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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여름철 진주에서 즐겨 먹었던 '육칼국수'

힉스_길메들 2014. 6. 18. 00:01

서울 양재동의 서민 식당, < ;예가 > ;의 주인장 백순자(60) 씨는 진주 사람이다. 그녀는 난생 처음 지난 2월에 새로 식당을 연 초보 사장이다. 처음에는 이 집도 수없이 사라졌다 생기길 반복하는 회사 주변 밥집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별 기대감 없이 가서 점심시간에 육칼국수(육개장 칼국수)를 먹었다. 그런데 단순히 육개장 흉내만 낸 초보의 맛이 아니었다. 얼렁뚱땅 맛을 내 혀끝에만 아부하려는 요즘 흔해빠진 얄팍한 음식이 아니었다. 더구나 현대식 육개장 국물 맛의 핵심이라는 화학조미료의 그림자가 전혀 없었다.

경남 진주 친정 어머니의 육개장 조리방식 그대로

식당 규모로 보아 전 과정을 직접 조리하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반제품 육수를 구입해 괜찮은 나물과 장류 정도 장만해 사용했을 것으로 짐작했다. 그런데 예상이 한참 빗나갔다. 재료구입과 육수 내기는 물론, 조리 전 과정을 백씨가 직접 담당했다. 그녀의 조리법은 시중의 다른 식당이나 조리학원 레시피와는 뿌리가 달랐다. 어렸을 적부터 먹어왔던 친정어머니의 육개장칼국수 조리법 그대로다. 특히 조미료를 넣지 않는 것은 원래 모친의 조리법도 그러했거니와 조미료를 입에 대지 못하는 백씨의 개인적 입맛 특성이 반영되었다.

경남 고성에서 진주로 시집와 평생을 살았던 모친의 손맛을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이다. 여염집 부엌 밖으로 나오기 이전, 즉 외식업소에서 상업화되기 전 진주 지방 육개장의 원형을 추정해 볼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럼에도 이른바 서울식 육개장처럼 고기를 찢어서 넣기도 해 흥미롭다. 백씨 모친은 손이 크고 손맛이 좋았다고 한다. 생전의 모친은 육개장칼국수 외에도 진주비빔밥이나 여러 음식을 솜씨 있게 조리했다는 것이다.

황태 대가리 등 세 가지 육수에 집 간장으로 맛 내

육개장에는 세 가지 육수가 들어간다. 이를 모두 미리 만들어뒀다가 쓴다. 사골 국물, 양지 삶은 국물, 황태대가리 육수다. 이 가운데 들어가는 양으로나 구실로 보아 황태 대가리 육수가 가장 중요하다. 말린 코다리에서 떼어낸 걸 쓰기도 하는데 제 맛이 안 난다고 한다. 백씨가 진짜 황태 대가리임을 확인시켜줬다. 황태 대가리에 무, 멸치, 다시마, 고추씨, 마늘, 파뿌리, 양파 등을 넣고 끓여낸다.

미리 준비해둘 것은 육수만이 아니다. 건더기인 토란대와 고사리를 미리 갈무리해두어야 한다. 토란의 아린 맛과 고사리의 쓴맛을 빼기 위해서다. 무와 양파, 고춧가루, 된장과 간장을 넣고 간이 배도록 잘 버무려둔다.

육수와 건더기가 준비되었으면 제일 먼저 고추기름을 만든다. 고춧가루, 마늘, 생강을 센 불에서 볶다가 건더기를 넣고 계속 볶는다. 5분 정도 볶다가 세 가지 육수를 함께 넣고 끓인다. 끓이기 전에 간장과 된장을 체에 밭쳐 풀어 넣는다. 간장과 된장 모두 집에서 담근 장이다. 된장은 고추씨를 섞은 집된장이다. 특히 간장은 3년 정도 묵힌 것으로 짠맛이 순화되어 살짝 단맛이 감돈다. 주인장은 식당 개점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좀 더 넉넉히 담갔을 텐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한다.

장이 들어간 국물이 어느 정도 끓으면 느타리버섯을 푸짐하게 넣고 더 끓인다. 이렇게 끓이면 차츰 국물이 맑아진다. 펄펄 끓고 나면 마지막으로 대파, 매실액과 함께 미리 손으로 찢어놓은 양지(호주산) 살을 넣어 완성한다. 한우가 아니어서 아쉽지만 가격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양지는 육수를 낼 때 미리 익혀둔 것이므로 더 익히지 않아도 된다. 거의 육개장이 완성될 무렵 칼국수 면을 삶는다.

지리산 고사리 등 양질 식재료 구하고 정성으로 끓여

끓인 육개장은 조합에 따라 몇 가지 메뉴가 된다. 육칼국수(6000원)는 육개장을 만든 뒤 삶은 칼국수 면을 넣은 형태이고 수제비를 넣은 육수제비(6000원)가 있다. 치즈떡볶이와 만두를 추가로 넣고 전골로 끓여낸 육칼국수전골(2인 1만4000원, 4인 2만8000원)과 육수제비전골(2인 1만4000원, 4인 2만8000원)도 메뉴화 했다. 육칼국수와 육수제비는 단품 식사 메뉴, 육칼국수전골과 육수제비전골은 여럿이 함께 식사와 안주로 먹을 수 있다.

예전 주인장 모친은 비싼 소고기 대신 닭고기를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커다란 솥에 잔뜩 끓여서 이웃 친척들을 불러다가 함께 푸짐하게 먹었다는 것이다. 더운 여름철이면 보양식으로 즐겨 먹기도 했다고 한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저마다 받아 든 국그릇에 수저를 가져갔을 이웃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국물은 칼칼하지만 자극적 매운 맛은 아니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조미 육개장 특유의 감칠맛은 덜 하다. 그러나 천연 재료에서 우러난 국물 맛이 억지스럽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화장발 없는 육개장 본연의 맛이 이건가 싶다. 화려하진 않지만 다채로운 맛이 얼큰한 맛으로 편안하게 귀일한다.

이 편안한 맛은 식재료의 공이 크다. 소고기가 호주산인 것만 빼고는 모두 국내산이다. 주인장 백씨가 연줄이 닿는 사람들에게 구입해 출처도 비교적 분명하다. 특히 고사리는 경남 산청에서 가져온다. 바로 남명 조식의 학문과 의기를 품어낸 지리산 덕산 계곡 고사리다. 왕에게도 굽히지 않고 바른 말을 했던 남명의 꼿꼿함이 덕산 고사리와 오버랩 된다. 그런가 하면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먹으며 죽어간 백이숙제의 꼿꼿함도 떠오른다. 중국산 고사리는 결코 쓸 수 없다는 백씨도 곧은 고사리를 닮았다. 펄펄 끓는 국솥에서 국자로 육개장을 뜨는 모습은 우리네 어머니와도 닮았다.

< ;예가 > ; 서울시 서초구 언남 11길 34-12 (02) 529-4248
기고= 글 이정훈, 사진 변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