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없는’ 가격에 신선하고 다양한 채소와 찬류 맘껏 즐겨
경기 수원시 인계동 이교수 웰빙보리밥뷔페
뷔페의 기름기와 거품을 제거한 역발상 뷔페
학창시절인 80년대 처음 호텔뷔페에 들어갔을 때 그곳은 천국이었다. 아,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 싶었다. 맛있는 산해진미가 종류별로 푸짐하게 차려진 곳에서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만 천하에 자랑하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짓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뷔페는 출입하는 사람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의 표지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그런데 호텔에만 있던 뷔페는 차츰 호텔 밖을 나오더니 어느덧 웬만한 동네마다 뷔페식당이 생겨났다. 이제 뷔페에서 식사했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없다. 고급 뷔페만의 특성인 질 높은 음식, 다양한 메뉴구성, 고급스러운 실내가 이제는 더 고객에게 큰 매력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뷔페식당이 너무 많이 생겼고 너무 획일화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싼 가격이 전제된 식당형태이기에 고객 기대치도 그만큼 높다.
뷔페식당의 이런 상식을 깬 주인장의 역발상이 돋보이는 이 식당은 신선하고 상태가 양호한 채소와 쌈채를 저렴한 가격에 먹을 수 있다. 아침 저녁, 주중 주말 구분 없이 식대는 7000원이다. 불황인 이 시대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그야말로 ‘부담 없이’ 건강을 위해 한 끼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밝은 색 벽돌과 호박등이 켜진 실내가 환하고 깔끔하다. 벽에는 채소를 소재로 한 정물 그림들이 정갈하게 걸려있다. 최고급은 아니지만 저렴한 분위기는 결코 아니다. ‘웰빙 보리밥 뷔페’라고 해서 그냥 풀과 보리밥만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잡곡밥과 쌀밥도 있고 이 집의 기본인 채소류와 쌈채류는 물론, 국과 찌개, 고기, 생선, 튀김, 찬류 등 모두 50여 가지를 차려놓았다. 콘셉트는 ‘웰빙’이지만 엄연한 뷔페임을 깨닫게 된다.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7000원은 훨씬 넘어선 듯 하다.
이 집의 주인장 이태석 씨를 지인과 단골들은 ‘이 교수’로 부른다. 젊은 시절, 무일푼으로 전국을 누비며 이온수기 정수기를 팔아 큰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일찍 ‘웰빙’과 ‘알칼리’에 대해 눈을 떴다고. 우리 몸은 약알칼리 상태를 유지해야 건강한데 그러려면 신선한 채소를 많이 섭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접시 위에 채소가 적은 고객은 유난히 신선채소의 중요성에 집착하는 주인장의 ‘웰빙 강의’를 듣기도 한다. 그러나 음식 값이 싸다고 음식을 함부로 남겼다간 주인장의 강의가 아니라 호된 잔소리를 각오해야 한다. 가격이 싸다고 해서 음식의 가치까지 싼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집 주인은 손님의 건강과 함께 처가 식구들과 아내와 직원들 땀의 가치를 누구보다 귀하게 여긴다.
주인장 처가에서 공급받는 신선한 채소, 호박죽 일품
한때 웰빙 붐을 타고 보리밥집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의 보리밥 식당들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집은 덩치 큰 뷔페식당임에도 불구하고 보리밥과 웰빙 콘셉트로 벌써 5년째. 지속적인 고객유입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식당이 꾸준하게 고객을 모을 수 있었던 원인은 질 좋은 식재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력 식재료인 찰보리를 비롯한 곡류와 양념류를 주인장의 처가인 충남 예산에서 공급받고 있었다. 처가에서 생산한 곡물을 필요할 때마다 예산의 정미소에서 도정을 해온다. 채소류와 호박, 감자, 고구마 등은 수원에서 가까운 평택 서정리의 한 농부가 지속적으로 대주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이 집 채소와 쌈채는 대체로 청결하고 아주 신선하다. 지난해 ‘채소파동’같은 시련기에도 별 어려움 없이 버텨냈다고 한다.
이 집에서는 반드시 호박죽을 맛보아야 한다. 호박죽은 주인장이 가장 공을 들인 메뉴. 찹쌀과 멥쌀, 늙은 호박과 단호박이 적절한 비율로 들어가 부드러우면서도 호박의 달콤함과 소박한 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너무 달지 않고 그렇다고 안 달지도 않다. 적당한 점도를 유지하면서 혀에 살짝 감기는 느낌도 괜찮다. 저녁시간에 주부모임이나 가족모임일 경우에는 간이 칸막이도 설치해주어 가볍게 수다를 떨어도 부담 없다.
요즘 우리 몸이 겨우내 못 먹었던 신선 채소에 한창 주려 있을 시기다. 옛날에는 묵나물을 만들어 두었다가 대보름이면 갖가지 나물로 성찬을 만들어 먹었다. 채소는 비타민 A, C와 무기염류의 중요한 공급원인 알칼리성 건강식품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신체의 발육과 건강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식재료다. 우리 몸은 습관적으로 이 시기가 되면 신선한 채소를 갈망한다. 청겨자, 적겨자, 케일, 상추, 쌈추, 알배기(속배추)가 제각기 달작지근하면서 매콤한 향으로 유혹해온다. 쌈을 싸서 입 안 가득 넣으니 금방 몸이 건강해진 느낌이다. 보리밥에도 채소 썬 것과 시래기 등 각종 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먹었더니 어느새 봄이 저만치 온 것 같다.
평일 점심시간과 주말 저녁시간에 떡볶이, 잡채, 조기튀김, 전 등 일부 메뉴가 바로바로 보충이 안 되는 점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7000원이라는 가격에 싱싱한 채소와 쌈채를 듬뿍 먹을 수 있고, 기름기와 거품이 빠진 알찬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031-225-8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