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로 뚜벅뚜벅

백두대간 12회차 산행기 첫째날

힉스_길메들 2004. 1. 10. 22:38
  백두대간 12회차 산행기


1. 산행구간 : 죽령~제2연화봉(1357.3)~천체관측소~제1연화봉(1394.3)~비로봉(1439.5)~국망봉(1420.8)~상월봉(1394)~늦은목이고개~마당치~형제봉갈림길~고치령

2. 위    치 : 충북 단양, 경북 영주.

3. 산행일자 : 04‘01/10(음12/19,토)[해뜸07:47/해짐17:32]

4. 기상상태 : 새벽=짙은안개와 강한바람, 낮=갬.

5. 참가인원 : 최병환(자료·사진), 황인기(기록·작성)

6. 교 통 편 : 갈때=최병환의 무쏘승합차

              올때=고치령~죽령간 타이탄트럭(서정영(갑수)016-9503-4544/054-638-4544), 죽령~서울간

               무쏘승합차

7. 이용경비 : 전회이월12,300\+금회회비120,000\/2-비용110,000\=잔액이월22,300원

   세부내역 : 무쏘승합차 유류비40,000. 고속도통행료카드 30,000. 타이탄트럭 운임비 30,000. 대강식당

매식 10,000. 끝.

8. 산행일기 :

   이번 산행은 지난11회차(차갓재~저수재~죽령) 백두대간산행을 하면서 무릎관절에 통증이 심하여 쉼을 한지 근 한 달 만에 이루어진 산행이라 한결 산뜻할 듯싶었으나....(그동안 아내와 청계산 2회, 지난 5일 최병환, 김지태, 유종성, 권기동, 권동호등 6명이 관악산산행을 하면서 무릎 상태가 좋아 병환에게 이번산행을 재개하자고 원해 이뤄졌으나 엊그제부터 계단을 오를 때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상태가 좋지 않다.

  병환이 집에서 새벽2시반에 출발하여 내 집 앞에서 3시경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낮에 배낭을 대충 꾸리고는 저녁을 일찍이 먹고 8시경에 자리에 누웠으나 리듬이 깨어져서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는다.

자다 깨다를 여러번 하는 중 새벽녘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어 댄다. 어느새 2시 반인가. 병환이 출발하면서 전화한다 하였으니, 전화기를 드니 병환의 목소리가 귀청을 때린다. 잠이 안와서 지금(새벽1시) 출발하려 한다고, 그 사람도 초저녁부터 설렘으로 잠을 설쳤으리라.

통화를 끝내고 부랴사랴 물을 끊이고 찐빵을 찌고하여 배낭을 사리고 등산화를 신고 앉아 쉬는 중에 휴대전화가 울린다.

집을 나서 병환의 승용차에 올라서니 0145, 자! 출발이다.


  양재대로~선수촌아파트~서하남IC~외곽고속도~중부고속도~중앙고속도~남단양IC를 빠져 나오니 0335, 5번 국도를 따라 죽령에 도착하니 0350이다. 우측에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인천카렌스차가 있었는데 사람은 없고, 왼편으로 충북무쏘승합차에서 사람이 내려 전등불빛을 비치며 산행을 시작하려 한다.

  새벽에 잠을 설쳤기에 여기서 한잠을 자고 출발하고자 병환에게 청해 보니 병환은 그냥 가자한다.

집에서 쪄온 찐빵과 우유로 새벽요기를 혼자서 하고(병환은 생각 없다고 함) 산행들머리인 특산품판매소 왼쪽으로 들어서니 0430,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계속 오르니 하늘은 흐리고 저 아래에 보이던 시내의 불빛이 차츰 안개에 가려며 위로 오를수록 바람은 거세지고 있다.

  아픈 무릎을 이끌고 한참을 절뚝거리며 오르니 0555 제2연화봉(중계소)갈림길이 나왔다. 이정표에는 중계소0.2/비로봉2.8/죽령4.3k라 적혀 있다. 중계소 길은 우측 제2연화봉 정상으로 오르고 비로봉 길은 좌측으로 완만하게 나있다. 어둠을 헤치고 사방이 눈에 덮인 산길을 걷는다. 제2연화봉을 왼편으로 돌아 나가면서 북동진을 하니 어둠 속에 천문관측소가 우뚝이 서있고, 사무실겸 숙소엔 군데군데 불이 밝혀져 있다. 사옥담을 돌아 0630경에 지나친다. 너른 뜰 같은 공터에서 남쪽으로 희방사 내려가는 길이 나 있다. 또한 20m정도 내려가면 샘터가 있는 모양이나 우리는 그냥 지나친다. 이곳까지는 도로로 되어 있어 보행에 지장이 없다.

  관측소를 지나니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약간은 미끄러지며 철쭉나무 사이를 헤집고 산행을 하는 중 나무계단을 오르니 이곳이 제1연화봉이다. 07시경 먼저 오른 산행객3명이 우리를 반기면서 쉬어 가라한다. 나는 그네들이 우리보다 앞선 충북무쏘의 주인인줄 알고 아는 체를 하였더니 그들은 야간열차를 이용하여 풍기에서 택시로 와서 구인사로 하산하려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하면서 내가 얘기한 사람들이 조금 앞서 갔는데 산행하기에는 부족한 장비로 위험하다고 말한다.-_-;

이들이 가르친 북서쪽으로 길을 나서는데 잠시 후에 그들을 만나지만 그네들은 되돌아가는 중이다. 정말 장비가 허술하기 한이 없다. 배낭이라고 색을 멘이1명에 후레쉬든이2명과 자동차경고등든이1명으로 모두3명이다. 청주에서 온 이들은 조난이라도 당한다면 죽음을 각오 해얄 것이다.

  길을 잘못 들었다. 100m정도 진행했는데 철쭉나무가지가 길을 가로막고, 아무리 소백산강풍이 눈을 몰아갔다지만 등산객의 발자국이 없다. 청주 사람들이 그래서 되돌아 간 것인가 보다. 뒤따라 열차 편으로 온 사람들이 몰려온다.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하니 그들이 앞장서서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니 북동쪽으로 내려서는 등로가 확실하다.☺☼

  언제부터인가 헤드랜턴이 불편하다. 어느새 날이 밝아 와서는 자욱한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길을 열어 주고 있는 것이다. 나무계단을 먼저 오르고 있는 병환을 불러 세워서 헤드랜턴을 배낭에 갈무리하고 소변(산천이 변소야)을 보고는 출발한다.^_°;

능선상의 나무계단에서는 바람에 의해 날아 갈 듯한 몸을 추스르려 더욱 힘들다.


  어느새 우리는 동진을 하고 서쪽 그러니까 왼편으로 천동리 다리안계곡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을 지나치게 되는데 무수한 표지기가 장식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주목군락지가 시작되는 곳이다.

바람을 앉고 자욱한 안개길을 조금 진행을 하니 예전(95‘)에 왔을 때 보지 못한 나무발판과 가드레일로 되어 있는 길을 걸어가는데 좌측으로 똑같은 갈림길이 나있다. 병환이 앞장서 우측길로 걸어가는데 10여분후 왼편에서 길이 합쳐지는 것이 주목 관리소에서 이어지는 것 같아(짙은 안개가 아니면 보일 것이 건만) 앞서가는 병환을 불러 감시초소에서 쉬어 가자청하니 병환은 그냥가자 하더니 마지못해 응해 되돌아 20m정도 가니 0750초소가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주목관리소도 내가 본 옛 모습이 아니고 통나무로 새로 지은 산뜻한 모습이다.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여니 바람으로 인해 쉽사리 열리지가 않아 힘을 주고 여니 실내는 많은 등산객으로 혼잡하고 밥하고 찌개 끊이고 해서 뽀얀 김으로 가득하다.

추위와 바람으로 인해 못한 기록을 여기서 오늘 처음으로 메모장을 꺼내어 지나온 길, 시간과 사연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어 몇 자 적어 본다. 또한 발라클라바를 꺼내어 이후 산행에 대비한다.

우리도 비좁은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병환이 준비해 온 김밥을 먹는데 밥알이 얼어 입안에서 따로 놀아 따끈한 보리 물과 요기를 하고 커피로 입가심을 한 후 주목 관리소를 나서니 0840이다.

밥 먹는 잠시의 시간에도 들고 나는 이가 계속되었며 그네들이 떠드는 소리가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한다.


  비로봉까지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는 길을 10여분 바람을 가르고 정상에 서니 소백산비로봉(1439.5)이라는 표지석이 헹뎅그라니 안개 속에서 바람을 맞으면서 우리를 반기고 있다. 안개가 없다면 소백연봉이 한눈에 보이고 국망봉으로 뻗은 백두대간의 장쾌한 모습에 감탄했을 것이건만 아!? 안타까운 순간이어라…….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에는 삼가동 비로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있다.

바람에 서 있기가 곤란하다. 서둘러 디카를 꺼내어 기록사진을 한 장씩 찍고는 국망봉을 향해 길을 여니 0850 가는 방향이 북서진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암봉도 있고 오르내림도 있다. 어느새 바람은 그대로 인데 안개는 걷혀 구름 속에서 드러낸 햇살에 상고대가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모습이 가히 환상이다. 햇살이 좋을 때 우리는 눈꽃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씩을 카메라에 담고 출발한다.

1000 비로봉에서 국망봉가는 길에 우측으로 갈림길을 만나는데 배점리 초암사로 내려가는 길로 이정표(초암사4.1/비로봉2.8/국망봉0.3(국망봉~구인사갈림길 즉 늦은맥이고개1.8/늦은맥이고개~신선봉1.2/신선봉~구인사7.0/늦은맥이고개~형제봉10k))가 세워져 있다.


  1010 장엄한 국망봉에 올라서니 이 봉우리는 신라 마의태자의 전설(나라를 잃고 서라벌을 바라본 곳)로 한이 서려 있는 곳으로 숙연함을 느낀다. 정상에서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바라보니 북서쪽으로 상월봉이 상월봉에서 서쪽으로 늦은맥이고개 너머로 1272봉과 북쪽으로 대간줄기가 남서쪽으로 신선봉이 바라보인다. 국망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서둘러 출발한다.

  국망봉에서 능선으로 내려서다 다시 암봉을 향해 올라서기를 약 20여분만에(국망봉~상월봉0.8k) 정상 밑에서 좌측으로 구인사가는 표지가 보인다.  이를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상월봉정상 밑에서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있는데 러셀이 잘 되 있다. 이 길을 확인하고 정상 바위에 올라서니 사방이 확트인 것이 조망이 좋고 북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있는데 가파르고 위험해 보여 정상 오르기 전의 길로 돌아 나가는 것이 우회로인 듯싶어 바위지대를 조심스레 내려서 조금 전에 확인한 길로 접어들어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데 아무래도 대간줄기가 아닌 듯싶어 앞서가는 병환을 불러 세우고는 지도와 나침이를 꺼내어 방위를 재어보니 정북으로 방향이 잡혀있다. 아뿔싸, 이 길은 분명 석천골을 거쳐 덕현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천만다행이다. 많이 내려가지 않고 바로 길을 잡아 되돌아가는 것이…….

구인사 방향표지가 있는 곳까지 되돌아가서는 제대로 방향을 잡아 상월봉를 내려서는데 정상에서 바람에 날린 눈으로 무릎 위까지 쌓여 바지가랑이로 해서 신발 속으로 잠입하여 서늘함을 안겨준다.

우리는 내리막을 내려서다 적당한 장소에서 스패치를 차고는 조금 걷다보니 어느새 능선 길에는 눈높이가 현저히 낮아지고 늦은맥이고개에 이르러서는 능선에 먼지가 날린다.

늦은맥이고개는 왼편으로는 단양가곡어의곡리요 우측으로는 영주단산좌석리이다.


  1272봉정상을 앞두고 우측으로 돌아 대간길이 열려 있고 능선에 이르러 신선봉갈림길이정표(국망봉1.8/마당치6.5k)가 1100 보인다. 1272봉정상에서 남서쪽(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신선봉으로 나가는 길이고 북쪽(우측)으로 90°틀면 백두대간의 능선길이다.

리듬 없는 능선 길을 지루하게 오르내리면서 북북서진하는 중에 외로운 1150 이정표를(국망봉4.0/형제봉8.0k)만나게 되는데 죽령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주목감시초소에서 조반을 먹고는 처음으로 쉬어 본다.

잠시의 휴식과 간식으로 힘을 충전시키고 1205에 길을 재촉한다.

  늦은맥이고개를 넘어 1272봉을 내려서면서 완만한(아니 평지나 같은) 오르내림의 내리막길을 지루하게 걷게 된다.

길은 떠난 지 얼마 후 1230 연화동갈림길이정표(연화동3.0/상월봉4.5/마당치2.5k)를 지나게 된다.

1031.6봉을 아픈 무릎을 이끌고 올라서니 저 아래 마당치가 눈 아래 잡힌다.

1330 마당치(910)에 내려서니 이정표(새목7.5/형제봉3.5)가 세워져 있고 넓은 공터가 있다. 병환이 서정영(016-9503-4544/054-638-4544)씨에게 전화를 한다. 마당치에 도착하였노라고. 하니 지금 준비하겠단다.


  마당치에서 아픈 무릎을 펴고 쉬면서 간식을 먹자하니 병환이 그냥 가자고 서둔다.(참 대단한 사람이다. 먹지도 않지, 쉬지도 않지, 걸음도 빠르지. 52c 약 올라‘_´;)

해서 나 혼자 먹겠다고 하니 양갱 두개를 꺼내어 하나 나누어 준다. 간식을 먹으면서 다음 산행에 대해 병환이 물어와 설전에 한 번 더 할까 하였으나 다음 휴일이 일요일이라 설 뒤에 하기로 한다.

간식을 먹고 나니 병환이 디카를 꺼내어 기록사진을 찍어 준다. 1348 조금 쉬었고 서선생과의 약속도 있고 하니 길을 서둘러야 겠다. 마당치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1032봉을 향해 오르막을 오른다.

정상은 동쪽(왼쪽)으로 형제봉 능선과 북쪽(우측)으로 백두대간을 나누는 갈림길이다. 헌데 대간 길은 1032봉정상을 향하지 않고 정상 조금 아래서 오른쪽으로 돌아 나가게 되어있으며 능선길에서 1405 형제봉갈림길이정표(국망봉9.2/고치령1.9)를 만나게 되며 발 아래쪽으로 고치령 고갯길이 보인다.


  고치령은 동쪽으로 단양마락리와 서쪽으로 단산좌석리로 넘나드는 고갯길로 비포장도로이다.

고치령에 1438 내려서니 서정영씨가 먼저 도착하여 우리를 맞이한다. 고치령 고갯길과 이정표를 배경으로 기록사진과 우리를 죽령까지 트럭으로 태워 주실 서선생에게 부탁하여 우리 두 사람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는 1445에 트럭에 올라타고 고치령을 떠난다.

  트럭은 단산을 거쳐 순흥과 풍기를 거쳐 죽령에 1535에 우리 두 사람을 내려 준다. 다음 고치령~도래기재 산행시 다시 한번 운전해 줄 것을 부탁하고는 세워둔 무쏘에 승차하여 죽령 길을 내려 오는데 제2연화봉 위에 있는 중계탑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강면소재지에 1600도착 손두부하는 집에서 두부전골로 점심을 먹고는 1645 출발하여 남담양IC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하여 귀경한다.


  고속도에 진입하여 얼마쯤 갔는지 눈꺼풀이 무겁워 진다. 나도 모르게 잠에 나라로 빠져든 지 얼마인가 병환이 깨운다. 깜빡 졸아 지나가는 차가 경적을 울리고 지나갔다나.(지가 무쇠인간인가 저도 졸리겠지)

갓길로 차를 대어 자리를 교대하여 운전하는데 영동고속도로 문막을 조금 지나 남한강표지가 보이고, 도로는 차량의 행렬이 줄을 잇고 거북이 걸음이다. 엉금엉금 기어가다가 여주IC에서 국도로 나와서 달리니 조금은 한가하다. 양평과 이천으로 갈리는 갈림길에서 이천으로 방향을 틀어 이천으로 가다가 이천IC에서 중부고속도로 진입하니 여기는 뻐엉 뚫렸다.^!^;

동서울요금소를 빠져나와 판교~구리간 서울외곽고속도~송파IC~분당도시고속도~수서IC~양재대로로 하여 개포동 우리 집 앞에서 운전대를 병환에게 넘기고 2000경 병환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집으로 들어 왔다.


  왼쪽 무릎에 통증이 있어 다음 산행에 앞서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