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직하고픈 기록

마하바라타

힉스_길메들 2013. 11. 1. 13:04

마하바라타 개요

 

바라타擬의 샨타누왕에게 비슈마와 위치트라위리야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런데 비슈마는 장자(長子)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에게 왕위를 물러주고 끝까지 동생을 도와 왕국을 보전할 것을 약속하면서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의지로 결혼도 하지 않는다.

 

위치트라위리야에게는 디리타라쉬트라와 빤두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자인 디리타라쉬트라는 태어나면서부터 장님이었으므로 빤두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빤두에게서 태어난 다섯명의 아들들을 빤다와라고 하고, 디리타라쉬트라에게서 태어난 백명의 아들들을 카우라와라고 한다.

이 까우라와와 빤다와가 어린 시절에 스승인 드로나와 크리빠가 있었는데, 드로나는 활을 가장 잘 쏘기 때문에 빤다와의 셋째아들인 아르주나를 가장 사랑하였다. 그리고 빤다와의 외사촌인 위슈누신의 화신인 끄리슈나가 있었다. 또한 빤다와 형제들은 빤잘라의 왕 드루빠다의 사위가 되었고, 처남에 드리쉬타디움나가 있었다.

그런데 까우라와(장자의 아들들)와 빤다와(王의 아들들)가 성장하면서 ‘장자(長子)가 왕위를 계승한다’는 문제와 얽힌 왕위계승권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둘 사이에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예고된다. 그래서 카우라와의 큰 형인 두료다나와 빤다와의 아르쥬나는 크리슈나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크리슈나는 ‘무적의 백만명의 군대’와 ‘전쟁에서 다만 마부로 참전할 자기자신’ 둘 중에 하나를 각자 선택하도록 한다. 해서 카우라와는 백만명의 군대를 선택하고, 빤다와는 마부로 참전할 크리슈나만을 선택한다.

여러 왕들이 빤다와를 돕기 위해 모였다. 체디의 드리스타케투, 마가다의 자야체나, 빤디야왕, 비라타왕, 두루빠다왕의 두 아들 등이 도착하여 7개 사단 병력을 갖게 되었다. 빤다와의 큰 형 유디스티라는 처남 드리쉬타디움나를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장군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한편 까우라와에는 11사단으로 큰할아버지 비슈마가 총사령관이 되고, 드로나(스승), 그의 아들 아슈바따마, 크리빠 스승, 샬리아, 쟈아드라타, 수닥시나, 캄보자, 크리슈나의 부장인 크리타바르마, 부리슈라바, 숙부 샤쿠니, 발리카가 11명의 장군이 되었다. 그리고 총사령관들은 전쟁의 규칙을 정했다. 전투는 해가 떠서 질 때까지만 한다. 전사들은 같은 무기, 같은 수로 싸워야 하며, 항복하거나 도망치는 자는 공격하지 않는다. 무기와 군수품을 운반하는 보조요원은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활을 집어든 아르쥬나를 태우고 거기에 마부(전차사) 크리슈나가 마차를 몰고 양 진영의 가운데로 갔다. 그러자 아르쥬나는 갑자기 두려운 마음으로 큰할아버지, 스승, 사촌형제들 등 낯익은 얼굴들이 보이면서 눈물이 비오듯 하며 화살을 내려놓으면서, 차마 친척들을 죽이면서까지 전쟁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그러자 위슈누신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거듭해서 크샤트리아로서의 의무를 말하면서 ‘이 기회에 행불행 손익 승패에 관계없이 의무감으로 싸워야만 한다’고 가르쳤다. 계속된 크리슈나의 가르침을 듣고난 아르쥬나는 죄의식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오히려 싸우지 않는 것이 죄악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투가 계속되면서 아버지는 아들을, 형제들은 형제를, 친구들은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삼촌이 조카를 죽이고 조카가 삼촌을 죽이며, 스승이 제자를 죽이고 제자가 스승을 죽이는 전투가 벌어졌다. 죽은 전사들과 동물들이 산더미처럼 싸여 있고 피로 물든 칼이 사방에서 번뜩였다. 전투가 시작된 지 10일째 되는 날, 아르쥬나는 큰할아버지 비슈마에게 명사수답게 수많은 화살을 쏘아서 화살침대를 만들 정도로 매우 다치게 만들었다.

그러자 빤다바군과 카우라바군은 화살침대에 누워서 죽어가는 비슈마에게 경의를 표했다. 전투는 18일까지 계속되는데, 마지막날 빤다바의 둘째 아들 비마가 카우라바스의 두료다나의 다리를 부러뜨리면서 전쟁은 끝난다. 그러나 두료다나는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부하들에게 아르쥬나의 아들과 드루빠다왕의 다섯 아들을 살해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전쟁으로 모든 쿠루 가문의 대가 끊긴 것을 슬퍼하면서 두료다나는 모든 것을 잃은 채 생을 마감한다. 전쟁이 끝난 36년후에 유디스티라도 아르쥬나의 손자에게 왕위를 물러주고 천계로 올라갔다.

※ 참고문헌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 서규석, 리북, 2003, PP, 127~202참조

 

바가와드기타

전쟁의 날이 밝기 시작했다. 왕들과 제후들의 깃발들이 햇빛에 화려하게 흔들렸다. 그러는 분위기는 조개나팔소리, 북울림, 말들의 울음소리, 코끼리들의 무시무시한 울음소리 등 두려운 소리들이 울렸다.

 

아르쥬나는 거리를 두고 반대편의 적들을 바라보면서 그의 마차에 조용히 앉았다. 그는 전방의 군대 지휘관들의 모습들을 생각해 낼 수있었다. 그의 큰할아버지이자 꾸루 일족의 우두머리인 비슈마, 그의 스승들인 드로나와 끄리빠, 그리고 그의 사촌들인 백명의 카우라와였다. 그가 사랑하고 그와 피로 맺어진 아주 가까운 친척들인 이 사람들을 보면서, 아르쥬나는 갑자기 풀이 죽어버렸다. 그의 두 눈은 눈물로 가득했고, 그의 무릎은 떨리기 시작했으며, 활은 그의 손에서 스르르 빠졌다.

 

‘어떻게 내가 저들의 피를 솟구치게 한단 말인가? (전쟁은) 대체 뭘 위한 것인가?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저들을 파괴한 것에 의해서 내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 내게 돌아가는 왕국이나 권좌나 권력이 동료와 친척들을 파괴함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대체 무엇이 행복할 것인가?’

아르쥬나는 기운이 없어지면서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갑자기 그의 무기를 집어던지고 앉아서 소리쳤다.

“끄리슈나여, 나는 이 전쟁에 싸우지 않겠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저들을 파괴하도록 내 자신을 이끌 수가 없다. 항복해버리자. 까우라와에게 모든 것을 주어버리자. 그러면 평화가 있게 될 거야.”

중대한 기로의 순간이었다. 큰 전투가 시작되려하고 있었고, 모두가 그것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첫번째 활시위가 발사되었을 때, 그날 맨앞의 전사는 갑자기 용기를 잃어버렸다. 단지 왕국이라고 불리는 한 줌의 땅을 위해서 싸워서 죽이는 것은 그에게는 매우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끄리슈나는 아르쥬나의 말을 측은히 여기면서 들었다. 그는 ‘어떻게 눈물이 영웅의 얼굴에서 흘러내렸는지’ 보았다. 그는 ‘어떻게 그가 근심했고 어떻게 그의 머리카락이 쭈뼛해졌는지’를 보았다. 그래서 끄리슈나는 그의 친구에게 그를 북돋아서 용기를 주면서 전쟁에 대해서 현명하고 차분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끄리슈나는 지금은 전투를 철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빤다바형제들은 그들 자신과 약속했고, 지금 그들은 끝까지 싸워야만 한다. 그래서 끄리슈나는 아르쥬나에게 말했다.

“삶과 죽음, 이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들, 인간 존재의 투쟁과 전쟁과 슬픔들’ “그들이 누구이든 무엇이든 관계없이 인간이 신(神)에 도달할 수 있는 세가지 방법들. 그를 이끌 수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그것들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선정과 요가의 길, 의무의 길, 박애의 길 세가지이다. 각각의 사람은 그의 본성에 따라 신에 이르는 그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한다. 그런데 끄샤트리야에게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처럼, 신에 이르는 길은 의무의 길에 달려있다. 인간들은 그들의 직능 속에서 신을 발견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아르쥬나, 그대는 끄샤트리야이고 그대의 의무는 결과에 상관없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의심을 위한 시간은 지나갔다. 지금은 행동을 위한 시간이고, 거기에 머뭇거림은 없다. 아르쥬나, 그대는 두려움없이 행동해야한다. 그리고 그대가 행동했을 때, 그대는 보상이나 영광 또는 성공에 대한 바램이나 희망이 없이 행동해야 한다. 올바른 행동은 모든 바램, 심지어 성공을 위한 바램조차도 없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무한과 유일한 신을 찾는다. 나는 그대에게 내 신성(神聖)의 모습들을 말하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그러한 것들일 뿐이니, 나는 일정한 틀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모든 것의 시작이고 중간이고 끝이다. 나는 모든 존재의 탄생이고 시작이다, 나는 끝이 되는 죽음이다. 나는 영원하니, 결코 태어난 적이 없고, 결코 죽은 적이 없다. 나는 모든 곳 모든 사물 속에 존재하며, 내 속에 모든 사물들이 존재한다. 나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아무것도 없다.”

아르쥬나는 들고 있을 때, 이상한 감정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 옆에 앉아있는 사람은 죽어야만 할 운명에 있는 인간이 아니라 신(神) 자체로서 마치 어둠 속에서 빛이 일어나듯 그에게 왔다. 희미하게 그것을 이해하면서, 그는 그의 모든 영광 속에서 신을 보기를 갈망하기 시작했고, 끄리슈나에게 이러한 욕망을 표현했다. 그러고나자 끄리슈나는 그의 친구 아르쥬나에게 그 자신을 나타냈다. 아르쥬나는 하늘에 있는듯한 환상을 보고는 그러한 놀라움에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그의 의식들을 어지럽게 햇고 그는 폭풍우 속의 나뭇잎처럼 몹시 떨렸다. 왜냐하면 그 광경은 우주 그 자체처럼 무한했기 때문이다. 하늘들을 가로질러 빛났고, 그리고 땅 위에, 모든 존재 안에 있는, 그가 설명할 수 없는 놀랄만한 형태였다. 왜냐하면 그는 헤아릴 수 없는 태양들의 빛에 의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그것을 보면서 아르쥬나는 숨쉴 수 없는 듯 느껴졌다. 마치 자기자신이 넓고 끝없는 바다의 작은 먼지 한 알인 것처럼. 두려움으로 그를 보면서 그의 목소리는 끄리슈나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위슈누의 화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신비한 광경은 사라지고 모든 사물들은 원래 그랬던 것처럼 되었다. 변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아르쥬나의 마음 속에서 기대했던 이전의 모든 곳 그대로였다. 그때 그는 지혜의 빛을 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끄리슈나에게 존경의 합장을 올렸다. 그러자 그 자신을 통한 새로운 정신의 울림과 함께 그는 다시 그의 무기를 들고 전장으로 나아갔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그것은 18일동안 계속되었고, 매일 피가 강물이 되어 흘러넘쳐서 땅이 흠뻑 젖었다. 시체들이 이러저리 흩어진채 언덕을 이루었다. 해가 지면 휴전이 되어서, 전사들은 각자의 군막에서 쉬었고, 감시 초병들은 밖을 감시했다. 전쟁 동안에 그들은 그들의 참된 본성인 모든 장점과 단점을 보여주었다.

 

꾸루크쉐트라 전투 (KURUKSHETRA WAR)

이 전투는 현재 델리 지역인 꾸루평원에서 사촌지간인 빤다와의 5형제와 100명의 까우라와 형제간의 18일간 전개된 가공할만한 살육전이며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의 클라이막스에 해당한다. 처음부터 전투를 이끌던 까우라와군의 충사령관 비슈마가 전투 10일 째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나머지 5일간은 드로나가, 나머지 이틀간은 카르냐가, 마지막 날은 살리아 왕이 카우라바 군을 이끌면서 차례로 죽어간다. 두료다나 또한 빤다와 군의 비마에게 죽음으로써 까우리와의 100형제 모두 죽는 가운데 가공할만한 전투가 막을 내린다.

 

앙코르왓 부조에는 아르쥬나와 시칸디가 쏜 수많은 화살을 맞고 죽어가는 비슈마의 모습, 두료다나와 그의 형제들이 전투에서 패배하는 장면, 전차군단이 지상에 기울어지는 모습, 두 편의 장군들이 서로 창을 찌르는 모습, 빤다와군의 7사단과 카우라와 11사단이 전멸한 쿠르평야의 전투가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전투를 앙코르왓과 대비해보면 수리야와르만 2세가 크메르 왕위를 차지한 과정을 묘사한 자전적 스토리를 상징한다. 부조의 중심에 있는 장군 ‘빤다와’는 적을 굴복시키고 동쪽 벽에 부조된 ‘우유와다 젓기’에서 서 있는 비슈누 신과 같은 위치에 두었다. 수리야와르만 왕은 현존하는 왕인 ‘다라닌드라와르만’의 군대를 격파하고 궁정혁명에 성공한 왕으로 분열된 왕통을 하나로 통합시켜 왕의 권위를 확립한 자전적 인물인 만큼, 쿠루평원의 전투는 수리야와르만 2세의 궁정혁명에 아주 적합한 아날로지다. 따라서 이 전투와 우유와다 젓기는 같은 비중을 갖는다.

꾸루평원의 대학살과 더불어 우주의 질서는 파괴기가 시작되었으나 수리야와르만 왕이 집권하면서 다시 평온을 되찾고 왕의 대관식이 끝난 후부터는 우주가 다시 창조되는 ‘끄리타 유가’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끄리타 유가의 상징은 물론 꾸루평원의 전투 맞은 편에 있는 우유와다젓기 장면이 된다. 이와 같이 의미를 갖는 부조를 대칭으로 놓은 것은 수리야와르만이 궁정 쿠데타를 통해 혼란스런 정국을 평정하고 우유와다 젓기의 천지창조 신화처럼 새로운 질서를 창조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결국 정치적 혼란은 우주론의 파괴기인 칼리 유가 시대에 해당하며, 그의 등극은 우유와다 젓기를 통해 시작된 생성기(끄리타 유가)처럼 정치가 안정을 되찾았다는 것을 등치시킨 것이다.

※ 참고문헌
『THE MAHABHARATA, SHANTA RAMESHWER RAO, DISHA-BOOKS』1992, NEW DELHI, PP.120~122>
『신화가 만든 문명 앙코르 와트』, 서규석, 리북, 2003, PP, 178~200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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