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륜에 몸 싣고

태백~두문동재(싸리재)~고한~만항재~화방재~태백

힉스_길메들 2009. 5. 24. 18:49

 

 태백의 새벽, 산간벽지지만 새벽만큼은 활기차고 신선하다. 모텔의 방들도 새벽을 여는 소리가 부산을 떨고 있다. 이불속에서 꿈지럭거리다가 am6시가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반구정을 깨워 식당으로 향한다.

이곳 태백준령 위에서는 언제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는 듯 하다. 어제 나린 비가 있어 맑고 푸르름을 기대했건만 회색빛의 을씨년스런 하늘은 노전대통령의 죽음만큼이나 암울한 느낌이다.

새벽녁 태백산행에 나서는 등산객들을 맞이하는 식당을 찾아 황태해장국으로 조반을 마치고 터미널에서 예매한 버스표를 1시간 앞당겨 pm3시차로 표를 바꿔서 07:40분 길을 되돌아 화전사거리로 향한다.

 

 버스터미널을 떠나 약5km 거리의 추전역앞 옛구도로로 들어서고 하늘아래 첫 철도역사인 추전역은 아직도 옛 명성을 그대로 간직하였으나 예전처럼 화물이 없어 한가롭기만 한 가운데 제천을 떠나 사북, 고한을 지나 태백산백을 가로지른 황지터널을 통과한 뒤 기지개라도 켜려는 듯 기적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추전역으로 화물열차가 긴 꼬리를 끌며 들어선다.

 

 옛 국도는 새로운 길을 내며 차단기를 설치하여 통행을 제한하는데 이유인즉 위와 같이 도로가 낙석과 토사가 방치된채로 황량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나 그래도 이런 길이라면 인적도 차량도 없이 나홀로 전세낸 듯 싶다.

 허지만 잠시후 이러한 길이 약 1km여를 산허리를 돌아 간 뒤에는 고한을 떠나 두문동재터널을 통과해 태백으로 들어서는 도로와 만나 길이 없어지고 말기에 할 수 없이 역주행을 감행해서 약 1km 정도 진행하니 또다시 예전의 도로와 만나 정상으로 오르게 된다.

 

 두문동재 즉 싸리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태백사람들이 추전역을 지나 싸리재골을 통해 고한으로 가는 국도이기에 고개 이름을 싸리재라 부른 듯 싶다.

두문동재를 오르고 또 오르며 굽이 돌고 또 돌아서 얼마쯤 가니 쉼터가 있길래 예전에 사용하다 폐가 휴게소인가 의아심을 갖는다.

 

 샘터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을 뿐 아니라 지난 09'04월에 수질검사를 하여 식수에 적당으로 판정한 샘물일뿐아니라 화장실 또한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어 아무리 혼자라도 험악하게 사용하기가 곤란하리라 여긴다.

여기서 잠시 쉬려는데 산마니 차림의 사람을 만나 약초를 캐시냐 물으니 낙동강발원샘인 금대샘의 정비를 위해 산에 오른다며 샘물을 마신 뒤 서둘러 위로 향한다.

 

 샘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업힐을 하는 중에 위의 이정표를 만난다.

 

 

 두문동재를 이렇듯 돌고 돌아서 지금에 이르니 태백을 떠난 지 두시간이 가까워진다.

 

 두시간만에 드뎌 두문동재에 올라선다. 약12km의 거리를 두시간에 걸쳐 오르고 또 올랐다. 이렇듯 령을 오를 때 마다 생각나는 시구는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는 시구가 절로 뇌리를 때린다.

강릉에서 오른 삽당령이 그렇고 삼척에서 시작한 댓재가 그랬으며 두문동재가 그렇다 그중에서는 두문동재가 제일로 수월하다. 그것은 태백이라는 고지에서 시작되는 길이기에 그런것이다. 그래도 두문동재는 해발 1268m로 서울의 북한산과 도봉산을 세워 놓은 높이의 엄청난 고도이다.

 

 돌무더기 뒤로 태백산쪽으로 대간길 들머리/날머리이다.

 

 민족의 꿈, 백의민족의 상징 백두산으로 향하는 대간의 금대봉쪽 들머리로 입산하는 등산객이 입산기록을 하고 있는 모습과 안양산악회에서 새벽녁에 출발하여 이곳에서 찌개를 끓여 식사를 하시는 가운데 소주한잔을 얻어 마시고 곧 다운을 한다.

 

 두문동재에서 은대봉을 거처 함백산을 넘어 만항재까지의 대간 등산로 안내판이다.

 

 고한쪽으로 두문동재를 넘어서면 함백산휴게소가 자리하고 있는데 많은 등산객들이 버스에서 내려서고 있다.

두문동재에서 태백쪽의 경사도는 완만하지만 고한쪽의 경사도는 급한 내리막으로 되어있어 상당히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태백에서 두문동재를 오를 때 역주행을 하여야 했기에 화방재를 거쳐 고한에서 두문동재를 올랐으면 어찌 하였을까? 행여 오르다 잔차를 끌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첨언하건대 역주행을 한 사실은 무모한 짓으로 누구라도 이곳 라이딩을 계획한다면 화방재~만항재~두문동재로 돌아야 한다는걸 명심해야 할 것이다.

 

 두문동재에서 윈드자켓과 마스크을 한 뒤 약6.5km여를 다운하고 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상갈래삼거리로 [414]지방도로 정암사/만항 방면으로 좌회전하여야 한다. 여기 삼거리에 마트가 있어 잠시 급구배의 긴장을 풀기위해 애마에서 내려 음료수로 긴장을 푼다.

애마에 올라타고는 정암사쪽으로 오르막을 오른다. 고한과 사북의 탄광은 산업성장기에 우리나라의 산업역꾼인 불루칼라가 아닌 불랙칼라들의 애환이 서린 곳으로 그네들이 살던 곳으로 한때는 돈과 술, 여자들이 넘쳐 나던곳이 탄광산업이 사향길로 접어들며 그들이 떠난 지금은 방치되 페허가 되어 있다.

 

 저기 보이는 저 괴물이 돈과 술 그리고 여자들을 만들어 냈던 물건이고 그 앞으로 흐르는 하천은 쇠물이 묻어나 시뻘건 탁류를 형성하나 예전에는 지금은 초등학교인 국민학교 학생들이 시냇물을 그릴 때는 시커먼 석탄물을 그렸다는 웃지못할 이야기를 들려 주는 듯 괴괴하게 흐르고 있다.

 

 이렇듯 외딴 산속에도 초목 사이로 스레트지붕의 초라한 가옥이 황당그레 지어져 있으나 아름다운 숲과 초라한 가옥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상갈래삼거리에서 약2km거리에 있는 정암사입구. 일주문앞 정암사연혁에 대하여 외국인을 세워놓고 설명을 하시는 중년의 신사옆에 반구정도 연혁을 들여다 보고 있다.

 

 자장율사께서 창건하셨다는 정암사는 수마노탑과 부처님진신사리로 유명하다.

  

 태백산정암사 일주문안으로 들어서니 여느 사찰과는 다르게 사천왕상이 안보인다.

 

 

 앞에 보이는 절집이 공양간으로 부엌에서는 점심준비가 한창이고 산꼭대기 위로 뾰족하게 첨탑이 보이는 탑이 수마노탑이다.

 

 정암사수마노탑에 대한 설명이다.

 

 이번 여행길은 갈지자로 오르고 또 오르며 이리저리 굽고 또 굽은 길을 돌고 돌아가는 물레방아 인생같다.

 

 수마노탑으로 오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인생에서도 어려운 일들이 산재해 있고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가야 뜻을 이룰 수 있으리라 고진감래란 말이 실감난다.

 

 수마노탑의 첨탑에서 무한한 인생무상을 엿볼 수 있을것 같은데 여기까지 오느라 애쓴 반구정의 지친 모습에 손끝이라도 잡아 주고싶은 마음이 굴뚝같것만 한가롭게 애정타령을 할 여가가 없다.

 

 수마노탑에서 바라본 정암사 전경

 

 정암사 아래의 만항재길 끝머리 산자락 넘어 산업의 역군들인 광부들의 애환이 서린 고한동리가 자리하고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 관세음의 끝없는 가피로 불쌍한 중생들을 보살펴 주소서

 

 법당앞에 하늘나리꽃이 함초롬이 오가는 불자와 관광객 그리고 산골바람까지도 따스하게 맞이하고 있다.

 

 법당에서는 사시예불을 드리는데 불상이 없다. 수마노탑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여 적멸보궁이라 하며 이곳에 찬배한다.

 

 적멸보궁^^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

 

 고색창연한 법당 그 법당에서 예불을 드리려 하였으나 법당이 비좁아 들어가시지 못하고 밖에서 찬불하는 보살님덜

 

 정암사를 창건하시고 수마노탑을 세운 증표로 자장율사께서는 당신의 주장자를 꼽아 신표로 삼았데 후일 여기서 뿌리가 나리고 싹이 돋아 이렇듯 자란 측백나무

 

 율사의 주장자임에 선사의 혜안을 뵙는 듯 따사롭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 나무

 

 하늘아래 첫 동네인 만항마을이 함백산 아래에 살그머니 자리를 틀고 앉아 은근과 여유 그리고 정감을 주고 있다.

 

 만항마을의 전경이다. 등산객과 만항재를 오가는 길손들에게 함백산에서 채취한 산나물을 팔며 척박한 논밭에서 채소를 가꿔 생활하고 계신다.

 

 왼편으로 보이는 백운산 너머로 하이원리조트가 자리하고 강원랜드가 있어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한 사북고한의 생활상에도 많은 변화가 따랐다.

 

 함백산 산정에 레이더기지가 있어 첨탑이 오가는 산객들의 방향타가 된다. 

 

 여기서 직진하면 함백산정상과 국가대표태백트레이닝센터로 갈 수 있고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 반구정이 가는 방향으로 돌아서면 만항재 정상에 다다른다.

반구정의 모습이 오른 전나무 사이로 살짝이 보이고 있다.

 

 

 

 태백선수촌으로 들어가는 길이 선명한 가운데 여러명의 런닝맨들이 만항재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캐리어를 부착하여 싸이클을 매단 승합차는 그들의 뒤를 살금살금 따르고 있다.

 

 여기가 대간의 마루금. 만항재에서 혼재된 마루금은 다시 요로코롬 능선길을 만들었다.

 

 드뎌 만항재이다. 두문동재의 1268m보다 무려 62m나 더 높은 곳에 존재하는 하늘아래 령, 재, 치중 대한민국에서 최고 높은 곳에 존재하는 고갯길이다.

높이 올랐다는 자부심도 그렇지만 하늘아래 이르러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의 능선길을 한땀한땀 걸어 이곳을 지나 설악산진부령 그리고 그를 넘어 향로봉에 다다를 때도 느끼지 못한 희열을 지금 이순간 환희에 젖은 나는 나른함으로 노곤하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만항재표지석 양끝 날개 사이로 함백산의 레이다 송신탑이 보였건만 사진촬영을 부탁하는 어느 사이에 구름속에 몸을 숨기고 나그네 길 떠나기만을 재촉하고 있다.

두문동재에서 약 6.5km여를 내려서서 고한의 상갈래삼거리를 돌아 약 9.5km 정도를 올라서니 하늘아래 첫 고개인 이곳 만항재다.

 

 만항재는 정선땅, 태백땅에 존재하는 화방재를 향해 길을 잡으며 반구정에게 물젖은 길을 조심하라는 말을 전하니 아내는 오히려 나보고 조심해서 따라 오란다.

태백산과 함백산의 넘어 동해로 빠져 나가는 구름들이 높은 산능선에 걸려서 비를 내린 뒤라 길이 질퍽하게 젖어 물방울이 뒷자락을 적신다.

 

 저 멀리 태백산의 모습이 보이는 가운데 산자락을 끊고 길을 만들어 화방재에 다다를 즈음 어디에 어평마을이 있을 것이다.

이 어평마을로 인해 태백사람들이 두문동재를 싸리재라 부르듯 화방재를 어평재라 부르고 있다.

 

 만항재에서 한참을 내려섰는데 앞에 산자락을 뚫고 아름다운 펜션이 자리했길래 사진촬영을 하고보니 펜션이 아니라 방갈로식의 장산콘도다. 만항재와 화방재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장산콘도를 지나 한참을 다운하니 오른편 계곡 사이로 어평마을이 보인다.

 

 만항재에서 약 7km정도 내려서자 (31)국도가 지나는 삼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이 화방재로 왼편길은 태백과 삼척을 오른편은 상중하동을 거쳐 영월로 가는 길이다.

 

 여기 화방재에서도 태백시내까지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다.

 

 태백시 권역의 관광안내도

 예전에 백두대간 종주할 적에 태백산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민박을 한 뒤 함백산으로 오르던 기억이 새롭다.

 

 산모롱이 폴싸인 뒤로 등산로가 나 있는데 태백산 등산로의 들머리요, 날머리이다.

 

 화방재에서 태백시내로 향하는 길은 내리막길임에도 불구하고 앞바람으로 인해 전부기어를 3단에 놓아도 30km/h를 약간 상회할 뿐이다. 당골입구사거리에서 옛추억을 머금고 당골로 오른다.

 

 당골앞 집단시설과 주차장이다.

이곳 당골은 반구정과 내가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태백산의 겨울산행을 하며 요소비료푸대로 엉덩이 썰매를 타고 내려오던 곳으로 반구정이 상당히 즐거워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행여 석탄박물관이라 보고 잊혀져간 사북, 고한의 애환을 느껴볼 요량으로 당골로 왔건만 입장료를 받고있어 발걸음 돌려 식당을 찾아 점심을 먹고는 시내로 향한다.

 

 태백시내 한가운데 있는 황지연못,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버금가는 관광의 명소인 낙동강의 발원지이다.

이곳에서 반구정과 나는 동전 던지를 하며 일년행복, 한달행복, 오늘행복의 과녁에 동전을 투전하나 오늘행복으로 만족을 한다.

 

 심연속같은 시커먼 못 속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솟아 난 물은 이곳을 통해 태백시내를 가로질러 흐르고 흘러 낙동강이 되어 부산다대포에서 대양과 합수된다.

 

 황지라는 표지석이 음각 예서체로 씌여져 좌대위에 올라서서 황지연못에 놀러 오라는 듯 당당하고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어느새 2시반, 공원을 들러볼 시간조차 없이 타이트하게 라이딩을 마치고 터미널에서 3시차로 예매하였기에 서둘러 터미널로 가니 화방재에서 약18km를 진행하였다.

태백버스터미널에서 두문동재~고한~만항재~화방재~태백버스터미널간 총 약 54km를 운행하였다.

 

 태백에서 버스에 올라 얼마를 잤는지 알 수가 없다. 제천 어디쯤인가 휴게소에 들렸는데 화장실가는 것도 귀찮아 눈을 감고 있는데 반구정이 휴게소에 들려 아스께끼를 사서 하나 건네준다. 이를 먹고는 다시 잠속에 빠져 헤메고 있는데 가다서다를 반복하던 버스가 중부고속도 이천휴게소에서 바이패스하려 하였으나 너도나도 이와 같아 날머리가 혼잡하기가 극에 달한 가운데 억지로 빠져나와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어느새 해는 서산에 느엿거린다.

 

 서울의 하늘은 잿빛 하늘이건만 정감이 넘치고 애정이 싹트는 곳이다. 그리고 애환이 숨죽이고 환락이 꿈꾸는 곳이며 절망과 고뇌가 공존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이곳이 나의 삶의 터전이며 머물러야 하는 곳이고 사람과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그러한 인생인 곳이다.

 

 떨어지는 낙조속에 잠실벌을 지나치는데 에고~~~ 이것이 무엇이라요, 강원도 백두대간의 여러고개를 넘나들었다고 시위를 하는 것도 아닐진대 페달이 헛돌고 있다. 안장에 올라 앉은 채로 스프라켓을 살펴보니 체인이 덜렁거리며 따라오고 있다.

 

 공구를 꺼내어 체인을 역고나니 에그머니나 점입가경이라 했나 튜브에 펑크까지 났다. 많고 많은 사자성어중에 점입가경 보다는 금상첨화가 좋을 것을 체인을 역고 튜브를 바꿔 공기를 주입하고 나니 밤은 완존히 깊어 강물속에 잠들었고 이제는 어둠을 질주하며 집으로 고고씽하는 것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