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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홍어는 악취가 아니라 향취가 난다

힉스_길메들 2012. 3. 20. 17:30

홍어회/ 병어초무침/ 홍어찜

▲ 홍어회
홍어를 좋아한다. 즐겨 먹지는 않는다. 무슨 소리인가? 홍어를 좋아하면서도 즐겨 먹지 않는다니. 선문답 한다고 하겠지만 실제 그렇다. 내 미각을 충족시키는 홍어를 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면서도 즐길 수 없는 게 홍어다. 홍어가 제철이지만 제대로 된 홍어 한번 맛보지 못했다. 아무 홍어집이나 가서 먹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해서 직접 삭혀(발효)보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강원도 양구에서 짚을 구해왔다. 유해성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재배를 한 볏짚으로 골랐다. 짚은 홍어를 삭히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 짚의 발효균은 홍어의 발효를 도와 강알칼리성 성분이 빠르게 증가하게 만든다. 이렇게 되면 부패균이나 잡균이 감히 침투하지 못한다.
   
   짚을 구해놓은 지 2주가량 지났을 때 울진 죽변항에서 연락이 왔다. 가오리가 나왔는데 일반 가오리와 다르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삭혀도 된다고 한다. 일단 보내라고 했다. 받고 보니 홍어였다. 홍어와 가오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코라고 불리는 대가리 끝 부분에 있다. 홍어가 뾰족한 삼각형이라면 가오리는 보다 둥그런 곡선의 모양새다. 홍어의 주산지는 흑산도이고 넓게는 서남해안 일대다. 홍어가 산란을 위해 남하하기 전에는 연평도에서도 많이 잡힌다. 때문에 동해에서 홍어가 잡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진 않지만 동해에서도 홍어는 잡힌다. 다만 서남해안산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 서남해안은 주로 갯벌로 이루어져 있어 그만큼 영양분이나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왜 홍어는 물이 닿으면, 안 되는 건가요?”
   
   최근 한 독자가 내 블로그에 남긴 댓글이다. 홍어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나온 생선이나 해산물은 민물이 닿으면 선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바로 조리할 게 아니라면 가급적 민물과 접촉을 금하는 게 좋다. 특히 홍어는 품고 있는 효소를 최대한 신속하게 암모니아 성분으로 만드는 게 관건이다. 그런데 물로 씻어버리면 그만큼 효소가 줄어들 테고 암모니아 성분으로 바뀌는 데에도 시간이 더 걸린다. 그만큼 잡균이나 부패균이 들어올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 이유로 되도록 민물에 닿지 않게 손질해야 한다. 겉면의 점액질은 키친타월을 이용해 닦아낸다.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 몸통과 날개(지느러미) 부위로 나눠 잘라서 걸어둔다. 핏물과 수분을 빼기 위해서다.
   
   항아리는 깨끗이 닦아 수분을 완전히 제거했다. 항아리 바닥에 짚을 두껍게 깔고 홍어와 짚을 번갈아가며 켜켜이 쌓았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기도를 올렸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홍어를 접하며 살아온 내게 홍어는 소울푸드라고 해도 무방하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소울푸드에 대해 “영혼을 걸고 집착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정의한다. 나는 맛보다는 냄새에 방점을 찍는다. 어느 소설가가 기억의 가장 강력한 매개체는 냄새라고 했듯, 우리의 유전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소울푸드는 맛보다는 냄새가 먼저다. 김치, 청국장을 떠올려봐도 냄새에 대한 인상이 앞선다. 한데 냄새의 강력함으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게 홍어 아닌가. 내 정의대로 한다면 이보다 더 확실한 소울푸드는 없다. 그런데 홍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 여행 정보 사이트 ‘트립 어드바이저 재팬’에서 세계 ‘악취 음식’ 2위로 홍어를 뽑았을 정도이니 말 다했다. 하지만 나는 이 발표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 홍어는 악취가 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악취가 나는 홍어가 있을 뿐이다. 무슨 말인지 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발효와 부패는 냄새가 다르다. 발효 냄새에는 불쾌감이 없다. 부패 냄새는 불쾌감이 밀려온다. 또한 발효된 음식은 냄새가 거의 퍼지지 않는다. 부패된 음식은 냄새가 공간 가득 퍼진다. 식초를 예로 들겠다. 식초는 뚜껑을 연다고 해서 냄새가 금방 퍼지지 않는다. 손으로 부채질을 했을 때 비로소 신 냄새가 난다. 이게 발효와 부패의 차이점이다. 결론이다. 홍어 냄새가 강하고 불쾌감이 들 정도라면 발효보다는 부패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적어도 부패균이 일부분 침투했을 가능성이 크다.
   
   홍어가 항아리에 들어간 지 며칠 후 뚜껑을 열었다. 냄새를 맡았다. 암모니아 냄새가 없다. 항아리에 코를 더 가까이 박았다. 크억!! 순간 깜짝 놀랐다. 빙초산처럼 암모니아성 냄새가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악취가 아니라 향취인 걸 보니 제대로 삭혀지고 있었다. 삼림욕을 한 듯 시원한 느낌에 기분이 좋아진다. 됐다! 이 정도면 자신 있게 미식쇼를 열 수 있다.
   
   모든 미식쇼에는 열정을 담고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홍어를 주제로 한 미식쇼는 더욱더 신경이 쓰인다. 그동안 제대로 삭히지 않은 홍어를 맛보고 생긴 부정적인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명감까지 있으니 말이다. 또한 홍어를 자주 즐기는 분들의 높은 기대치까지 만족시켜야 하니 부담감도 상당하다. 그렇지만 나는 정성을 다해 삭혔고 삭힌 홍어는 나의 미각까지 만족시켰으니 자신감은 있다.
   
   먼저 홍어회다. 술 품평을 할 때 3박자는 색, 냄새, 맛이다. 홍어도 3박자가 맞아야 좋은 홍어다. 홍어다운 때깔, 박하 향처럼 시원한 암모니아 냄새, 차진 식감과 단맛의 여운은 여태 먹었던 홍어와는 다르다. 한 점씩 음미하던 참석자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왜 다른 집에서 먹은 홍어는 짜죠?”
   
   “냉동이기 때문에 수분이 너무 과하게 빠져서 짠 겁니다. 육질도 퍽퍽하고요. 때문에 그런 홍어는 소금이 아니라 초장에 찍어 먹는 게 나은 편이죠. 산미는 염도를 잡아주니까요.”
   
   이어지는 요리는 병어초무침이다. 병어를 손질해서 소금에 4시간 묻어 놓았다. 요게 바로 병어초무침 맛을 살리는 핵심 과정이다. 이렇게 수분을 빼면 비린내는 싹 사라지고 육질은 쫀득쫀득 차진 식감이 된다. 육질에 소금 간이 가미됐으니 보다 깊은 맛을 낸다. 새콤매콤한 병어초무침에 홍어회의 맛이 씻겨 나갈 즈음 홍어찜을 냈다. 구멍이 뚫린 찜통 바닥에 홍어를 바로 놓지 않고 그릇에 담아 찜통에 찐다. 그렇게 하면 홍어의 육즙이 밑으로 빠지지 않는다. 홍어의 깊은 맛을 오롯이 느낄 수가 있다. 가열된 홍어는 암모니아 냄새가 높아진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힐 수도 있다. 하지만 곧 오감이 시원스레 뚫리는 기분은 산 정상에 선 기분과 맞먹는다. 글을 쓰는 이 순간 홍어에 대한 욕구가 또다시 높아진다. 나에게 홍어는 소울푸드가 맞나 보다.
   

홍어찜 만들기
   

1. 홍어를 꾸덕꾸덕하게 말린다.
2. 양념을 만든다.(고추장, 조선간장 약간, 다진 마늘, 다진 파, 다진 고추, 후춧가루, 참기름)
3. 넓은 그릇에 칼집을 낸 홍어를 담고 양념을 살 속에 눌러 넣는다.
4. 찜통에 온도가 높아지면 홍어를 담은 그릇을 놓고 뚜껑을 닫는다.
5. 40~50분 찐 뒤 불을 끄기 5분 전에 부추를 넣는다.

6. 홍어찜에 고명으로 실고추나 가늘게 채 썬 대파를 올린다.

 

음식스토리텔러·만화가  김용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