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야로 뚜벅뚜벅

백두대간 18회차 산행기 2d

힉스_길메들 2004. 7. 13. 22:53

  밤11시경 잠자리에 들었다. 좀처럼 깨지 않는 잠자리가 오늘 따라 이상하게 어설프다. 자다깨다를 반복하여 시계를 보니 새벽2시반이다.

창밖으로는 새벽비가 창문을 때린다. 배낭 등을 말리려고 선풍기를 틀어 났는데 껄떡이는 선풍기가 꺽꺽 울고 있다.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아내가 일어나 선풍기를 끈다. 잠 못 이루는 나, 그러면서도 껄떡이는 선풍기조차도 끄기 싫어 일어나지 않는 나를 위해 아내가 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새벽4시반 정확하게 병환의 처가 방문을 노크하여 아내를 깨운다. 뒤척이다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다. 일어나기 싫은 것을 억지로 일어나 앉는데 어제 저녁에 보일러실에 널어놓은 옷가지와 비에 쩔은 신발을 찾아 들이 민다. 옷가지를 만져 보니 보송보송하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지만 그래도 신난다.

  잠시 후 병환과 그의 아내가 들어와서 한자리에 모여 앉아 병환과 나 두 사람만의 아침식사를 하고 펜션을 떠나니 0515인데 아직도 어둠이 그대로다.

비 내려 적막한 거리를 쩍쩍거리며 달려 삽당령을 향해 35번 국도를 오르니 날이 훤히 밝아 온다. 낮 익은 삽당령은 어제의 모습보다도 밝은 모습을 간직하고 0530 대간 꾼을 맞이한다.


  가랑비 내리는 이른 아침, 삽당령 고갯마루에서 파이팅이라는 아내들의 구호를 등 뒤로 인사를 나누고 0532에 대화실산(1010m)으로 향하는 임도로 해서 삽당령~대관령(25.8km) 구간의 산행을 시작한다.

임도를 따라 가다가 보면 강릉시 왕산면에서 안내한 이정표를 따라 오른편으로 백두대간주능선에 오르게 된다. 주능선에 올라섰으나 완만한 길이 걸음에 속도를 높인다.

  잡풀을 헤치며 걷고 있노라니 저만치 앞에 송수신 탑이 보이는 길목에서 오른편으로 갈라지는 오솔길이 보이더니 1분 더 진행하니 KTF의 송수신 탑이 우뚝이 자리한 곳을 우측으로 0555 돌아 내려서니 임도를 만나게 된다.

이 임도는 삽당령에서부터 우리를 따라온 도로로 송신탑 앞으로 해서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데 이곳에 이르기까지 임도를 이용해도 무방할 듯싶다. 나는 벌써 바지며 신발이 비에, 잡초에 맺힌 빗물에 젖어 질퍽거린다.

임도에 내려선 후 2~3m정도 우측으로 가면 백두대간←삽당령/닭목재→라는 강릉시왕산면 이정표가 보이는 곳에서 숲으로 들어서면 대간 길이다.

  통신소를 떠난 지 10분 만에 작은 봉우리에 올라섰는데 직행으로 들미골갈림길 이정표가 세워진 곳에 다다른다. 여기서 대간 길은 300°좌회전 하여야 한다. 야간 산행시 이정표 확인을 하지 않고 직행 했다가는 큰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0635분경 대용수동갈림길(강릉시왕산면재설) 이정표에는 좌측으로 표시되어 있어 우리는 오른편으로 돌아 내려서니 방화선에 닿는다. 방화선에 내려서니 대용수동쪽 능선에서 내려온 등로가 확실하고, 대간은 오른편으로 펼쳐져 있는데 아름드리 소나무 3형제가 우뚝이 세워져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방화선을 따라 가면 잡초가 키를 넘겨 자라나서 길을 헤치며 진행하려니 앞길을 막는다. 이 방화선 중간 중간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비를 맞으며 서 있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용수동갈림길에서 방화선을 따라 정북 쪽으로 진행하여 들미재(810m)를 지나 978.7m봉을 넘고 방향을 서편으로 돌려 석두봉(982m)에 오르니 0730이다. 여기에 대용수동갈림길이 왼편으로 표기되어 있다.

석두봉에서 방향을 다시 북쪽으로 틀어 960m봉과 989.7m봉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석두봉을 떠나 쉬지 않고 989.7m봉에 오른 후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 몇 개의 봉우리를 거쳐 오르내림을 계속한 끝에 화란봉(1069.1m)에 0910경에 도착하게 된다.

삽당령을 떠나 거의 쉬지 않고 3시40분을 달려 온 것이다.

  1006m봉에서 화란봉 오름에 어느새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름길은 미끄럽고 힘이 들기 시작한다. 화란봉에 오른 후에 요기를 해야 갰다 마음먹고 참고 오른 것이다.

여기서 기념사진을 찍고는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 병환이 그의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에야 조반을 먹고 있단다. 아내들과 닭목재에서 만나 점심을 지원하기로 하였기에 병환이 50분 후에 만나자고 약속하고 0920에 화란봉에서 내려선다. 내 계산으로는 30~40분이면 닭목재에 내려 설 것이다.

  화란봉에서 닭목재는 남서쪽으로 있다. 화란봉을 내려선지 20분, 좌측 닭목이 쪽으로 너른 밭과 비닐하우스, 창고 같은 건물이 눈에 보인다. 왼편으로 밭을 바라보면서 10분을 진행하니 커다란 대리석으로 둘러싼 가묘가 보이는데 비석에는 강릉김공이 적혀 있다. 가묘의 활개 쪽으로 돌아 나가니 숲 속 안 쪽으로 표지기가 여러 개 걸려 있는데 활개 주위에는 표지기가 없어 야간에는 확인이 용이치 않을 것 같다.

  숲 속으로 들어가 5분정도 걸으니 대간길 오른편으로 밭이 있는데 길이 유실되어 위태롭다. 밭을 내려서면 푸른색 지붕의 농기보관창고 뒤로 돌아 나가면 0955 닭목령(680m) 표지석과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두 장승이 우리를 반긴다. 닭목령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아내들을 기다린다.


  닭목령에 내려서니 길 건너편으로 감자작목반 간이집하장이 흙 속 창고로 지어져 있고, 그 앞에 산령각인지 기와지붕에 돌담이 쳐져 있으며, 대간 들머리에는 화기보관소가 지어져 있는데 누군가 그곳에서 잠을 청했는지 유리창이 깨어져 있다.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능경(정)봉10.2k/대기리쪽 방향 노추산8.1k/삽당령13.5k로 표기 되어있다.

등산안내판에는 닭목재-2.0k-왕산제1쉼터-2.0k-왕산제2쉼터-2.0k-고루포기산쉼터-1.5k-전망대-2.5k-능경봉(1123m)-2.0k-대관령 총12.0km/7.00h라고 적혀 있다.

  닭목재에 내려서서 각종 메모를 하고 있는 중에 10여분이 지난 후 아내들이 도착하여 휴대용가스렌지에 김치라면 국을 끊여 점심을 먹는데 비에 젖은 온 몸은 싸늘히 식어 가고 있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따끈한 커피 한잔으로 몸을 추스르며 1043에 닭목재를 출발 임도를 따라 길을 떠나다 표지기와 왕산면에서 세운 안내표를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서쪽으로 흐르던 대간은 1110 임도를 만나면서 북으로 향하는데 임도를 따라 얼마쯤 가니 차단기가 우리를 가로막고 표지기는 우리를 왼편 능선으로 안내한다. 여기가 맹덕한우목장인 것이다.

이곳에서 정면으로 아득히 보이는 봉우리에 철탑이 세워져 있는데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싶다.

  목장길을 끼고 좌측으로 돌아 나가니 서득봉(1052.6m)밑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는 목장에는 소 한 마리 보이지 않는 황량한 정경이 아쉽다. 비가 오기 때문일까? 소들의 정겨운 모습을 기대 했는데…….

  대간길 좌측 계곡 속에서 물소리와 함께 고함 소리가 들리는 것이 군인들이 훈련받는 소리가 아닌가? 의심을 하면 진행하는데 1138경 왕산제1쉼터(해발855m)에 닿는다. 여기에는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벤치가 3~4가 놓여 있어 길가는 대간꾼의 쉼터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다. 잠시 쉬며 물 한 모금 하고 고도와 지도를 확인하니 이곳이 955.6m봉이 아닌가? 의심해 본다. -_-

  제1쉼터에서 5분정도를 쉰 후에 길을 떠나 완만한 오름으로 계속 오르니 1215에 왕산제2쉼터(952m)에 다다른다. 이곳에 알루미늄 벤치 3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데 누군가 이곳에서 비박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정표에는 왕산제1쉼터2.0k/고루포기쉼터2.0k라 적혀 있는데 닭목재에서 왕산1쉼터까지 2.0k는 약 55분 소요, 왕산1쉼터에서 왕산2쉼터까지 2.0k는 30분여 소요 되었다. 능선의 구배 차이 일까? 아님 키로정이 잘못! ^^;

또한 여기는 해발 1036m정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곳에서 10분을 쉬고는 계속 된비알을 오르니 34번 철탑이 1233 보인다.

하늘은 잠시 맑아 졌다. 우리가 걸어 온 길을 되돌아보니 저 멀리 남동쪽으로 닭목재의 고갯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또한 계곡 건너 피덕령쪽 능선에는 고랭지 채소밭이 확연히 드러나고 하우스와 파란지붕의 건물이 한 눈에 다가온다.


  38번 철탑을 옆으로 1250 지나 5분을 더 진행하니 고루포기(1238m)쉼터라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이정표에는 능경봉4.0k라 표기되어 있고, 삼각점24 도암 1991라고 적혀 있다. 평창군도암면과 강릉시 왕산면의 경계이다. 지금까지는 강릉시왕산면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는데 이제부터는 평창군의 이정표가 자리를 대신하는 모양이다.

  고루포기산에서 북쪽으로 10분을 진행하니 좌측으로 횡계눈마을 오목골1.6k/고루포기산0.4k/능경봉4.7k의 이정표를 지나고 10여분을 북쪽으로 더 진행하니 대관령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에 올라섰으나 개스로 인해 조망을 불가한 가운데 내림길을 20분 계속하여 내려서니 좌측으로 왕산골 갈림길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고루포기산1.4k/능경봉3.7k라 적혀 있는데 대간줄기 좌측으로가 왕산골이 아니라 우측이 아닌가 싶다. 왜냐 하면 고루포기산에서 능경봉까지의 대간 오른편, 닭목재에서 강릉으로 가는 35번국도변에 왕산천이 흐르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대간은 북쪽으로 흐르다가 능경봉까지 북동쪽으로 이어진다.

  자동차소리가 비바람을 앉고 귓가에 머문다. 동쪽으로 대관령터널로 이어지는 새로운 영동고속도로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계속 내림오름이 연속되는 가운데 1353 좌측으로 왕산골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좌측으로 샘터100m, 왕산골700m/전망대1.4k/능경봉2.6k라 적혀 있고, 지금부터 다시 오름이 시작된다.

닭목재에서 지금까지 쉼 없이 걷고 또 걸어와 지치고 힘에 부친다. 능경봉 오름길이 한없이 멀고도 긴 여정이다. 점심을 먹은 지도 4시간이 지나 뱃속은 허기진다! 아우성이다. 구성애의 아우성은 아니다.*^;


  1440 능경봉 오름길에 입간판에 메직으로 쓴 행운돌탑이 있는데 우리도 여기서 돌을 던져 행운을 빌어 보았으나 나는 세 번 만에야 꼭대기에 안착, 성공을 하였다.■■♠

여기서 잠시 사진을 찍고는 약과로 요기를 한 후 1452에 다시 오름을 시작한다.

행운의 돌탑을 떠난 지 5분여가 지나서 능경봉정상(1123m)에 올라서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정표에는 대관령휴게소1.8k라 적혀 있다. 여기서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하니 강릉에서 지금 대관령으로 오르고 있다는 연락이다. 통신상태가 불량하다.

  닭목재에서 이곳까지 오면서 우리는 벼락 맞아 쓰러진 고목을 수 없이 보았다. 비 오는 날, 비를 피한다고 고목 밑으로 숨어들었다간 여지없이 숯검정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여 고목 밑으로 비를 피해 숨어들지 말자! 특히 들판에서 비에 쫓겨 나무 밑으로 숨어들지는 더더욱 피하자.ㅎㅎ

또한 수많은 산죽군락지와 잡초지대, 잡목지대를 지나면서 길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둥치로 야간산행시 주위를 게을리 하면 넘어지기가 십상이겠다. 모쪼록 조심에 조심을 하시기 바람다.^!^

  능경봉에서부터는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다. 비에 젖은 길은 신발바닥을 미끄러뜨리고, 드넓게 펼쳐진 대간의 길은 대관령에서 많은 사람들이 능경봉에 올라 왔음을 대변한다.


  1525 임도에 도착했는데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제왕산등산로 이정표에는 제왕산2.0k/대관령박물관6.9k/대관령휴게소0.7k/능경봉1.1k라 적혀 있다. 또한 이곳에는 기설비가 세워져 있는데 양쪽으로 샘물을 받을 수 있도록 수도를 설치하여 놓았기에 나뭇잎과 흙으로 범벅이 된 다리를 씻고 우리는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밭을 지나고, 1535에 대관령기념비각(거북등위에 갓을 쓴 비석)에 내려서니 아내들이 우산을 받쳐 들고 마중을 한다. 오! 해피 데이 *o^; 뷰티플 하니♡☺♥

기념사진을 찍고, 등산안내판에서 오목골-오목폭포-삼거리-전망대-능경봉-약수터-휴게소=4시간30분/휴게소-약수터-능경봉-약수터-휴게소=1시간30분의 안내표를 확인한다.

  병환과 나는 기념비각에서 도로로 해서 하행휴게소쪽으로 가지 않고 숲으로 들어가 대관령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바로 내려선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승용차에서 옷가지를 꺼내어 젖은 옷과 바꾸어 입고는 대관령을 떠난다.

  승용차는 횡계IC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빗속을 달리고 나는 어느새 자메 취해 비몽사몽 꿈속을 헤메다 드르륵하는 경고음에 동서울요금소 앞에서 눈을 떠보나 아직도 눈이 게심치레 하다.

  상일IC를 빠져 나와 고덕기지에 도착하니 1820경이 되었다. 짐을 나누어 싣고 헤어져 아내와 둘이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