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멋집n요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구운몽'

힉스_길메들 2011. 12. 30. 23:46

한식 고깃집에서 먹는 미국식 정통 스테이크의 풍미

명문대 MBA출신이자 미국 유학파 출신의 육부장

자, 당신의 아들이 일류대학이라는 Y대 경영학과를 나와 MBA과정까지 끝냈다. 학교를 마치고 남들처럼 대기업에 입사했고, 2년쯤 다니다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미국으로 유학을 2년간 다녀왔다. 그런데 그 아들이 식당을 차리겠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다. 서울 대치동 고깃집 <구운몽> 주인장 이상민 씨 모친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아들의 식당개업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이씨가 처음부터 고깃집을 차린 것은 아니었다. 유학에서 돌아온 후 금융회사에 들어가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직장을 옮겨 대기업체의 IT부문에서 근무했다. 이 분야 업무에 자신감이 붙은 그는 서울 여의도에 대형 사무실을 얻고 IT관련 벤처회사를 차린다. 거래처도 탄탄한 대기업체들이어서 처음에는 잘 나갔다. 그러나 벤처 붐이 사그라지면서 그의 회사도 점차 어려워지더니 결국 2004년,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그 때 시작한 것이 바로 지금의 식당이다.

“어머님이 결사적으로 반대하셨어요. 그래 겨우 식당이나 하려고 그 힘든 공부를 한 거냐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저는 식당으로 꼭 성공하겠다는 결심이 서 있었지요. 수백 평짜리 여의도 사무실 사장실에 앉아있을 때보다 지금 주방에서 고기 써는 게 훨씬 행복합니다.”

정말 그랬다. 그에겐 식당일은 천부적으로 딱 체질이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영업시간 내내 입에서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손님의 추가 주문 재촉에 직접 주방에서 빠르게 고기를 썰어 접시에 담는다. 그러다가 틈이 나면 칼을 놓고 손님 자리를 분주히 돈다. 좌석을 돌면서 손님과 반갑게 인사하고 술 한 잔씩 주고받으면서 고기도 구워주고 그간의 안부도 묻는다. 무대와 객석이 따로 없는 마당극 공연장을 보는 느낌이다. 의도했건 그렇기 않건 간에 주인장의 태도나 말투나 외모에서는 전혀 먹물냄새가 나지 않는다. 때때로 매너가 좋지 않은 손님을 상대할 때는 자존심 상할 법도 한데 그런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손님과 함께 얘기하고 섞이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가끔 보면, 좀 스펙이 된다 하는 분들이 잘 차려입고 점잖게 뒤로 물러앉아 목에 힘주고 시쳇말로 가오 잡고 있지요. 돈 들여서 인테리어 멋들어지게 꾸며놓고 음식도 실속보다 화려하게 만들어서 비싸게 받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오래 못 가고 문을 닫지요. 그런 사례를 여러 번 보면서 저 스스로 경계하곤 했습니다.”

미국식 풍미의 연하고 두툼한 안심스테이크

이 집의 스타 메뉴는 단연코 안심스테이크. 업주가 미국에 유학중일 때 친구였던 교포학생이 스테이크를 가끔 만들어주었는데, 그 맛이 정말 좋아 잊을 수가 없었다. 고깃집을 낸 뒤에도 그 맛을 재현하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에 착수하여 몇 달 전에 옛 맛의 재현은 물론, 그 맛을 능가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에서처럼 그릴에 굽지 않고 참숯에 구워 훨씬 풍미가 좋다. A+급 한우 안심을 레드와인과 로즈마리에 3일간 마리네이드(Marinade, 고기나 생선 육질을 부드럽고 향이 나게 하기 위해 재워둠)한 것을 참숯불에 구워낸다.

젓가락으로 고기 한 점을 집으면 그 ‘폭신함’이 바로 손끝에 전해진다. 입안에 넣고 몇 번 씹어도 혀와 치아는 전혀 고기 조직의 저항감을 못 느낀다. 부드러운 육질과 함께 입 안에 감도는 로즈마리 향이 식사 분위기까지 감미롭고 은은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3cm 이상 두께로 두툼하게 썰어서 두 가지 소스(타바스코 소스와 허브인 호스라디쉬 소스)와 소금에 찍어먹는데 오리지널 스테이크의 풍미가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 강남의 외양만 화려한 스테이크 전문점보다는 풍미가 확실히 윗길이다.

이 집에 오는 고급손님이 찾는다는 설화등심도 이름과 같이 마블링이 눈꽃이 핀 듯 고르게 퍼져있다. 구워보니 역시 적당하게 퍼져있는 지방이 익으면서 고소한 맛을 더해준다. 150g에 3만4000원으로 가격이 다른 집에 비하면 저렴한 편인데 맛은 유명 고깃집보다 못하지 않다. 이 집에는 부서나 팀 단위로 회식을 하는 직장인이 많은데 이들이 회식 모임에서 주로 주문하는 것이 생등심이다. 단일 품목으로는 이 집에서 가장 많이 나가는 부위기도 하다. 생등심을 주문하면 ‘우삼겹’으로도 부르는 업진살과 함께 내어온다. 탕으로 끓여먹는 부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업진살은 육질이 연하고 육즙이 진해 구워먹어야 제맛이 나는 부위다. ‘보통’에서부터 ‘못먹음’까지 매운맛을 4단계로 나누어 만든 매운갈비찜은 젊은 층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달콤하면서 매콤한 맛과 쫄깃한 면발은 언뜻 잘 만든 떡볶이를 연상시킨다. 그러면서 갈비의 ‘고기맛’과 매콤한 맛이 어우러져 먹는 이의 손길을 자꾸 재촉한다.

서울 사람 입맛에 맞는 밀면도 제공

서울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경상도 밀면을 이 집에서 먹을 수 있다. 후식메뉴(4000원)로 설정해놓았는데 어느덧 고기 메뉴 못지않은 인기와 유명세를 얻어가고 있다. 직접 뽑아낸 면발에 5종의 한약재와 돼지고기 육수를 부어 만든 밀면은 어설픈 고깃집 냉면보다 한결 맛이 시원하고 깔끔하다. 밀면은 부산이나 경남지방 사람들에게는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하는 소울푸드다. 그러나 밀면이 처음부터 부산의 향토음식은 아니었다. 1.4후퇴 때 함경도 피난민들이 흥남부두에서 LST 화물선을 타고 부산에 정착한 후, 먹고 살기 위해 주로 전분으로 만들었던 함경도 지방 국수를 미국의 원조 밀가루로 사용해 팔았던 것에서 유래한다.

원래는 평안도 지방의 평양냉면만 냉면이지 함경도에서는 국수라고 칭했다. 그래서 밀면은 이른바 함흥냉면의 이웃사촌격이다. 함경도 국수가 수도권에서는 함흥냉면으로, 부산, 경남지역에서는 밀면으로 전화((轉化)한 셈이다. 고 현인 씨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에 묘사된 것처럼 가족과 생이별하고 낯 선 부산 땅에서 살아가야 했던 함경도 출신 피난민의 눈물과 애환이 담긴 음식이 밀면이다. 무한 리필해주는 콩나물 김칫국도 얼큰하고 개운하다. 

좌석이 조밀한 데다 종업원과 손님의 동선이 엉켜 가끔 화장실 다녀올 때는 조금 불편하다. 밑반찬이 가짓수가 너무 많을 필요는 없지만 입이 짧은 여성 고객을 위해 한두 가지 더 준비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집은 전남 나주와 경북 영주에서 기른 한우가운데 주인장이 직접 고른 고기를 쓴다. 또한 내방객은 95% 이상이 주인장과 찐득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단골이다. 그래서 고객의 고기와 음식에 대한 신뢰가 매우 두텁다. 주인장도 고객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욱 신경 쓰는 모습이 여실하다. 고생한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싶을 때, 부서원들이 열심히 일해 성과를 냈을 때 팀장이 직원들과 함께 술 한 잔 하면서 팀워크를 다지기에 딱 알맞은 집이다.  02-554-0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