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대충 꾸려서 내려놓고 비무장에 아이젠, 스패츠, 헤드랜턴을 머리에 착용하고 6시에 대피소를 나와 천왕봉을 향한다. 대피소를 나서니 천왕봉 오르는 길이 가파른 가운데 빙판진 눈길에, 어둠 속의 안개, 몰아치는 바람이 앞을 가로 막는다. 장터목대피소의 전광안내판에는 기온 -20℃, 바람이 13m/s란다. 그러면 체감온도는 -40℃가 넘는다. 어마어마하게 추은 날씨이다.(바람1m/s당 -1.6℃강하)
앞서 오르는 산객들의 줄 선 랜턴불빛을 따라 제석봉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고사목이 듬성듬성한 을씨년스런 제석봉이 옅은 안개 속에서 서서히 다가온다. 예전엔 짙은 안개로 인하여 제석봉에서 길을 잃고 헤맨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가드라인을 설치하여 길을 잃을 염려는 없도록 조치를 하였다.
바람에 의해 풀 한포기 없는 듯이 황량한 제석봉은 도벌꾼들의 무분별한 행동에 의해 저질러진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를 맞이한다. 제석봉(1806m)을 돌아 철계단을 내리고 천왕봉을 향하여 진행하는데 어느새 여명이 밝아 랜턴을 끈 채로 진행한다.
통천문을 통과하여 드디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이미니 천왕봉이 저 앞에 모습을 보인다.
천왕봉 정상엔 해맞이를 위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먼저 온 등산객들로 인산인해 입추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대권씨는 지리산행 경험이 있고 해서 초행인 동익씨를 천왕봉 산정에 먼저 오르게 하기 위해 선등 시킨다. 공격조라 칭하면서…….(많은 사람들은 정상에 먼저 오르려 하는데 -_-)
드리어 0700정각 여명으로 희뿌연 천왕봉에 오르니 바위로 된 산정엔 정상임을 알리는 화강암 표지석에 “지리산천왕봉(1915m)”이라 음각으로 써 있고 뒤쪽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라 음각되어 있다. 위로는 백두산 아래로는 지리산이 있어 대간을 이루고 있다.
또한 서쪽 남원의 덕두산(1149.9)~바래봉~세걸산~고리봉(1304)~만복대(1433.4)~성삼재휴게소를 지나 종석대~노고단(1507)~토끼봉~명성봉(1586)~벽소령을 넘어 칠선봉(1556)~촛대봉~천왕봉을 거쳐 산줄기는 중봉(1896)~하봉을 거쳐 쑥밭재~왕등재~밤머리재를 거쳐 웅석봉(1099.3)~수양산을 지나는 소위 지리산 태극능선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지리산 주능선이 서쪽으로 뻗어 있다면 동쪽으로 중봉을 거쳐 써리봉~치밭목산장~무재치기폭포~유평초교~대원사 코스가 처절하리 만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서남풍 바람으로 인하여 이 한 몸뚱이가 동쪽으로 떠밀린다. 바람에 실려 해를 맞이하려는 듯. 바람을 피하여 바위 밑 조금 아래로 자리를 옮겨 동녘을 향해 일출을 기다리니 붉은 지평선은 환희를 몰고 내게로 온다. 여기 지리산에서는 남쪽으로는 산청서천의 중산리 마을이 북쪽으로는 함양마천의 추성동 마을이 산줄기 사이로 나지막이 자리를 하고 있다. 참말로 산수화 같은 아늑한 풍광이 아닐 수 없다.
너를 기다리마! 해야 솟아라! 둥근 해야 솟아라. 검은 대지를 뚫고 불같은 밝은 너의 모습을 보여라. 수많은 인파들이 너를 갈망하며 소리 없는 소망을 말 하리라. 그들에게 모든 소망을 들어 주며 너를 찬양하게 하라.■
10분후에 동녘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지평선 너머로 눈곱 같은 모습을 보인다. 새 희망을 열고 있는 것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환호를 한다. “해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산천을 뒤 흔든다.■■ 천지를 진동하듯 한 이들의 함성이 영원하리라.
우리도 해맞이를 하면서 디카에 사진은 담고 천왕봉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0715분경 봉우리에서 내려선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통천문을 통과하고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제석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에 인간들의 무분별한 오욕을 가슴에 새긴다. 아프리카의 어느 소공화국의 속담에 “자연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후손들의 것을 잠시 빌려 쓸 뿐이다.”라는 말이 있단다.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명심하였음 한다.
0800시 장터목대피소에 내려와 본격적인 산행준비를 하는 중에 대피소 직원으로부터 어디로 가느냐 하여 세석쪽으로 간다고 하니 대피소에 들를 것이냐고 묻기에 보낼 것이 있으면 갔다가 주겠다고 하니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준다. 이것을 배낭에 챙겨 넣고 0825분에 장터목을 뒤로 하고 연하봉을 한 숨에 오르고 오르내리기를 여러 차례 0940분경 드디어 촛대봉에 오른다. 이곳에 오르니 아래쪽의 안부에 세석대피소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앉아 있다.
촛대봉(1703.7m)에 오르니 동익씨가 두리번거리면서 사방을 살피더니 촛대가 어디 있느냐고 조크한다. 해서 내가 날이 밝았으니 촛불 켤 일이 없어 촛대를 치웠노라 대답하며 세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1000시정각 세석대피소에 내려선다. 대피소는 능선에서 남쪽 아래에 자리하고 있어 바람을 피한다. 일행들을 아래층에 있는 취사장으로 내려 보내고 나는 장터목에서의 심부름을 위해 매점의 관리직원에게 문서를 전달하고 취사장으로 내려와 아이젠을 고치고 의복을 정비한 후 1030분 세석대피소를 출발하여 영신봉(1652m)을 향한다. 세석은 남쪽으로는 거림골과 대성골로 내려 설 수 있고, 북쪽으로는 한신계곡을 통해 백무동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세석평전을 펼치는 영신봉은 삼신봉과 능선을 이어 기인들이 주거하는 지리산청학동으로 내려 설 수 있다.
눈은 백설의 세계에 빠져있고, 귀는 뽀드득거리는 환상의 청음을 듣고 달 가듯 길을 가니 1125분에 어느새 칠선봉(1566)에 오르니 주위에 암봉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칠선녀가 하강하여 너울너울 춤을 추듯이 한다. 이곳 이정표에는 벽소령4.3k/세석2.1k, 장터목5.5k, 천왕봉7.2k라 적혀있다.
잠시 쉬면서 기념촬영을 한 후 벽소령을 향한다. 점심을 벽소령대피소에 먹기로 하고는 쉼 없는 걸음을 한다. 시계는 어느새 12시가 넘어 있다. 새벽 5시도 안되어 조반을 먹었기 때문인가 허기지 지고 다리에는 기운이 빠져 나간다.
1220분경 선비샘에 도착하니 샘터는 빙판으로 되어있고 이곳 안내판에는 벽소령대피소에 가뭄으로 인하여 취수가 불가능하니 이곳에서 취수를 하라고 안내 되어 있으나 샘터가 얼어붙어 있으니 무슨수로 취수할 것인가? 그래도 우리에게는 각자의 보온병에 따듯한 물과 1.5L PET병 2통에 물이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이곳 선비샘에서 취수할 요량으로 종주 산행을 계획한 이들은 낭패를 볼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덕평봉 밑을 지나니 낙석으로 인하여 가드라인을 설치한 곳이 있다. 떨어진 돌덩이가 너무도 커서 이를 맞았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저세상 식구가 되겠다 싶다. ☻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벽소령대피소는 산자락을 끊고 길을 낸 희미한 벽소령 길을 보고는 벽소령대피소에 가까이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다. 지루하게 진행하다 보니 드디어 1320분에 벽소령안부에 세워진 대피소에 도착한다. 능선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선 곳에 지워진 이 대피소는 서에서 동으로 향하는 산악회 등산객들이 단체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벽소령대피소 취사장으로 들어가니 취사장 지붕은 남쪽사면으로 플라스틱 차양을 설치하여 여간 따듯한 것이 아니다. 점심을 준비하는데 동익씨 왈 개밥, 꿀꿀이죽을 먹었으니 지금은 소여물을 먹자고 조크한다. 점잔은 대권씨는 깔끔한 식사(북엇국이면 북엇국, 사골국이면 사골국, 육개장이면 육개장)를 원하지만 산중에서의 식사는 으레 잡탕에 개밥(북엇국, 사골국, 육개장에 김치를 넣고 끓이다 햇반을 넣고 데우는)이 제격이라고 응대하고는 점심으로 참치김치라면을 끓여 햇반을 넣고 데운다.
그러면서 이는 깔끔하게 먹는 것이라고 하면서 여기에 옥수수통조림, 초코파이 등도 함께 끓이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한다. 골고루 영양섭취를 위하여…….
점심을 먹고, 날씨가 따듯하고 바람이 없어 입었던 오바트라우져를 벗어 배낭을 정리하고 복장을 정비하고 나니 1455분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하게 된다.
벽소령은 남으로는 군사도로를 따라 의신마을 대성리로 북쪽으로는 음정마을 삼정리로 내려설 수 있다.
입었던 옷을 한 꺼풀 벗어 던지니 싸늘한 한기가 온 몸을 적신다. 형제봉(1442) 오름길에 잠시 걸음을 재촉하니 어느새 한기는 사라지고 몸이 덥혀 지고 있는데 뒤 따르는 동익씨가 숨을 깔딱인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사점이 찾아 온 것이다. 이 사점은 운동량에 비해 산소호흡량이 작아서 오는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을 말함인데 너무 오랫동안 쉬면 이 고통은 사라지겠지만 다시 사점이 찾아와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해서 동익씨에게 사탕을 깨물어 씹어 삼키지 말고 따스한 물을 머금고 조금씩 흘려 넣듯이 하라고 하니 괜찮다고 고집을 부린다. 사실 사점은 갈증도 허기짐도 없다.
그래도 강제로 먹게 하고는 잠시 쉰 후 걸을 형제봉을 향해 옮긴다. 형제봉은 암봉이 두 개가 형제처럼 자리하고 있는 봉우리다. 형제봉에서는 남쪽으로 화개 대성리과 북쪽으로는 마천 삼정리가 고즈녁히 자리하고 뒤쪽으로 천왕봉의 능선이 장쾌하게 앞쪽으로는 반야봉의 두 봉우리가 두드럽게 조망된다.
형제봉을 내려선 후 삼각고지(봉1462)를 오른다. 삼각봉에서는 북쪽 삼정산과 능선으로 이어졌는데 경남과 전북의 도계를 이룬다. 또한 이 능선은 도솔암~영원사~상무암~문주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로 사찰산행을 겸할 수 있는 루트이다. 또한 실상사는 많은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유수의 사찰이다.
이즈음 오르니 동익씨 앞에 가는 내게 빨리 걸으라고 재촉을 한다. 이제부터 동익씨는 걸음이 가벼운 모양으로 사점을 벗어났나 보다.d*o^b
허나 맨 뒤에 따라오는 대권씨 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걸음을 조정하여 간격을 좁히고 삼각봉을 지나니 생태계 보호를 위한 철망으로 울타리를 쳐진 곳을 지나게 된다. 아마도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연하천산장이 나올 것이다.
1630분 드디어 연하천산장에 도착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장터목, 세석, 벽소령대피소에 견주어 하꼬방 같은 초라한 연하천산장을 보니 지리산이 처음인 동익씨 “애걔”하며 탄성을 지른다. 우리가 묵을 뱀사골산장도 이와 같다고 말하니 한숨이 절로인 모양이다. 그래도 연하천산장은 예전과 다르게 취사장도 지어 놓은 것이 많은 공을 들였다.
샘물로 목을 축이니 싸늘한 정월의 따스한 물이 갈증을 가라 앉힌다. 대권씨가 과일이 먹고 싶었는지 벽소령에선가 깐포도통조림 이야기를 해서 이곳 매점에 확인하니 깐포도는 없고 황도통조림이 있어 한통을 구입해 서로 나누어 먹고는 1645분 연하천산장을 출발하여 뱀사골산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명성봉(1586)을 오르고 흔적도 없는 선비샘을 지나고 토끼봉과의 안부에서는 왼편 즉 남쪽으로 의신마을을 거쳐 대성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을 것이나 찾지 못하고 지루한 토끼봉 오름을 계속한다.
가파른 토끼봉 오름에 대권씨가 힘들어하기에 동익씨를 앞세우고 대권씨에 중간에 세우고 후미에 내가 뒤 따라간다. 앞서가던 동익씨가 잠시 쉬고 있기에 같이 쉬려 했더니 훌쩍 떠나가고 만다. 그러면서 자기의 체력을 테스트 한다나 어쨌다나…….
내가 연하천산장을 출발하면서 예전에 노고단산장에서 0640분 출발하여 반야봉을 거쳐 벽소령에서 점심을 먹고 장터목산장을 지나 천왕봉을 등정하고 다시 장터목산장에서 잔 경험이 있다고 한 말에 자기의 능력을 보여 주겠다고????
간식을 먹으면서 잠시의 휴식을 겸하고 길을 걷는다. 해는 어느새 석양을 물들일 시간으로 대권씨의 걸음을 재촉할 양으로 이 봉우리를 오르고 또 하나의 봉우리를 올라야 토끼봉에 다다를 수 있다고 설레발을 친다. 토끼봉에 닿으면 봉우리 아래가 화개재요, 그 밑에 뱀사골산장이 있기 때문이다.
토끼봉(1564)에 오르니 1755이다. 토끼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은 칠불사로 해서 쌍계사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봉우리를 내려서니 동익씨의 모습이 나무틈새로 보이다 말다를 반복한다. 대권씨에게 동익씨가 산장에 먼저 도착하여 구들장을 뎁혀 놓으려고 먼저 간 줄 알았다고 조크를 하면서 비탈길을 내려선다.
1820분 화개재에 내려서니 앞서 내려선 동익씨가 플라스틱 물통이 몇 개 안부에 놓여 있음에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묻는다. 현재 화개재는 훼손된 옛 자연으로의 원형 복원하려 복원작업을 벌이고 있다. 화개재는 옛날 남쪽의 하동지역과 북쪽의 남원지역 사람들이 서로 물물교환을 하던 고갯마루로 넓은 안부가 여러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음을 보여 준다. 화개재 북쪽으로는 뱀사골 계곡을 통해 반선으로 내려 설 수 있다.
화개재에서 5분여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불 켜진 뱀사골산장에 도착한다. 뱀사골산장에서 자리를 배정받고 침낭을 대여하여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펼쳐 놓고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점심을 늦게 먹어 모두들 아직 배가 안 고픈 모양이다.
19시경 우리들은 저녁준비를 위해 취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저녁은 꽁치김치찌개에 햇반이다. 대권과 동익이 색다른 식사를 하고 싶은지 거지밥그릇에 스팸을 덜어 뎁혀서 소주 안주를 하는데 별로인지 먹지를 안는다.(나는 전혀 입도 안대고 ^^b)
그래서 대권씨가 옆에서 술자리를 하는 등산객들에게 먹겠는가 물으니 대환영이다.(덕분에 대권씨 소주 한잔 얻어 마시고 왔지만)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으니 장터목대피소에서 봤다는 등산객들과 대권, 먼저 동익이 통로에 켜 놓은 소형석유난로 옆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나는 침낭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나 등이 시려와 배낭에 들러 친 매트를 꺼내어 침낭 밑에 깔고 누우니 한결 편안하다. 해서 대권과 동익에게 옷을 있는 대로 꺼내어 입고 등 밑에 깔고 자라고 하고는 20시도 안되어 어느새 꿈나라 여행을 떠난다.
단잠을 잤다. 시계를 보니 새벽3시반이다. 조금 더 누워 있자니 정신이 초롱초롱하다. 해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어제와는 다르게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빛을 발하며 밤하늘의 찬란함을 노래한다.
화장실에 들러 소피를 보고 자리에 누웠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의 일정은 들머리를 백무동으로 해서 천왕봉~노고단을 거쳐 화엄사로 날머리를 잡았으나 어제까지의 산행하는 것을 보아 온즉 노고단~화엄사행은 무리가 따를 듯싶어 노고단~성삼재휴게소로 등행노선을 수정하였다.
엊저녁에 맞추어 놓은 알람이 4시반이 되어 울린다. 허나 너무 이른듯하여 잠시 더 누워 있다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정리하고 있자니 옆 자리에 누운 동익씨가 자리에서 부스럭거린다.
새벽 5시, 모두를 깨어 배낭을 대충 정리하고 취사장으로 나가 조반을 짓는다. 물론 개밥이라 일컫는 참치김치라면국에 꽁꽁 언 햇반을 데워 먹는 수준이지만 이러한 음식이라도 따끈함이 반찬이요, 시장함이 반찬이라. 하지만 새벽밥이 시장함이 있을 턱이 없다. 억지로 산행을 위하여 든든히 먹어 치운다. 대권씨나 동익씨 보다도 내가 더 식성이 좋은 듯하여 먹는 것도 매끼마다 많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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