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만들기에 마음 뺏긴 패션 전문가
'렛츠 뷔페'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박하사탕이 입 안에서 화~ 하게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얀 벽, 하얀 천장, 하얀 바닥, 하얀 테이블, 하얀 접시… 통으로 된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봄 햇살을 받아 밝은 실내는 온통 환상의 하얀 나라였다. 잠시 후, 하얀 공간에 적응이 되자 재즈 풍의 배경음악이 귀에 들어왔다.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접시를 들고 한 쪽에 가지런히 놓아둔 음식 앞에 섰다. 음식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한 눈에 보아도 하나하나 성의 있게 만든 음식들임을 알 수 있다.
'렛츠 뷔페'의 주요 메뉴는 주인장인 장하라(35) 씨가 직접 홈 메이드 방식으로 만들어낸다. 장씨는 뉴욕에서 패션 경영학을 공부했는데 이때 시내에서 맛본 음식들에 매료되었다. 시간 나는 대로 뉴욕의 유명 식당이나 맛집을 찾아다녔다. 여러 가지 요리를 음미하면서 "만약 나라면 이렇게 요리했을 텐데…" 하고 머릿속으로 재구성하곤 했다.
직접 구운 미트로프, 동서양의 오묘한 맛과 향 스며
단골고객들이 이 집에 끌리는 이유는 정성이 듬뿍 들어간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왔다가 유쾌한 전복을 경험하게 된다. 손님들은 처음엔 그저 ‘7000원짜리 뷔페’로만 알고 식사를 한다. 그러나 차츰 장씨의 홈 메이드 음식을 접하면서 처음의 기대를 상쾌하게 배반당한다.
그 중 대표적인 메뉴가 미트로프. 장씨가 유학시절 뉴욕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기도 하다. 돼지고기를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곱게 갈아 하루 정도 숙성을 시킨 뒤, 식빵 틀에 넣고 오븐에 구워서 익혔다. 얼핏 보면 식빵을 닮았다. 먹어본 후 함박스테이크나 떡갈비를 닮았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식감은 물론이고 맛은 전혀 다르다. 옆에는 양파와 마늘을 다지고 마요네즈와 칠리소스를 넣어 만든 드레싱이 놓여있다.
한 쪽 집어서 드레싱에 찍어 입에 넣으면 포슬포슬하게 부서지면서 독특한 맛과 향이 입안에 퍼진다. 약간 매콤한 듯 하면서 고소한 맛도 느껴진다. 한국적인 맛과 함께 이국적인 향이다. 물론 느끼한 고기 잡내도 없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었는데 몇 번 먹으니 금세 친해진다. 이 향의 정체는 쿠민(cumin, 미나리과의 풀)이라는 씨앗으로 만든 향료다. 먹고 나서 식당 문을 나설 때쯤에는 처음 낯설었던 이 향에 왠지 다시 끌린다.
처음엔 외면 받던 메뉴였던 미트로프를 먹기 위해 이 집을 찾는 손님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렛츠 뷔페'의 메뉴는 당연히 매일 바뀐다. 그러나 일주일에 반 정도는 미트로프를 맛볼 수 있다.
조화와 궁합 고려해 홈 메이드 방식으로 만든 음식들
장씨가 특별히 공력을 들여 만든 토마토 크림소스(스프)는 미트로프와 함께 이 집에서는 빼놓지 말고 먹어봐야 할 음식이다. 스프 자체만 먹어도 깊고 고소한 풍미를 즐길 수 있지만 파스타나 다른 마른 음식과 함께 먹어도 썩 잘 어울린다. 그녀는 당일 메뉴끼리의 궁합과 조화를 늘 염두에 둔다.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상승효과를 낼 수 있는 최적의 메뉴 조합을 찾아낸다. 프로 축구단 감독이 베스트 11을 뽑는 심정으로 말이다.
진한 소스로 졸여내 향과 식감이 남다른 차슈, 전문점 뺨치는 수준의 쫀득함이 일품인 치킨 월남쌈, 닭고기와 양배추에 양파와 마요네즈, 그리고 샐러리를 다져넣어 만든 겨자채 등은 주인장 장씨가 손님 앞에 자신 있게 내놓는 대표 메뉴들이다. 해쉬 브라운, 단호박 파스타샐러드, 감자채 볶음, 어묵잡채, 매요김밥(마요네즈소스 김밥) 그리고 순두부 찌개 등의 메뉴도 둔감해진 미각을 일깨워 준다.
후식용으로 직접 구운 브라우니는 촉촉한 촉감과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뛰어나 몰래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나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커피는 연한 맛과 진한 맛, 두 가지 내려서 미리 준비해두었다. 장씨의 손맛은 한식 중식 양식을 넘나든다. 그중에서도 양식 메뉴와 소스류의 맛은 단연 돋보인다.
일찍 문 닫고 점심시간만 운용
새봄이 되면 그동안 먹었던 묵은 김치와 반찬 대신 새롭고 상큼한 먹을거리가 당기게 마련이다. 그동안 먹었던 음식들이 식상하고 물린다고 생각될 때, 직장 동료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싶을 때, 또는 봄의 탄력을 받고 싶을 때 이 집 음식은 큰 힘이 된다. 무엇보다도 기존 뷔페식당과는 다르게 손맛이 주는 따스함으로 배를 채울 수 있다.
'렛츠 뷔페'는 평일에만 문을 연다. 평일에도 11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 점심시간에만 운영한다. 저녁에는 회식이나 세미나 등 각종 모임의 예약을 받아 운용하는데 예약이 없으면 일찍 문을 닫는다. 비록 많은 수익을 얻기 어려운 구조지만 주인장은 내일 점심에 내놓을 음식을 구상하는 것이 즐겁다며 웃는다.
글·사진 제공 : 월간외식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