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행구간 : 구룡령(1013m)~갈전곡봉(1204m)~쇠나드리~조침령((760m)~북암령~단목령((750m)~점봉산(1424.2m)~망대암산(1236m)~1157.6m봉~한계령(935m))
2. 위 치 : 강원 홍천, 양양, 인제.
3. 산행일자 : 04‘08/23(음07/08,월)[해뜸0555/해짐1914]~08/24(음07/09,화)[해뜸05:55/해짐19:13]
4. 기상상태 : 08/23=대체로 비, 선들바람. 08/24=맑음, 바람없음.
5. 참가인원 : 최병환(자료·사진), 황인기(기록·작성)
6. 교 통 편 : 갈때=서울~(6)국도~양평~(44)홍천~(56)국도~구룡령간 무쏘승용차(최병환 소유)
올때=한계령~진부령~(46)국도~인제~(44)국도~홍천~양평~(6)국도~서울간 각각승용차
7. 이용경비 : 전회이월-20,600\+금회회비200,000\/2-비용95,200\=잔액분활84,200원/2=0원.
세부내역 : 유류비50,000\. 양평휴게소1,200\/4. 구룡령휴게소24,000\/4. 음료20,000\/3 끝.
8. 산행일기 :
오늘산행은 복중 무더위를 피하여(그때는 가족 등과 피서를 하고) 좀 선선한 시기에 산행하기로 합의하여 오늘로 D-day를 잡았다.
그동안 직장에 백두대간종주 자축 기념으로 볼펜에 백두대간종주기념 인쇄를 하여 나누어 주기로 하고는 250자루/203,000원에 인쇄비32,000원 합235,000원/2명에 제작의뢰고, 직장에서는 백두대간종주축하 현수막에 기념패를 제작하여 D-day를 기다려 오늘에 이르렀다.
상일동을 출발, 팔당대교를 거쳐 양평-홍천에서 [444]지방도로 수타사 방향(직선방향)으로 길을 잡고 가다가 (56)국도로 합쳐 창촌을 지나는데 차창에 빗방울이 점점이 묻어나더니 명계에 이르니 구룡령 줄기에 구름이 시커머케 드리워지고, 유리창의 빗물은 제법 흥건하다.
구룡령휴게소에 들어서니 11시40분경이다. 휴게식당에 들어가 황태해장국(진부령의 황태해장국보다 훨 못함)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는 배낭을 정리(커버를 씌우고 스틱을 조정)1225 비 내리는 휴게소를 나서니 아내들의 눈망울이 빗물에 젖은 탓인지 우중에 대간길을 떠나는 서방의 뒷모습에 안쓰러움인지 짜잔하다.
구룡령고갯마루를 지나는 동물이동통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는 구룡령표지석 앞으로의 들머리에 1230 들어선다. 대간줄기는 정동쪽으로 뻗어 나갔다. 비에 젖은 풀들은 지나는 길손의 바짓가랑이를 어느새 붙잡고 가지마라고 손짓하며 눈물로 적시고 있다. 헐떡거리며 5분여를 걸어 오르니 완만한 능선으로 시작된다. 벌써 등산화는 흥건하고, 바지가랑이는 비에 젖어 축 늘어져 있다. 구룡령을 떠난 지 30분 봉우리 하나를 트래버스 하는데 아마도 1121m봉이 아닌가 생각한다. 잡풀과 잡목이 우거져 볼 따귀를 때리고 선들하게 부는 바람은 땀이 날 사이도 없는 젖은 몸뚱이를 싸늘히 식힌다. 1121m봉에서 25분정도 걸으면 치밭골령이라는 표지목을 엉성하게 걸어 놓은 곳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은 골·령이 아니라 봉우리다.
구룡령을 떠난 지 1시간20분 1345에 갈전곡봉(1204m)에 다다른다. 이정표에는 구룡령3.4k/2.00h, 쇠나드리 12.7k/6.30h, 가칠봉3.0k로 표기되어있다.
갈전곡봉에서 대간길은 정면 그러니까 북쪽으로 향하였으며, 서남쪽의 가칠봉은 좌측으로 길이 뚫려 있는데 명계리쪽 삼봉자연휴양림으로 하산 할 수가 있다. 백두대간의 줄기를 따라 좌측으로는 조경동길이, 우측으로는 서쪽의 홍천과 동쪽의 양양을 잇는 (56)국도가 뱀꼬리 마냥 이어져 따라 온다.
북쪽으로 향하다가 그것도 잠시 대간은 북서로 방향을 틀더니 다시 정북으로 향하여 1455 왕승골삼거리에 다다른다. 이정표에는 삼거리인데 실제로는 사거리로 우측으론 왕승골로 1.5k/0.40h로 탈출로로도 적당할 것이며, 좌측으로 조경동으로 1.6k, 정면으로는 연가리샘터(대간길)3.0k로 표기되어 있다.
이 왕승골삼거리 부근에는 막영 할 자리가 있으며 삼거리 직전에는 좌측 조경동쪽으로 5분거리에 샘터가 있다고 하나 확인하지 않고 지나친다. 대간길은 텐트를 칠 수 있는 적당한 곳이 여러곳 발견 할 수가 있었으며, 급하고 짧은 오르내림이 수없이 많이 있다. 왕승골삼거리를 떠나 북서쪽으로 10여분 후에 묘1기를 만나는데 시멘트묘비에는 평해손씨라 적혀 있으며 무너진 봉분은 누군가에 의해 대충이라도 벌초가 되어 있었다.
특이 할 것도 없는 길을 따르다 보니 968.1m봉인지 삼각점을 1533 만나게 되는데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조경동으로 내려가는 길 일 것이다. 여기서 북서쪽으로 30분을 진행하니 초라한 옛 헬기장을 볼 수 있다.
대간은 구룡령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다 정북을 향하고 다시 북서로 해서 정북으로 흐르더니 1619에 연가리골샘터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안내판에는 가는 방향으로 바람불이삼거리4.2k, 좌측으로 쇠나드리1.9k, 조침령이 4.0k로 되어 있는데 조침령 거리가 잘 못 된 듯싶다.
여기서 샘터는 좌측으로 4분거리에 있는데 샘터가 아니라 계곡으로 능선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때릴 것이다.
계곡에서 수통에 물을 채우고 연가리골샘터를 1640 떠난다. 안내판에는 바람불이삼거리 중간에 단풍나무군락지가 있으나 어디인지 확인하지 못하고 길을 걷는데 1715경 길에 빈 드럼통을 묻어 놓은 곳을 볼 수 있다. 밤중이라면 위험하기 그지없다. 이 빈통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1800에 955m봉에 올라서는데 지나온 길로 1061m봉이 25분거리에 있고, 쇠나드리는 가는 길로 2.00시간 거리에 있다. 어느새 사위는 어둑해지고 땀에 젖은 몸뚱이는 잠시 쉬노라면 바람에 오스스 한기를 느낀다. 오르고 내리기를 어느 봉우리 어느 골짜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측 골짜기에서 개짓는 소리가 컹컹 단발로 들린다. 민가는 멀리 있을 터인데 무슨 사연인지(덫에 걸린 건지) 알지를 못하겠다.
1830 내리막을 내려서니 넓은 구릉지에 닿는다. 아마 왼편이 두무터로 흐르는 능선줄기가 아닌가 생각되는 지점에 대야영장이라 나뭇판(구룡령까지는 6.30h, 조침령까지는 3.0k)에 적어서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다. 이곳에는 텐트를 여러동 아니 대형천막 설치도 가능하리라 생각이 든다.
이 대야영장에 내려서니 텐트 한동이 앙증맞게 쳐져 있어 나는 일부러 에헴하는 기침으로 텐트 속의 대간꾼을 불러 보니 텐트 안에서 인기척을 내면서 지퍼를 열고서 내다보며 인사를 한다. 서른초반 나이의 남자 대간꾼으로 64일째 연속 무지원 산행중이란다. 지금은 발바닥이 까졌으음 물론이요, 발바닥뼈가 아프고, 무릎에도 통증을 느끼고 있다며 천천히 산행을 계속해 나갈 것이란다.
지리산태극종주의 응석봉밑 수양산에서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무슨 사연이 있든지 간에 결심이 대단한 사나이다. 앞으로 최소 일주일은 계속 산행을 더해야 할 것이 고생이 많을 것이다.
서로의 격려 속에 헤어져 능선의 오르내림을 계속 진행한다.
어느새 산속은 어둠에 휩싸였다. 언제쯤인가 왼편으로 쇠나드리쪽에서 전등빛을 발견하고 우리는 그 전등이 조침령으로 올라오는 자동차 불빛인 줄로 만 알고는 조침령에 가까이 옴을 스스로 즐겼다. 헌데 이따금 보이는 전등빛은 우리를 따라 와도 조침령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대간길이 오른편으로 급하게 휘어 돌아 북으로 향하더니 내림길에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보수한 흔적을 어둠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비에 젖은 내림길을 조심해서 내려서다가 “으라챠차 어이쿠”한다.
옛조침령길인지 작은 고갯길을 지나고 한참을 가다가 2030에 조침령에 내려서니 비포장길은 빗물이 고여 있고 이곳 들머리/날머리는 고갯마루에서 조금 아래에 위치해 오른편 길을 따라 조금 오르니 조침령표지석이 공원을 조성중인 곳에 세워져 있다. 우리는 이곳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우리의 쉼터를 찾아보니 도로공사를 진행하다 쌓아 놓은 재료들이 길거리에 방치되어 있으며 고갯마루에서 서림쪽으로 50m정도의 지점에 컨테이너 박스가 놓여져 있는데 산불감시초소인 것이다.
산불감시초소는 출입문과 유리창 모두가 굳게 잠겨져 있어 들어 갈 수가 없게 되어 있기에 병환이 뽑아온 자료에 민박집아주머니가 트럭으로 태워 준다기에 민박을 하자고 하여 자료를 찾아보니 전화번호가 없다. 여기서 민박집까지는 30분정도 쇠나드리쪽으로 걸어 내려가야 한단다. 그래도 나는 민박을 하고 싶다.(사실 내가 비에 젖은 옷에 추위를 느끼고 *^; 여벌옷을 준비하지 못함-_-)
그래도 병환이 고집을 부려 우리는 말 못할 절도(국가 시설물 파손 : 유리창을 깨어 걸쇠를 열음)를 저지르고 초소로 들어간다. 실내는 아늑하다. 책상과 접이식의자 4개와 나무로 만든 평상같은 침상에 은박돗자리를 깔아 놓았다.
우리는 책상에서 저녁으로 김치라면국에 햇반을 넣어 먹고 나니 으스스한 한기가 사라진다. 은박돗자리를 걷어 자리를 깔고 그 위에 매트를 침낭을 펼치니 훌륭한 잠자리다. 또한 종이상자가 있어 깨어진 유리창을 막아 놓으니 아방궁이 이보다 좋을소냐???!!!
입고 있던 젖은 옷은 벗어 놓고 병환이가 여벌로 가져온 상내의를 입고 침낭으로 들어가니 잠이 스르르 찾아온다.
내가 백두대간을 끝내면서 산행에의 준비가 너무나도 소흘 했다. 평소 맑은 한여름 당일 근교산행을 해도 배낭에는 여벌옷에 방풍방수의는 물론이요 구급약품에 비상식량까지 준비하고 다니던 나(아내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헌데 백두대간이 끝나가는 오늘에는 어떤 한가? 아내가 가져가라고 내어 놓은 여벌옷과 방풍방수의를 싸우다시피 하여 겨우 방풍방수의 만을 챙겨 온(배낭의 무게를 줄인다는 미명하에) 나다. 이날 병환도 나와 똑같다면???? 또 산속에서 실족이라도 하여 움직일 수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후회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찔하다!!!
한잠을 자고 나서 몇 시인지도 확인하지 않고 문을 열고 밖을 본다. 하늘에는 별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여명이 밝아 태양이 떠오를 시각이 되면 참으로 장관이리라.
소피를 보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나 잠이 오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을씨년스런 조침령을 넘는 자동차의 라이트 불빛이 초소의 유리창을 할퀴고 지나간다.
옆의 병환은 코를 골면서 잘도 자고 있다. 엎치락뒤치락하기를 몇 차례 잠이 오지 않으니 이상하다. 백두대간의 마지막 밤인 줄 아는지 설례임으로 가득 찬 이 밤이 아닌가. *_*;
자동차 한대가 쇠나드리쪽에서 넘어와 잠시 서는 듯 하더니 경적을 울리고 지나간다. 자동차는 지나간 밤에 우리가 한 짓을 알기나 하듯 경적을 울려대는 것 아닌가??!! 잠시 후 경적에 응답하는지 호각소리가 호로록 울린다. 자동차는 서림쪽으로 넘어 가면서 경적을 울리고, 호각이 울리고 하기를 몇 차례 이어지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네들은 이 밤 이 산중에 산적들이 있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렇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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