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멋집n요리

서울 도봉구 쌍문동 '들판가득'

힉스_길메들 2011. 12. 30. 23:52

엄니가 끓여주시던 바로 그 된장찌개…
한국 음식의 근본, 장류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예전 시골 아이들은 아무리 추워도 추운 줄 모르고 배고픈 줄도 모르고 신명나게 밖에서 뛰어놀았다. 집에는 언제나 따뜻한 아랫목과 어머니가 질화로에 올려놓은 따끈한 토장(土醬)찌개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날이 찰수록, 겨울이 깊을수록 구수한 토장찌개에 대한 그리움도 깊어만 간다.

된장, 청국장 등 장류는 김치와 함께 우리 음식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흔히 거론된다. 그러나 배추와 고추로 만든 김치는 그 역사가 겨우 200년을 넘나드는데 비해 된장, 간장 등 장류는 고구려나 발해 시대부터 시작, 1천년 이상 우리 한민족의 밥상에 올라 전통 먹을거리로 맥을 이어왔다. 식품사학자 고 이성우 교수는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에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식품을 잘 만든다고 해서 선장양(善藏釀)이라고 했다는 사실과 발해의 명산물이 시(豉, 콩을 삶아 발효시킨 것으로 오늘날의 메주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였다는 점, 중국 사람들이 시에서 나는 냄새를 ‘고려취(高麗臭)’라 했다는 데 근거하여 시가 우리나라에서 대륙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았다.

우리 조상들이 콩을 소재로 장을 만들었다는 이런 흔적은 동물의 고기를 소재로 했던 중국의 장류(肉醬)와 전혀 갈래가 다르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이 교수의 추론이 맞는다면 우리의 장류는 최소한 고구려나 발해 시대로부터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된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된장인 ‘미소’ 의 조상이 되기도 하였다. 습기가 많아 우리나라처럼 오랫동안 발효를 시킬 수 없는 날씨 환경 때문에 일본은 발효기간이 짧은 밀가루를 섞어서 ‘미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홍만선의 「산림경제」를 비롯한 여러 요리서에서 장 담그는 요령과 주의할 점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대부분 식당에서는 유사 된장만 먹을 수 있어

이렇게 면면히 천년세월을 이어온 우리의 장문화가 최근 들어 위협받고 있다. 전통 장류를 쓰지 않는 서구식 음식 확산과 장류의 산업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현대 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우리의 입맛과 식생활도 급속하게 바뀌었고 장류 또한 새로운 시대 조류에 적응해야 했다. 생산주체가 일반가정에서 제장공장으로 넘어가면서 전통적 장맛과 제법도 바뀌었다. 콩보다 밀의 함유량이 더 높은 ‘무늬만 된장’인 규격화된 장류가 대량으로 나온다. 비용을 줄이고 균일한 맛을 내야 하는 대부분의 일반식당은 이런 된장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전국 식당들의 된장 맛은 어느덧 하향 평준화되어 버렸다. 이름은 된장이지만 풍미와 냄새가 된장이라고 하기에는 그 맛이 가볍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우이천변, 한일병원 앞에 있는 한식 전문점은 100% 콩으로 발효시킨 된장과 청국장으로 음식을 만든다. 이곳은 장류와 찬류 제조회사에서 자사 제품의 연구 개발과 홍보를 위해 문을 연 식당이다. 따라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가격대비 음식 수준도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도 콩으로만 만든 메주를 재래식 방법으로 띄운 뒤 취한 장으로 음식을 만들어 음식 맛이 깊고 풍부하다. 된장찌개를 비롯해 된장과 고추장으로 맛을 낸 매실장아찌, 당귀와 된장을 넣은 냉채, 소와 돼지의 등심을 얇게 켜서 된장을 바른 뒤 말아 올린 편채 등이 전통 장으로 만든 음식들이다.

청국장은 8000원에 맛볼 수 있지만 된장찌개는 단품으로 팔지 않고 들판가득정식(1만5000원)의 세트메뉴로 들어가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식을 시키면 여러 가지 요리가 나온다. 30년 된 반찬전문 메이커답게 모두 맛깔스럽다. 그러나 요즘 맛보기 힘든 100% 콩된장 맛을 오롯이 맛보아야 한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강된장을 배춧잎에 찍어 먹거나 밥에 비벼먹으면 예전 된장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어머니를 따라 뒤란 장독대에 따라가서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떠먹여주었던 바로 그 된장냄새와 맛이다.

실내가 깔끔하고 전통 장류로 맛을 낸 음식이 정갈하다. 된장 맛이 그리운 사람끼리 둘러앉아 정담을 나누기 좋은 곳이다. 된장은 우리 민족에게 동류의식의 매개체 구실을 하는 식재료다. 어머니의 토장찌개와 질화로가 사라진 시대에 그 맛을 간직한 된장의 존재는 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02)904-3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