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설국 지리산 등정기
1. 산 행 지 : 지리산(1915m)
2. 위 치 : 경남 함양, 산청, 하동, 전남 구례, 전북 남원
3. 산행방식 : 동서간 종주
백무동~제석봉(1806)~지리산천왕봉(1915)~장터목대피소~촛대봉(1703.7)~세석대피소~영신봉(1651.9)~칠선봉(1576)~덕평봉(1521.9)~벽소령대피소~형제봉(1433)~삼각고지~연하천산장~명성봉(1586.3)~토끼봉(1534)~화개재~뱀사골산장~삼도봉(1499)~반야봉(1733)~임걸령~노고단(1507)~노고단대피소~코재~성삼재휴게소
4. 산행일자 : 05‘02/25(음01/17,금)[해뜸07:09/해짐18:22]
05‘02/26(음01/18,토)[해뜸07:08/해짐18:23]
05‘02/27(음01/19.일)[해뜸07:06/해짐18:24]
5. 기상상태 : 02/25 = 맑고 바람약간
02/26 = 새벽 흐림, 맑고 바람 강함
02/27 = 맑고 바람약간.
6. 참가인원 : 강대권(총무), 이동익(사진), 황인기(기록)
7. 교 통 편 : 갈때 = 서울~함양백무동간 고속버스(동서울터미널)
올때 = 성삼재~남원간 택시, 남원~서울간 우등고속버스.
8. 이용경비 : 회비 각\100,000원× 3명+추가 \30,000원=총 \330,000원
9. 산행일정 :
일 시 |
일 정 |
비 고 |
05‘02/25.12:50 |
들머리 백무동매표소 통과 |
산행시작 |
13:40 |
하동바위 통과 |
출렁다리 옆 |
14:15 |
참샘 도착하여 물통에 급수후 14:22출발 |
이정표 해발1125m |
14:40 |
소지봉 도착 휴식후 14:45출발 |
능선에서 휴식 |
15:40 |
망바위 통과 |
|
16:10 |
제석봉 밑에 도착 휴식겸 기념촬영 후 16:15출발 |
장터목대피소 조망 |
16:35 |
장터목대피소 도착 |
석식후 숙박20시 |
05‘02/26.06:00 |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 일출 보러 비무장 출발 |
4시기상후 조식 |
07:00 |
천왕봉정상 도착 |
07:10해뜸 |
07:15 |
일출 및 표지석 배경으로 기념촬영 후 출발 |
장터목 향해 |
07:50 |
장터목대피소 도착하여 출발준비 |
아이젠, 스패츠 |
08:25 |
장터목대피소 출발 |
|
10:00 |
세석대피소 도착 후 복장 수습 후 10:30출발 |
문서전달 |
11:25 |
칠선봉 도착하여 휴식 및 기념촬영 후 11:30출발 |
|
13:20 |
벽소령대피소 도착, 점심 후 14:55출발 |
복장정비 |
16:30 |
연하천산장 도착 휴식 후 16:45출발 |
황도통조림 매식 |
17:55 |
토끼봉 통과 |
반야봉 조망 |
18:25 |
뱀사골산장 도착 |
석식후 숙박20시 |
05‘02/27.07:30 |
뱀사골산장 출발 |
5시기상, 조식 |
08:05 |
삼도봉 도착, 기념촬영 후 08:15출발 |
반야봉, 천왕봉조망 |
08:55 |
반야봉 도착, 기념촬영 후 09:05출발 |
노고단·천왕봉 조망 |
09:55 |
임걸령샘 도착, 복장정리 후 10:05출발 |
노고단 |
11:05 |
노고단 도착, 기념촬영 후 11:10출발 |
노고단 관람불가 |
11:15 |
노고단대피소 도착, 점심 후 12:10출발 |
라면식 |
12:45 |
날머리 성삼재휴게소 도착 |
산행 끝. |
▣ 산행후기
언젠가 이동익씨로부터 지리산산행에 동행을 부탁 받았다.
계유년 설이 지나자 동익씨가 지리산행에 대하여 문의가 있어 3월부터 5월까지 봄철 산불방지기간이라 입산통제가 될 것이니 인터넷으로 정확한 날자를 확인해 볼 것을 부탁하니 바로 3월1일부터 4월30일까지 입산이 통제된다고 연락이 왔다. 해서 서둘러 입산통제일 전에 산행하기로 결정하고 날자를 잡으니 2월25일(금요일)부터 2월28일(일요일)까지로 이동익, 강대권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 산행하기로 한다.
겨울의 지리산. 꿈만 같은 세계가 펼쳐질 것만 같은 환희가 내 상상을 지배한다.
일전에 다닌 지리산의 고봉준령들과 쉼 없이 펼쳐지는 능선의 파노라마가 백설의 세계를 더하며 실루엣으로 지나는데 며칠을 이러한 환상 속에 지내다 며칠을 남겨 놓은 2월21일 저녁에 아래와 같이 하기로 미팅을 한다.
준비해야 할 공동장비 및 개인장비를 체크하고 김치와 밑반찬 2~3가지는 각자가 준비하고, 내가 버너와 코펠을 준비하며, 공동(주식과 간식)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이동익씨가 준비하기로 하여 개인이 휴대할 수 있게 나누기로 하였다. 또한 들머리인 백무동행 버스가 동서울터미널에서 08시20분에 출발하니 당일 8시00분에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는 저녁을 먹고는 헤어진다.
□ 준비일람
구 분 |
품 목 |
준비자 |
비 고 |
공동준비 |
지도, 나침이, 고도계, 버너 및 연료, 코펠2조, 라이터, 구급약, 보조자일, 휴지 등(카메라 이동익 준비) |
황인기 |
장 비 |
육포, 어포, 초코렛, 양갱, 찰떡파이, 사탕, 차류, 귤, 햄 등. |
이동익 |
간 식 | |
개인준비 |
오바복, 모자 및 발라크라바, 스카프, 여벌옷 등 |
각 자 |
의복류 |
스패츠, 아이젠, 스틱, 고글, 랜턴, 호각, 배낭카바, 보온병, 물통등 |
운행구 |
□ 식단표
05‘02/25(금요일) |
05‘02/26(토요일) |
05‘02/28(일요일) | ||||||
조 식 |
중 식 |
석 식 |
조 식 |
중 식 |
석 식 |
조 식 |
중 식 |
석 식 |
각 자 |
매 식 |
참치찌개 |
북어국 |
라면밥 |
참치찌개 |
라면밥 |
라 면 |
매 식 |
출발당일 서둘러 광나루역에서 택시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 내리니 07:35경이다.
앞의 포장마차에서 싸늘한 김밥 1줄로 요기를 하고 터미널매표소로 들어가니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던 이동익씨가 씨익 웃으며 마중한다. 꿍야^o^b 반갑다.
잠시 환담을 나누다가 대권씨의 위치를 전화로 확인하니 8시가 다 되었는데 2호선교대역이란다. 늦지는 안겠지만 시간이 없다. 해서 우선 매표를 하고 커피한잔을 하면서 기다리자니까 어느새 동익씨가 매표(19,300\)를 하였다. 자판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기다리니 0810분경 대권씨가 터미널내로 들어선다.
동익씨가 준비해 온 주식 및 간식거리를 나누어 배낭에 넣고 지리산백무동행 버스에 승차하여 자리를 잡고 앉으니 버스는 0820 예정된 시각에 출발한다.
버스는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경부고속도로 죽암휴게소에 잠시 들러 휴식을 취한후 다시 달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들어서더니 어느새 함양IC를 빠져 나오더니 함양버스터미널에 도착(1125)하여 승객을 내려 주고는 즉시 출발하더니 기사분이 차내 마이크로 함양주유소에서 버스가 대기하고 있으니 백무동행 승객께서는 환승하여 달라고 부탁을 한다. 버스를 갈아타니 기사분들이 고개를 숙여 사죄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이 되시라고 몇 번이고 인사를 한다.
백무동행 버스는 마천을 거쳐 백무동에 도착하니 1205분이다. 문을 연 기념품가게를 겸한 민박을 하는 식당에서 산채비빔밥(5,000\)으로 점심을 먹는 중에 하산하여 식당에 들른 등산객에게서 산의 정보를 얻는다.(길이 미끄러운지, 샘터에 물이 얼지 않은지 등등)
점심을 먹고 뜨거운 물을 보온병에 채우고는 1250분에 백무동매표소를 통과하여 입산한다.
매표소를 지나 약5분을 걸어가니 오른쪽으로 가내소폭포를 지나 세석대피소로 가는 길과 왼편으로 소지봉을 지나 장터목대피소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예정대로 왼편 길로 접어들어 내가 선두를 서고 동익씨, 대권씨 순서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계곡을 건너기 위해 철판출렁다리를 건너니 뒤에서 출렁거리는 사람이 있다. 아마도 동익씨 일 것이다.^=^
장터목에서 내려온 등산객으로부터 아이젠을 하지 않고 내려왔다는 정보를 얻고는 우리는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고 산길을 오르는데 눈길은 따스한 날씨에 얼음으로 변하여 미끄럽다. 하산하는 남녀노소의 많은 등산객들이 빙판길을 미끄지면서 조심스레 내려온다. 우리도 조심스레 오르니 오를 만 하다.
숨이 가쁘지 않게 천천히 오르는데 땀이 비 오듯 흐른다. 몇 번을 잠시 쉬는 중에 얼음 빙판은 눈길로 바뀌고 뽀드득거리는 눈을 밟으면서 기분이 새롭다. 1340분 하동바위를 지나 출렁다리를 좌에서 우로 건너 가파른 산길을 오르니 1415분에 참샘에 도착한다.
참샘에 도착하니 이정표(해발1125m / 백무동2.6k, 하동바위0.8k, 장터목대피소3.2k, 천왕봉4.9k)가 세워져 있고, 식당에서 우리보다 한발 앞서 나간 등산객(버스에 함께 탄 사람)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참샘의 물로 목을 축인 후 물통에 물을 받고는 1422분에 참샘을 뒤로 하고는 출발한다.
참샘을 떠나 가파른 깔딱 고개를 오르니 소지봉능선이 나와 숨을 깔딱거리고 있는 두 사람을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3~4분 거리에 있는 소지봉을 1445분에 통과를 한다.
하이얀 능선 길을 걸으니 사방이 조망된다. 왼편으로 천왕봉과 칠선계곡이 오른편으로 반야봉과 한신계곡이 눈을 사로잡는다. 천왕봉에서 반야봉으로 흐르는 능선 파노라마는 한마디로 환상이다.
1540분 망바위를 지나는데 하산길인지 등산길인지 젊은 등산객들 옹기종기 모여 있어 산적들 같다고 농을 하면서 지나친다. *^;
망바위를 지나 눈길을 헤치며 오르는데 뒤에서 대권씨가 아이쿠 하며 비명을 지르기에 뒤 돌아 보니 바위를 짚은 왼팔이 미끄러지면서 뒤로 꺽인 듯 한참을 아파한다.♨
망바위를 지난 지 30분여 1610분경에 고사목이 있는 제석봉 밑에 도착하니 소지봉에서 우리 일행을 앞질러간 심마니 행색(가벼운 배낭에 나무지팡이를 든 이)의 산 꾼이 그곳에서 사방을 조망하고 있다. 우리는 고사목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부탁하여 사진을 찍고 나니 이 등산객은 지리산대피소에 예약하여 숙박하는 줄을 몰랐는지 우리가 대피소 예약을 하여야 숙박이 가능하다니 이곳에서 바로 하산을 한다.
제석봉 밑에서 오른편으로 돌아 비스듬히 오르니 시야에 장터목대피소가 눈에 밟힌다.
1635분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대피소 내에는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여기서 대권씨의 왼편 어깻죽지에 맨소래담을 발라 주며 통증을 물으니 뻐근하게 아픔이 있단다.
장터목대피소는 남쪽으로는 중산리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 동쪽으로는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 서쪽으로는 노고단으로 향하는 주능선길이 펼쳐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우리가 지나온 소지봉쪽 능선길과 내림폭포쪽 계곡으로 내려서서 백무동으로 가는 5갈래 길목이다.
잠자리 배정은 17시부터 가능하고 모포대여는 19시에 시작한단다. 자리를 배정받고 취사장에서 참치찌개를 끊여 햇반을 넣고 데워 저녁을 먹는데 동익씨 등은 이를 개밥이란다.■ 아무튼 반주를 겸해 저녁을 먹는 중에 20시에 소등한다는 안내방송을 한다. 설거지에 양치질을 하고 1940에 자리에 눕는다.
자리에 눕자마자 나는 꿈나라로 떠나 여행을 하다가 22시경에 단잠을 깨어서는 재차 잠을 들 수 없다. 업치락 뒤치락하는데 옆자리의 동익씨 또한 잠을 못 이루기에 2345분경 일어나 지리산의 별을 보러 나왔으나 별밤은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인양 밤하늘은 안개로 인하여 저녁에 본 진주시내의 아름다운 야경과 주변의 능선들은 모습을 감추고 구름과 바람소리만이 넘실거린다.
아침에 천왕봉에서의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우려를 하면서 대피소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으나 이웃의 코고는 소리, 잠꼬대소리, 뒤척이는 소리 등으로 억지로도 잠은 오지 않더니 어느새 잠이 들었나 싶더니 4시를 알리는 알람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_-b
대권씨와 동익씨를 깨워 건조북어국, 사골국, 육개장국에 김치를 넣고 끊여서 햇반을 말으니 오늘은 꿀꿀이 죽이란다.■
배낭을 대충 꾸려서 내려놓고 비무장에 아이젠, 스패츠, 헤드랜턴을 머리에 착용하고 6시에 대피소를 나와 천왕봉을 향한다. 대피소를 나서니 천왕봉 오르는 길이 가파른 가운데 빙판진 눈길에, 어둠 속의 안개, 몰아치는 바람이 앞을 가로 막는다. 장터목대피소의 전광안내판에는 기온 -20℃, 바람이 13m/s란다. 그러면 체감온도는 -40℃가 넘는다. 어마어마하게 추은 날씨이다.(바람1m/s당 -1.6℃강하)
앞서 오르는 산객들의 줄 선 랜턴불빛을 따라 제석봉을 향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니 고사목이 듬성듬성한 을씨년스런 제석봉이 옅은 안개 속에서 서서히 다가온다. 예전엔 짙은 안개로 인하여 제석봉에서 길을 잃고 헤맨 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가드라인을 설치하여 길을 잃을 염려는 없도록 조치를 하였다.
바람에 의해 풀 한포기 없는 듯이 황량한 제석봉은 도벌꾼들의 무분별한 행동에 의해 저질러진 자연의 법칙을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를 맞이한다. 제석봉(1806m)을 돌아 철계단을 내리고 천왕봉을 향하여 진행하는데 어느새 여명이 밝아 랜턴을 끈 채로 진행한다.
통천문을 통과하여 드디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이미니 천왕봉이 저 앞에 모습을 보인다.
천왕봉 정상엔 해맞이를 위해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 먼저 온 등산객들로 인산인해 입추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대권씨는 지리산행 경험이 있고 해서 초행인 동익씨를 천왕봉 산정에 먼저 오르게 하기 위해 선등 시킨다. 공격조라 칭하면서…….(많은 사람들은 정상에 먼저 오르려 하는데 -_-)
드리어 0700정각 여명으로 희뿌연 천왕봉에 오르니 바위로 된 산정엔 정상임을 알리는 화강암 표지석에 “지리산천왕봉(1915m)”이라 음각으로 써 있고 뒤쪽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시작되다”라 음각되어 있다. 위로는 백두산 아래로는 지리산이 있어 대간을 이루고 있다.
또한 서쪽 남원의 덕두산(1149.9)~바래봉~세걸산~고리봉(1304)~만복대(1433.4)~성삼재휴게소를 지나 종석대~노고단(1507)~토끼봉~명성봉(1586)~벽소령을 넘어 칠선봉(1556)~촛대봉~천왕봉을 거쳐 산줄기는 중봉(1896)~하봉을 거쳐 쑥밭재~왕등재~밤머리재를 거쳐 웅석봉(1099.3)~수양산을 지나는 소위 지리산 태극능선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지리산 주능선이 서쪽으로 뻗어 있다면 동쪽으로 중봉을 거쳐 써리봉~치밭목산장~무재치기폭포~유평초교~대원사 코스가 처절하리 만치 절경을 이루고 있다.
서남풍 바람으로 인하여 이 한 몸뚱이가 동쪽으로 떠밀린다. 바람에 실려 해를 맞이하려는 듯. 바람을 피하여 바위 밑 조금 아래로 자리를 옮겨 동녘을 향해 일출을 기다리니 붉은 지평선은 환희를 몰고 내게로 온다. 여기 지리산에서는 남쪽으로는 산청서천의 중산리 마을이 북쪽으로는 함양마천의 추성동 마을이 산줄기 사이로 나지막이 자리를 하고 있다. 참말로 산수화 같은 아늑한 풍광이 아닐 수 없다.
너를 기다리마! 해야 솟아라! 둥근 해야 솟아라. 검은 대지를 뚫고 불같은 밝은 너의 모습을 보여라. 수많은 인파들이 너를 갈망하며 소리 없는 소망을 말 하리라. 그들에게 모든 소망을 들어 주며 너를 찬양하게 하라.■
10분후에 동녘이 황금빛으로 물들면서 지평선 너머로 눈곱 같은 모습을 보인다. 새 희망을 열고 있는 것이다. 많은 등산객들이 환호를 한다. “해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산천을 뒤 흔든다.■■ 천지를 진동하듯 한 이들의 함성이 영원하리라.
우리도 해맞이를 하면서 디카에 사진은 담고 천왕봉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0715분경 봉우리에서 내려선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통천문을 통과하고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제석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에 인간들의 무분별한 오욕을 가슴에 새긴다. 아프리카의 어느 소공화국의 속담에 “자연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후손들의 것을 잠시 빌려 쓸 뿐이다.”라는 말이 있단다.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명심하였음 한다.
0800시 장터목대피소에 내려와 본격적인 산행준비를 하는 중에 대피소 직원으로부터 어디로 가느냐 하여 세석쪽으로 간다고 하니 대피소에 들를 것이냐고 묻기에 보낼 것이 있으면 갔다가 주겠다고 하니 서류봉투를 하나 건네준다. 이것을 배낭에 챙겨 넣고 0825분에 장터목을 뒤로 하고 연하봉을 한 숨에 오르고 오르내리기를 여러 차례 0940분경 드디어 촛대봉에 오른다. 이곳에 오르니 아래쪽의 안부에 세석대피소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앉아 있다.
촛대봉(1703.7m)에 오르니 동익씨가 두리번거리면서 사방을 살피더니 촛대가 어디 있느냐고 조크한다. 해서 내가 날이 밝았으니 촛불 켤 일이 없어 촛대를 치웠노라 대답하며 세석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1000시정각 세석대피소에 내려선다. 대피소는 능선에서 남쪽 아래에 자리하고 있어 바람을 피한다. 일행들을 아래층에 있는 취사장으로 내려 보내고 나는 장터목에서의 심부름을 위해 매점의 관리직원에게 문서를 전달하고 취사장으로 내려와 아이젠을 고치고 의복을 정비한 후 1030분 세석대피소를 출발하여 영신봉(1652m)을 향한다. 세석은 남쪽으로는 거림골과 대성골로 내려 설 수 있고, 북쪽으로는 한신계곡을 통해 백무동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세석평전을 펼치는 영신봉은 삼신봉과 능선을 이어 기인들이 주거하는 지리산청학동으로 내려 설 수 있다.
눈은 백설의 세계에 빠져있고, 귀는 뽀드득거리는 환상의 청음을 듣고 달 가듯 길을 가니 1125분에 어느새 칠선봉(1566)에 오르니 주위에 암봉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칠선녀가 하강하여 너울너울 춤을 추듯이 한다. 이곳 이정표에는 벽소령4.3k/세석2.1k, 장터목5.5k, 천왕봉7.2k라 적혀있다.
잠시 쉬면서 기념촬영을 한 후 벽소령을 향한다. 점심을 벽소령대피소에 먹기로 하고는 쉼 없는 걸음을 한다. 시계는 어느새 12시가 넘어 있다. 새벽 5시도 안되어 조반을 먹었기 때문인가 허기지 지고 다리에는 기운이 빠져 나간다.
1220분경 선비샘에 도착하니 샘터는 빙판으로 되어있고 이곳 안내판에는 벽소령대피소에 가뭄으로 인하여 취수가 불가능하니 이곳에서 취수를 하라고 안내 되어 있으나 샘터가 얼어붙어 있으니 무슨수로 취수할 것인가? 그래도 우리에게는 각자의 보온병에 따듯한 물과 1.5L PET병 2통에 물이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이곳 선비샘에서 취수할 요량으로 종주 산행을 계획한 이들은 낭패를 볼 것은 자명한 일이다.
덕평봉 밑을 지나니 낙석으로 인하여 가드라인을 설치한 곳이 있다. 떨어진 돌덩이가 너무도 커서 이를 맞았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저세상 식구가 되겠다 싶다. ☻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벽소령대피소는 산자락을 끊고 길을 낸 희미한 벽소령 길을 보고는 벽소령대피소에 가까이 다가온 것을 느낄 수 있다. 지루하게 진행하다 보니 드디어 1320분에 벽소령안부에 세워진 대피소에 도착한다. 능선에서 조금 남쪽으로 내려선 곳에 지워진 이 대피소는 서에서 동으로 향하는 산악회 등산객들이 단체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는 벽소령대피소 취사장으로 들어가니 취사장 지붕은 남쪽사면으로 플라스틱 차양을 설치하여 여간 따듯한 것이 아니다. 점심을 준비하는데 동익씨 왈 개밥, 꿀꿀이죽을 먹었으니 지금은 소여물을 먹자고 조크한다. 점잔은 대권씨는 깔끔한 식사(북엇국이면 북엇국, 사골국이면 사골국, 육개장이면 육개장)를 원하지만 산중에서의 식사는 으레 잡탕에 개밥(북엇국, 사골국, 육개장에 김치를 넣고 끓이다 햇반을 넣고 데우는)이 제격이라고 응대하고는 점심으로 참치김치라면을 끓여 햇반을 넣고 데운다.
그러면서 이는 깔끔하게 먹는 것이라고 하면서 여기에 옥수수통조림, 초코파이 등도 함께 끓이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한다. 골고루 영양섭취를 위하여…….
점심을 먹고, 날씨가 따듯하고 바람이 없어 입었던 오바트라우져를 벗어 배낭을 정리하고 복장을 정비하고 나니 1455분 벽소령대피소를 출발하게 된다.
벽소령은 남으로는 군사도로를 따라 의신마을 대성리로 북쪽으로는 음정마을 삼정리로 내려설 수 있다.
입었던 옷을 한 꺼풀 벗어 던지니 싸늘한 한기가 온 몸을 적신다. 형제봉(1442) 오름길에 잠시 걸음을 재촉하니 어느새 한기는 사라지고 몸이 덥혀 지고 있는데 뒤 따르는 동익씨가 숨을 깔딱인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사점이 찾아 온 것이다. 이 사점은 운동량에 비해 산소호흡량이 작아서 오는 가슴이 터질 듯한 고통을 말함인데 너무 오랫동안 쉬면 이 고통은 사라지겠지만 다시 사점이 찾아와 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해서 동익씨에게 사탕을 깨물어 씹어 삼키지 말고 따스한 물을 머금고 조금씩 흘려 넣듯이 하라고 하니 괜찮다고 고집을 부린다. 사실 사점은 갈증도 허기짐도 없다.
그래도 강제로 먹게 하고는 잠시 쉰 후 걸을 형제봉을 향해 옮긴다. 형제봉은 암봉이 두 개가 형제처럼 자리하고 있는 봉우리다. 형제봉에서는 남쪽으로 화개 대성리과 북쪽으로는 마천 삼정리가 고즈녁히 자리하고 뒤쪽으로 천왕봉의 능선이 장쾌하게 앞쪽으로는 반야봉의 두 봉우리가 두드럽게 조망된다.
형제봉을 내려선 후 삼각고지(봉1462)를 오른다. 삼각봉에서는 북쪽 삼정산과 능선으로 이어졌는데 경남과 전북의 도계를 이룬다. 또한 이 능선은 도솔암~영원사~상무암~문주암~삼불사~약수암~실상사로 사찰산행을 겸할 수 있는 루트이다. 또한 실상사는 많은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유수의 사찰이다.
이즈음 오르니 동익씨 앞에 가는 내게 빨리 걸으라고 재촉을 한다. 이제부터 동익씨는 걸음이 가벼운 모양으로 사점을 벗어났나 보다.d*o^b
허나 맨 뒤에 따라오는 대권씨 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걸음을 조정하여 간격을 좁히고 삼각봉을 지나니 생태계 보호를 위한 철망으로 울타리를 쳐진 곳을 지나게 된다. 아마도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연하천산장이 나올 것이다.
1630분 드디어 연하천산장에 도착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장터목, 세석, 벽소령대피소에 견주어 하꼬방 같은 초라한 연하천산장을 보니 지리산이 처음인 동익씨 “애걔”하며 탄성을 지른다. 우리가 묵을 뱀사골산장도 이와 같다고 말하니 한숨이 절로인 모양이다. 그래도 연하천산장은 예전과 다르게 취사장도 지어 놓은 것이 많은 공을 들였다.
샘물로 목을 축이니 싸늘한 정월의 따스한 물이 갈증을 가라 앉힌다. 대권씨가 과일이 먹고 싶었는지 벽소령에선가 깐포도통조림 이야기를 해서 이곳 매점에 확인하니 깐포도는 없고 황도통조림이 있어 한통을 구입해 서로 나누어 먹고는 1645분 연하천산장을 출발하여 뱀사골산장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명성봉(1586)을 오르고 흔적도 없는 선비샘을 지나고 토끼봉과의 안부에서는 왼편 즉 남쪽으로 의신마을을 거쳐 대성리로 내려서는 길이 있을 것이나 찾지 못하고 지루한 토끼봉 오름을 계속한다.
가파른 토끼봉 오름에 대권씨가 힘들어하기에 동익씨를 앞세우고 대권씨에 중간에 세우고 후미에 내가 뒤 따라간다. 앞서가던 동익씨가 잠시 쉬고 있기에 같이 쉬려 했더니 훌쩍 떠나가고 만다. 그러면서 자기의 체력을 테스트 한다나 어쨌다나…….
내가 연하천산장을 출발하면서 예전에 노고단산장에서 0640분 출발하여 반야봉을 거쳐 벽소령에서 점심을 먹고 장터목산장을 지나 천왕봉을 등정하고 다시 장터목산장에서 잔 경험이 있다고 한 말에 자기의 능력을 보여 주겠다고????
간식을 먹으면서 잠시의 휴식을 겸하고 길을 걷는다. 해는 어느새 석양을 물들일 시간으로 대권씨의 걸음을 재촉할 양으로 이 봉우리를 오르고 또 하나의 봉우리를 올라야 토끼봉에 다다를 수 있다고 설레발을 친다. 토끼봉에 닿으면 봉우리 아래가 화개재요, 그 밑에 뱀사골산장이 있기 때문이다.
토끼봉(1564)에 오르니 1755이다. 토끼봉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은 칠불사로 해서 쌍계사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봉우리를 내려서니 동익씨의 모습이 나무틈새로 보이다 말다를 반복한다. 대권씨에게 동익씨가 산장에 먼저 도착하여 구들장을 뎁혀 놓으려고 먼저 간 줄 알았다고 조크를 하면서 비탈길을 내려선다.
1820분 화개재에 내려서니 앞서 내려선 동익씨가 플라스틱 물통이 몇 개 안부에 놓여 있음에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고 묻는다. 현재 화개재는 훼손된 옛 자연으로의 원형 복원하려 복원작업을 벌이고 있다. 화개재는 옛날 남쪽의 하동지역과 북쪽의 남원지역 사람들이 서로 물물교환을 하던 고갯마루로 넓은 안부가 여러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음을 보여 준다. 화개재 북쪽으로는 뱀사골 계곡을 통해 반선으로 내려 설 수 있다.
화개재에서 5분여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불 켜진 뱀사골산장에 도착한다. 뱀사골산장에서 자리를 배정받고 침낭을 대여하여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펼쳐 놓고는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점심을 늦게 먹어 모두들 아직 배가 안 고픈 모양이다.
19시경 우리들은 저녁준비를 위해 취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저녁은 꽁치김치찌개에 햇반이다. 대권과 동익이 색다른 식사를 하고 싶은지 거지밥그릇에 스팸을 덜어 뎁혀서 소주 안주를 하는데 별로인지 먹지를 안는다.(나는 전혀 입도 안대고 ^^b)
그래서 대권씨가 옆에서 술자리를 하는 등산객들에게 먹겠는가 물으니 대환영이다.(덕분에 대권씨 소주 한잔 얻어 마시고 왔지만)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으니 장터목대피소에서 봤다는 등산객들과 대권, 먼저 동익이 통로에 켜 놓은 소형석유난로 옆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나는 침낭 속으로 빨려 들어갔으나 등이 시려와 배낭에 들러 친 매트를 꺼내어 침낭 밑에 깔고 누우니 한결 편안하다. 해서 대권과 동익에게 옷을 있는 대로 꺼내어 입고 등 밑에 깔고 자라고 하고는 20시도 안되어 어느새 꿈나라 여행을 떠난다.
단잠을 잤다. 시계를 보니 새벽3시반이다. 조금 더 누워 있자니 정신이 초롱초롱하다. 해서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니 어제와는 다르게 북두칠성과 북극성이 빛을 발하며 밤하늘의 찬란함을 노래한다.
화장실에 들러 소피를 보고 자리에 누웠으나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의 일정은 들머리를 백무동으로 해서 천왕봉~노고단을 거쳐 화엄사로 날머리를 잡았으나 어제까지의 산행하는 것을 보아 온즉 노고단~화엄사행은 무리가 따를 듯싶어 노고단~성삼재휴게소로 등행노선을 수정하였다.
엊저녁에 맞추어 놓은 알람이 4시반이 되어 울린다. 허나 너무 이른듯하여 잠시 더 누워 있다가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 배낭을 정리하고 있자니 옆 자리에 누운 동익씨가 자리에서 부스럭거린다.
새벽 5시, 모두를 깨어 배낭을 대충 정리하고 취사장으로 나가 조반을 짓는다. 물론 개밥이라 일컫는 참치김치라면국에 꽁꽁 언 햇반을 데워 먹는 수준이지만 이러한 음식이라도 따끈함이 반찬이요, 시장함이 반찬이라. 하지만 새벽밥이 시장함이 있을 턱이 없다. 억지로 산행을 위하여 든든히 먹어 치운다. 대권씨나 동익씨 보다도 내가 더 식성이 좋은 듯하여 먹는 것도 매끼마다 많이 먹는다.■
밥 먹고 양치하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배낭을 정돈하여 산장을 나서니 벌써 대지는 밝음이 내려 앉아 사물의 구분이 뚜렷하다. 뱀사골산장이라는 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0730분에 산장을 벗어나 화개재로 오르니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는 계단은 눈으로 인하여 계단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화개재를 오르는 중 50대 부부인 듯 한 등산객이 화개재에서 엉금엉금 기다시피 내려오고 있다.
화개재에 올라서서는 화개재에서 삼도봉까지 동익씨가 인터넷에서 읽었다는 550개의 계단인지 하는 것이 맞는지 확인해 보라면서 계단을 오른다.(쓸데없는 짓거리 인줄 알면서…….) 대권씨와 동익씨가 각자 계단의 숫자를 헤아리는 모양인지 중간 참에서 잠시 쉬면서 확인하니 계산이 서로 다르다. 이곳 계단도 눈으로 인하여 묻혀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반야봉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려온 삼도봉(경남, 전남, 전북 3도의 경계를 이룬 봉우리)은 불무장등과 통곡봉을 거쳐 황장산으로 이어진다. 0805분 삼도봉에 도착하니 등산객 여럿이 배낭을 짊어지고 자리를 뜨려 하고 있어 부지런히 디카를 꺼내어 사진촬영을 부탁하여 기념촬영을 하고는 0815분에 삼도봉을 벗어난다. 일요일 아침이라 마주 오는 가이드등산객들의 행로가 끝없이 이어져 가는 걸음을 붙잡는다.
삼도봉삼거리에서 오른편의 갈림길로 들어선다.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직진 길은 노루목을 거쳐 노고단으로 바로 가는 길이다.
이곳을 오르다 보면 반야봉삼거리가 나오는데 노고단쪽 노루목에서 반야봉으로 오르는 길과 합류하는 곳이다. 여기서 우리는 반야봉을 올랐다 내려와서는 노루목으로 내려가야 하겠기에 이곳에 배낭을 벗어 넣고 반야봉으로 오른다. 철계단을 오르고 바위지대를 지나서 돌탑이 싸여 있는 반야봉(1762)에 오르니 0855분이다. 반야봉에 먼저 오른 등산객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하여 세 명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노고단과 지리산주능선을 배경을 디카에 담는다.■
반야봉은 심원골로 빠지는 길과 쟁기소로 빠지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이 모두 달궁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여기는 수목군락지로 자연휴식년제 구간이다.
0905분 반야봉를 내려서 배낭을 벗어 놓은 반야봉삼거리에서 배낭을 짊어지고 0935분경 노루목삼거리를 거쳐 순탄한 길을 걸어 임걸령에 도착하니 0955분이다. 걸음이 늦은 대권씨의 발길을 재촉하기 위하여 동익씨와 나의 김치는 다 먹었으나 대권씨의 김치가 그대로 여서 배낭이 무거워 걸음이 늦다고 조크하니 대권씨 또한 그렇다고 응수를 한다.
지금까지 지리산중의 샘터중 임걸령샘터가 그중 시원스레 물이 쏟아진다. 여기서 배낭을 의복을 사리고 샘물과 함께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후 1005분 임걸령을 뒤로 하고 노고단을 향해 길을 쫒는다.
임걸령에서 계곡으로 내려서서 피아골산장을 거쳐 직전의 연곡사로 내려 갈 수 있는 길이 있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점심을 먹고 성삼재에서 1320분 구례행 군내버스를 이용하려면 부지런히 걸음을 해야 한다. 1424봉을 거쳐 돼지령에 오른다. 돼지령은 멧돼지들이 자주 출몰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도 멧돼지들이 이따금 나타난다. 먹거리가 있는 모양이다.
또한 돼지령은 능선으로 해서 질등~문바우등~왕시루봉을 거쳐 외국인선교사별장이 있는 곳으로 질등에서 피아골산장으로 빠져 직전마을로 갈 수도 있다.
1105분 노고단 밑의 안부에 도착하여 돌탑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휴식년제를 실시하고 있는 노고단은 5월부터 11월까지 하루에 네 차례 100명씩 노고단정상을 탐방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였으나 지금은 문을 봉쇄하여 감시인을 두고 관리하고 있다.
1110분경 서둘러 노고단대피소로 가기 위해 길을 재촉하니 대권씨가 카메라폰으로 사진을 찍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다. 나는 노고단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으면 갈 길이 바쁠 것 같아 서두르는 걸음 늦은 대권씨는 느긋한 여유를 즐긴다.
동익씨는 구례에서 점심매식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 오지만 1320분 군내버스를 이용하여 구례읍내에 내려서면 14시는 될 것이고 여기서 서울행 버스시각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어 예정대로 노고단대피소에서 점심을 하기로 하고 돌계단으로 되어 있는 길을 서둘러 내려서서 노고단대피소 취사장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니 1115분이다. 취사장에는 먼저 온 등산객 두 사람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배낭을 벗어 놓고는 점심 먹을 준비를 하며 이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의복을 정리하고 있는데 동익과 대권이 취사장출입문을 열고 들어선다. 점심으로 김치라면으로만 해결하기로 한다.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뒤따라 들어온 관광객들인지 김밥을 줄 테니 코펠과 버너를 빌려 달라고 한다. 해서 성삼재에서 버스를 타려하는데 시간이 없어 빌려 줄 수 없노라고 미안스레 거절을 한다.-_*
라면을 먹고 1210분에 노고단대피소취사장을 출발한다. 자연탐방을 버리고 돌계단을 이용하여 지름길로 가로질러 내려가니 다시 탐방로와 합쳐진다. 10여분을 진행하니 화엄사로 내려 설 수 있는 코재에 닿는다. 또한 코재에서는 대간길인 종석대로 오를 수 있는 길에 출입문을 설치하여 내왕을 가로 막고 있다. 우리는 자연탐방로로 서둘러 내려서니 넓은 탐방로는 노고단으로 오르는 남녀노소의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드디어 지리산등정의 날머리인 성삼재휴게소에 1245분에 내려서게 된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 휴게소에 들려 원두커피 한잔으로 휴식을 취하고 아이젠을 벗고 스틱을 접어 배낭에 사린 후 13시경 광장으로 내려서서 주차장게이트 관리박스에 확인하니 겨울철(11월부터 4월말까지)엔 군내버스가 안 다닌다는 것이다. 어마어마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고생하며 인터넷으로 버스시각표를 확인하여 정보를 수집한 동익씨가 괜스레 미안해한다.
해서 우리는 히치하이를 하기로 하고 주차장게이트를 빠져 나온 차량을 물색하는 중 택시기사가 우리 일행에게 다가와 협상을 한다. 남원까지 4만을 달라고 하지만 일전(04‘6월경)에 3만원에 대절한 기억이 있어 3만을 제시하니 안 된다고 거절한다.
그러니 구례가 고향인 대권씨가 고모부에게 전화를 하여 부탁을 하여 보나 사돈간에 상견례 하는 자리에 있노라고 응대를 한다. 상견례 하는 자리에서 빠져 나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결국 4만원에 대절하기로 결정을 하고 1330분경 택시를 승차하니 남쪽 길로 접어들어 시암제를 거쳐 천은사를 지나 구례~남원간 4차선국도를 달려 남원고속버스터미널에 1408에 도착한다. 북쪽 길은 정령치를 넘어 육모정을 지나 남원으로 가는 길인데 길이 꼬불꼬불하여 오히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터미널대합실에 도착하여 버스시각을 확인하니 14시에 출발하였고, 다음은 1440분에 있는데 만원이라며 1510분에 임시버스가 출발한다는 매표원의 안내에 예매를 하고는 터미널다방에 들려 차 한 잔씩 마시고 시간이 되어 버스에 오르니 이 버스도 만원이다.
버스가 출발하고 우리들은 어느새 곤한 잠에 빠져 꿈속을 헤매는 중 휴게소에 정차하는데 정차시간은 15분이라고 녹음한 안내방송이 전파를 타고 귓가를 더럽힌다. 버스에서 내려서니 천안~논산간 민자고속도 정안휴게소이다. 성삼재휴게소는 대권씨 관내 고향이지만 여기는 동익씨의 관내 고향이다.
대권씨가 배가 고프다고 무엇을 먹자고 한다. 노상에 설치한 간이코너에 어묵 바가 있어 어묵을 한 꼬치씩 먹고 소피를 본 후 버스에 올라 천안에서 경부고속도에 들어서니 벌써 차량들로 도로가 꽉 막혀 있다. 하지만 버스는 이내 전용차로로 들어서서 예정보다 한 20분정도 늦어진 시각에 센트럴시티 하차장에 들어서서 1840분경 우리를 내려놓는다.
동익씨는 남원에서 서울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간다고 내 아내에게 전화를 하였으나 3일간이나 집을 떠나온 젊은 친구들의 가족과의 상봉을 방해한다면 도리가 아닐 것이다. 또한 동익씨는 아내가 3일간 등산으로 허 해진 신랑을 위해 몸보신하라고 보신탕을 끓여 놓았다고 전화 통화를 했는데 이를 가로 막는다면 이그 ^!^ 동익씨 아내로부터 얼굴에 오선지를 그어 피아노선율을 그려 놓을 것이다.
해서 저녁은 각자 집에 가서 먹기로 하고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향한다.
이제 모두는 집으로 가서 지난 3일을 회상 할 것이다. 좋든 나쁘던 이것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모두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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