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두 사람의 '전적(戰績)'은 정씨가 19전 16승 3패로 압도적 우위다. 이 씨가 아무리 이 악물고 연습해도 '똥배' 나온 정씨를 이기지 못한다. 골프 비(飛)거리도 정씨가 이씨보다 50~60야드는 더 나간다. 골프뿐 아니다. 볼링, 당구, 스키, 수영 등 무슨 운동이든 이씨는 정씨를 이겨본 적이 없다.
이씨는 "체격 조건도 내가 훨씬 좋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데 매번 지니 억울하고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운동신경은 정말 타고나는 것이어서 후천적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일까?
■'운동신경'과 '운동능력'
운동을 잘 하게 하는 '신경'이 별도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운동신경'보다 '운동능력'이란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운동 능력이란 동작을 '얼마나 빠르고, 강하고, 정확하고, 오랫동안, 능숙하게 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다. 이 중에서도 특히 주어진 상황에 근육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응답성'과 한번 뇌에 입력된 동작을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유지하는 '지속성'이 운동능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여기에 순발력, 유연성, 반응속도, 균형감각, 심폐능력 등 신체적인 세부 능력까지 평가하면 운동능력을 최종 판단할 수 있다.
한양대 의대 신경외과 김영수 교수는 "운동능력의 각 요소들을 평균 이상 두루 갖췄을 때 '운동능력이 좋다'고 평가하고, 어느 하나만 특출나게 발달하거나 전체적으로 평균 이하면 '운동능력이 나쁘다'고 간주한다"고 말했다.
■이씨와 정씨의 운동능력은?
두 사람의 운동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눈감고 한 발로 서기, 제자리 높이뛰기(수직도), 윗몸 일으키기, 전신반응(램프에 불 들어오는 것 보고 빨리 벨 누르기) 등 네 항목 검사를 실시한 뒤 '운동능력 평가 기준표(한국운동지도협회)'에 따라 두 사람의 운동능력을 평가했다. 운동능력은 1급(뒤떨어짐), 2급(약간 뒤떨어짐), 3급(보통), 4급(뛰어남), 5급(매우 뛰어남)으로 분류한다.
평가결과 ▲눈감고 한 발 서기는 정씨 26초(4급), 이씨 14초(2급) ▲제자리 높이뛰기는 정씨 53㎝(4급), 이씨 33㎝(1급) ▲30초 동안 윗몸 일으키기는 정씨 16회(2급), 이씨 20회(3급) ▲전신반응은 정씨 0.25초(4급), 이씨 0.43초(1급)였다. 종합적으로 정씨는 4급(뛰어남), 이씨는 2급(약간 뒤떨어짐)으로 평가됐다. 이씨는 꾸준히 운동을 하는데도 윗몸 일으키기를 제외한 전 부문에서 정씨보다 운동능력이 낮았다.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과 박원하 교수는 "이 씨와 정 씨의 경우처럼 운동을 하는 것과 운동능력과는 상관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내 운동능력을 알아보려면
개인의 운동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어느 한 운동의 동작과 기술을 얼마나 쉽게 익히느냐 여부다. 간단한 기초동작을 3회 이상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다음날 잊어버리면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수영을 처음 배울 때의 들숨과 날숨 호흡법, 마라톤의 팔 스윙, 골프의 그립잡기 등 기초적인 동작조차 익히는데 애를 먹으면 운동능력 '하(下)', 1~2주 이상 연습해서 겨우 익힐 정도는 '중(中)', 처음 강습 때 바로 외워서 익숙해지면 '상(上)'으로 평가한다. 한편 병원 스포츠클리닉이나 헬스클럽 등지에선 여러 가지 다양한 장비와 검사법들을 이용해 운동능력을 보다 전문적으로 평가해 준다.
■왜 이런 차이가 나나?
개인의 운동능력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뇌 속 '추체외로(錐體外路)'의 차이 때문이다. 신경해부학적으로 추체외로는 근육의 긴장과 이완 등을 통한 운동 동작을 반사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추체외로가 발달된 사람은 그만큼 근육·뼈·관절의 감각신경이 대뇌와 소뇌로 빨리, 잘 전달되므로 어떤 운동을 해도 잘 하게 된다. 스포츠의학에선 한 가지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다른 운동까지 잘 하는 현상을 '전이(轉移)'라고 하는데, 만능 스포츠맨의 비밀도 사실상 추체외로에 달려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