 구울 때면 유독 봉분 쪽으로 바람이 부는 까닭도 다 이유가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첫추위와 함께 한 해가 또 저문다. 회색빛 공간에 을씨년스런 바람이 불고 싸락눈이 내리는 시기다. 가족과 떨어져있는 사람들은 더욱 집식구들이 그리운 때다. 더구나 식솔을 거느렸던 가장들은 먼 곳의 혈육에 대한 그리움이 그 어느 때보다 더 뼛속에 사무치는 계절이다.
서울 서북부 서오릉 근처에 있는 이 집은 식구들끼리 오순도순 모여앉아 화로에 고기를 구워먹으며 정담을 나누기에 그만이다. 서오릉 나들이를 겸해 바람 쏘이고, 그동안 공부와 일 때문에 소원했던 식구들과의 오붓한 시간을 마련하기에 적당해 보인다.
글·사진 제공 : 월간외식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