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시인들 솜씨 뽐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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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도 즐거워”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여의나루역에서 한 여성이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를 감상하고 있다. 정하종기자 maloo@munhw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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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다/ 빛나는 꿈을 가졌고 무한한 용기를 가졌고 식지 않는 열정을 가졌고 불굴의 의지를 가졌다/ 가진 것이 없다고 좌절하지 말자/ 사실 나는 가진 것이 많은 대한민국 청년이다’.서울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 외선순환 방향(왕십리·시청·신촌방향) 플랫폼 스크린 도어에 게시된 ‘대한민국 청년’이란 제목의 시다. 시를 쓴 이는 가톨릭대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김정은(여·25)씨로 평범한 대학생이다. 김씨는 지난해 5월 시에서 실시한 ‘지하철스크린도어 게시용 시작품 공모’에 응모했다. 그리고 자신의 시가 선정작 208편 안에 들면서 지난해 가을 한양대역 스크린도어에 게시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김씨는 “취업문제로 고민해온 나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시를 썼다”며 “이 시가 진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대학생들에게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서울 지하철(1~9호선) 플랫폼에 승객 안전을 위해 설치된 스크린도어가 시민들의 ‘시 재능기부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3일 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현재 292개 역사의 스크린도어 4628곳에 시 1606편이 게시돼 있다. 게시된 시 대부분은 기성 시인의 작품이지만 지난해 일반인 대상의 공모를 실시함에 따라 최근에는 아마추어 시인들의 작품도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성 시인의 작품이건, 아마추어 시인의 작품이건 모두 일괄적으로 시로부터 5만원의 원고료만 받기 때문에 ‘재능 기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등단을 통해 기성 시인으로 활동 중인 이경주 경위(성동경찰서 동마치안센터장)도 지난해 시 작품 공모에 ‘달빛이 국화향을 맡고 있다’로 시작되는 시 ‘국화향보다 진한 사랑’을 제출해 선정됐다.이 경위는 “문예지에 실리는 대부분의 시 작품은 문예지 독자인 시인들끼리만 돌려보고 만다”며 “대중들에게도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시인에게 지하철 스크린도어는 최고의 작품 발표 공간”이라고 말했다.마포에서 시청으로 출퇴근하는 시민 이모(여·38)씨는 “퇴근길에 스크린도어에서 감성을 촉촉히 적셔주는 좋은 시 한편을 읽고 나면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게 된다”며 “삶이 힘겨운 사람들에게 스크린도어의 시들이 큰 위안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크린도어에 게시된 시 작품이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자 최근에는 한 출판사에서 캐치프레이즈 ‘시민이 시인입니다’를 내걸고 지난해 시의 공모에 선정됐던 작품만을 모은 ‘행복의 레시피’(문화발전 간)란 제목의 시집을 출간,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작품을 공모한 결과, 무려 1460여편이 몰릴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며 “앞으로 매년 공모를 실시, 시민들이 더 좋은 시들을 스크린도어에서 많이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이경택기자 ktlee@munhwa.com | |
위의 우리 회사[도시철도공사] 5호선 여의나루역 상선 스크린도어에 실린 시 '국화향보다 진한 사랑'의 주인공은 내가 자전거를 타면서 사귀게 된 오랜 친구이다.
거칠기만 한 경찰[보안업무] 생활을 하면서도 충청도 시골마을에서 자란 그는 동심의 세계를 한시도 잊은 적 없이 틈나면 끄적이며 시선을 떠 올리다 늦깍이로 문단에 등단해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