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다시 한 번 '행복한 죽음'을 생각했다. 암 진단 후 항암치료를 마다하고 평소 꿈꿔온 북미 대륙 횡단여행에 나섰던 91세의 미국 할머니가 1년여의 여정을 마치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접하고서다. 그는 병석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대신 아들과 며느리, 반려견과 함께 캠핑카를 타고 진정한 행복을 찾아 떠났고 32개 주 75개 도시를 돌아다니다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는 할머니의 선택을 존중하고 함께한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누구든 어느 날 갑자기 질병이나 사고로 죽음에 맞닥뜨릴 수 있다. 시한부 삶을 통보받았을 때 과연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생의 마지막 순간에 병원에서 의미 없는 치료나 검사를 받기보다 스스로 선택으로 인간답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일 것이다. 막상 나라면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요즘 서점가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은 작은 용기를 준다. 미국의 서른여섯 살 젊은 의사 폴 칼라니티는 죽음을 맞이하는 한 인간의 의연함을 보여준다. 전문의를 앞둔 신경외과 레지던트인 폴은 어느 날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후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2년을 기록으로 남겼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계속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말한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순회 방문객과도 같지만, 설사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180쪽)
결국에는 레지던트 과정 수료를 앞두고 암이 급속도로 악화해 의사의 길을 접고 말았지만 그는 암을 선고받고도 쉽게 외과 의사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딸이 태어난 지 8개월 후 그는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맑은 정신으로 사랑하는 가족 품에서 편안하게 숨을 거둔다. 그의 마지막과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그는 아내에게 호흡보조장치를 떼고 진통제 모르핀을 맞으며 생을 마무리할 준비가 됐다는 뜻에서 "난 준비됐어"라고 말한다. 가족들이 그의 병상 주변에 모였다. 마지막으로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아내에게는 사랑한다는 말로 이별했다. 그 후 입에서 호흡보조장치가 제거되고 모니터가 치워졌다. 모르핀이 정맥 주사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그는 의식을 잃었다.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려면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등 일부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사전의료의향서 쓰기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 대비해 생명의 연장과 특정치료 여부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서면으로 미리 표시해두자는 취지다. 죽음에 대한 자기 생각을 미리 밝혀두지 않으면 나중에 의사나 가족들이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누구나 죽을 때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편안하게 가족에게 둘러싸여 작별하고, 가족에게도 경제적 부담을 적게 주고 떠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병원에서 임종 직전까지 심폐소생술과 고가항암제 등의 연명치료를 받다 보면 막대한 치료비용이 발생해 남은 가족들은 큰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된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2009~2013년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44곳을 이용한 건강보험 암질환 사망자를 조사해 보니, 숨지기 전에 대형병원에 한 달간 입원해 검사·약물·수술 등 각종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받다가 사망한 말기 암 환자는 1인당 평균 약 1천400만 원의 건강보험 진료비를 쓴 것으로 추산됐다(연합뉴스 2016년 8월 14일 보도)는 연구 결과가 있다.
품위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법적 토대도 뒤늦게 마련됐다. 올해 2월 임종을 앞둔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호스피스 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일명 웰다잉법)'이 공포됐고, 2년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 2월 시행된다. 이 법에 따르면 환자가 자기 뜻을 문서로 남겼거나 가족(배우자, 직계비속, 직계존속) 2명 이상이 평소 환자의 뜻이라고 진술하면 의사 2명의 확인을 거쳐 연명치료가 중단된다. 연명치료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을 말한다. 연명치료를 안 해도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공급을 중단해선 안 된다.
한 달여 전에 고향에 있는 형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만일의 경우 연명치료 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6남매의 의견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아흔을 넘긴 나이에 편안하게 가시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과 평안하게 이별하는 게 당신에게 덜 고통스러울 것이라 여겼다. 나중에 그런 상황이 실제 닥치더라도 후회하지 않으리라.
<논설위원>
bo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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