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탕 깊은 맛 여전히 사랑하는 한국인, 그러나 진국은 드물어
갈비로 만든 갈비탕은 전통 탕반인 설렁탕, 육개장을 누르고 소고기를 식재료로 쓴 탕반 가운데 확실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다. 조선 후기 설렁탕과 육개장에 관한 기록은 분명히 남아있지만 갈비탕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소고기 중에서도 고급육으로 꼽히는 갈비는 유독 우리나라와 일본 사람이 좋아한다. 육류 식습관상 미국인은 갈비를 거의 먹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서울 신촌 ‘ㅎ갈비’의 갈비탕은 아주 푸짐했다. 국물 반 고기 반의 풍성한 갈비는 말 그대로 압권이었다. 더구나 적당한 가격에 사먹을 수 있었던 것도 매력적이었다. 아마 수입산 갈비를 처음 도입했던 시절의 시대상이 반영된 메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후 광우병 파동으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중단되면서 갈비탕은 식당 입장에서나 고객 입장에서 매우 곤혹스런 메뉴가 되기도 했다. 공급 부족으로 원육 값이 오르게 되자 갈비탕을 취급하는 식당은 수지를 맞추기 위해 가격을 올리거나 갈비 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더러는 질이 떨어지는 갈비를 써야 했다. 이는 고객이 갈비탕을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졌는데, 사정이 이렇게 되자 '비싸도 좋으니 제대로 만든 갈비탕 좀 먹고 싶다'는 갈비탕 마니아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서울 강북의 어느 갈비탕 집은 하루 최고 2000그릇까지 판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에게 고기(국)에 대한 선망은 여전한 것 같다. 우리는 지금도 점심에 고기가 들어간 국물을 먹어야 뭔가 제대로 한 끼 식사를 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진짜배기 갈비탕을 먹고 싶어 하지만 정작 만나기는 쉽지 않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식당에서 점심 때 한우 갈비탕을 한정판매하고 있지만 정품 갈비탕으로 보기에는 무리다.
축산농이었던 주인장, 수지 안 맞자 직접 고깃집 차려
서울 양재동 '소백산'의 주인장 임종일(56)씨는 당초 서울에서 개인 사업을 하였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사업을 정리하고 80년대 중반에 고향으로 내려가 소를 기르기 시작했다. 비록 요양 삼아 소를 기르긴 했지만 한우 사육은 식구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그런데 90년대 들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자 축산물 값이 떨어졌다.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 정부에서 고급육을 육성해 축산농가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고급 거세우 한 마리당 15만원씩의 손실 보전금을 주었다고 한다. 일반 소는 18개월만 기르면 출하가 가능했지만 24~26개월 길러야 출하가 가능한 거세우는 아무리 보전금을 받아도 손해였다고. 당시에는 고급육에 대한 인식이 없던 터라 정부 보전금을 받고 거세우를 출하해도 지육 값은 일반 소들과 똑같았다고 한다.
손해를 봐가면서 애써 기른 고급 한우를 남에게 파느니 차라리 내가 직접 고깃집을 해보자는 생각에 1997년에 지금의 '소백산'을 열었다. 이때부터 바깥주인은 영주에서 소를 기르고 안주인은 서울에서 한우 고깃집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소백산'은 임씨가 직접 정성들여 키운 한우라는 점 때문에 신선육을 찾는 단골 고객들이 많다. 오랫동안 이 집 고기에 맛을 들인 사람은 갈비탕의 속맛도 잘 안다. 이 집 갈비탕은 주인장 임씨처럼 경상도 사나이를 닮았다. 잔 양념 없이 한우 갈빗살만 푸짐하게 넣어 끓였다. 겉모습은 투박하고 무뚝뚝해도 속정은 누구보다 깊다.
직접 기른 한우 갈빗살로만 푸짐하게 끓여내
제대로 만든 갈비탕 찾기가 힘든 요즘 서울 양재동 '소백산' 갈비탕의 존재는 매우 희귀한 존재다. 비록 1만5000원으로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마구리뼈 등 잡 부위를 넣지 않고 정품 한우 갈빗살만 넣었다. 주인장 표현대로 '무식'할 정도로 정직하고 우직하게 한우 갈비탕을 끓였다. 갈비탕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너끈히 비울 수 있을 정도로 두툼하게 제 살이 붙어있는 넉 대 정도의 갈빗살은 그 양이 푸짐하다.
우선 맛을 내기 위해 화학조미료나 양지 살 등 다른 부위를 넣지 않고 오로지 갈비뼈에 붙어 있는 한우 정품 갈빗살만 넣은 점이 미덥다. 두툼한 갈빗살과 잘 어울리는 두껍고 묵직한 스테인리스 냄비에 갈비탕이 나오는데 천천히 먹어도 국물이 잘 식지 않는다. 시간이 한참 지나 처음에 비해 다소 국물이 식어도 워낙 그 맛이 진해 갈비탕의 깊은 맛을 끝까지 유지한다.
갈비탕으로 소문난 경남 내륙지방의 식당에서는 젖소 고기로 갈비탕을 만든다. 임대료 부담이 적은 시골의 한적한 식당에서도 한우로 원가를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보면 서울 강남에서 이 정도 스펙의 한우 갈비탕을 만난다는 것이 기적에 가깝다.
'소백산'의 바깥 주인장 임씨가 경북 영주에서 직접 한우 목장을 운영하기 때문에 욕심 부리지 않고 이윤을 크게 남길 생각 하지 않으면 이 정도 갈비탕은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지난 4월까지는 하루에 80~100그릇씩 끓여서 1만2000원씩 받았는데 인기가 좋아 채 12시가 되기도 전에 금방 팔려나갔다. 인기는 좋았지만 갈비탕에서 한 달에 800만 원 가량의 적자가 계속 쌓였다. 더는 감당이 안 되자 어쩔 수 없이 몇 달 전에 지금의 가격으로 올렸다. 아무리 내 집 소를 잡아 갈비탕을 만들지만 수급에는 한계가 있어서 하루에 80그릇만 팔고 있다.
갈비탕이 좋아 경기도 분당에서 부러 이 집을 자주 찾아온다는 70대 부부는 조선 팔도 다 다녀보며 갈비탕을 맛봤지만 이 집 것이 가장 오래 입맛에 남는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소백산 자락 영주에서 기른 한우라던데, 그래서 그런지 씹을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네. 국물이야 뭐 말헐 것두 없구."
※ 글·사진: 월간외식경영 이정훈 기자, 변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