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멋집n요리

서울에서 저렴하게 맛보는 오리지널 남도 음식

힉스_길메들 2011. 12. 30. 23:05

서울 구로구 구로동 '미담불고기'

직장 초년생시절, 광주는 매력적인 출장지였다. 장거리여서 출장비도 두둑하게 받았고 모처럼 남도 음식까지 즐길 수 있었다. 광주에 도착하면 지사의 간부나 동기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식사 때면 호남지방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식당으로 안내하곤 했다. 개인적으로 곰삭은 맛을 좋아했던 터라 광주에서의 식사는 참으로 꿈같은 시간이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서울에서도 남도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 맛보았던 그런 남도풍 음식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남도 음식 전문점이라고 해서 가보면 어설프게 남도 음식을 흉내 낸 것이거나 서울 맛에 동화된 음식인 경우가 많다. 그나마 제대로 하는 집이다 싶으면 너무 가격이 비싸다. 최근 문을 연 '미담불고기'는 남도 음식 애호가들이 반색할 만큼 전라도의 식재료로 전라도의 토속적인 맛을 뚜렷하게 내는 집인데 가격까지 부담 없어 그 존재가 더욱 빛난다.

명장 박중현이 연출하는 남도음식의 '징헌 맛'

이 집에서 남도 음식을 만드는 주역은 박중현(45) 씨. 주인장 박기현 씨와는 잘 아는 사이로 동향이라고 한다. 박씨는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를 중심으로 평생 남도 음식을 만들고 연구해온 전라도 음식 전문가. 남도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외식업계에서는 이미 남도 음식 명장으로 정평이 나있다. 그래서 그의 이번 서울행이 반갑다.

“제가 태어난 해남군 마산면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고, 산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각종 식재료가 풍부한 고장입니다. 부모님이 젓갈 집을 운영하셨는데, 어머님의 음식 솜씨가 아주 뛰어나 어려서부터 어깨너머로 배우곤 했지요. 지금 제가 만드는 음식의 팔 할은 어머니에게 배운 것입니다. 예전에 어려운 요리 할 땐 가끔 조리하다 말고 어머니에게 전화 걸어서 여쭤보곤 했다니까요.”

고교 졸업 후 식당 설거지에서 시작한 그의 조리 인생은 군대를 다녀온 뒤부터 본격적으로 이어졌다. 평생교육원의 유명 조리과정을 섭렵해 조리공부의 기본을 쌓은 뒤 꾸준히  전라남도 일원의 5일장을 돌았다. 장마당에 농사지은 것을 팔러 나오신 할머니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희귀 식재료나 신선한 식재료도 구입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남도 토속음식을 할머니들에게 구전으로 배웠다. 장터에서 만난 시골 할머니들은 남도 음식의 본래 맛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전수해준 고마운 스승이었다. 전라도 시골 장터는 그의 학교였고 교실이었던 것.

시골 할머니들에게 배운 음식에는 어머니의 그것과 함께 남도의 정서와 기운이 날것으로 속속들이 박혀있다. 타지의 사람들에게 그 맛은 곰삭은 남도의 맛이고 호남인들에게는 ‘징헌 고향의 맛’이다. 정규 교육과정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배울 수 없는 진짜배기 호남의 맛을 박씨는 그렇게 익혔다. 그리고 누에처럼 그동안 익힌 것들을 광주와 서울의 여러 식당에서 풀어내고 있다.

희귀돈육 '듀록'의 풍미 오롯이 맛보는 대통숙성 생삼겹

이 집의 간판 메뉴는 대통숙성 생삼겹살(150g, 9900원)이다. 흑돼지보다 귀하고 맛있어서 가격이 무척 비싼 '듀록'이라는 고급품종의 국산 돼지를 원육으로 쓴다. 듀록은 사육 개체수가 극히 적고 부드러운 육질과 독특한 향이 뛰어나지만 취급점이 매우 제한된 육종으로 알려져 있다. 100% 암퇘지만 시판한다는 점도 듀록만의 특징. 담양에서 공수해온 대나무통에 듀록 생삼겹살을 넣고 숙성시켜 죽향이 고기에 배도록 했는데, 맛도 맛이지만 투박한 대나무통과 푸른 댓빛에서 남도의 은은한 멋과 풍류가 흘러나온다.

고기는 숙성실에 넣기 전 칼집을 내기 때문에 구울 때 골고루 익고 지방이 고기에서 잘 빠져나간다. 한눈에 보아도 두툼한 구운 고기는 기름기가 적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무척 부드럽다. 잘 구운 삼겹살을 연소금에 찍어 먹어야 듀록 특유의 고소한 맛을 더 느낄 수 있다는데, 연소금은 볶은 소금을 가루로 낸 뒤 연잎 가루와 섞은 것으로 듀록 육질과 궁합이 잘 맞는다.

연소금도 좋지만 고기를 갈치속젓에 찍어먹으면 남도의 풍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다. 곰소에서 구입한 갈치속젓은 국물 없이 갈치 창자로만 만들어 되직한데 이것을 고기 찍어먹기 좋도록 갈치액젓과 적당히 섞어 완전히 삭혀서 내온다. 고기와 함께 내오는 나물과 장아찌도 모두 박씨의 작품으로 남도의 맛을 풍부하게 간직했다. 특히 방풍나물은 여수 금호도라는 섬에서 채취한 것으로 향이 독특하고 진해 고기 먹고 난 뒤의 입 안을 깔끔하게 만든다.

삼겹살에는 보통 소주가 따라가기 마련인데, 이 집은 소주와 함께 광주에서 가져온 '비아 막걸리(750ml, 3000원)'를 내놓고 있다. 효모가 살아있어 쏘는 듯한 느낌이 살짝 나면서 텁텁하지 않고 뒷맛이 깔끔하다. 두어 순배 마시고 나면 육자배기 가락이 절로 들려오는 듯하다.

먹다보면 무등산 바람과 다도해의 파도가 느껴지는 불고기와 음식들

남도오리생불고기(150g, 1만2000원)는 광주에 있는 업체의 유황오리 고기를 쓴다. 맛과 고기의 형태가 기존의 오리고기와는 판이하다. 고기에는 부추를 갈아 만든 녹색 소스가 들어간다. 처음에는 소스 뿌린 고기만을 익히다가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버섯과 쪽파 등 각종 채소를 넣고 더 익힌다. 다 익으면 모양과 색깔이 쇠고기 습식 불고기와 얼핏 비슷한데 오리고기와 다른 제 3의 풍미와 맛을 낸다. 따라서 오리고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조리과정을 보지 않은 사람은 쇠고기라고 속여도 믿을 정도다. 그러나 유황오리고기의 효능은 그대로 살아있다.   

남도 고기문화의 한 갈래인 담양떡갈비(200g, 1만5000원)도 이 집에서는 놓칠 수 없는 메뉴. 정성스럽게 다진 소고기로 성형한 뒤, 고추씨, 무, 양파, 마늘, 간장을 넣고 3시간 30분 정도 달여서 만든 소스를 세 번씩 발라가면서 구웠다.

여수돌게장정식(7000원), 무안매콤낙지(6000원) 등의 식사 메뉴를 대하면 마치 남도의 어느 식당에 와서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시원한 동치미와 톡 쏘는 갓김치를 비롯해 장아찌와 나물이 입맛을 돌게 한다. 특히 여수돌게장정식은 양념게장과 간장게장에 알탕까지 나와 저렴한 가격에 탄탄하고 다부지면서 속이 꽉찬 여수 돌게의 참맛을 음미할 수 있다.

‘남도특선’은 박씨의 개성이 듬뿍 담긴 메뉴들로 구성되었다.
완도에서 잡은 전복으로 장을 담근 남도식전복장(6마리, 1만5000원)은 인삼, 오미자, 구기자, 함초 등 여러 가지 한약재를 넣고 달인 간장에 푹 고은 다량의 다시마를 섞어 다시 끓인 물로 만들었다. 여수지역에서 잡은 돌게로 만든 남도식간장게장(7마리 1만2000원)과 함께 포장 판매도 한다. 11월 말부터 2월까지는 벌교 꼬막도 선보일 예정이다.

작년 가을에 박씨가 홍어를 갈아 넣어 만든 홍어김치는 양이 많지 않아 주방장 특별 서비스용으로 우수 고객에게만 제공할 예정이다. 짭짤하고 아삭하면서 홍어 삭은 깊은 맛이 우러난다. 쌀은 해남군의 공식 쌀 브랜드인 '해남미소(海南米笑)'가운데 '땅끝햇살'을 쓴다. 미질이 좋은데다 도정한 지 15일을 넘기지 않은 것으로만 밥을 지어 주발뚜껑을 열면 윤기가 흐른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입담처럼 구수하고 걸죽한 음식. 그 음식 맛과 썩 잘 어울리는 이백의 '월하독작' 종결구가 이 집 외벽에 걸려 있다. 달이 뜨지 않아도 서로서로에게 달이 되어줄 동료나 선후배. 그런 사람들과 함께 들러 남도의 맛과 흥취를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두고 온 고향 이야기를 나누면서...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깨어서는 함께 서로 즐기고)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 취한 뒤에는 각기 서로 흩어지네.)
永結無情遊(영결무정유, 정에 얽매이지 않는 영원한 사귐을 맺어)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아득한 은하수에서 만나기를 기약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