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구간 : 백복령(780m)~생계령~석병산~두리봉(1030m)~삽당령~석두봉~화란봉(1069.1m)~닭목재~맹덕목장~고루포기산(1238.3m)~횡계현~능경봉(1123.1m)~대관령(840m)
2. 위 치 : 강원 동해, 강릉, 정선, 평창.
3. 산행일자 : 04‘07/12(음05/25,월)[해뜸0521/해짐1955]~07/13(음05/26,목)[해뜸05:21/해짐19:54]
4. 기상상태 : 07/12=대체로 비. 07/13=종일비, 바람약간.
5. 참가인원 : 최병환(자료·사진), 황인기(기록·작성)
6. 교 통 편 : 갈때=서울~진부, 정선임계경유 백복령간 무쏘승용차(최병환 소유)
올때=대관령, 횡계~서울간 무쏘승용차(최병환 소유)
7. 이용경비 : 전회이월36,000\+금회회비200,000\/2-비용151,600\=잔액이월84,400원.
세부내역 : 유류비70,000\. 임계부일펜션 숙박비60,000\/2. 평창휴게소 자판커피1,200\/4. 점심 순두부전골12,000\/2. 선교장입장료4,000\/2. 옥수수2,000\. 오이2,000\. 자판커피400\/2. 끝.
8. 산행일기 :
15회차부터 1박1일의 산행을 이번에는 1박2일의 산행(백복령~삽당령간 1일, 삽당령~대관령 1일)을 하기고 하고 상일동역에서 0910에 조우하여 상일IC~중부고속도~호법JC~영동고속도~진부IC~정선임계~백복령(780m)에 도착하니 1220이다. 서울을 출발할 때 가는 비가 내리더니 오락가락하던 비구름은 백복령에 도착하니 하늘은 쪽빛 같은 해맑음에 흰 구름만이 두둥실 떠 있다. 지금까지 내리던 비는 거짓말 같다. 희한하다. 하이고 ㅋㅋ
우리는 오는 중에 영동고속도 평창휴게소에 들려 휴식을 취하는데 초·중학생들의 단체 여행객들중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구석진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아내들이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 어쩌면 그럴 수가 있나하고 말하기에 그 시절 그 시기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러한 행위 자체가 그네들의 우월의식의 표출을 주위에 보이게 된다는 것을 설명한다. 지나고 보면 다 부질없는 것인데도 지금은 알지 못한다고…….
백복령은 강릉시와 정선임계를 연결하는 35번국도로 고갯마루에는 포장마차휴게소가 있어 오가는 길손에게 간단한 차와 막걸리에 도토리묵, 부침개 등의 먹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이곳에서 숙식은 서쪽 군대마을에서 하면 될 듯싶다. 고갯마루에 도착하여 점심으로 아내가 쌓아 온 김밥을 먹는데 아내들이 지난번에는 이곳의 개가 무척이나 지져 대었는데 오늘은 안 짓는 것이 안면을 익혀 놓은 탓인가 이야기 한다.
병환과 나는 아내들의 전송을 받으며 1256에 들머리로 향한다. 들머리엔 강릉시에서 나무방책을 쌓아 놓고 그 안에 조경사업을 벌려 그 사이를 가로지르니 고갯마루 너른 뜰엔 고추잠자리가 춤의 향연이 한참이다. 춤추는 잠자리를 뒤로하고 834m봉을 오르니 비에 젖은 풀잎들이 사랑으로 다가와 길손인 우리의 가는 길을 가로막는다. 1303분 42번 철탑을 지나간다. 여기서 생계령쪽으로 서진을 하여야 한다.(원래 대간줄기는 42번 철탑에서 북진을 하여 자병산(872.5m)으로 향하여야 하나 자병산은 한라시메트의 석회석채광지로 지금은 완전히 파헤친 상태이고 절반이 잘려져 나갔다. 94년 이전에 백두대간 산행자들은 이곳 자병산에 표지기를 달았다는 것이다)
1309분 43번 철탑을 지나 가로지른 임도(자병산으로 석재를 실어 나르는 길)로 내려서니 맞은편 봉우리 쪽으로 임도가 갈려 오르는데 차단기를 설치하여 출입을 막고 있다.(이곳을 돌아 임도를 타고 오르면 정상으로 향할 수 있음) 병환과 나는 임도를 따라 왼편으로 진행하니 자동차바퀴 세척대가 보이는데 그 앞 10여m 직전에 우측 숲으로 들어가는 대간길이 보인다. 숲으로 진행하니 잡초에 찔레 넝쿨이 반바지의 내 다리를 휘감아 정강이며 허벅지에 상처를 안겨 준다. 869m봉을 건너 44번 철탑에 도착하니 1327이다. 여기서 북쪽을 바라보니 자병산의 흉물스런 모습을 가슴으로 달려오는데 사회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자연이 훼손됨에 또 한번 몸서리친다. 그런 와중에 여기서 동쪽 그러니까 성황뎅이쪽을 바라보는데 깊은 골이 넘실되는 바다의 쪽빛을 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만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병환도 쪽빛 바다를 보는 듯 착각을 일으켰단다. 신기루를 보는 듯 하다.
44번 철탑을 지나 10여분을 진행하니 능선 상에 커다란 묘1기를 확인하는데 그 흔한 비석도 상석도 없다.
대간길 우측에서 기계음 소리가 자연의 정적을 깨우는 중에 1400에 796m봉을 넘는다. 하늘에 비가 없는데도 잡풀과 산죽잎 때문에 신발은 젖어 질퍽거리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중에 어느새 하늘도 노 했는지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괘씸죄 때문이리-_-
796m봉에서 생계령은 북서쪽으로 있다. 봉우리 몇 개를 넘어 생계령에 1426 도착하니 왼편에서 오르는 풀 덮인 임도인지 철탑을 세울 때 철골을 실어 나르기 위한 차량이 다닌 길인지 큰피원쪽으로 길이 나 있다. 생계령에는 경고안내문과 산불조심안내문이 제작, 설치되어 있다.
백복령에서 생계령까지는 움푹 들어간 돌리네를 여러 곳에서 확인이 된다. 뭐 이러한 곳을 카르스트 지형이라나…….
생계령을 뒤로 하고 잡초를 헤치며 산길을 오르고 또 오르는데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급경사로 된비알을 10여분 오르게 된다. 아마도 이곳이 922m봉일 것이다. 이곳에서부터는 대간이 북쪽으로 흐른다. 1600분 77년건설부 재설 434번 삼각점에 도착하는데 900.2m봉이 아닌가 싶다.
산능선에는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때로는 잡초에 가시넝쿨이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어 반바지의 산 꾼을 혼쭐 내준다. 반바지 입은 것을 오늘 만큼 후회하기도 처음이다. 온 다리가 훈장이다.
삼각점에서 평탄 길을 15분 진행하니 고병이재에 도착한다. 이정표에는 헬기장0.15h/우측능선쉼터0.50h로 되어 있다. 고병이재를 지나 완만한 능선을 따라 10분을 진행하니 908m봉의 헬기장에 도착하는데 헬기장이정표에는 고병이재가 골벵이재0.10h/일월봉1.15h로 표기 되어있는데 고병이재와 골벵이재의 차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좌측 임계 금방동쪽에서 콤프레셔 압축소리가 들리는데 우측 계곡 아래로는 아까 맑은 날씨에 보이던 상황뎅이 마을이 가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1650분 능선상에 묘1기가 나타나고, 대간은 묘 뒤로 열려 있다. 묘를 떠난 지 5분 만에 상황지미골갈림길 이정표가 있는데 오른쪽으로 상황지미골2.30h/지나온 헬기장1.00h/갈길 일월봉(석병산정상)0.15h라 적혀 있다.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물 한모금하고 길을 떠나니 대간길 옆으로 멧돼지가 파헤쳐 놓은 푸석 땅이 여러 곳 보인다. 멧돼지가 먹을 것이 있나 보다.
상황지미골 갈림길을 떠난 지 5분 만에 석병산 밑 헬기장을 지나고 3분정도 진행을 계속하니 두로봉갈림길이 나온다. 이정표에는 석병산0.05h/헬기장1.10h라 적혀 있다. 우리는 여기서 석병산을 향해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오는 중에 석병산에 대한 안내문은 정상이 바위가 병풍을 둘러 친 모양이어서 석병산이라 불린다고 설명되어 있다. 두리봉갈림길에서 2분후 바위 봉에 올라섰는데 정상석이 없고 바로 앞 맞은편 10여m쯤에 암봉이 또 하나 있어 조심스레 내려가서 그 봉우리에 올라서니 석병산(1055.3m)표지석이 세워져 있어 기념사진을 찍는다.
석병산정상 주위는 절벽으로 병풍을 둘러친 듯 깎아지르고 바로 정상 밑에는 기도처가 있어 정성을 빌었던지 촛대가 양쪽으로 세워져 있다.
그리고 일월봉쪽으로 일월문이 있는데 바위틈으로 동그란 하얀 게이트가 보인다.
1720 석병산을 뒤로하고 되 돌아와 두리봉쪽으로 걸음을 한다. 얕은 내림 후 봉우리에 올라서니 헬기장이 보인다. 석병산을 떠난 지 10분이 지났다. 비가 오락가락하니 지치지도 않는다. 계속 걸음을 하니 봉우리가 제법 높아 보이는 능선길이 나온다. 여기가 두리봉인 모양이라 속도를 줄이면서 뒤에 있는 병환에게 말을 거니 병환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표지기를 달고 있다.(표지기는 아내들이 화방재에서 숙박 후 들머리에 들어 설 때 들머리에 걸려 있는 표지기들을 보고는 우리도 달라고 하는 것을 백두대간은 마음에 담고 길에는 아무것도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고 하였는데도 댓재~백복령구간을 할 때 처음 나의 아내가 꽃집에서 롤띠를 구입해 댓재휴게민박식당에서 작업을 해서 걸어 놓기 시작했다)
구릉지 같은 봉우리에 1750 올라서니 목원대 표언복교수가 코팅지에 두로봉(1033m), 삽당령0.55h, 강릉행버스0630, 1730의 2회, 강릉택시033-651-9494, 제3차종주 02‘12/1라 적은 표찰을 걸어 놓았다.
두로봉(두리봉)에서 간식을 먹고 병환이 집사람에게 전화를 하였는데 지금 삽당령에 도착하여 기다리는바 임계에 정하여 놓은 숙박지에 다녀오겠다며 시간되어 올라 온 단다. 1805에 두리봉을 출발하니 대간줄기는 북쪽으로 달리던 것이 남서쪽을 향해 줄을 긋는다. 가는 길은 산죽에 넘어진 나무둥치가 가는 걸음을 막고, 가시넝쿨이 정강이, 허벅지를 할퀴며, 싸리나무가지가 얼굴을 때린다.
1830 가는 길목에 사방1m에 깊이1m여가 되는 함정이 파여 있다.
야간 산행시나 약간의 한 눈을 팔라 치면 구덩이에 떨어지기 십상이겠다. 또한 가로막은 나뭇둥치에 발목을 잡혀 넘어지는 일도 다반사일 것이다. 산위에는 어느새 나무 밑으로 어둠이 내리고 있다.
내리는 비에 가는 길은 도랑이 져 흐르고, 비탈길은 미끄러져 조심스레 진행하니 1850 어느새 77‘건설부에서 재설한 88번 삼각점이 있는 868.4m봉에 오른다. 여기서 30여분이면 삽당령에 도달할 것이다.
10분을 걸어 내림길을 가는데 대간길 우측으로 움푹 깎인 사면을 만난다. 폭우에 유실된 것이다. 여기 유실된 부분에 떼를 심어 조림을 하였는데 왕산38이라는 푯말을 꼽아 놓았다. 해서 병환과 우리는 이곳이 왕산(산이름)인줄로 착각하고는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물론 유실된 부분을…….
이곳에서 10여분을 내려서 진행하니 임도에 닿고, 임도길 오른쪽으로 5m정도 이동하니 맞은편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표지기가 걸려 있슴)이 보인다. 숲으로 들어간 지 2분후 1915에 삽당령(680m)에 내려서니 아내들이 반가이 마중을 한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다.
삽당령은 강릉시와 정선임계를 넘나드는 35번국도로 고갯마루에는 석병산쪽으로 임도가 나 있는데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는 콘테이너휴게소가 있어 동동주와 간단한 안주거리를 판다고 한다.
임도는 왼편으로 목계(방터골)26.0km/언별(단경골)26.8km/만덕봉9.0km라 대리석에 적혀 있다. 또한 길 건너편에는 백두대간등산로가 입체 간판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눈이 안 좋은 나로서는 자세히 확인이 안 된다.
임도 쪽으로 차단기 좌측 옆에 물이 나오는 곳에서 대충 씻고는 1925 승용차에 올라 타 삽당령을 떠나 임계4거리에서 백복령쪽 가는 길로 100여m쯤에 있는 부일펜션하우스(033-562~3-3504)에 도착하니 1940경이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따듯한 물에 목욕♨을 하고, 아내는 비에 젖은 옷가지와 신발을 대충 세탁하여 보일러실에 갖다가 말린다.¤ ☼
두 부부가 우리 방에 모여 앉아 끊여 놓은 된장찌개로 아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였다. ☺
식사를 마치고 과일로 입가심을 하면서 아내들의 관광 이야기를 듣는다. 구미정에 다녀왔으며, 한방차를 마셨는데 맛이 일품이며, 또한 구미정 가는 길 계곡은 일렁이는 물줄기와 주변 경관이 매우 좋단다.
※ 구미정(九美亭) : 임계면봉산리 앞으로 돌아 흐르는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변 반석 위에 건축한 정자로 조선조 숙종 때 공조참의를 지냈던 수고당 이자가 피서와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이 정자 주위에 아홉 가지 특색의 절경이 있어 구미정이란 한다. ① 어량(魚梁 : 폭포에 물고기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비상할 때 물위에 통발을 놓아 잡는 경치), ② 전주(田疇 : 밭두둑 경치), ③ 반서(盤嶼 : 넓고 편편한 돌), ④ 층대(層臺 : 층층한 절벽), ⑤ 석지(石池 : 구미정 뒤편 반석 위에 생긴 작은 연못의 경치), ⑥ 평암(平岩 : 넙고 큰 바위), ⑦ 등담(燈潭 : 정자에 불을 밝혀 연못에 비치는 경치), ⑧ 취벽(翠壁 : 구미정 앞 석벽 사이에 있는 쉼터의 경치), ⑨ 열수(列峀 : 구미정 주변 암벽에 줄지어 있는 듯이 뚫려 있는 바위 구멍의 아름다움)이다. 이중 ⑦의 등담은 1978년 간행된 정선군지에 징담(澄潭 : 맑은 못)이라 표기되어 있다.
또한 아내들의 말에 의하면 강릉시는 돈이 마를 지언정, 임계에는 돈 마를 일이 없단다. 왜냐하면 고랭지채소밭에 일하는 외지 분들이 돈을 풀고 가기 때문이란다. 해서 그런지 숙박업소(3개)에 방이 딱 2개 비어서 우리가 차지했단다. 그리고 식당이 60여개 업소가 된다고 한다.
밤 10시반경 병환이 내일 새벽4시반에 일어나 5시에 출발하자 하며 자기의 방으로 돌아간다.
비 오는 창문 밖으로 맞은편엔 정선농민문화센타가 자리하고 있다. 대간 중 삽당령에서 끊을 경우 강원여객 임계영업소033-562-6138/임계개인택시033-562-2400를 알아 두면 편리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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