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에게는 차를 덖고 마시는 일, 밥과 찬을 만들고 먹는 것이 모두 수행의 한 과정이다. 공양간에서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자신과 남을 위해 도를 닦는 일이다. 절집 살림에서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하다. 선재 스님은 사찰음식에 정진해 일정한 경지에 오른 분으로 유명하다. 서울 < ;쌍문역또와유 > ;의 안주인은 선재 스님으로부터 사찰음식을 사사하길 어느새 4년째다. 처음에는 취미 삼아 배웠는데 최근 명태요리 전문점을 내고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손맛에 환호하는 손님을 보며 그녀는 요즘 얼떨떨해 한다.
너른 바다 누빈 기억들 촘촘하게 박힌 명태 살
< ;쌍문역또와유 > ;의 주인공은 명태다. 속초에서 말리고 손질한 러시아산 명태를 고춧가루와 청양고추, 특제 소스로 양념해 조렸다. 이렇게 탄생한 속초명태간장조림(2인 2만6000원, 중 3만5000원, 대 5만원)은 구수한 명태 살, 특유의 불맛, 톡 쏘는 매콤함으로 밥은 물론 소주를 부른다. 말릴 때, 해동시킨 명태의 배를 가른 뒤 아가미를 깨끗이 제거해 꼬리꼬리한 냄새가 없다.
먼저 향 좋은 완도산 김을 펼쳐놓는다. 밥을 조금 떠 넣고 명태 살을 얹는다. 그 위에 조림 속 청양고추 한 쪽 찾아 넣고 콩나물을 올린 뒤 김을 싸서 먹는다. 입으로 밀어 넣고 우물거리면 제일 먼저 입 전체에 완도 김의 향미가 퍼지고 목구멍 쪽에서 청양고추의 알싸한 매콤함이 올라온다. 잠시 후 여기에 감칠맛 나는 명태 맛이 가세한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소주를 한 병 더 주문하게 된다.
맛도 맛이지만 명태는 씹는 맛이 일품이다. 꾸덕꾸덕한 명태 살이 송곳니에서 부서져 어금니를 거쳐 혀로 가기 직전,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서 최대치가 되는 쫀득쫀득한 치감은 명태를 먹는 첫 번째 이유다. 소주가 한 병쯤 위장에서 파도 칠 무렵, 오현명 선생의 굵고 묵직한 '명태' 한 가락이 그리워진다.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양명문 시 '명태' 중에서)
끝도 없이 검푸른 바다. 그 찬물의 수평선 아래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맘껏 헤엄쳤을 명태. 뭍에 갇혀 사는 인간이란 동물은 애당초 꿈도 꿔보지 못한 망망한 자유. 아무 걸림 없이 오갔던 숱한 바다의 기억들을 명태는 제 살에 차곡차곡 쌓았을 것이다. 명태 살이 씹을수록 쫀득한 것은 그 때문이다. 압축시켜놓았던 그 많은 바다의 체험과 기억과 자유의 파일이 우리 입 안에서 해제된다. 그 감동들을 시인인들 어찌 다 감당해내랴.
두부강정 등 승속 아우르는 개성 만점 반찬들
상차림을 보면 마치 부처님과 10대 제자들 같다. 커다란 명태조림 쟁반을 호위하듯 둘러싼 10가지 반찬 모습들이 심상하지 않다. 사실 이 집 음식의 백미는 주인공인 명태조림보다 조연 격인 반찬에 무게중심이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무리 위대하고 엄청난 것이라고 해도, 그 제자들이 올곧게 뜻을 받들어 기록하고 전하지 않았다면 아무 소용없었을 것이다.
빼어난 명태조림 맛도 10대 반찬이 가세하니 그제야 진미가 드러난다. 어떤 이는 오히려 반찬이 주 요리보다 났다고도 한다. 명태로서는 자존심 상할 말이지만 과히 틀린 말도 아니다. 명태조림 먹으러 왔다가 반찬만 먹은 뒤 미안해하는 얼굴로 명태조림은 싸달라는 손님이 가끔씩 나온다. 반찬의 수효도 많지만 찬 하나하나가 모두 일품요리에 버금간다. 넋 놓고 찬들을 이것저것 먹다보면 주 요리인 명태조림엔 손도 못 대보고 일어서야 하는 상황이 온다.
이들 찬류들이 바로 이 집 안주인이 선재 스님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만든 것들이다. 그녀는 제철 나물은 음식이자 보약이라고 믿는다. 계절마다 그 때에 먹어야 할 재료를 음식에 모두 담아내려고 한다. 그래서 < ;쌍문역또와유 > ;의 밥상엔 제철 반찬이 풍성하다. 강하지 않은 사찰 음식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윽한 맛을 느끼듯 가급적 튀기지 않고 찌고 삶고 무쳐낸 찬이 많다. 반찬은 계절과 날에 따라 늘 바뀐다.
상 위에 오른 반찬을 몇 가지만 어림잡아 보자. 파삭한 햇감자에 입 안 가득 부서지는 감자볶음, 여간 해서 먹기 힘든 상추전, 식사 전 제일 먼저 줄어드는 노가리무침, 들기름에 구워낸 가지와 호박구이, 들기름과 들깨 가루로 무친 취나물, 집된장과 들기름으로 볶은 우거지, 우엉이 들어가 씹는 맛이 좋은 잡채, 청고추에 콩가루를 묻힌 뒤 쪄낸 고추찜, 양파 진액으로 담금 갓김치와 열무 얼갈이 김치, 입을 헹궈주는 오이 피클 등등. 그 중 사람들의 젓가락이 유난히 많이 가는 반찬은 두부강정이다. 두부에 녹말 전분을 입혀 튀긴 후 소스를 발랐다. 매콤하면서 달달한 맛인데 씹을수록 파삭하고 아삭하다. 본래는 매운 맛이 없었지만 사바세계에 적응하면서 매운 맛을 얻은 음식이다. 승과 속의 맛을 아우른 반찬이다.
이 집 주인장 송은주 씨는 흔히 말하듯 취미가 직업이 되어버렸다. 총을 가지면 쏴보고 싶고 말을 기르면 타보고 싶어진다. 좋아서 시작한 사찰음식 배우기를 오래 하다 보니 식당을 차렸는지도 모르겠다. 식당을 낸 이상 그녀도 이익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송씨는 돈만 벌 욕심은 없다. 크게 손해만 보지 않는다면 사람 몸에 이로운 맛난 음식을 맘껏 자랑 삼아 선보일 욕심에 가득하다. 아, 그것도 업이고 집착일까?
< ;쌍문역또와유 > ; 서울시 도봉구 도봉로 476, (02)908-1141
기고= 글,사진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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