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 이틀째 무릉도원 도화원/황용동굴
6시에 모닝콜을 울려 7시부터 조식을 하고는 7시반에 호텔을 출발하여 여행을 시작하겠노라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다.
아내는 샤워를 하고 화장하게 좀더 일찍 일어나자하여 5시40분에 알람을 맞추어 놓고는 알람 소리에 일어나 짐을 정리 하는데 10분전에 모닝콜이 울린다.
장사를 떠나 장가계의 백장협호텔에서 이틀을 숙박하게 되어있어 모든 짐을 갖고 나가에 한다. 짐을 들고 지태네와 로비의 식당으로 내려가니 로비에 가이드가 나와서는 짐들을 받는다.
식당으로 들어서니 모든 팀원들이 어느새 내려와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화야호텔의 부페식사를 한다. 중국음식이라지만 우리 한국인의 입맛에 어느정도는 맞춰는지 먹을 만하다.
식사료가 6천원정도라지만 우리나라와 문화 수준을 비교하자면 5배가 가격이 되니 3만원정도의 식사비가 될 것이다.
아침을 마치고는 우리의 전세버스의 몸을 싣고 7시44분에 장사의 화야화천대주점을 떠난다. 이곳에는 사흘 후에 다시 돌아와 하룻밤을 묵을 것이다.
장사시내를 벗어나 08:00분에 장사~장가계간 관광전용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시멘트로 준설된 고속도로를 달린다. 이 고속도로는 05년 12월 26일날 장사-익양(68km)-상덕(155km)-자리(234km)-장가계(308km)가 개통되었다. 이 날은 모택동 탄생일로 그는 이 고속도 인근에서 출생하였기에 이날을 기념하기 위함이란다.
고속도로에는 우리나라 처럼 휴게소가 없고 주유소에서 작은 간이매점 형태의 물건들을 팔고 있다.
고속도로 주변 시골의 전원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아직은 농지정리가 안된 우리나라의 60년대 초의 논들 처럼 논뚝이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고 모를 심고 있는데 줄잡이도 없이 농부 혼자서 모를 삐뚤빼뚤 심고있다.
농가는 모두가 2층집으로 1층은 필로트 마냥 농기구나 농산물을 보관하는 창고등으로 사용하고 2층에서 거주한단다. 이 지역이 아열대기후라 습기가 많이 올라와 1층에서 거주하기가 곤란하단다. 헌데 집이 획일적인지 모방인지 모습이 똑같아 공산주의의 산물인가 싶을 정도다.
주변에는 벽돌공장도있고, 양어장의 모습도 보이며 연탄공장에선 연탄을 찍어 낸다. 벽돌공장이나, 연탄공장은 수작업으로 하고 있는 모습이 40여년전의 우리 농촌을 보는듯 싶다.
고속도로는 호남의 4대강중 자수를 가로지른다. 호남4대강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상강, 원강, 이수, 자수다.
전세버스는 09:58분 상덕T/G를 빠져나와 상덕읍내를 지나 도연명이 극찬한 도화원기의 무대인 상덕의 도화원풍경구(진인동, 우선교, 마정송, 도화계곡, 도화관)로 향한다. 이곳 상덕은 일제때 일군이 장사를 거쳐 이곳까지 침입을 시도했으나 이곳의 토비, 산적들의 저항에 봉착해 퇴각하고는 더 이상 침입을 못했다고 한다.
10:30분 도화원 입구인 "유현주점"앞에 주차를 한다.
도화원입장료 9천원정도(개인 13천원)에 티켓팅하고는 입구에 들어서는데 문앞의 거대한 바위에 도화원이라 쓰인 돌이 우리를 압도한다.
이곳엔 가마꾼들이 줄을 섰는데 초입부터 가마를 타면 3만이며, 끝머리에 서는 6천원을 받는다. 그런데 무턱대고 탓다가는 낭패를 본단다. 일단 타고 오르면 가마꾼 두당 3만원씩 계산하구 팁도 요구한단다.
이곳 저곳 절경을 구경하구 동굴을 빠져 나오니 정말 선경중의 선경이 장엄하게 펼쳐저 이상향을 꿈꾸던 옛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을 잡을 만한 천하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도화원은 동진때 대시인이며 학자인 도원명이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묘사한 인간선경이며 천백년이래 사람들이 추구하는 무릉도원이다. 상덕의 도화원현은 진나라때 전란을 피해 온 사람들의 은거지였는데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이상향으로 묘사했던 무릉도원이 이곳이다.
중국고대 4대도교승지의 복택을 담고 있고 도화원 팔경과 어촌석조의 기이한 아름다움과 산주전원이 아름답고 사관정각이 성행하고 시문비각이 풍부하며 혁사전설이 기이함으로 세계적으로 희소한 절경이다.
도화원은 진대에 처음 건축되어 당나라때 초, 송대에 흥성하였으며 원대에 멸망하여 명청대에 폐지된 중국 역사상 고대사대도교승지의 하나로 35개의 작은 동굴이 있고, 천백년 이래 수많은 문인묵객(도연명, 맹호연 왕창령, 왕유, 이백 등)이 집결하여 많은 진귀한 글들을 남겼다.
도화원은 신화의 고향인 도선협, 도교승지인 도원산, 복지동천 도화산, 무릉도원 진인촌, 4개풍경구와 100여개의 코스가 있다.
12:05분 도화원관광을 마치고 버스가 세워져 있는 유현주점에서 점심을 먹는다. 소고기볶음, 돼지고기볶음, 양고기볶음요리와 생무채나물, 모듬야채(배추, 고추 등), 배추겉절이, 무나물, 감자볶음, 마파두부가 상에 올랐다.
우리팀은 그런대로 식사를 하였으나 옆 지하철팀의 테이블에는 음식에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그네들이 싸온 찬으로 식사를 한다.
이렇게 식사를 하면서 점점 중국음식이 입에 맞는다며 옆의 테이블 회원들에게 너스레를 떠어본다.
이곳의 식사비는 5천원꼴로 밥이 이모작 쌀이라 옛날 우리나라에 안남미 수입쌀과 똑같은 쌀이여서 밥알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쌀값이 1kg당 5백원씩 한단다.
12:45분에 점심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승차하여 12:48분에 용왕동굴로 출발한다.
도화원에서 상덕으로 돌아와 14시에 다시 고속도로에 들어서서 장가계로 달린다.
장가계는 자리현이요 무릉원구는 풍덕현이였으나 강택민주석이 1993년에 이곳을 방문한후 대풍현에서 장가계구로 승격시켰다.
버스기사는 용왕동굴로 향하는 도중에 산길을 달리다 길가의 앵두나무를 발견하고는 우리를 위해서 앵두나무 가지를 베어와서는 한 가지씩 나눠준다.
그림 처럼 펼쳐지는 주변의 풍광은 어느새 장가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강가를 끼고 흐르듯 펼쳐진 병풍바위군들은 환상적이며 바위와 산록을 따라 흐르는 강물은 새파란 모습으로 우리를 따른다.
15:46분 용왕동굴앞에 도착하여 매표소에서 가이드가 매표를 하려하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참을 옥신각신하더니 가이드 김호님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조금있다가 종이 한장을 들고 나와서는 매표소에서 매표를 한후 우리를 안내하여 16시에 용왕동굴 안으로 이끈다.
용왕동은 세계자연유산인 무릉원풍경구에서 동쪽으로 10km, 자리현 사이에 위치, 종유동 전문가들에게서 '세계 종유동 중 기적의 꽃'이라 찬미를 받고 있는 중국에서 제일 크고 재일 오래된 종유동이다.
용왕동은 백룡관광장가계그릅이 2003년8월에 3.5km의 관람코스를 개발(길이 30km, 평균높이 50m, 최고높이 64m, 넓이 80m,)에 착수하여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런 용왕동은 석주, 석랑, 석종유 등 천하제일기둥이라는 용왕보주는 하늘과 땅을 지탱하듯 그 기세가 대단하다. 1200여개의 계단으로 된 용왕동은 60~90분이 소요된다.
17:20분에 관람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17:25분에 버스는 출발하여 장가계의 "차박사가"라는 찻집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차박사가에 18시정각에 도착하여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단촐한 방으로 인도한다.
종업원은 토가차, 자스민차, 방미인차, 보이차를 소개하며 각종 차의 맛을 시음시키고는 차를 판매한다.
우리와 지태네는 차를 사지 않고 차박사가의 실내를 둘러본다.
19시에 찻집 옆에 있는 교포가 운영한다는 한립식당으로 이동을 하여 삼겹살로 저녁을 먹는다. 찬으로는 김치, 깍두기, 섞이버섯, 상치겉절이, 상추 등으로 저녁을 먹고는 19:50분에 식당을 나와서는 숙박지인 백장협주점으로 이동한다.
20시 백장협주점에 도착하여 프론트에서 408호를 배정 받아 입실을 한다. 오늘 저녁에 발마사지가 옵션에 포함되어 있는데 발마사지는 2만원이고 전신마사지가 3만원이여서 우리팀은 전체가 전신마사지를 받기로 하고는 팁으로는 각각 2천원씩 주기로 하였다.
장가계는 한나라 유방이 진나라를 진압후 한신과 장량을 토사구팽 시킬 때 장량이 한신의 죽음시 한신이 남긴 시를 보고는 자신도 곧 죽을 줄 알고는 이곳 대풍현으로 피신하여 성씨들도 없는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장가성을 부여 하였단다. 또한 이웃에 원씨성을 가진 신하가 함께 피신하며 원가계에 정착하여서는 원가성을 부여하였단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남녀 한쌍이 방으로 들어와서는 남자마사지사는 아내를 여자마사지사는 나를 마사지한다. 남자마사지사는 붙임성이 좋아 아내에게 아줌마 이뻐, 아줌마 몇 살이냐며 아줌마 피부 고와라고 말하고는 아저씨 미남이라고 살갑게 너스레를 떤다. 하는 짓이 이쁜데 여자는 말없이 희미한 미소만 띈다.
이들에게 영어를 할 줄 아느냐니까 모른다며 남자는 한국말을 좀 한단다. 하긴 한국관광객이 거의다 인것으로 안다.
이들의 안마를 받고나서는 팁으로 2천원을 주었더니 천원짜리 만원을 만원권으로 바꿔워 달래서 바꾸어 준다.
아내는 마사지를 받고는 시원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나로서는 별로이다.
이렇게 마시지를 받고는 취침에 들어간다.
이튿날 아침에 6시반부터 식사가 가능하며 7시정각에 보봉호로 출발하겠다며 5시50분에 모닝콜 하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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