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기록

앙코르 스토리 텔링

힉스_길메들 2013. 11. 1. 13:07

라이왕의 비극

 

앙코르왕국 라이 왕의 전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앙코르 왕궁 테라스 모퉁에어는 수백 년 동안 앙코르를 다스리며 좋은 정치를 펼쳤던 왕이나 왕비, 상궁들의 앉은 상이 부조되어 있었다. 중앙 부근에는 아래로 큰 바다의 물고기들, 다음이 인드라바르망 왕(야쇼바르망 왕의 아버지)과 왕후들, 그리고 살이 찐 듯한 젊은 대왕과 네 사람의 왕비가 조각되어 있다.

 

그 젊은 대왕이 바로 도성 앙코르톰의 건설자 야쇼와르만 왕이다. 오른손 끝은 앙코르의 땅을 가리키며 왼손은 관음처럼 이 나라를 따뜻하게 감싸려 하고 있다. 야쇼와르만 왕은 왕위에 오른지 불과 1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더욱이 왕위에 오른 것은 20세 전후였던 것이다. 올해 새겨진 내용을 보면 앙코르 역사에서 이 젊은 대왕을 '영화왕'이라 부르고 있다. 어떤 학자는 '아시아의 알렌산더'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광과 모험, 그리고 젊은 나이에 죽은 일생이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럼 야쇼와르만 왕의 일생을 비문이나 전설을 바탕으로 더듬어 보기로 하자.

‘영화왕(榮華王)’이라고 불리는 아쇼와르만 왕은 크메르의 명군주라고 일컬어지는 인드라와르만 왕(877∼899년)과 인드라데위 왕비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힘이 셌다. 그러나 성격은 얌전하고 무슨 일에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왕의 고문인 브라만 승려인 무니 바마시마에게 인도나 자바의 학문과 왕들의 이야기, 먼 로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무니는 입버릇처럼 왕자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곤 했다.

“유유히 흐르는 갠지스 강변, 성스러운 산이 있고 거기에다 왕국의 중심인 중앙 대사원이 하늘을 찌르는 곳, 그곳에 오르면 눈 아래 바다가 한눈으로 내려다보이는 인도. 이 대수도는 서쪽의 대국 로마도 당할 수 없다.”

‘아바마마께서는 인도의 큰 도성과 자바의 보로브투르 사원과 같은 중앙 사원을 건설하려고 계획하고 계셨다.’

어느 날, 왕자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가슴 속에는 큰 꿈이 무르익어 갔다.

“좋아, 그렇다면 내가 대도성을 세워야지! 아버님의 꿈을 내가 이뤄 드리겠어.”

왕자는 의지에 불타는 듯한 표정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다짐했다. 그런 왕자를 보며 무니는 웃으면서 차분히 설교를 했다.

“그보다 앞서 생각하실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위대한 부왕께서 왜 대도성을 건설하지 못하셨는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또 하나는 만약에 대도성을 세우더라도 어디에 세우느냐, 그 장소 역시 문제가 됩니다.”

“첫번째 질문의 대답은 언제나 참족의 침입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대도성 건설 같은 큰 공사를 하려면 우선 나라가 평온해야만 합니다.”

“무니, 지금은 나라가 평화롭소. 그리고 두 번째 문제라고 한 장소는 이제부터 찾을 거요. 당장 실행에 옮기겠소.”

이 말을 남기고 왕자는 공부 방을 뛰쳐나갔다.

“인도에 뒤지지 않는 수도, 산과 강과 바다가 있는 곳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왕자는 남쪽 정글 속을 헤쳐 갔다. 바다가 남쪽에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거리를 멀찍이 두고 왕궁 호위를 맡은 여섯 명의 병사와 무니가 왕자를 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숲 속에서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왕자에게 덤볐다. 왕자는 몸을 사리며 목을 움츠리더니 오른손으로 한방에 호랑이를 쓰러뜨렸다. 병사들이 그제야 마음을 놓고 뒷수습을 하는 동안에 왕자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평지에 솟아 있는 바위산을 발견하자 거기로 올라갔다.

“성스러운 큰 강과 바다가 보인다.”

정상에서 바라보니 물을 가득 실은 채 뱀처럼 굽이치고 있는 세므레아프 강과 톤레이세프의 파도치는 호수면이 보였다. 톤레이세프는 마치 바다와도 같았다. 늦게 왕자 뒤를 쫓아온 무니 바마시마도 고개를 끄덕이며 광대한 평원과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를 중앙 사원으로 삼고 큰 도성을 만드는 거야. 이름은 앙코르톰이다.”

“그리고 야쇼다라프라구요.”

때마침 하라하리야 프라에서는 싸움에 이겼다는 전갈과 함께 많은 노예들이 끌려왔다. 이윽고 왕자의 명령으로 수만 명의 노예들이 동원되었다. 노예들은 프놈 바켕의 돌을 떼어 내어 앙코르톰의 성벽 둘레에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한편 정글은 불태워지고 수로가 규칙적으로 뻗기 시작했으며 곧 논이 마련되었다. 이리하여 앙코르의 대도성이 완성되어 갈 무렵, 부왕이 세상을 떠나고 20세 미만의 청년 아쇼와르만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아쇼와르만 왕은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뒤에 왕궁과 사원, 거리가 완성된 앙코르톰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었다. 왕후·대신·고승·상궁·군인·백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새 왕의 행렬을 따라 새로운 수도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시바 신의 대성전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대저수지 공사를 시작한 것이다.

아쇼와르만 왕은 대건축과 대토목 공사를 명령하는 한편 이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남기려는 생각에서 자바 문자와 인도 문자인 산스크리트 말로 성벽과 저수지, 제방, 승원의 기둥에 대사업의 유래를 새겨 두게 했다. 그러나 이것을 질투한 ‘바라타’라는 왕후가 서울을 옮긴 1주년이 되는 어느 날 밤 병사들을 이끌고 갑자기 왕궁을 습격했다. 왕의 호위병들은 갑작스런 습격으로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잇따라 쓰러졌다. 안뜰을 지키던 보초병도 기겁을 했다. 그 비명 소리와 함께 아쇼와르만 왕은 벌떡 일어났다.

출입문 밖에서는 두 용사가 왕의 침실로 침입하려는 적을 막기 위해 필사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침실에서 뛰쳐나온 순간, 왕은 4∼5명의 적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리 호락호락한 아쇼와르만 왕이 아니었다. 거인과 같은 몸집의 왕은 순간적으로 주먹을 휘둘러 도망치려는 바라타를 끌어당겨 머리를 박살내고 말았다. 그리고 떨어져 있던 횃불을 높이 쳐들고 반란을 진압시켰다.

‘스스로 지원한 병사들이고 그 동안 여러 전쟁에서 위험한 순간을 이겨 낸 병사들이었으나, 왕의 굉장한 힘을 본 반란군은 순식간에 흩어졌다’고 비문은 말해 주고 있다. 또한 ‘왕에게 충실한 두 사람의 귀족이 왕을 구출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고도 전한다. 이 사실은 바욘 묘에 새겨져 있으며 두 귀족은 프레아 칸 대성당 입구의 수호신이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수 년 동안 아쇼와르만 왕은 참족을 격퇴시키는 동시에 왕궁의 수호신을 모시는 피메아나카tm 궁전의 건설과 왕궁 개축, 성문 등의 토목 공사에 열중했다. 참족과의 치열한 전투에도 이기고 나날이 도성이 부유해질 무렵(아마도 910년경이라고 생각된다) 아쇼와르만 왕의 네 왕비가 우연한 기회에 또다시 두 사람의 왕족이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 두 왕족은 오래 전부터 몰래 군대에 손을 뻗치며 반란을 계획했다. 그 음모 가운데 하나가 무거운 돌의 운반을 싫어하게 된 많은 노예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모으는 일이었다. 두 왕족은 노예들을 제 편으로 만들면서 왕위를 노리고 있었다. 왕비들은 그 사실을 왕에게 알렸다. 왕은 기분이 몹시 참담했으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톤니트 후작과 또 한 사람은 누구냐?”

“타이족을 격파한 늙은 장군 바이본크사입니다.”

“아하, 서남부에 있는 장군이군. 만난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왕은 생각에 잠겼다. 왕비들이 알아본 만큼 알아본 일이라 잘못된 정보는 아닌 듯싶었다. 또다시 배신자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왕은 무척 괴로웠다. 왕비들은 왕이 생각만 하고 있게 내버려 둘 수가 없어 충언을 했다.

“잠시 앙코르를 떠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사옵니다.”

왕은 왕비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다. 언제나 조언을 해 주던 무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믿고 상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왕비들과 시바 신뿐이었다.

“건설을 서둔 나머지 백성들에게 불만을 품게 한 것은 왕으로서의 잘못이다. 그런데 시바 신은 파괴를 바라셨는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잠시 동안 옛 수도에서 수양이라도 해야겠다.”

왕은 왕비들의 의견을 따라 일단 피신한 다음 다시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옷을 갈아입은 왕은 네 왕비를 거느리고 몰래 북쪽으로 빠져 나갔다. 왕이 빠져 나간 뒤, 일은 예상대로 진행되어 앙코르톰은 반란군의 차지가 되었다. 반란군은 수비를 강화했고 왕궁에는 반란군 가운데 한 장군이 상궁이나 왕의 코끼리 사육사, 경비 대장 등을 지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5∼6마리의 빠른 말이 톤레이세프 호수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 속에는 환상의 왕관을 가진 다른 한 명의 장군이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북쪽으로 향하던 왕은 ‘프라 칸(성스러운 칼) 사원’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정자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마음먹었다. 정자에는 정자를 지키고 있는 늙은 은자(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사람)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은자는 자신의 정자에 들어서는 손님이 왕임을 한눈에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신통력까지 가진 사람이었다. 정자에 머물게 된 아쇼와르만 왕은 은자의 차 대접을 받게 되었다. 은자는 왕에게 차를 권하면서 솔직하게 말했다.

“크메르와 앙코르의 대왕이시여!”

그 말을 듣고서도 왕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왕께서는 반역자 두 사람을 동시에 정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 두 사람은 왕위를 놓고 다투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이용하셔야 합니다. 왕께서는 남쪽으로 가셔서 흰 수염의 나이 많은 장군의 부대로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왕이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하는 순간에는 진흙 바닥만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망할 것은 없습니다. 진흙 속이야말로 상상도 못 했던 보물이 있는 곳이니까요.”

수수께끼 같은 은자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을 거듭한 왕은 혼자서 정글을 헤쳐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며칠 뒤에 바이본크사의 군대와 마주치게 되었다.왕은 신분을 숨긴 채 바이본크사 군대의 병사로 들어갔다. 바이본크사 군은 앙코르로 진격하여 도성 가까이에서 톤니트 군과 전쟁을 벌였다. 처음에는 톤니트 군이 우세했다.

다음 날에는 왕이 속해 있는 부대가 최전방으로 나갔다. 왕은 먼저 톤니트를 잡기로 마음먹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런 왕을 도와주기라도 하듯, 한순간에 승부를 결정하려고 성급하게 마음먹은 톤니트가 전투 코끼리로 직접 돌격해 오다가 달려오는 큰 몸집의 사나이와 마주쳤다.

“아니, 너는?”

톤니트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듯 물었다.

“그래, 아쇼와르만이다!”

대답과 함께 왕은 톤니트를 향해 큼직한 칼을 휘둘렀다. 톤니트는 두 동강이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왕은 톤니트가 타고 있던 커다란 코끼리에 뛰어올랐다. 그리고 병아리라도 쫓듯 톤니트 군 속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런 다음 동문 앞에 도착한 뒤 소리쳤다. “나는 톤니트의 대신이다. 대오를 정비하여 다시 한 번 적을 무찌르도록 하라!”

그의 용감하고 위엄 있는 태도에 놀라고 자극을 받은 톤니트 군대의 병사들은 곧 대열을 정비했다. 그런 다음 바이본크사 군을 향해 진격했다. 아쇼와르만 왕은 가장 맹렬한 기세로 적진을 향해 돌진했다. 왕의 목표는 바이본크사였다. 왕은 바이본크사를 호위하며 자신을 가로막는 자를 쳐죽이고 바이본크사에게 다가섰다. 왕의 얼굴을 본 바이본크사 역시 소스라치듯 놀랐다.

“아니 네놈은!”
“그래. 나는 아쇼와르만 대왕이다. 네가 감히 날 배신하고 무사할 줄 알았느냐? 자아, 내 칼을 받아라!”

너무나도 놀란 바이본크사는 몸도 가누기 전에 땅바닥에 떨어졌다. 바이본크사까지 물리친 아쇼와르만은 다시 앙코르 왕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백마를 타고 충성을 다짐한 장병들을 이끌고 동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 비극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은자의 예언이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동문을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왕이 타고 있던 백마가 길바닥에 누워 있는 할머니 때문에 놀라 뛰어오르고, 그 때문에 왕은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호위병들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고 있는 사이에 할머니는 왕을 끌어안고 말았다.

순간 젊은 대왕은 자신이 문둥병 환자에게 입맞춤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한 사실은 왕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다른 병사들도 모두 알게 되었다. 자신에게 병이 옮을까 두려워한 탓에 모여 있던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칼 못지않게 무서운 문둥병이었던 것이다. 결국 왕이 앙코르에 말을 몰고 들어왔을 때는 혼자 몸이었다. 대신이나 고승들은 급히 회의를 열어 왕을 궁전의 북쪽 모퉁이에 따로 떼어 놓기로 결의했다. 이리하여 왕은 반란을 진압했는데도 감옥 아닌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왕은 비탄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석공들이 일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출구인 바닥이 올려지고 그곳에서 아름다운 얼굴들이 하나씩 나타났다. 왕비들이 갇혀 지내는 왕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왕은 그들을 외면하며 “다가와선 안 돼!”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네 왕비는 그때부터 왕이 죽을 때까지 옆에서 간호해 주었다고 한다.

“아아, 은자가 말한 진흙 속의 보석이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던가……?”

숨을 거두면서 왕이 한 마지막 이 말은 헌신적인 왕비들에 대한 감사와 깨달음이었다고 한다. 라이 왕의 테라스 옆 조용한 숲 속에는 양 옆에 두 개의 작은 조각상이 호위하는 나체상이 하나 있다. 이것을 ‘라이 왕의 상’이라고 부르며, 한때는 용감하게 싸우고 위대한 수도를 세운 아쇼와르만이 신으로 된 모습이라고 말한다. 참으로 슬픈 전설이다.

아쇼와르만의 비문을 최초로 해독한 에모니에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신의 영화를 놀랄 만큼 많이 비문이나 조각으로 남긴 이 왕은 라이이건 아니건 큰 꿈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수도는 현재 정글의 들짐승들에게 정복당하고 있다. 그는 그것을 보고 뭐라고 할 것인가?”

칸브 와 소마공주

 

수만 년이나 거슬러 올라가는 아득한 옛날, 이 나라가 물과 진흙으로 덮인 바위뿐인 시대에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이 바다에서 큰 호수 부근으로 찾아왔다. 아름다운 달의 딸과 결혼한 큰 뱀은 이 나라의 만물을 창조하고 지키라는 명령을 상제<하늘에 계신 황제)로부터 받았다. 그 큰 뱀이 바로 뱀의 왕인 '나가(NAGA)'였다. '나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큰 호숫가의 바위 구멍에 수정 궁전을 짓는 일이었다.

 

"이제는 이 나라에서 물과 진흙을 빨아올려 상제가 만드신 사람이나 동물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숲이나 들을 기름지게 해야겠다."
수정 궁전을 지은 나가는 이렇게 말한 뒤 당장에 나라안의 진흙이나 물을 빨아올려 강과 들, 숲을 만들었다. 이윽고 숲 속에선 사람이나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기 시작했으며 딸기, 망고, 바나나 등 맛있는 과일들이 익었다.

"이것으로 일단 마음을 놓겠군요."
아름다운 왕비인 달의 딸은 궁전 안에서 큼직한 수정 구슬을 통해 숲 속의 광경을 들여다보면서 남편인 나가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수정 구슬 속에는 풍요롭게 열매가 익은 숲 속을 코끼리나 호랑이 가족들이 오가고, 아이들을 데리고 딸기를 따고 있는 사람의 가족들도 보였다. 개울에는 물고기들이 놀고, 게가 나란히 줄지어 모래땅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모두가 평화롭고 즐거운 듯했다.

“참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에요. 새들도 즐거운 듯이 날고…….”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던 왕비는 의아스러운 눈길로 나가를 돌아보았다. 남편이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얼굴엔 우울한 빛이 가득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나요?”

왕비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나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말처럼 이 나라는 평화롭기는 해. 하지만 무언가 빠진 것 같아.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이 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다른 것 같아.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단 말야. 다른 나라 사람들을 볼 테요?”

나가는 그렇게 말하면서 수정 구슬에 잠깐 손을 댔다. 그러자 수정 구슬은 다른 장면을 비춰 주었다. 처음에는 궁전 비슷한 것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사람들, 다음에는 땅을 갈고 있는 사람들, 그 다음에는 사자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차례로 나타났다.

“나는 이들처럼 활발하고 씩씩한 사람들이 마음에 든단 말이야. 활동적이며 무엇인가를 만들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좋아.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간다면 이 나라는 훌륭하게 될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한 다음 나가 왕은 입을 다물었다. 왕비도 깊은 생각에 빠진 듯 얼굴이 굳어졌다. 왕과 왕비는 심각한 표정으로 수정 구슬을 들여다보았다. 그때 그들이 이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외동딸 소마(달의 딸이 낳은 아이라는 뜻)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 소마 왔구나.”

왕과 왕비의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소마 역시 생글거리는 얼굴로 왕과 왕비 곁으로 다가왔다.

“뭐 하고 계세요? 으응…… 여기가 어디예요?”

수정 구슬을 들여다본 순간, 소마가 갑자기 낮은 비명을 질렀다.
비명 소리에 깜짝 놀란 왕과 왕비는 잠시 눈길을 뗐던 수정 구슬을 황급히 들여다보았다. 수정 구슬 속에선 때마침 뜨거운 바람 때문에 땅이 갈라지고 사람과 동물들이 잇따라 쓰러져 가는 광경이 비춰지고 있었다.

“시바 신이 화를 내셨군. 소마야, 가서 자려무나.”

나가 왕이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통스럽고 불행한 세상의 모습을 귀여운 딸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빠, 이 젊은이는?”

소마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수정 구슬을 가리켰다. 수정 구슬에 나타난 것은, 죽어 가는 아름다운 처녀를 받쳐 들고 걸어가는 금빛 갑옷의 씩씩하게 생긴 청년 모습이었다.

“소마, 어서 가서 자래두!”

어머니의 말에 소마는 하는 수 없이 방을 나갔다. 하지만 이미 소마의 마음은 수정 구슬에 비췄던 광경과 청년의 모습 때문에 가라앉아 있었다. 제 방으로 돌아온 소마는 억지로 잠을 청했으나 씩씩한 청년의 눈매에 감돌던 슬픈 기색이 자꾸만 신경 쓰여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까. 소마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살그머니 방을 빠져 나갔다. 한밤중이라 궁전 안은 깊은 고요에 빠져 있었다.

“아아, 어떻게 하면 이분을 만날 수 있을까?”

소마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입구 쪽에서 나가 왕과 왕비가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왕과 왕비는 조금 전부터 공주의 동작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마도 이제 사랑할 나이가 됐어. 그런데 하필이면 생명에 한계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다니…….”

왕의 말을 들은 왕비가 입을 열었다.

“거기에다가 저 젊은이는 시바 신의 사위가 아니에요? 그런 젊은이와 결혼을 허락한다면 언제 이 나라가 황폐해질지 알 수가 없잖아요.”

왕비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중전, 시바 신은 파괴도 하지만 그런 뒤에 다시 창조도 하신다오. 어쩌면 저 칸브 왕자를 괴로움에서 벗어나 더 크게 되도록 하실 생각에서 살아남게 하셨는지도 모를 일이 아니오. 저 젊은이라면 끝까지 버틸 거요.”

“그렇다면……?”
“그렇소. 소마에게 힘이 되어 줘야겠소. 그리하여 잘 되는 날엔 이 나라가 훌륭해질 것이오. 내가 걱정하던 부분이 해결될 것이오.”

나가 왕은 왕비를 향해 씽긋 웃었다. 왕비는 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꿈을 꾸는 듯한 눈빛으로 수정 구슬을 보고 있는 딸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걱정 마시오. 다 잘 될 것이오. 지금부터 난 할 일이 있소.”

왕은 왕비의 손을 꼭 잡아 준 뒤 사라졌다. 그는 마법의 힘으로 이 나라에서 가장 참을성이 있는 젊은이 다크의 꿈 속에 나타났다.

“신앙심이 강하고 굳센 젊은이여! 잠에서 깨어나거든 숲에서 내려가 큰 강 기슭으로 가거라. 그리고 그대의 손에 마법의 씨앗이 쥐어져 있을 테니 그것을 물기가 많은 땅에 심도록 하라. 달이 일곱 번 차고 일곱 번 기울 무렵 그 씨앗은 노랗게 익어서 이삭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거든 그것을 거두어라. 이상 말한 것을 어김없이 실행하면 그대 앞에 젊은 왕자가 나타날 것이다. 그 왕자를 나에게 안내하면 왕자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주어질 것이오, 그대와 그대의 부족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 말을 하고 나가 왕은 사라졌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다크는 잠시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 두리번거렸다. 분명 꿈을 꾼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손을 본 다크는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손에는 꿈에서 들었던, 여태껏 본 적이 없는 작은 씨앗 한 알이 있지 않은가.

잠시 씨앗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다크는 급히 숲을 빠져 나갔다. 이건 이 나라의 위대한 신이 자신에게 내리신 명령이었다. 그분의 분부에 반대란 있을 수 없었다. 이윽고 큰 강 기슭에 도착한 다크는 꿈 속에서 들은 대로 마법의 씨앗을 정성스레 심었다. 그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나가 왕이 말했듯이 달이 일곱 번 차고 기울 때를 기다렸다. 씨앗은 얼마 뒤 자라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숲 속의 풀과 같이 푸르던 벼가 시간이 흐르자 꿈에서 말한 그대로 황금색 이삭으로 자랐다. 황금색으로 자란 벼는 고개를 숙였다. 이제 거둬들일 때가 된 것이다. 다크는 부지런히 거둬들였다.

‘자아, 이젠 어떻게 하지?’
수확을 끝낸 뒤 다크는 생각에 잠겼다. 나가 왕의 말대로라면 그 다음은 왕자를 만나야 했다.
‘어떻게 해야 왕자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뒤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났다.
이상한 예감에 뒤를 돌아보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번쩍거리는 옷을 걸친 젊은이가 다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가 왕의 예언은 한 가지도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크는 젊은이가 바로 왕이 말한 왕자인지 아닌지 살펴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대는 누군가, 사람일 테지?”

젊은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서쪽의 먼 나라, 아리아 데카의 칸브 왕자다. 시바 신은 나의 장인이었다.”
“그래? 그러나 나는 시바라는 신은 모른다. 위대한 신이라면 나가님이 계실 뿐이다.”

다크의 말을 듣고도 칸브 왕자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는 다크가 손에 들고 있는 벼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이냐?”
“마법의 씨앗을 뿌려서 키운 것이지. 그러나 이제 이것을 어떻게 할까 궁리하고 있는 중이야. 다 자랐으니 이제 버릴까? ”

칸브 왕자는 고개를 저었다.

“버리면 안 돼. 그건 정말 대단한 힘을 가진 마법의 씨야. 소중한 거지.”
“소중한 거라고? 이것을 알아? ”

그런 생각을 하며 다크는 다시 물었다.

“그런데 너는 왕자임에 틀림이 없나?”

칸브 왕자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안내하지요. 그렇잖아도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크는 갑자기 정중한 태도로 앞장을 섰다. 다크가 칸브 왕자를 데리고 간 곳은 큰 호숫가의 바위산 쪽이었다.
산에 도착하자 마치 태양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밝고 눈이 부시도록 빛났다.

“나는 더 이상 다가설 수가 없습니다. 저 빛 속에 땅 밑으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나는 여기서 돌아가야 합니다.”

다크는 그렇게 말한 뒤 칸브 왕자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고개를 끄덕이던 칸브 왕자는 빛과 열기에도 겁을 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랬더니 수정으로 된 입구가 나타났다. 그는 길고 번쩍이는 계단을 거침없이 내려갔다. 찬바람이 일며 슛슛 하는 소리가 앞쪽에서 나고 있었다. 칸브 왕자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계단이 끝난 곳에 있는 방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러자 갑자기 온화한 빛이 방 안에 넘치고 향기가 왕자를 감쌌다. 시선을 돌리니 거기에는 여태껏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공주가 앉아 있다가 칸브 왕자를 보더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아아……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군!”

칸브 왕자는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일곱 개의 머리를 부채처럼 벌린 큰 뱀이 유심히 칸브 왕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자네는 무엇 하러 이 나라에 왔느냐?”

틀림없이 아까 강가에서 만난 남자가 말한 위대한 신인 듯했다.

“죽기 전에 할 말이라도 있는고?”
“도움을 청하러 왔다.”

칸브 왕자는 그 신을 향해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말했다.

“나의 이름은 칸브 스와얀브와이다. 아리아 데카 국의 왕이 될 몸이었다. 시바 신의 양녀인 메라 선녀는 나의 부인이었다. 그러나 나의 나라는 큰 재난을 당했다. 시바 신이 화를 내셔서 뜨거운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에 식물들은 말라 죽고 땅은 갈라졌으며 부왕도 백성도 소중한 메라까지도 쓰러졌다. 그래서 나는 황폐해진 나라를 버리고 동쪽을 헤매다가 사막을 넘고 높은 산을 넘어 그대의 숲을 가로질러 흐르는 큰 강가에 와서 그리운 생명의 양식인 쌀을 손에 든 다크라는 사나이를 만났다. 나는 이 고장에 머물면서 쌀을 이용하여 신들에게 봉사하는 국민을 길러 볼 생각이다. 그러나 그대가 반대한다면 나를 죽여도 좋다. 나는 이제 다른 곳에 갈 기력도 없다.”

나가 왕은 말없이 칸브 왕자를 바라보고 있더니 이윽고 상냥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칸브. 그대는 이 방에서 조금 전에 공주를 보았을 것이다. 바로 나의 딸 소마이다.”

칸브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대의 나라가 황폐해지고 불운에 빠졌을 때 딸아이는 그 장면을 보고 그대에게 동정심을 품게 된 것 같다. 나는 내 딸의 마음을 읽고 딸을 도와 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다크에게 쌀을 만들게 하여 그대를 이곳으로 오게 한 것이다. 만약 그대가 나의 딸 소마를 사랑하고 아내로 삼겠다면 나는 그대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뒤에서나마 도울까 한다. 죽어야 할 사람인 그대는 우리의 모양으로 변할 수는 없으나 공주를 너희들의 모양으로 바꾸든가 말든가 하는 것은 그대의 자유다. 어떤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칸브 왕자는 아까 잠시 본 소마 공주를 떠올렸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나라를 세우고 싶다. 거기에다 공주와 함께라면 더 좋을 것이다. 기꺼이 그 제안에 따르겠다.”

칸브의 대답을 듣고 나가 왕은 큰 소리로 명령했다.

“가서 소마와 왕비를 들라고 하라. 다크도 불러들여라.”

이리하여 칸브 왕자는 아름답고 상냥한 나가 왕의 딸 소마 공주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다크의 일족을 백성으로 삼아 존 강 유역에 정착하여 새로운 왕국을 세웠다. 그 백성을 칸브자(칸브의 아들들)라고 했으며 그들이 뒷날 캄보디아인이 되었다고 전한다.

※ 참고문헌
『앙코르왓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로버트 J, 케시, 청솔, 2004

 

잃어버린 보물과 달

철탑처럼 뾰족한 모양의 금관을 쓴 무희들, 공작 깃털의 모자를 쓰고 금빛 장삼을 아름답게 걸친 고승들, 금 · 은의 장식으로 허리를 덮은 코끼리, 루비와 에메랄드를 수없이 박은 황금 관을 쓴 아시아의 국왕과 사원의 부조에서 보았던 선녀와 같은 왕비들이 달빛을 받은 사원 안의 기로 모여드는 장면.

 

그러나 그러한 환상은 잠시, 서쪽 정문 천장에서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박쥐가 나를 현실로 이끄고 온다. 현실에선 알몸인 아이들이 모여 서서 소란을 피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원을 그린 채 서 있었고 우리도 거기에 끼어들었다. 톰톰(아프리카의 민속 악기에서 발달하여 재즈의 드럼으로 쓰이게 된 타악기)이 울리고 큰북이 울리고 심벌즈가 귀청을 때리듯 울렸다. 그런다음 피리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 오자 무희들이 나타났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희들의 모습은 마치 사원의 화랑에 새겨진 여신(데와타)이나 선녀(압사라)가 그 속에서 뛰쳐나온 듯했다. 번쩍이는 옷에 뾰족하고 빛을 내는 관을 쓰고 있는 것이 똑같았다. 촘촘히 빨라지고 실로폰이 합세하고 피리 소리가 처량하게 흘렀다. 크메르의 무희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춤을 추기 시작헀다.

금빛 관과 파란 저고리에 박아 놓은 금속 조각들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팔찌와 긴 치마 아래로 보이는 맨발의 발목에 낀 은 고리도 빛을 반사했다.

춤은 아득한 옛날의 어느 왕자와 아름다운 공주의 슬픈 사랑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내용은 이렇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왕가의 왕자와 공주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부모들은 우리 사이를 용서하지 않을 테지.’

이렇게 생각한 왕자는 공주와 함께 수도를 빠져 나간다. 공주의 아버지는 자기 딸이 유괴된 것으로 단정하고 즉각 군인들에게 출동 명령을 내린다. 이 장면은 여덟 명의 무희가 한 덩어리가 되어 군인들의 진격처럼 빠른 걸음으로 등장한다. 장면은 바뀌어 왕자와 공주가 나타나고, 지금 그들은 길을 잃고 악마의 산에 와 있다는 것을 캄보디아 말로 관중들에게 알린다. 왕자는 그만 악마의 산에서 잠이 들었다. 눈이 튀어나오고 이빨을 드러낸 푸른 가면을 쓴 악마가 공주를 빼앗아 가려고 한다. 공주는 필사적으로 왕자를 흔들어 깨우려고 하지만 악마의 주술로 잠에 떨어진 왕자는 깨어날 생각을 않는다. 그런데 왕자의 손에는 마법의 지팡이가 있다.

‘아아, 이것으로 부처님을 오시게 하면 될 텐데.’

이런 생각이 든 공주는 지팡이를 휘둘러 부처님의 제자들을 불러 악마를 물리친다. 이어서 왕자가 잠에서 깨어난다. 다음 장면에서는 왕자의 아버지와 공주의 아버지가 군대를 이끌고 서로 마주치게 된다.
적개심에 불타는 양 군은 당장이라도 맞붙을 기세다. 그것을 알게 된 왕자와 공주는 싸움터로 달려가 아버지를 설득하여 끝내 두 왕은 손을 잡게 되고 평화와 사랑이 싹튼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그런데 춤은 움직임이 거의 없는 편이며 팔이나 발만 움직였다. 부왕들의 노여움이나 공주의 놀라움, 대화 등은 모두 큰북이나 심벌즈가 대신한다. 이를테면 무언극(팬터마임)의 일종이다.
앙코르의 춤은 시작이 그랬듯이 끝도 갑작스레 끝나 버렸다. 천천히 몸을 흔들고 있던 15명의 무희는 별안간 양 손을 펼치고 손가락을 젖힌 상태로 완전히 멈춰 버렸다.

“마치 무희들이 저 사원의 벽으로 돌아간 것만 같습니다.”

잉이 말했다.

“저 무희들은 캄보디아 전역을 순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프놈펜의 왕궁에서는 저들보다 화려한 무용단이 날마다 춤을 추고 있습니다. 고대 선조들로부터 전해지는 저 춤은 옛날 이곳에 쳐들어왔던 타이(태국)의 왕가에서도 추고 있습니다. 자바는 물론 버마, 인도에서도……. 그러나 이처럼 훌륭한 무대, 즉 앙코르를 가진 무용단은 우리뿐입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한 대사원의 탑을 쳐다보았다. 어둠에 감싸인, 창이 없는 탑은 으스스하기만 했다. 그때 나는 문득 그로스리에 교수의 뒤를 이어 앙코르 대학의 학장이 된 파르만티에 교수의, 창이나 문이 없는 탑과 숨겨진 보물에 대한 논문이 떠올랐다.

‘서산에 기운 저녁 햇살을 받은 앙코르왓의 아름다움, 그것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장엄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밤에 바라보는 탑은 으스스하기만 하다. 쳐다보는 사람마다 누구든지 저 탑에 창과 문이 있어 불빛이 보인다면, 하고 아쉬워할 것이다. 건설자의 실수일까? 그렇지 않다. 건설자는 어느 점으로 미루어 봐도 완벽할 정도로 아름답게 만들었다.

이 탑을 세울 당시, 즉 유럽에서 제2차 십자군 전쟁이 끝났을 무렵에는 이 탑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네 개의 문과 여러 개의 창문이 있었다. 그러나 참족과 타이족이 갑자기 쳐들어오자 크메르인들은 일시적으로 도성을 비워 두고 도망쳐야 했다. 그때 적군은 탑에 올라 문을 부수고 창을 뜯고 들어가 숨겨진 무수한 보물을 빼앗아 달아났다.

북쪽에서 세력을 다시 키운 크메르인들은 황폐해진 도성으로 돌아왔다. 참혹하게 만신창이가 된 탑을 보고 그들은 가슴을 쳤다. 그리고 즉각 수리에 들어갔다. 그들은 창과 출입문을 돌로 다 막아 버렸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아직도 약탈자의 손이 미치지 못한 귀중한 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하나를 프랑스 고고학계의 토루베 씨가 발견했다.

그가 세 번째 층의 파괴된 출입문 속에서 움직이는 돌을 드러내니 구멍이 있었으며, 거기에서 줄사다리를 타고 27미터나 내려간 곳에 바닥이 있었다. 바닥에는 보석·금·에메랄드·루비 등으로 만들어진 띠와 목걸이, 브로치 등이 있었다. 청동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상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에메랄드 불상을 찾아서

코끼리 떼는 날마다 앙코르를 지키려는 장병들을 태우고 북쪽과 서쪽으로 떠나고 있었다. 타이족이 메남 강을 건너 질풍처럼 처들어오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크메르 왕이나 고관들은 타이족의 침입을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이족을 대단치 않게 생각해 왔으며, 앙코르로 데려와서는 새로운 가람을 만드는 일에 바윗들은 운반하는 노예로 썼기 때문이다.

 

간혹 노예들은 탈출하여 뜻밖의 힘을 과시할 때도 있었다. 북부에 있는 요새가 갑작스런 습격을 받기도 하고 불길에 휩싸이는 경우도 있었다. 삼만 부근의 도시가 타이군의 습격을 받은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앙코르의 용삳르은 타이족을 쳐부수었고 그때마다 심한 보복을 해오던 타이족이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동쪽 국경에서 참족과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선의 장군이 연락병을 통해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해 왔다.

"아군은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적은 완전히 패배한 상태가 아닙니다. 응원군으로 여섯 마리의 전투 코끼리와 1개 대대 약 1,000명의 병력을 파견해 주시면 참족의 숨통을 끊어 놓겠습니다."

그때까지의 전투에서 크메르 군은 승리를 거두긴 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결정적인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일단 후퇴한 적은 며칠 뒤에 다시 덤벼들어 크메르 군을 위협했던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다시 물리치기는 했으나 크메르 군 전사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부대 안에는 피로의 기색이 짙어만 갔다. 계속해서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래서 장군은 궁으로 도움을 청한 것이다. 왕궁에는 야쇼와르만 왕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이 출입구 기둥에 새겨져 있었다.

‘싸움터에서는 용기를 발휘하는 자가 존경을 받는다. 그러나 싸움을 좋아하는 자보다 싸움을 피하려는 자를 존중하라. 왜냐하면 앙코르의 평화와 부와 정의를 지키는 자는 여기에 속하므로.’

그 가르침을 새기고 있던 전선의 장군은 응원군을 얻어 한꺼번에 참족과의 싸움을 결판내고 전쟁을 끝낸 다음 평화를 되찾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왕궁의 고관이나 고문인 승려들은 전선에서의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은 동양에서 가장 강대하며 번영을 누리는 ‘앙코르톰’에서 한가롭게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죽음이 바로 코앞에 있는 전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안일한 생각을 한 것이다.

“적에게 패배하는 바람에 위험하다고 한다면 국왕의 코끼리와 증원군을 보내겠지만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는 보고가 아닌가 말이다. 지금까지 잘 해 왔는데 현재 병력으로 못 해낼 것도 없지. 연락병은 장군에게 국왕께서 승리를 기대하고 계신다는 말을 전하라.”

그 말을 들은 연락병은 마음이 무거웠으나 그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때 전선 부대의 뜻을 따랐더라면 크메르 왕국은 앙코르에서 지금도 번영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궁에선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연락병이 다녀간 다음 날, 왕궁의 발코니와 각 사원에는 깃발이 휘날리고 국왕이나 승려들이 수백 명의 무희들을 거느리고 앙코르와트의 장엄한 계단을 오르며 축제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연락병의 말을 승리의 보고로 생각한 것이다. 그 날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 광장을 메운 백성들은 춤으로 날을 밝혔다.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타이족과 참족이 서로 손을 잡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북방에서 타이족이 계속 모여들고 있다는 보고에 백성들은 웃고 있었다. 고관들도 마찬가지였다.

“타이족 따위는 수비대가 단숨에 처치해 주겠지.”

불행하게도 이 무렵의 앙코르에는 100년 전과 같은 정신의 긴장감이 없었다. 전사들도 훈련보다는 아름답게 차려 입는 데 관심이 있었고, 수비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때까지의 위력으로 이럭저럭 견딜 수가 있었다. 도성의 모습은 장엄했으며 호화롭기만 했다. 아직도 석공들이 여기저기서 망치 소리를 내며 여러 신이나 승려의 그림, 천사의 미소를 조각하고 있었다.

사원의 시주를 받는 곳에는 진주나 에메랄드, 루비 그 밖의 보석 등이 던져 넣은 그대로의 상태로 떨어져 있었다. 승려들의 옷은 가난한 나라 국왕의 옷보다 아름답고 훌륭했다. 무희들의 허리띠나 머리 장식은 황금으로 만들어졌으며, 국왕의 궁전은 은으로 바닥을 깔고 금으로 옥좌를 만들었으며 천장은 보석들이 박혀 눈부시기만 했다. 노예들이 몰래 훔쳐온 황금 팔찌와 보석을 본 타이족은 “앙코르를 빼앗자”며 전선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도 크메르 사람들은 호화스런 생활에만 젖어 지냈던 것이다. 전선에서 전해 오는 소식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타이족의 침입도 심각하지 않게 생각하고 태평스레 지냈다.

결국 해이해진 정신력 때문에 북방의 여러 도시는 밀림의 나무보다 많은 타이족들의 창 앞에 순식간에 짓밟히고 말았다. 타이 부족장들은 한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약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약탈한 물건에 넋을 잃었다. 그러나 앙코르의 노예였던 한 전사가 코웃음을 쳤다.

“앙코르의 보물에 비하면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오. 보물축에 끼지도 못하는 것이오.”
“이것들이 보물에 끼지도 못한다구, 그렇다면?”

타이족은 서로 탐을 내던 보물을 팽개쳐 버리고 너도나도 앙코르를 향해 진격을 계속했다. 자신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보물이 무진장 있다는 앙코르를 향해 돌진한 것이다. 그 소식이 부상당한 패잔병에 의해 앙코르톰으로 전해지자 그때까지 태평스럽기만 하던 고관들도 그제야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둘러 도성의 수비대를 북쪽으로 보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북쪽 도시들에 이어 서쪽의 수비 부대가 전멸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그로부터 사흘 뒤에 타이족의 수백 마리의 전투 코끼리는 톤레이세프 서쪽에 도달하여 정글을 짓밟고 있었다.
이어서 활을 가진 병사, 창을 든 전사들이 밀물처럼 밀려와 앙코르와트로 통하는 넓은 길을 메우며 진격해 왔다. 왕궁 회의실에서는 고관들이 모여 마지막 회의를 열고 있었다.

“사태는 예측한 것과는 전혀 반대로 벌어졌다.”

국왕은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타이족이 여기까지 오기 전에 신들의 도움이 있으리라고 우리는 믿어 왔다. 물론 타이족은 우리의 용감한 전사들에 의해 저지되어 더 이상 진격을 못 하리라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비상시에 대비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적이 왕도에 침입하더라도 우리는 영광스러운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보물을 그들의 손에 닿게 할 수는 없다. 타이족의 목적은 우리의 보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즉각 이 보물들을 숨겨야만 한다. 그런데 어디에다 숨기느냐, 그것이 문제다.”

그러자 늙은 승려 하나가 나서더니 국왕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그는 앙코르와트의 관리인 노승이었는데 그의 말을 들으면서 국왕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모여 있던 고관들을 향해 명령했다.

“경들이 관장하고 있는 사원에서 당장 소중한 보물들만을 모아 이 회의실로 가져오도록. 그 다음은 비밀이다.”

이리하여 타이족의 대군이 수도로 밀려들기 전에 왕실의 수호신인 황금 불상, 제단의 집기, 왕가의 보물 등을 비롯하여 앙코르와트, 바욘, 타 케오, 타 프롬, 프라 칸 등 여러 사원의 보물들이 모두 왕궁 회의실로 옮겨졌다. 그리하여 크메르 왕국의 보물들은 왕궁 회의실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국왕에게 숨길 장소를 귀엣말로 알린 노승은 젊은 승려 여섯 사람과 함께 이틀 동안 미로를 따라 바이욘 묘의 지하로 보물을 옮겼다.

그 지하 창고는 바이욘 묘의 중앙 금자탑 바로 아래였다. 보물을 옮기는 일이 끝나자 젊은 승려 여섯 명도 보물을 지키기 위해 그곳에 갇혀야 했다. 앙코르의 보물과 여섯 명의 젊은 승려를 삼킨 지하 창고의 입구는 노승에 의해 돌이 채워지고 막혀 버렸다. 그런 다음 노승은 왕궁의 노예를 불러 왕궁으로 통하는 미로를 커다란 돌로 교묘하게 묻어 버리게 했다. 또한 그 일이 끝나자 여기에 동원되었던 노예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죽였다.

이제 보물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아는 사람은 국왕과 노승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몇 시간 뒤 타이 군은 앙코르왓으로 몰려왔고 수도의 성벽을 뚫어 버렸다. 국왕은 왕비들과 함께 동북방 정글 속으로 도망쳤고 노승만 왕궁에 남았다. 타이 군은 왕궁에 조용히 앉아 있는 노승을 발견하고 왕과 보물의 행방을 물었다. 하지만 노승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다. 목표로 삼았던 보물을 차지할 수 없게 된 타이 군은 왕궁을 짓밟고 곳곳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크메르인의 숨겨진 비밀

 

캄보디아 앙코르 왕국 건국에 얽힌 5가지 비밀이 있다.

 

첫째, 캄보디아의 최초 민족은 용신(바다에서 온 나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분명히 크메르인이 처음에는 해양 민족이었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칸브 왕자를 통해 인도의 왕족이 가뭄과 굶주림 등 어떤 자연 현상으로 인해 나라가 황폐해졌기 때문에 풍요로운 새 토지를 찾아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셋째, 칸브의 옷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인도의 왕죽은 금속으로 만든 갑옷을 ㅇ비고 있었으며 숲 속 원주민들의 벌거벗은 생활보다 훨씬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는 점을 알수있다.

넷째, '벼'라는 작물을 알고 있었으며 앞으로 그 나라가 농경 민족으로서 정착하고 발전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다섯째, 인도의 왕족이 고지의 숲 속에 사는 사람들과 협력하여 나라를 일으켰으나, 그것을 돕고 뒷바라지하는 것은 나가왕이라는 점 등이다.

이와 같이 전설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크메르 문화는 인도 브라만교-시바 신이나 ‘선녀의 여왕’인 메라가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의 지도자 또는 그 영향을 받고 나가(큰 뱀)를 숭배하는 민족이 남긴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랑스 고고학자인 에모니에 교수는 칸브 왕자가 건너온 전설을 가설이라고 전제하고 ‘민족의 이동’이 아니었을까 하고 발표한 바 있다. 스키타이 언어나 튜튼 인, 게르만 인의 대이동이나 아시아 훈족의 이동처럼 데카(데칸 고원) 지방의 주민, 인도 아리아 민족의 동방 집단 이동이라는 것이다.

“태양이 저무는 곳에서 동방을 향해 한 민족이 전진해 갔다.”

교수는 이와 같은 극적인 서두를 시작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코끼리에 올라탄 왕, 황금 수레를 탄 고승들, 말에 오른 전사들, 불구자나 환자도 섞인 수없이 많은 남녀 노소가 불빛 속의 황야를 지나고 산을 넘어 톱니바퀴처럼 생긴 바위 사이를 지나 오직 동쪽으로만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하여 큰 강을 건너 북부 버마의 습지대에 시달리면서 샴족(태국인)의 나라를 통과한다. 쓰러지는 자는 버려 두고 민족이 풍요롭게 정착할 수 있는 고장을 마음 속으로 그리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드디어 황금의 반도라고 일컫는 캄보디아에 도착하여 톤레이세프 호수나 메콩 강에서 큼직한 물고기를 잡고 습기 찬 정글을 개척하여 논을 일구고 쌀을 생산했던 것이다. 정착한 지 얼마 뒤에 그들은 모국인 인도의 지혜를 충분히 발휘하여 사원을 만들고 도성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을 숭앙하는 원주민들과 손을 잡기 위해 그 뱀을 중요하게 다루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는 앙코르톰의 성문을 비롯하여 모든 건축물의 수호신으로 일곱 개의 머리를 가진 뱀을 사용하고 있으며, 성벽이나 사원의 부조는 고대 인도의 2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 와 <라마야나>의 이야기가 몇 장면이나 일관성 있게 여러 곳에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앙코르의 내부 벽화나 부조물을 보기 전에 <마하바라타>의 줄거리를 일단 머리에 넣어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렇지 않으면 앙코르왓의 내부 회랑과 거대한 바욘 묘를 보아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마하바라타>는 오랜 옛날, 인도에서 기원전 1000년에서 기원후 2세기에 이르기까지 먼저 살던 브라만 민족과 새로 들어온 아리아 민족(칸브도 여기에 속함) 사이의 길고 긴 전쟁을 주제로 하고 여기에 인도 신화를 곁들인 것으로 18장 10만 행의 시구로 엮어져 있다. 문자는 산스크리트어로 되어 있으며 몇 사람의 승려가 수세기 동안에 걸쳐 썼다고 전한다.

그 가운데 ‘유해교란(乳海攪亂)의 신화’를 소개해 본다.

아득한 옛날 제석천(인드라)이 자재천의 화신(부처의 한 몸으로서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나타내는 몸)인 위대한 성자를 화나게 했기 때문에 위대한 성자는 여러 신에게 주술을 걸었다. 그렇게 되자 신의 힘이 약해져서 나쁜 악마인 아수라가 날뛰기 시작했다. 매우 난처해진 신들은 천계에서 제일 가는 신인 위슈누(편조천)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했다.

“일단 악마들과 화해를 하고 그 동안 영원히 죽지 않는 영약을 만들어 마시는 거야.”

이렇게 결론이 내려졌다. 그래서 먼저 죽지 않는 약을 만들기 위해 강력한 약초를 바다에 던져 놓고 휘젓는 막대기로는 만다라 산을, 끌어당기는 밧줄로는 큰 뱀인 바스키를 택했다. 그리고 신들은 꼬리 쪽을, 악마들은 머리 쪽을 잡고, 위슈누 신은 분신의 술수로 거대한 자라가 되어 바닷속에서 빙빙 도는 축이 되었다. 그리하여 신들이 영치기 영차 하고 끌었더니 바다가 한 번 휘저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 이번에는 악마들이 영치기 영차 하고 끌었다.

수적으로는 악마가 많았으므로 만다라 막대기를 잡고 균형을 유지하던 위슈누 신은 땀을 뻘뻘 흘렸다. 그것을 본 라마 신의 편인 원숭이 왕 하누만이 많은 원숭이를 데리고 와서 신의 편에 섰다. 빙글빙글 도는 큰 자라 때문에 바다는 밑바닥까지 일대 요동을 일으켰다. 물고기들은 우왕좌왕 어쩔 줄을 모르고 난리를 쳤다. 이렇게 하는 동안에 저어진 바다에서 아름다운 공주와 압사라(춤추는 하늘의 선녀)가 태어나고 락슈미(아름다움과 사랑의 여신)가 만발한 연꽃을 타고 탄생했다. 하늘의 선녀들은 기뻐하며 춤을 추었다.

이 여신의 뒤를 이어 여러 가지 동물이 태어나고 마지막으로 죽지 않는 약인 아므리따가 바다에서 솟아올랐다.
그러나 약을 항아리에 받자마자 갑자기 악마가 빼앗아 도망쳤다. 가만히 있을 위슈누 신이 아니었다. 위슈누 신은 아수라가 가는 곳에 미리 가 있다가 기회를 보아 영약의 항아리를 되찾아 기다리고 있던 신들에게 주었다. 이제 영원히 죽지 않고 싸움에서도 지지 않게 된 신들은 악마들을 지옥으로 쫓아 버렸다.
이것이 대체적인 줄거리이다.

제2의 서사시 <라마야나>는 앞서 말한 신화의 뒷이야기와 마찬가지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라마 신은 그 무렵 시따 공주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매우 행복했다. 어느 날 공주를 오래 전부터 빼앗으려고 기회를 엿보던 악마의 왕 라와나가 시따 공주를 납치했다. 놀라고 화가 난 라마는 악마와 만나 따졌지만 전혀 상대해 주지 않았다. 끝내는 싸움을 해서라도 공주를 구출해야겠다고 결심한 라마에게 원숭이의 대군을 인솔한 하누만이 합세했다. 하누만은 공주가 잡혀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

성스러운 뱀과 성스러운 매도 부하들을 데리고 라마를 도와 주기 위해 계속 몰려들었다. 위슈누나 시바를 비롯한 많은 신들 역시 전차나 말을 타고 라마를 응원하기 위해 나섰다. 악마 왕은 바다 건너편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섬에 있었다. 라마의 군대는 바다를 건너 악마의 군대와 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악마 왕 라와나가 불을 뿜어서 신들을 격퇴하려고 하는 바람에 힘든 싸움이 이어졌다.

그 광경을 본 성스러운 새들은 당장 갠지스의 큰 강에서 물을 옮겨악마의 불을 꺼 버렸다.
콘도르에 탄 라마는 원숭이 왕을 거느리고 적군을 짓밟고 다시 전차에 뛰어올라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악마 왕 라와나를 쓰러뜨렸다. 드디어 시따 공주는 구출되었다. 그런데 신들은 시따 공주가 혹시 악마를 쫓아간 것이 아니냐며 공주를 조사했다.

“나의 남편은 라마입니다. 신들께서 날 못 믿으시겠다면 나를 시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내가 악마 왕에게 유혹되어 스스로 그에게 갔다면 이 손은 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아름다운 시따 공주는 활활 타오르는 불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만약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 백옥 같은 손은 곧 화상을 입고 타 버릴 것이다. 라마는 아픔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나 시따 공주의 손은 아무리 불 속에 있어도 조금도 화상을 입지 않았다. 그녀는 결백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신들은 라마와 시따 공주를 진정으로 축복하게 되었다.

이러한 신화들은 앙코르 각 사원의 여러 벽에 마치 연재물처럼 새겨져 있다. 그렇다고 앙코르 유적의 부조가 칸브 왕의 이야기와 인도의 고대 신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부조에는 신화와 아울러 크메르 왕가의 역사나 궁정 생활, 이웃 나라와의 싸움, 사냥, 낚시질, 건축 광경, 레슬링이나 서커스, 닭싸움 등 일상 생활의 갖가지 모습이 새겨져 있다. 그것들은 지난날의 풍요했던 크메르 왕국을 말해 주는 좋은 자료이다.

크메르 문화는 그리스보다 뒤진 로마가 그리스 문화를 선생으로 삼아 로마 문화를 수립했듯이, 인도를 선생으로 삼아 크메르의 독자적인 문화를 수립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신화나 전설 이후의 크메르 역사를 살펴보기로 하자.

앙코르 고고학의 권위자인 그로스리에 교수는 이끼가 낀 유적 속에서 비문에 나타난 크메르 왕의 이름과 역대 왕들의 사업을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칸브 왕의 후손인 크메르인은 약 6세기까지 인도의 영향을 받고 있던 후난 제국(현재의 베트남이나 라오스)의 지배 아래에 있었던 하나의 왕국이었다. 스르타와르만 왕 시대에 후난 제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왕국은 강대해졌다. 다음 왕인 마헨드라와르만은 메콩 강을 따라 계속 남하하여 후난의 한 속국이자 거칠고 사나운 적인 참족(참파라고도 하며 인도차이나 반도 남동부에 사는 인도네시아계 민족)에 대비하여 수도를 앙코르 보레이로 정했다.

이 왕의 뒤를 이은 이샤나와르만 왕은 보레이 남쪽에 새로 닦은 수도 브야다 프라를 건설했으며, 크메르 세력은 서쪽의 버마, 샴(태국)까지 뻗어가 비문에 ‘왕국 안에 30개의 도시가 만들어져 백성들은 기뻐했다’라고 당시의 번영을 기록하고 있다.”

이리하여 크메르 역사가 서서히 신비의 바닥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자 크메르인은 아마도 7세기 초경부터 번영을 누렸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해졌다. 그 뒤로 몇몇의 뛰어난 왕이 나타나서 후난이나 참족, 타이족을 격퇴하면서 각지에 대사원이나 승방, 병원 등 석조 대건축물을 세워 갔던 것이다.

899년이 되자, 이 해에 왕위에 오른 야쇼와르만 1세는 새로운 수도를 앙코르톰의 땅에 정 하고 왕궁과 주위의 담이 완성되자 친족들과 여관(상궁), 문무백관(문관과 무관의 여러 벼슬아치), 건축가들을 데리고 수도를 옮겼다. 그리하여 왕궁의 머릿돌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졌다.

‘이리하여 궁왕 파라마 시바로카(야쇼와르만의 존칭)는 야쇼다라 프라(야소와르만 왕의 수도라는 뜻)를 창건, 먼저 수도인 하리하라야 프라로부터 왕실 신을 이곳 새로운 수도로 안치했느니라. 또한 국왕 파라마 시바로카는 중앙 사원을 프놈 바켄에 장려하게 건립했느니라.’

이 비문 속에 나오는 왕실 신에 대해서는 중국인 여행자 주달관이 다음과 같이 써서 남겼다.

‘크메르족의 수도이자 전 아시아를 통해 가장 장엄한 수도인 야쇼다라 프라에는 이 민족을 표시하는 똬리를 틀고 있는 큰 뱀 위에 안치된 불상이 있다. 이 왕국의 신을 상징하는 불상은 매우 교묘하게 이어진 여러 개의 큰 에메랄드로 만들어져 있어서, 마치 불상 전체가 하나의 에메랄드처럼 보인다. 더욱이 강한 녹색 빛을 내고 있으므로 신앙심이 뿌리 깊게 박힌 자가 아니면 이것을 똑바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에메랄드는 신비로운 보석으로 다이아몬드보다 더 비싼 경우가 많다. 그것이 30센티미터만 되어도 대단한 것인데 불상은 약 50센티미터나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수도 코 케르에서는 세 사람이 왕위에 오르고 34년 동안 크메르 왕국을 지배하면서 대저수지 공사도 완성시켰다. 944년 왕위에 오른 라젠드라와르만 왕은 곧 대도시 앙코르톰으로 돌아왔다.

라젠드라와르만 왕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즉위 기념과 평온을 비는 뜻에서 피메아나카 궁전(60년 뒤에 보다 호화롭게 다시 지었음)을 건설한 일이었다. 소마 공주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피메아나카 궁전은 훌륭한 피라미드형으로 그 주위를 짐승의 왕인 사자 상으로 장식했다. 이 왕의 아들인 자이야와르만 5세(968∼1001년)는 부왕의 일을 물려받는 것은 물론 참족과 라오스를 누르고 많은 속국을 만들었다. 속국의 왕들이 크메르 왕국에 충성을 다짐하는 말들이 자이야와르만 5세가 세운 북쪽 크레망의 벽과 왕궁의 성벽에 남아 있다.

이 무렵 크메르의 세력은 해가 갈수록 더해 갔으며 전국이 부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 여건 때문에 앙코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조각을 가진 사원이라고 일컬어지는 판테아이스레이와 대사찰인 타 케오, 파프옹 묘 등 정교하고 우아한 건축물이 계속 왕도에 세워졌던 것이다. 그리하여 1100년경 크메르 예술의 진수라고 일컫는 앙코르왓이 왕도 남쪽에 마치 물 위에 떠 있기라도 하듯, 우아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그 뒤 100년 동안 계속 바욘이 세워지고 넓은 왕도는 여러 가지 건축물로 장식되어 갔던 것이다.

크메르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건축물을 만든 왕은 앙코르왓의 마지막 손질을 하고 바욘을 세운 자이야와르만 7세 (1181∼1202년)이다. 자이야와르만 7세가 죽은 뒤 200여 년 동안 앙코르는 번영을 누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다. 이 훌륭한 도성이 정글과 안개에 묻히기 시작한 시기는 콜럼버스(1451∼1506년)가 태어난 15세기 중엽일 것이다.

왜냐하면 바다에서 큰 호수로 거슬러 올라간 어느 포르투갈 사람이 1520년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나이가 100년이 넘는 큰 나무가 돌층계나 벽의 틈바구니에 돋아 있는, 죽음의 도성이 정글 속에 있었다. 그런데 크메르 사람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대체 어디로? 그것은 아직도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는다.

※ 참고문헌
『앙코르왓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로버트 J, 케시, 청솔,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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