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 삶 웰빙

소리 없는 비명, 발 변형 질환

힉스_길메들 2008. 11. 25. 01:47
무지외반증, 소건막류, 단지증 등 족부질환… 발 변형 부르고 다른 관절에도 악영향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본사를 둔 사우스웨스트 항공사의 여승무원은 발 질환 치료를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같은 지역에 있는 아메리칸 항공사의 여승무원은 상당수가 족부질환에 시달린다.

근무 중 신는 신발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여승무원의 신발은 운동화지만 아메리칸 항공사의 경우 하이힐이었다.

힘찬병원 족부클리닉 김응수 소장은 족부질환 치료로 유명한 댈러스의 배일러대 메디칼센터에서 정형외과 전문의로 근무하면서 이런 차이점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과 프랑스, 스위스에서 정형외과 연수를 받았으며 미국 족부관절학회 등 국내외 족부관절학회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흔히 ‘하이힐’이라고 불리는 높은 굽의 구두는 다리를 본래보다 날씬해 보이게 해 ‘7cm의 미학’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다. 또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을 긴장시켜 ‘힙 업(Hip Up)’의 효과도 낸다.

하이힐은 발 건강을 해치는 주범이다. 직업상 매일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은 여러 가지 발 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사람들은 의외로 발 건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발은 생각보다 중요한 기관이다. 발은 심장으로부터 공급받은 혈액을 심장으로 돌려보내 주는 펌프작용을 한다. 또 걸을 때 충격을 흡수해 무릎이나 발목 관절을 보호해준다.

○ 방치하면 발목과 허리에도 악영향

사람이 서 있을 때 체중을 지탱하는 발 부위는 무엇일까? 바로 엄지발가락이다. 엄지발가락 하나만으로도 발이 하는 역할의 50%는 거뜬히 해낼 정도다.

엄지발가락이 안쪽으로 휘는 질환을 ‘무지외반증’이라고 한다. 옛날 어머니들은 버선 때문에 이런 발 질환이 주로 발생했다고 해서 ‘버선발 기형’이라고도 불린다.

발병은 대부분 20대에 시작된다. 하지만 이를 질환으로 인식하고 치료받는 환자는 40대와 50대가 많다. 젊었을 때는 발 변형이 심하지 않고 통증도 간헐적이라 심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중년이 되면 오랫동안 고통받아온 발이 점차 굳어지면서 다른 발가락에도 변형이 생길 수 있다. 자연스럽지 못한 보행습관이 생기면 자세가 나빠져 발목이나 무릎, 허리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서울 목동 힘찬병원 족부클리닉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무지외반증 수술 사례는 1071건이었다. 이 가운데 10대와 20대 환자는 9%에 불과했다. 40대가 25%, 50대가 34%로 중년이 대부분이었다.

무지외반증 수술은 튀어나온 뼈를 깎고 기형적으로 휘어진 부분을 정상적인 모양으로 되돌려준다. 수술은 30분가량 걸린다.

모양을 되돌린 부분은 핀으로 고정시킨 뒤 한 달 후 핀을 빼낸다. 튀어나온 뼈만 깎아 재발이 적지 않았던 과거 수술법에서 한층 발전한 방법이다.

하루이틀 입원하면 퇴원이 가능하다. 사흘이 지나면 특수신발을 신고 걷을 수 있다. 수술 후 3개월가량은 굽이 높은 신발을 피하는 것이 좋다.

김 소장은 “무지외반증 수술 후 외관상 보기 흉했던 발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통증도 사라져 환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 새끼발가락이 휘는 소건막류와 4번째 발가락이 짧은 단지증

하이힐은 새끼발가락 뼈가 안쪽으로 휘는 ‘소건막류’를 유발하기도 한다. 소건막류는 영국에서 양복을 만드는 재단사(tailor)들에게서 처음 발견됐다고 해서 ‘테일러 신드롬’이라고도 불렸다.

새끼발가락 뼈가 신발에 계속 부딪히면서 엄지발가락 방향으로 휘어지는 것. 방치하면 통증과 함께 무지외반증처럼 다른 발가락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특히 선천적으로 발볼이 넓은 사람들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소건막류는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특수 깔창 같은 교정장치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대개는 수술이 필요하다. 튀어나온 뼈를 절제한 후 엄지발가락 방향으로 뼈를 살짝 밀어주는 수술이다.

‘단지증’은 손가락이나 발가락 중 하나가 선천적으로 짧은 증상. 대개 손가락보다 발가락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중에서도 4번째 발가락이 짧은 경우가 흔하다.

단지증은 미관상의 문제뿐 아니라 기능상 문제도 일으킨다. 4번째 발가락이 기형적으로 짧아 나머지 발가락들이 넷째 발가락의 빈 공간으로 휘어지는 변형이 생기기 때문. 심리적 위축도 무시할 수 없다. 단지증 환자들은 여름철에도 슬리퍼나 샌들을 신지 않고 콤플렉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단지증은 고정기구를 이용해 4개월 정도 뼈를 천천히 늘려주는 방법이나 골반 뼈를 잘라내 짧은 발가락에 이식하는 방법으로 치료한다. 고정기구를 이용한 수술법은 치료가 끝날 때까지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는 불편함이 따른다.

골반 뼈 이식술은 회복기간이 고정기구를 이용한 치료보다 3분의 1쯤 단축된다. 수술 후에는 특별한 이상이 있지 않는 한 병원을 방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국내에는 골반 뼈를 이식해 단지증을 치료하는 병원이 많지 않은데, 이 시술을 하는 병원 중 하나가 목동 힘찬병원 족부클리닉이다.

○ 발 기형은 건강보험 대상

발 질환은 대부분 발 기형으로 분류돼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보험에서도 치료비를 받을 수 있다. 발 변형이 심하고 통증이 계속되면 하루빨리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김 소장은 “나이 드신 어르신들 가운데 아직도 발 질환에 대해 무지한 분들이 많다”면서 “간단한 수술로 완치가 가능한 만큼 자녀들은 부모님의 발을 한번쯤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