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입에, 눈에도 좋은 ‘엄나무순 돌솥밥’
엄나무 가지를 보면 외갓집 생각이 난다. 어렸을 적 외갓집에 가면, 온갖 삿된 것들이 대문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늘 엄나무 가지가 문설주 위에서 무서운 가시를 꼿꼿이 세우고 노려보았다. 대문을 들어설 때면 그 서슬에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고 삼가는 마음이 들곤 했다.
민간에서 엄나무는 이처럼 벽사의 기능을 완벽히 수행했으며, 봄이 오면 엄나무 순이 서민들에게 훌륭한 먹을거리 구실도 했다. 봄철 엄나무 순은 쌉싸래하면서 싸아~한 맛과 함께 향긋한 특유의 향으로 겨우내 묵었던 선조들의 입맛을 되돌려놓았다. 나물로 무쳐먹기도 하고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먹어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보름 남짓한 아주 짧은 봄 한철에만 먹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엄나무는 인삼 성분인 사포닌과 비타민 무기질을 함유, 항암 항균을 비롯해 진정 진통작용과 관절염, 당뇨 등에도 효험이 있고 거담작용과 위액을 촉진시켜 소화를 돕는다고 한다. 또한 봄철에 잠깐 새순으로 나오기 때문에 벌레가 없고 당연히 농약을 칠 필요가 없는 청정식재료다. 이번에 찾아간 경북 봉화군의 '동궁회관'은 양질의 기능성 식재료인 엄나무 순을 일 년 내내 연중 사용하고 약선 메뉴로 개발하고 있었다.
엄나무 순과 송이 향의 절창에 밑반찬까지 탄탄
이 집 대표 메뉴는 돌솥에 불린 쌀과 엄나무 순 100g을 은행과 함께 넣고 지은 ‘엄나무순 돌솥밥(10,000원)’. 주인장 양씨가 강원도 정선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곤드레 밥을 먹다가 ‘아, 이 정도면 우리 고향의 엄나무 순이 훨씬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메뉴를 개발하게 되었다고. 경북 봉화군 춘양면은 해발고도가 높고 연교차와 일교차가 크며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숨은 청정지역이다. 이런 지역 특성 탓에 조직이 치밀하고 단단하여 목재로 가장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춘양목’이 나는 곳이다. 춘양목과 함께 일명 ‘개두릅’이라고 하는 엄나무 군락지의 자생밀도 또한 아주 높은 지역이다.
우여곡절 끝에 엄나무순돌솥밥을 개발한 양씨는 봉화군의 관계자들을 초청, 시식회를 갖고 봉화군의 토속음식으로 인정을 받았다. 2009년 4월, 봉화군 토속음식 제 36호로 공식 지정을 받은 것.
주인장이 오랫동안 연구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는 송이간장 소스, 직접 먹어보니 그 진가를 알 것 같았다. 밥도 밥이지만 함께 나오는 곰취 장아찌, 송이 장아찌, 엄나무 순 장아찌, 표고버섯 볶음, 우엉조림, 두릅나물 등속의 반찬은 도시에서는 여간해서 먹기 어려운 산촌 고유의 풍미를 간직하고 있었다.
도시 사람들이 환장한다는 물김치도 몇 번 숟가락이 가질 않은 것 같은데 한 그릇이 금방 바닥을 보인다. 먹음직스런 구수한 청국장찌개가 끝내 토라졌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배는 불러오고 밥그릇에 밥은 다 비었는데… 밥을 먹는 동안 돌솥에 물을 부어 밥을 다 먹고 난 뒤 숭늉으로 먹는다.
엄나무 순으로 만든 메뉴는 이밖에도 ‘엄나무순 송이돌솥밥(1만5000원)’, 엄나무 비빔밥, 엄나무 삼계탕, 엄나무 식혜 등이 있다. 엄나무순 송이돌솥밥은 송이버섯을 넣어 송이를 좋아하는 고객들이 즐겨 찾는다. 엄나무 비빔밥은 엄나무 순을 다른 재료들과 함께 비벼먹는 메뉴로 앞으로 돌솥밥과 함께 엄나무 시리즈의 쌍벽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봉화군 특산물로 자리매김 기대돼
주인장 양씨는 엄나무 순 메뉴들을 더욱 다양하게 개발하여 코스 요리로 발전시킬 생각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춘양면의 농민들에게 일 년 동안 쓸 엄나무 순 1,200kg 정도씩을 해마다 매입해서 저장해둔다. 올해부터는 통신판매허가도 내, 군청에서 운영하는 ‘봉화장터’라는 인터넷 코너를 통해 엄나무 순을 팔 예정이다. 엄나무 사업이 활성화 되면 춘양 지역의 농가 소득에 크게 이바지하고, 도시민들에게 청정 약선 음식을 제공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 집이 한우 고기를 파는 고깃집과 엄나무 순 약선 음식점의 두 가지 콘셉트가 공존하고 있는 상태. 올 해에는 좀 더 ‘엄나무 순 약선 음식점’ 쪽으로 식당의 무게 중심이 이동할 것을 기대해본다. 아울러 어려움 속에서 탄생한 엄나무 순 약선 메뉴가 봉화군의 특산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과 관계기관의 협조와 지원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엄나무 순의 색과 향과 맛과 성분들은 눈, 코, 입을 즐겁게 하고 몸에도 이로운 작용을 한다. 아마 이 좋은 것들을 지키고 감추려고 엄나무는 그렇게 많은 가시를 단 채 무서운 얼굴을 했었나보다, 동물의 보호색처럼. 엄나무 순에는 시공이 멈춘 산 속 적막, 가지에 앉았다 날아간 산새의 여운이 묻어있다. 엄나무 순에는 우주를 죽죽 밀어 올리는 봄의 기운, 봄의 향기가 스며있다. 더구나 소백과 태백의 정기 받은 ‘춘양 엄나무 순’임에랴. 054-672-2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