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긋한 통영의 맛 도다리 쑥국
알이 꽉 차 쫀득한 서천 주꾸미
해마다 춘궁기를 겪던 시절 봄나물은 그나마 주린 배를 채울 수 있는 고마운 먹거리였다. 봄 바다가 키워낸 갯것은 한 해를 시작할 자양분이었다. 이제 보릿고개는 옛말이 됐지만 봄 제철을 맞은 푸성귀와 해산물은 여전히 우리네 식탁에 별미로 남아 있다. 밥상에 봄나물이 올라야 비로소 봄이 왔음을 느끼는 건 맛의 기억이 대물림 된 까닭일까. week&이 강원도 두메산골에서, 남도 앞바다에서 봄을 길어온 수도권 봄철 맛집 열두 곳을 찾았다. 산나물·도다리 쑥국·바지락 칼국수·꽃게탕·주꾸미·간자미회무침·벚굴까지, 경남 통영에 고향을 둔 어느 음식점 사장님의 자작시 표현처럼 ‘입으로 온 봄’을 지면 가득 푸짐하게 차려봤다.
글=나원정·홍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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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꽃게장의 간장게장은 짜지 않고 삼삼한 맛이 일품이다. 전남 영광의 처가에서 20여 년 전 받아온 간장에 새 간장을 조금씩 보태어 쓴다. 인천 연평도 꽃게의 탱글탱글한 살과 고소한 알, 내장을 간장에 쓱쓱 섞으면 밥 도둑이 따로 없다. |
# 소담하게 차린 봄 밥상
강산에 꽃물이 들 즈음에는 밥상에도 봄이 찾아 든다. 산과 들에 푸릇푸릇하게 돋은 봄나물은 겨우내 허기졌던 마음마저 향기롭게 채워 준다.
약수터가 많은 산은 산나물도 좋다고 한다. 강원도 오대산(1563m)도 나물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서울 서초구 ‘오대산산채식당’은 오대산 두메산골에서 채취한 봄나물을 천일염에 염장했다가 먹기 전 물에 헹궈 데쳐낸다. 나물의 식감과 향취를 보존하는 비결이다. 영양솥밥이 나오는 산채정식은 직접 쑨 도토리묵을 비롯해 황태구이·조기구이 말고도 나물 반찬이 열댓 가지가 넘는다. 산민들레·오가피·냉이·유채나물 등 향긋한 봄나물이 겨우내 잠들었던 입맛을 쌉싸래하게 돋운다.
강된장이 맛있기로 소문난 경기도 일산 ‘옛골시골밥상’은 시골 외갓집마냥 푸근한 가게 외양처럼 상차림도 푸짐하다. 1인분에 8000원하는 ‘시골밥상’은 경동시장에서 사온 방풍나물·씀바귀·비름·세발나물 등을 한 상 가득 담아낸다. 소금 간만 해 청량한 물김치와 묵은지·우거지는 직접 농사 지은 배추로 담근다. 고봉으로 담은 보리밥에 나물을 양껏 덜어 강된장에 비볐다. 소박하지만 입에 가득한 나물 향기는 먹는 이를 행복하게 했다.
봄나물과 된장의 환상적인 궁합은 서울 영등포 ‘또순이네’에서도 맛볼 수 있다. 원래는 고깃집인데 봄철엔 냉이와 달래를 듬뿍 얹어내는 된장찌개 덕분에 손님이 부쩍 는다고 한다. 다른 계절에는 봄나물 대신 부추를 넣는다. 고기 굽는 숯불에 된장찌개를 뚝배기째 바글바글 끓여낸다. 넉넉히 넣은 토시살이 알맞게 우러나온 진국이었다. 고기를 시키지 않고 된장찌개만 먹으려면 점심때 가야 한다.
소박한 봄 밥상의 단골손님으로 도다리 쑥국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중구 다동의 통영 향토음식점 ‘충무집’은 봄 한철만 도다리 쑥국을 낸다. 도다리는 6~7월 산란기를 맞으면 살이 빠지고, 쑥은 5월 중순만 돼도 억세져서 못 먹기 때문이다. 경남 통영에서 새벽마다 공수해 온 도다리와 쑥을 된장을 살짝 푼 쌀뜨물에 수북이 담아 끓인다. 제철 봄 도다리와 봄 쑥이 만났으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쑥 향기가 은은하게 퍼질 즈음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 쑥떡을 왕창 베어 문 것처럼 진한 봄 냄새가 넘어왔다. 생전에 이 집을 찾은 소설가 고 박완서선생도 “서울 도심에서 통영의 봄맛을 만끽하니 감개가 무량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봄비가 내리는 날엔 바지락 칼국수가 어울린다. 서울 종로에 있는 ‘찬양집’의 메뉴는 ‘해물칼국수’ 하나다. 제철을 맞아 살이 탱글탱글한 바지락과 멸치·홍합·마른 새우·미더덕이 어우러져 깊은 국물 맛을 낸다. 바지락은 매일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주문한다. 간장에 고추를 절여 만든 양념을 섞으면 칼칼하게도 먹을 수 있다.
서울 강북구청 앞 ‘항아리 손칼국수’는 충청도의 바지락 유통업자에게서 바지락을 공급받는다. 청양고추 씨를 듬뿍 넣고 채소 육수를 우려 국물이 얼큰하면서 깔끔했다. 칼국수 면발을 건질 때마다 거치적거릴 정도로 바지락이 푸짐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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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충무집 도다리 쑥국과 멍게밥 세트(1만8000원), 또순이네 된장찌개(6000원), 옛골 시골밥상의 시골밥상(8000원), 오대산산채식당의 산채정식(2만원), 한영상회 주꾸미 샤부샤부(1㎏ 5만원). |
# 기운 불끈 솟는 봄 보양식
봄볕을 머금은 바다는 한없이 풍요롭다. 산란기를 앞두고 양분을 두둑이 비축한 갯것은 보양에도 제격이다.
서해 암꽃게는 이맘때 알이 꽉 찬다. 경기도 화성 ‘백년꽃게장’은 6년 전 정식으로 식당을 열었지만 꽃게와 게장 유통업을 해온 지는 21년 가까이 됐다. 조류가 센 인천 연평도 꽃게만 고집하는데, 다른 곳보다 게 살이 단단하고 단맛이 돌기 때문이란다. 그날 잡은 꽃게를 사들이자마자 급랭한다. 꽃게 네댓 마리에 조개·새우 등 갖은 해물이 푸짐하게 들어간 꽃게탕은 국물에 잡미가 없고 개운했다. 전남 영광의 처가에서 비법을 전수했다는 간장게장은 짜지 않고 삼삼했다. 알큰한 양념게장은 양념에 무치자마자, 간장게장은 만든 지 3일 안에 먹어야 제 맛이라고 한다.
인천 송도유원지 맞은편 ‘충남서산집’도 연평도산 꽃게를 쓴다. 단호박·쑥갓·감자 등 채소를 잔뜩 넣고 걸쭉하게 끓인 꽃게탕은 국물 맛이 달착지근했다.
머리에 알이 들어찬 ‘알배기 주꾸미’도 봄철 식도락가의 단골 별미다. 서울 서대문 ‘삼오주꾸미’는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잡은 주꾸미를 급랭시켜 서울까지 배달한다. 황태로 육수를 내고 고추장·고춧가루 양념을 풀어 만든 주꾸미 전골은 얼큰하고 개운하다. 구이는 마늘·물엿 등이 들어간 고추장 양념에 주꾸미를 하루 정도 재워 숙성시킨다. 부위마다 양념이 고르게 스며들어 어느 부위를 먹어도 맛이 좋았다.
서울 가락시장 회센터에 위치한 ‘한영상회’에서는 5월 초까지 전북 부안과 충남 서천산 주꾸미를 먹을 수 있다. 팽이버섯·고추· 미나리·무·마늘 등 각종 채소가 듬뿍 담긴 맑은 탕에 산 주꾸미를 넣고, 주꾸미 다리가 꼬부라져 꽃잎처럼 활짝 열리면 다리를 먼저 잘라 먹는다. 알을 밴 머리(사진)는 다리보다 더 익혀 먹는데, 식감이 찰밥처럼 부드러웠다.
![](http://static.news.zum.com/images/2/2012/04/27/htm_201204269175938003011.jpg)
섬진강에서 나는 벚굴은 바다 굴보다 무기질과 아미노산을 서른 배 넘게 함유해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남해바다’는 전남 광양 망덕포구에서 벚굴을 공급받는다. 제철인 3~5월은 물론이고 이 시기에 급랭시킨 벚굴을 6월까지 맛볼 수 있다. 별도 주문이 없으면 벚굴을 회로 내놓는데, 전화로 미리 주문하면 구이와 찜도 가능하다. 5월 산란기가 가까워진 벚굴은 길이가 20㎝ 정도로 거대했다. 달래를 갈아 넣은 간장에 찍어 먹으니 비리지 않고 향긋하게 넘어갔다.
나원정.홍지연.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신동연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shs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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