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 헬스

불치의 뇌암… 맞춤형 항암치료로 희망 만들기 ②

힉스_길메들 2008. 11. 14. 01:26

왜 암 치료를 위해 유전자 검사가 필요할까?

 

환자는 병원에서 담당의사를 만나 모든 정보를 전해 듣는다. 어떤 검사를 해야 하는지, 어디가 아픈지, 어떤 치료를 받을지도 상의하게 된다.

하지만, 환자의 질병 종류를 확정 짓는 의사는 따로 있다. 바로 병리의사다. 병원 한 곳에서 수술로 얻어진 환자의 검체로 조직학적 진단을 내릴 뿐 아니라 고도의 정밀성을 요구하는 다양한 첨단 검사를 진행한다. 암은 종양 일부를 떼어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조직검사’를 받아야 병을 확정 지을 수 있다. 보통은 영상의학적 소견을 통해 수술을 진행한 후 다시 정확한 검사를 하며, 이때 명확한 암의 종류를 확정한다.

이미 수술을 끝냈는데 왜 또 이런 일을 하는 걸까? 다 같은 암이라고 생각되지만, 그 종류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이는 수술 이후 암의 전이를 막기 위해 정확한 항암치료를 병행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뇌종양과 같이 수술이 불가능하거나, 수술을 하더라도 최적의 방법을 미리 확정할 필요가 있는 질환이라면? 이때도 병리의사가 나선다. 유전자 분석방법을 동원해 최적의 항암치료 방법을 결정내리는 일을 한다.

●항암제 테모졸로마이드가 뇌암인 교모세포종에 특효인 이유… 유전자 검사 없인 적용 어려워

지난번 이야기 하던 뇌종양 치료법을 통해 유전자 검사가 왜 암 치료에 중요한지 잠시 확인해 보자.

DNA는 유전 정보의 매개체이자 창고다. DNA가 유전 정보를 전달할 때는 메신저를 이용하는데 이 메신저를 우리는 ‘메신저 RNA’라 부른다. 세포가 분열하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유전정보를 딸세포에 전하거나 메신저 RNA에 전하고자 할 때 DNA는 복제 혹은 전사를 하게 된다.

원본을 읽어내 새롭게 만드는 행위이니 마치 복사기로 서류를 복사하는 것과 같다. 당연히 복사기의 성능에 따라 해상도가 떨어질 수도 있고, 지저분하게 복사될 수 있다. 우리 몸은 이런 문제를 막고, 원본과 100% 똑같은 복사물을 만들기 위하여 수복 효소를 가지고 있다. 수복효소는 DNA의 손상을 감지하고 바로 잡는 기능을 하는 수리공이다.

문제는 이러한 수복효소를 암세포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화학 치료나 방사능 치료는 암세포에 DNA 손상을 유도하여 세포사(apoptosis), 즉 세포의 죽음을 유도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앞에서 말했듯 테모졸로마이드, 또는 카뮤스틴(BCNU) 등의 항암제는 DNA를 알킬화시켜 세포사를 유도하는 약제다. 만약 이 알킬기를 제거하는 DNA 수복효소가 있어 강력한 기능을 행사한다면 이러한 약제가 DNA를 알킬화시켜 봤자 모두 허사가 된다. 왜냐하면, 약제에 의한 알킬화가 종양세포가 가지고 있는 수복효소에 의해 복구되기 때문이다.

MGMT(O6-Methylguanine-DNA-methyltrasferase)란 이름의 수복효소가 있다. 이는 DNA상의 구아닌O6의 알킬기를 제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테모졸로마이드와 MGMT는 서로 반대의 작용을 하며, 종양세포에 MGMT가 활성화되어 있는 환자의 경우 테모졸로마이드를 사용해도 효과가 없다. 즉, 유전자 검사를 통해 MGMT가 활성화 된 환자라면 테모졸로마이드 이외의 항암제를 통해 치료효과를 기대해야 한다.

뇌종양의 약 40%에서 MGMT의 비활성화(과메틸화)가 관찰되고 있다. 테모졸라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환자도 40% 정도일 것이다. 따라서 종양세포의 MGMT의 활성화/비활성화 여부는 알킬화 약제를 환자의 치료제로 채택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1번 환자는 MGMT 유전자의 메틸화가 관찰되지 않으나(흰색 화살표), 2번 환자는 MGMT 유전자의 메틸화가 관찰되고 있다(검정색 화살표).

이처럼 신경외과에서 뇌종양을 절제하면, 절제된 조직을 슬라이드로 제작하고 판독하여 진단명을 붙이고, 그 종양이 테모졸로마이드의 사용이 적합한지를 결정하기 위해 MGMT 혹은 hMSH의 활성화/비활성화 여부를 판정하거나 특정 염색체의 결손이 있는지 확인하여 ‘맞춤치료’를 하게 도와 주는 의사가 바로 병리의사이다.

테모졸로마이드는 ‘교모세포종’ 이외에 또 하나의 뇌종양인 ‘희돌기세포종’에도 특효 항암제이다. 그런데 이 희돌기세포종은 특유의 유전자적 이상을 보이는데 그것은 염색체 2가지(1p와 19q)의 결손이다. 종양세포에서 형광동소교잡법(FISH)이라는 특수 검사방법을 사용해 이 두 염색체의 결손이 있는지 없는지를 밝혀 주기도 한다. 이 두 결손을 같이 가지고 있는 환자는 희돌기세포종일 가능성이 높고 항암제에 대한 치료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형광동소교잡법(FISH)의 형광 사진. 빨간색이 1p와 19q 부위를 DNA probe에 형광을 입혀 관찰한 것이다. 녹색은 대조 염색체다.

이런 기술의 발달로 희돌기세포종은 수술로 절제해야 할 종양이 아니라 약으로 치료해야 하는 종양으로 구분되고 있다. 따라서 신경외과 의사는 방사선과적으로 종양의 발생 부위나 생긴 모양이 희돌기세포종에 가깝다고 생각되면 두개골을 크게 여는 대신 작은 구멍만 낸다.

이 구멍을 통해 가느다란 주사침을 사용해 아주 작은 뇌 조직 세포만을 얻는데, 이 세포를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흔히 ‘생검 ’이라고 부르는 조직검사 방법이다. 뇌에 구멍을 낸다니, 큰 문제가 있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부위나 손상 정도에 따라 문제가 없는 경우도 많다.

검사 후 희돌기세포종이 맞다고 나오면 환자는 바로 혈액종양내과로 보내져 약물요법으로 치료를 시작하면 된다. 만약 희돌기세포종이 아닌 다른 뇌종양이라고 조직진단이 나오면 그에 맞게 외과적 절제를 고려하고, 이후에 약물치료 및 방사선치료의 수순을 밟는다. MGMT의 활성화 여부는 희돌기세포종의 항암치료에서도 교모세포종과 똑같이 중요한 요소이다.

●항암제에도 내성이 있다? 감기약과 달라 정확한 사용법 지켜져야

최근에는 사람의 몸이 항암제에도 내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MGMT가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아 이 약제를 사용하였고 효과도 보았으나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고 나면 항암제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것도 유전자의 변형이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항암치료를 하며 내성의 발생여부 역시 유전자 검사로 확인할 수 있다.

암 환자 중 항암제를 감기약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항암제의 가격이 결코 값싼 것은 아니며, 부작용도 적지 않다. 증세가 긴급을 요할 수도 있다. 미리 항암제를 투여해 보고 효과를 확인하는 방식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다. 정확한 효과가 기대되는 증상에 적당량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제 병리의사는 과거처럼 현미경만으로 검진하지 않는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병의 근원적 단계에서 살펴보고 적극적으로 치료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기초연구와 정확한 진단 그리고 임상치료까지, 병리의사의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글: 박성혜 서울대학교 병리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